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말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송담(松潭) 2022. 12. 17. 15:19

말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트겐슈타인

 

 

한 권의 책을 쓴 후 철학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믿고는 스스로 철학계를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1889-1951)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철학계의 천재로 떠올랐지만 철저히 소박한 삶을 실천하면서 살다간 시대의 기린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를 소유한 사업가였습니다. 자식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고 음악과 예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의 예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식들이 공학을 전공해서 사업가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런 아버지와 갈등을 빚어 세 아들이 자살을 했고 비트겐슈타인도 10대 중반부터 자살 충동에 사로잡힙니다. 다행히 영국 유학 중 케임브리지에서 러셀을 만나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정서적 안정을 얻게 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비트겐슈타인은 자원입대해 5년간 참전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군에게 사로잡혀 포로수용소에서 10개월을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논리 -철학 논고》를 완성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계로 돌아가지 않고 초등학교 교사가 됩니다. 그즈음 아버지가 죽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습니다. 하지만 유산을 모두 형제자매에게 나누어 주고 빈털터리의 삶을 선택하지요. 톨스토이 글을 읽고 소박한 삶의 진정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팔꿈치가 해지도록 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흔한 넥타이 한번 매지 않는 검박한 삶을 실천합니다.

 

1929년 비트겐슈타인은 학교의 요청으로 케임브리지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의 지나친 열정과 직설적 성격이 다시 문제가 됩니다. 학교와 갈등을 빚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또다시 전장으로 향합니다. 자원봉사자로 전장을 누빕니다. 어디를 가든 삶의 최전선에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비트겐슈타인은 학교로 돌아옵니다. 연구를 계속하던 어느 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그는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 주오'라는 말을 남기고 1951년 세상을 떠납니다.

 

철학의 언어적 전환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그동안의 철학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했기 때문에 언어적 혼란을 불러왔고 그 논증들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말자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할 수 없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진리, 선(善), 존재 같은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논증해 증명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칸트가 그 주인공입니다. 칸트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들은 인식의 판단형식을 넘은 곳에 있어 포착되지 않습니다. 칸트는 그것을 ‘물 자체’라고 하면서 신과 영혼, 세계 자체를 예로 들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칸트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칸트는 인간의 판단 형식의 한계를 지적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은 판단과 사고를 표현하는 '언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이 생각을 말했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생각이 아닌 언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표현하려면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생각 자체가 언어의 작용입니다. 이런 주장은 철학에 엄청난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인간이 언어에 의해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꼬집었고 철학도 그 예외가 아니며 그동안의 철학적 논의들이 언어의 작용, 한마디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성찰이었기 때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철학이 언어적 전환을 이루었다고 말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어와 생각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후설의 입장에서는 '나는 '무엇을' 생각한다'고 해야 맞겠지요. 현상학적 지향성의 개념으로 봤을 때 생각은 대상이 없이는 불가능하니까요. 여기에 20세기 언어학이 얻은 또 하나의 결론을 덧붙이자면 '나는 무엇인가를 말로 생각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이 없다면 생각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은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선험적 조건입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한다'고 믿습니다. 내가 생각한다고 할 때 생각을 하려면 생각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언어입니다. 토끼를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귀엽다'는 ‘말’이 떠오른 것과 같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귀엽다'는 말이 없거나 '귀엽다'는 단어를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귀엽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다른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성장하면서 새로운 단어와 개념을 배우죠. 그것을 외우고 응용하면서 말을 익히고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언어를 익히는 과정입니다. 이때 우리가 익히지 못한 단어와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포착되지 못한 것으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언어를 익히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존재, 사유가 불가능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언어가 없다면 사유도 없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잘 아시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입니다. 인간은 세상의 어떤 몸짓에 이름을 붙입니다. 개념 짓는 것이죠.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인 후 그것을 그렇게 부릅니다. 이것이 최초의 언어 작용입니다. 이 최초의 작용 이후 사람들은 꽃을 꽃이라고만 불러야 합니다. 꽃을 보고 돌이라고 하거나 토끼라고 하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될 겁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고 그것을 지켜야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이제 인간은 약속에 구속되어 언어의 구조 속에서 감정과 사유를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태어나서 한국어를 접하고 배우며 한국어로 생각합니다. 말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자라면서 배우고 생각을 표현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약속된 것을 익히는 것이 교육이죠. 그리고 교육받은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언어가 먼저입니다. 언어가 사유에 앞서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언어가 제공하는 조건에 따라서, 그것을 이용해서 사유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현대의 언어학이 발견한 논리입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생각해서 언어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언어의 한계 속에서 사유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적 전환은 이런 언어관에 기초해 있습니다. 철학은 사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유를 표현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결국 언어적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쓸모없는 것일까요?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은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기존의 철학은 새로운 사유를 발견하고 사상을 펼치는 일을 해 왔지만 그것은 언어적 혼란만 가중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철학은 그런 시도를 포기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확히 구분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말하려는 시도를 멈추도록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그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철학의 사명입니다.

