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근대철학사 개요

송담(松潭) 2022. 9. 21. 12:17

근대철학사 개요

 

 

근대는 이성의 시대였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을 세웁니다. 과학의 발전에 고무된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알 수 있다고 확신했고 이런 경향은 인식론의 발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대변하는 두 흐름이 합리론과 경험론이었습니다. 합리론은 본유관념을 기반으로 의심할 수 없는 중요한 근본 원리를 파악한 후 하나씩 인식의 지평을 넓혀 가는 연역적 방식을 강조했고, 경험론은 경험이라는 구체적인 사실에서 지식을 얻어 세계에 대한 이해로 접근하는 귀납적 방법을 신뢰했습니다. 이 두 흐름은 칸트에 의해서 비판적으로 종합되고 헤겔에 의해서 절대정신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한편 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이상에 대한 믿음으로 무장한 철학은 사회철학에 관심을 기울입니다.홉스와 로크, 루소로 이어지는 사회계약론이 그것입니다. 사회계약론은 개인은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연을 가지고 있으며 안심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이 자유를 위탁하는 계약을 맺어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생각이었고 왕과 시민계급의 갈등을 불러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권리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미몽에 빠진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는 계몽주의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은 미신과 구습을 타파하고 자기 스스로 세상을 판단하고 행동을 인정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시민들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동인이 되었고| 그 결과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거쳐 공화제의 수립을 가져옵니다. 이른바 근대국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근대국가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산업혁명을 계기로 부를 축적하면서 내외적 성장을 거듭합니다. 팽창된 자본은 국외로 눈길을 돌리고 19세기 후반의 식민지 경영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곳의 지원과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해 나갑니다.

 

이런 급속한 팽창 정책은 제국주의 국기 간의 충돌을 낳고 결국전쟁으로 비화됩니다. 그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비극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국주의가 파시즘으로 전락한 민족주의와 연결되면서 인류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전쟁으로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인류는 그동안 어떤 일을 저질러 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성과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일들이 약탈과 전쟁, 홀로코스트라는 반인간적인 모습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성찰은 근대성에 대한 반성과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이 이룩해 놓은 과학과 문명이라는 빛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현대철학은 성찰과 반성으로 시작됩니다.

 

 

철학의 위기와 현상학

 

 

현대철학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후설(Husserl, 1859~1938) 입니다. 후설은 현상학을 통해 철학의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철학자입니다. 그를 현대철학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의 제자였던 하이데거에 의해 본격적으로 현대적 사유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후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후설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살았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분위기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형이상학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형이상학존재의 근거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죠. 근대에 들어서 철학의 관심은 인식론과 사회철학 윤리학 등에 집중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여전히 형이상학이 깔려 있었습니다. 형이상학은 철학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형이상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고리타분한 학문으로 점점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머리아픈 것', '막연한 것',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이런 질문들이 형이상학적 탐구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논의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철학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학문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과학이 발달하고 산업이 성장하면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과학이 해내는 현실적인 역할에 비해 철학은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학문에 불과한 듯 보였으니까요. 한마디로 철학이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이것이 19세기 후반 후설이 활동하던 시대의 전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형이상학을 밀어내고 등장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실증주의(Positivism)였습니다. 실증주의는 형이상학적인 논리를 거부하고 사실을 근거로 과학적 탐구를 통해 진리를 추구하려는 경향입니다. 실험과 관찰을 통한 증명을 중요시했지요. 실증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이 콩트(Comte, 1798-1857)입니다. 그는 인간의 인식이 신화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로 발전하고 마침내 실증적 단계로 성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대인들은 신화적 세계관을 가졌습니다. 신화를 밀어낸 것은 철학이었고 당시의 철학은 형이상학이었습니다. 이 형이상학을 극복한 것이 과학과 같은 실증주의라는 것이죠. 이런 생각은 실증주의가 형이상학을 대체하리라는 당시의 분위기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실증주의의 침투는 심리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실험심리학이 그것입니다. 실험을 통해서 인간의 심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탐색하려는 시도가 실험심리학입니다.

 

이렇게 철학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당당히 등장한 것이 후설이었습니다. 그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수학자였고 또한 심리학자였습니다. 그는 오랜 학문적 탐험 끝에 모든 학문의 기초가 철학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학문이 시작되는 기초는 인간의 의식인데 그 의식을 철저하게 다룰 수 있는 학문은 철학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후설에게 철학은 다른 학문의 토대가 되는 가장 엄밀한 학문이었습니다.

 

철학의 참된 소명

 

그동안 철학자들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탐구해 왔습니다. 후설이 보기에 그들의 탐구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인간의 탐구 활동은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의식에 대해 충분히 탐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볼 때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어떤 사람은 핵무기를 떠올렸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독재자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통일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같은 사진을 보고 우리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배고플 때 만두가게를 지나가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침도 삼키게 됩니다. 같은 가게인데도 배가 부를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게 되죠. 배가 고프니까 만두가 맛있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후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배가 부를 때와 고플 때 다른 생각이 들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밝히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대상(對象)을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눈을 뜨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잠드는 순간까지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는 일을 합니다. 매 순간 만나는 대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는 느낌을 갖게 되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의 의식입니다. 우리의 의식 앞에 세상은 대상으로 주어지고 그에 대해 우리는 이런저런 판단을 하는데 그것을 주관하는 곳이 의식인 것이죠.

 

후설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대상이 의식에게 어떻게 주어지는가? 우리는 대상을 어떻게 의미 있는 것으로 파악하게 되는가? 이것이 현상학(Phenomenology)이 다루는 주제입니다. 사물과 세상은 우리에게 어떤 현상으로 주어집니다. 그 현상이 우리의 의식과 만나서 의미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후설이 왜 자신의 연구를 현상학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현상학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앎의 기초가 사물과의 첫 만남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판단하는 동안 그것의 의미를 해석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현상에 대한 해석들이 모여 지식이 형성되죠. 눈앞에 강아지 두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강아지를 보고 특성을 분석하려 합니다. 강아지를 생물학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숫자 2를 떠올리며 수학의 대상으로 봅니다. 강아지를 안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심리학과 관련지어 현상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강아지라는 현상을 생물학, 수학, 심리학 등으로 다양하게 이해합니다. 어느 쪽으로 파악하는가에 따라서 현상의 의미는 달라지고 그 달라진 의미는 각각의 학문적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대상을 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 활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후설은 현상의 의미를 파악하는 현상학이야말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해야 하며 그럴 수 있을 때 철학은 소명을 다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안상헌 / ‘미치게 친절한 철학’중에서

 

* 위 글 제목 '근대철학사 개요'는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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