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권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송담(松潭) 2022. 12. 18. 11:13

권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폴 미쉘 푸코(Foucault ,1926~1984, 프랑스)

 

사진출처 :경향신문

 

 

생산하는 권력

 

푸코의 문제의식은 프랑크푸르트학파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유사합니다. 근대적 주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하여 그 본질을 발가벗겨 보는 것입니다. 주체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주체의 참모습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작업을 거쳐 푸코가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는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몸,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권력 작용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일까요? 제도일까요? 국가일까요? 왕일까요? 지배계급일까요? 푸코는 권력을 고정된 어떤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절대권력을 가진 왕, 귀족연합세력, 부르주아 계급이 권력 그 자체는 아닙니다. 오히려 권력은 규정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눈으로 파악할 수 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포착하는 순간 모습을 바꾸는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권력은 한 사회의 '전략적 상황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권력을 경제적 토대를 반영하는 상부구조의 일환으로 지배계급이 소유한 권한으로 봅니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주가, 봉건제 사회에서는 영주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르주아가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해에 익숙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느 정당이 여당이 되는가에 따라 권력의 판도가 바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푸코는 이런 생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소유 중심의 권력관으로는 권력의 참모습을 설명해 낼 수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권력이 한 사람 혹은 특정 세력에게 종속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왕이나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권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왕의 결정에 대해 신하들이 '아니 되옵니다'를 반복했고, 신하들의 주장에 왕들도 '아니 될 일이오'라는 말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물론 왕, 지배계급, 회장님, 팀장 등이 권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권력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권력은 매 순간, 상황마다 모습이 다르고 작동 방식도 변합니다. 푸코에게 권력은 매 순간 실체가 변하는 네트워크의 망입니다.

 

그렇다면 권력은 어떤 과정으로 작동할까요?

 

먼저 권력은 지식을 생산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습니다.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깨닫게 되면 환희를 느낍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쾌감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식화합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는 지식을 생산합니다. 이때의 지식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권력 또한 지식을 생산합니다. 당연히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입니다.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선두 주자였던 정도전은 시대의 지식인이었습니다. 《조선경국전》, 《불씨잡변》, 《경제문감》 같은 수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중에서 《불씨잡변》은 불교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불교의 교리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유교사상을 보급하는 데 기여한 책입니다.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을 받아들였고 성리학으로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정도전이 생산한 지식들은 결국 자신과 신진사대부의 권익에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매스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네이버'와 '다음'의 첫 페이지에 보이는 기사들은 왜 내용이 다를까요? JTBC와 채널A는 왜 다른 담론을 펼치는 것일까요? 지식이 곧 권력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기사 한 줄, 댓글 한 줄에 엄청난 권력 - 지식들이 작동하고 있다면 과언일까요?

 

우리가 읽는 교과서, 신문, 책들, 심지어 잡지들까지 모두 권력 작용의 결과물들입니다. 그 속에 포함된 지식들은 누군가를 이롭게 하거나 누군가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장치들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님의 지시에도, 선생님의 말씀에도, 친구가 나를 위해서 하는 충고에도 권력이 작동합니다. 지식은 권력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권력이 생산하는 것은 지식만이 아닙니다. 권력은 몸을 생산합니다. 규율과 감금, 교육과 훈련을 통해 권력이 생산하는 것은 순종하는 몸입니다. 푸코는 팬옵티콘(panopticon)에 주목합니다. 팬옵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자 벤담(Bentban, 1748 1832)이 설계한 원형감옥으로 수많은 죄수를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만든 시설입니다. 간수는 중앙에 있는 높은 탑에서 독방에 수용된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죄수들의 방은 환히 밝아 잘 보이지만 간수의 감시탑은 어둡습니다. 죄수들은 간수가 자신을 보는지 안 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늘 감시당해 왔기에 간수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의 시선이 제대로 구현된 모습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는 유명한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죠.

 

팬옵티콘의 특징은 죄수들이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간수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규율을 따르고 탈옥할 생각을 품지 못합니다. 권력의 시선을 스스로 받아들여 순종하는 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장치들은 감옥뿐 아니라 학교, 회사, 공장 등 사회의 다양한 조직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지시로 전 조직원들을 통제할 수 있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강력한 것은 비인간적 처벌이나 통제가 아니라 규율이라는 합리적 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성담론도 생산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 인구가 많다며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이 유행했습니다. 물론 국가에서 정책으로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국가가 성담론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가 등장했습니다. 둘도 많으니 하나로 줄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셋 낳으면 애국자', '인구절벽의 재앙'이라는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사람이 부족하니 많이 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인구가 너무 많으니 적게 낳자는 것이고, 인구가 적으니 많이 낳자고 한 것인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푸코에 의하면 인력 관리는 자본주의의 유지, 강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자본 축적에 맞게 인력이 조절되어야 생산력과 이윤 분배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인구 조절과 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생산되어 권력 - 지식으로 작동합니다.

 

지식은 권력이다.

 

푸코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제도와 관념들의 영도를 탐구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과 비정상, 문명과 야만, 이성과 반이성 등이 사회 구조 혹은 권력 작용의 결과이며, 고정불변한 것이 아닌 변하고 소멸할 수 있는 것임을 밝힙니다. 이것은 광기와 형벌제도, 성담론 등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을 기초로 산출해 낸 것입니다. 푸코의 메시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 권력은 사회적 관계에서 작용하는 힘이다.

 

푸코의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공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의 개념과 작동 방식에 대한 분석입니다. 권력이란 고정되고 한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작용하는 힘이며 특정 상황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 인간의 정체성은 권력의 산물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라고 믿었던 인간(근대적 인간)은 사실 권력 작용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권력에 의해 통제, 관리되고 길들여진 객체일 뿐입니다.

 

● 권력은 지식을 생산한다.

 

권력은 지식과 결합하여 권력 - 지식을 형성합니다. 이것으로 자신을 강화하고 순종하는 몸들을 생산합니다.

 

이런 메시지들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결론은 선명합니다. 인간은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확신했던 주체, 이성, 인간관은 근대의 산물이며 곧 사라질 수 있는 관념이라는 것입니다.

 

푸코를 마무리하면서 꼭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푸코는 인간의 지적 활동(분류하고, 판단하고, 개념을 규정하고, 지식으로 체계화하는 이 모든 작업)에 축적 지향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적활동 자체가 권력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식에는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권력적이지요. 이해받고, 확장하고, 영향력을 과시하는 등의 모든 욕망은 권력입니다. 공부가 '순수한'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죠. 한마디로 지식은 권력입니다.

 

푸코가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권력의 작동 축이 아닌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분석하는 푸코 자신의 사유 또한 예외가 아니죠. 그렇다면 그의 글을 읽고 그것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 또한 권력 작용의 일환이라고 봐야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푸코를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안상헌 / ‘미치게 친절한 철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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