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한 후에 천명을 생각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남송의 유학자 호인(1098~1156)이 자신의 저서‘독사관견(讀史管見)’에서 처음 사용했다.
초월적인 신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신에게 ‘기도했다’면, 동양 사람들은 천명을 ‘기다렸던’ 것이다. 어떤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신에게 기원하고 기도하는 태도는 구체적인 일을 수행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태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천명’이란 무엇이며, 나아가 그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진인사대천명으로 요약되는 과거 동양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정초했던 철학자 맹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신의 마음을 다한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알고, 자신의 본성을 안 사람은‘하늘(天)’을 안다. (......) 요절하든 장수하든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을 닦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하늘의 명령(天命)’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 맹자 진심 上 -
기독교 신자라면 맹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하늘’에서 ‘신’을, 그리고 ‘하늘의 명령’에서 신의 명령을 연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성급한 판단이다. 맹자에게 있어 하늘과 천명은 모두 인간의 노력 뒤에서나 드러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하고 난 뒤에야 맹자는 우리가 자신의 본성과 하늘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맹자의 태도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믿고 숭배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만약 자신의 마음을 다하고 자신을 닦지 않는다면, 누구든 하늘과 하늘의 명령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붓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진인사대천명’이란 익숙한 말이 얼마나 무서운 교훈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 말의 논점은 ‘진인사’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다’는 구절에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겸허하게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를 수 있고, “이것이 나의 천명이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최선을 다한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두 나의 역량 밖의 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좋아도 감사하게 받아드릴 뿐이고, 반대로 결과가 나빠도 겸허하게 받아드릴 수박에 없다. 맹자가 “자신의 도(道)를 다하고 죽는 것이 바로 올바른 명(命)”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즉 자신의 도(道)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이도 죽음이 다가올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천명인 것을.
동양의 사유 전통에서 이상적인 인격, 즉 ‘군자(君子)’이든 ‘진인(眞人)’이든 모두 생사에 초탈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극한에 이를 때까지 최선을 다해 수행했던 사람들이다. 그 한계 상황에서 불행이도 죽음이 자신을 반기게 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 당당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삶에 더 이상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해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 미련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비극적 당당함이 요약된 구절이 바로 ‘진인사대천명’이란 짧은 구절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난 뒤, 조용히 그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맹자 이후 동양의 지혜로운 이들이 ‘진인사대천명’이란 구절로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종교에 맹신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오늘, 우리가 깊게 되새겨볼 가르침이다.
강신주 / ‘철학이 필요한 시간’중에서 발췌 (내용 일부 생략, 연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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