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생존
꿀단지가 엎어지자 파리들이 날라들어 정신없이 달콤한 꿀을 빨아댔다.
하지만 꿀을 다 먹은 파리들은 다리가 바닥에 붙어 날아갈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한탄했다. “아, 어리석어라, 조그만 쾌락을 누리려고 목숨을 버리다니.”
달콤한 것은 왜 그렇게 좋을까? 대체 쾌락이란 무엇일까? 쾌락은 생의 필요성과 굳게 연결되어 있다. 당은 생명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단 것은 그렇게 맛있는 것이다. 번식에 성공하지 못하면 종은 소멸한다. 그래서 성적 쾌감은 그토록 강력한 것이다. 개체는 즉각적인 쾌감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행동은 장기적으로 생명의 유지, 혹은 종족의 유지에 기여한다.
다만 문제는 너무나 강력한 쾌락에의 충동이 생명의 위협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생명의 위험이 생태계 도처에 잠복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쾌락에의 탐닉은 생명을 위해 생명을 거는 역설적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화 속의 파리들도 쾌락 때문에 죽음의 함정에 달려들었지만, 죽음을 감수하게 만든 꿀의 달콤한 맛은 파리가 한탄하듯 하찮은 쾌락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쾌락이었다. 따라서 죽어가는 파리의 마지막 한탄은 쾌락을 사소하게 보는 인간적 관점의 반영일 뿐이다.
내용상 비슷하지만 정반대 입장을 제시하는 우화도 있다. 고깃국에 빠져 죽은 파리의 이야기다. 죽으면서 파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먹고 마시고 목욕까지 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이 파리는 쾌락주의 파리다. 그에 따르면 생존의 가치는 쾌락을 누리는 데 있다. 그러니 쾌락을 누릴 만큼 누렸다면 굳이 삶을 더 지속시키려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겠는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쾌락을 저주하는 파리와 이어질 삶보다 지금 이 순간의 쾌락을 중시하는 파리는 단기적 보상(쾌락)과 장기적 보상(생명유지)의 분열이 낳은 인생관의 두 극단을 대표한다. 두 파리는 철저하게 인간화된 파리다. 실제 파리라면 꿀에 붙어버렸든 고깃국 속에 익사하든 그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삶이란 얼마나 위험한가!
김태환 / ‘우화의 서사학’중에서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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