최고의 善은 흐르는 물과 같다
노자(老子)사상도 이 시대에 뿌리내린 철학이다. 백가쟁명 시대에 탄생한 사상 가운데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상이라면 공자가 창시한 유가와 노자에서 비롯된 도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의 성격은 라이벌이라 할 만큼 다르다.
유가는 원래부터 지배층의 사상이었다. 지금도 유학자라 하면 우리는 흔히 대궐 같은 집에서 팔자걸음을 걷는 선비를 떠올린다. 반면, 도가는 민중의 사상이라 할 만하다. 도교(道敎)로 세속화된 도가의 사상은 지금은 우리 생활 속에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점(占)집 문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원래 노자 사상은 지극히 ‘자연 친화적’이었다. 전통 농경사회를 떠올려 보자.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그 시절만 해도, 동리 사람들 모두가 친척이거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이웃이라 법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의 문제는 조상 대대로 해 왔던 것처럼 ‘도리’에 맞게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사람들의 생활은 봄이 되면 씨 뿌리고 여름이 오면 김 매고 가을이면 거두는 식으로 자연에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갔다.
노자 철학의 핵심인 ‘도(道)’도 이런 자연스러운 생활방식과 다르지 않다. 도는 곧 자연의 길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바다를 헤엄치듯이, 자연은 가만히 놔두면 원래 주어진 길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
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순리대로 산다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밖에 없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이웃과 오순도순 산다면, 삶은 우주가 그렇듯 조화롭게 흘러갈 것이다. 덕(德)이 있는 사람이란 이렇듯 자연의 길, 곧 도에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한다.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고(上善若水),......
억지로 하지 말고 흘러가듯 살라(無爲自然)’는 노자의 가르침은 태고(太古)의 평화로웠던 시골 마을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나 혼란한 시대는 평온한 마을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싸우려면 군사와 물자가 필요한 법. 국사는 시골 마을의 젊은이들을 잡아가고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보호’해 준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 그들은 깡패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 자체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국가는 군사 요지라는 이유로 개인의 당을 빼앗아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다가 요새를 만들었다. 행복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척박한 땅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야했던 이들을 떠올린다면, 무위자연의 가르침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느끼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노자의 사상은 항상 마이너(minor) 철학이었다. 동양사회에서 메이저(major)는 당연히 공자의 가르침, 곧 유가였다. 한 무제 시대는 이 둘의 승패가 갈린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가 황제가 중심이 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곧 제국(帝國)으로 만들려 했던 무제는 유학을 국교로 삼았다. 공자는 나라를 가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백성은 아버지를 따르듯 임금을 따라야 하고, 임금은 자식을 돌보듯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임금은 아버지와 동등한 지위에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방 귀족들이 이런 임금의 ‘독재음모(?)’를 고분고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유가에 대항하는 그네들의 사상적 배경은 노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황로 학파였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모든 것을 한다.’는 노자의 주장을 쫒아, 임금은 억지로 나서려 하지 말고 귀족들의 지배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역사는 강력한 중앙 집권 군주였던 무제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때부터 노자의 사상은 장자의 가르침과 섞여 노장(老莊)철학, 도가라는 이름으로 마이너들의 삶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돌게 마련이다. 유가 특유의 위계 강조와 경직된 도덕 윤리가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정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과거 2,500년의 인류 역사가 자연을 개척하며 문명을 억지로 끌고 가는 인위(人爲)의 역사였다면, 새로운 시대는 자연을 따라가는 ‘친환경적’인 문명을 요청하고 있다.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강제가 먹히지 않고 시민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현상, 근엄한 조직의 논리보다 소규모의 인간적인 커뮤니티(community)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모습 등은 노자가 꿈꾸었던 무위자연, 소국민의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디 노자의 자연스러움이 억지 주장으로 물든 이 세상을 ‘부드럽게 흐르는 물처럼’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안광복 / ‘철학, 역사를 만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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