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

송담(松潭) 2009. 12. 7. 16:22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

 

 

 데리다(1930~2004)가 주장한 내용 중 하나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의 해체(Deconstruction)다. 이항대립이란 서양철학의 창시자인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의 전통이 되어 있는 양자대립구조를 말한다. 즉, 정신/육체, 남자/여자, 서양/동양, 백인/흑인, 신/인간과 같이 두 요소를 서로 대립시키면서 이 대립을 통해 정의(Definition)를 하고, 질서를 잡고, 규칙을 발견하는 철학 방식을 말한다.

 

 데리다의 주장은, 이렇게 양자 대립으로 몰고 가는 이항대립이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현실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위험이 있고, 또 양자대립을 수평적이 아닌 수직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근거 없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수직적 비교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를 대립시키면서 정신은 우월한 것이고 육체는 저열한 것이며, 남자와 여자를 비교해 남자는 탁월하고 여자는 열등한 것으로, 서양과 동양을 비교하면서 서양은 뛰어나고 동양은 후진적이라는 식으로 비교하는데, 이는 상대되는 것들 간에 우열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근거라면 데리다 이전 서양의 주류 철학자들이 내놓은 도그마에 가까운 주장뿐이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의 이항대립의 해체 주장은 미국 대통령 선거(오바마 대통령 당선) 말고도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다.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성적우수상을 여학생들이 거의 독차지하는 모습은 이미 대학가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판검사 임용 비율에 있어서도 2007년 이후 여성이 남성을 앞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오랜 역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열등하게 나타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남녀차별을 조장하는 사회적 환경 탓이지 남녀 간의 속성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증명되고 있다.

 

 오랫동안 서양사회를 지배해왔던 오리엔탈리즘 역시 여지없이 깨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짧은 산업화 기간에도 불구하고 여러 선진국가들을 능가하는 놀라운 기술발전을 보여주었다. 동양권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이미 서양사회에 귀감이 된지 오래고, 머지않아 중국과 함께 한국, 일본 동양 삼국이 세계경제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것이 이제는 전망이 아닌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서양 철학자들이 만들어왔던 “동양은 열등하고 서양은 우수하다”는 주장이 아무런 근거 없이 날조된 엉터리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관계 역시 뇌생리학의 발전과 함께 대립관계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정신과 육체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육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분명히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가 단순히 정신을 담아두는 그릇에 불과한 존재로서 열등하다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정신 나간 행위에 해당된다.

 

 흑백만이 아닌 회색지대가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 피부색깔 차이는 글자 그대로 색깔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성이 보다 당당하게 남성들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사회 구석구석까지 확장시켜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하는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플라톤의 잘못된 이항대립을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것이다.

 

신동기 / ‘희망, 인문학에게 묻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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