 

안상헌 / ‘미치게 친절한 철학’중에서

 

 

구조주의(Structuralism)

 

 

인간과 사물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사유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구조주의(Structuralism)'입니다. '구조주의는 인간을 비롯한 사물의 의미는 하나의 개체로서가 아니라 전체 안에서 다른 것들과 맺은 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그 개체가 속한 집단에 의존한다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적 집단이나 지역, 시대가 우리 생각을 형성하고 삶의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나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구조의 영향력 아래에서 영향을 받고 그 힘을 받아들이는 객체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자랑하던 이성 또한 소극적이고 초라한 것이 되고 맙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구조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구조란 우리 사회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하고, 어떤 제도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 혹은 시대, 제도나 장치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구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를 제대로 보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구조주의의 태동에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니체가 함께 거론되곤 합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마르크스가 토대와 상부구조로 구조를 통찰했다면,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을 풀어냈습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생각한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입니다. 니체의 계보학은 다른 관점에서 구조주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선과 악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인지 그 내용을 공유하고 있죠. 뉴스를 보며 '나쁜 놈'과 ‘훌륭한 분'을 쉽게 구분해 낼 수 있는 것은 선악에 대한 관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원래 존재하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고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어떤 사회에서 선한 행동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다른 곳으로 가면 악이 되는 경우가 이것을 말해 줍니다. 사회마다 그 사회가 만든 선악의 개념이 있고 그 사회에 속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니체의 계보학이 우리에게 던진 구조주의적 메시지입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를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종합해 보자면'인간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간을 만든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소쉬르와 구조주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니체를 구조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구조주의를 본격적으로 펼친 사람은 소쉬르(Saussure, 1857-1913) 입니다. 소쉬르는 철학적인 의미에서 구조를 주장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구조주의자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언어학을 통해 후에 구조주의라고 불리는 사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의 핵심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소쉬르는 언어학자입니다. 언어학과 철학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미 비트겐슈타인을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철학은 언어로 이루어집니다. 언어가 없다면 사유도 불가능하죠. 언어와 철학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인간의 언어를 잘 살펴보는 것이 철학적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와서 철학이 언어학에 집중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인류학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던져진 세계 - 내 - 존재입니다. 인간에게 삶은 낯선 상황 속에 참여하고 거기에서 결단하며 자기를 구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실존은 상황에 따른 결단에 달려 있고 그것의 결과에 책임을 집니다. 이때 그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역사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가 그의 선책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존주의적 사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 구조주의입니다. 물론 인간이 어떤 환경에 던져진 존재이고 그것에 구속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구조주의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주체의 문제로 가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실존주의는 결단을 하는 주체인 인간을 강조했지만 구조주의는 결단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며 오히려 주체가 구조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인간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하나의 현상, 개별자로 봅니다. 역사적 상황에 던져진 '나'를 기준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탐구하는 존재가 실존입니다. 반면 구조주의는 보편적 인간을 상정하고 사유합니다. 인간은 특정한 구조에 던져지고 구조에 의해 규정되고 만들어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조주의와 실존주의는 필연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갈등이 사르트르와 레비스트로스의 논쟁이었습니다. 결단에 대한 역사의 심판을 강조하는 사르트르에게 레비스트로스는 '역사는 그것에 관심을 가진 집단이 만든 기준’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역사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자세를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르트르는 구조주의를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라고 평가절하하고 역사의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한다며 논쟁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존주의의 침몰이었습니다.

 

구조주의가 소쉬르에서 시작되었음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소쉬르의 바통을 이어 받아 구조주의를 학문 전반에 퍼뜨린 사람을 만나 볼 차례입니다. 그가 바로 앞서 말한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 1908-2009) 입니다. 그는 원시적 사고를 분석한 후 문명인의 사고와 비교하여 일약 구조주의의 중심에 선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친족의 기본구조》, 《야생의 사고》, 《슬픈 열대》, 《구조인류학》 등의 책들은 구조주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고 많은 사상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쉬르의 구조언어학과 방법론을 인간 생활과 사유로 끌고 온 것이 레비스트로스였습니다. 인류학의 레비스트로스, 계보학의 푸코, 정신분석학의 라캉, 문학이론가 롤랑 바르트를 흔히 '구조주의 사총사'라고 합니다. 이들은 소쉬르의 언어구조론을 자신들의 분야에 적용시켜 구조주의를 일반화한 장본인들입니다. 그 중심에 레비스트로스가 있습니다.

 

안상헌 / ‘미치게 친절한 철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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