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기호 / ‘눈감지 마라’중에서

송담(松潭) 2024. 5. 1. 05:48

 

 

< 1 >

 

이 아버지를 보라

 

“네 아버지가 점점 개가 돼가는 거 같다.” 지난달 중순 무렵, 정용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왜요? 또 두 분이 다투셨어요?” 정용이 묻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싸우긴 뭘, 말 상대가 돼야 싸우기라도 하지... 이건 뭘...그냥 개라니까, 개.”

 

원체 입이 건 어머니이긴 하지만, 사실 정용 또한 아버지를 볼 적마다 속으로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선인장이나 화초, 밑동이 단단한 나무처럼 좋은 것들 대신 자꾸 개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58년 개띠라서 그런가? 하지만 정용의 아버지는 여타 다른 아버지들처럼 인간과 개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상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다. 정용은 동네의 몇몇 그런 아버지들을 알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그냥 개'가 되어버리는 아버지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오줌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거나 전봇대와 어깨동무를 하려고 애쓰다가(바로 자신이 오줌을 갈긴 그 전봇대), 그냥 그 아래 드러누워 잠드는 아버지들 말이다. 그런 아버지들에 비하면 정용의 아버지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으며,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하루 대부분을 거실 작은 소파에 앉아 오랫동안 신문을 보거나 빨래를 개키거나 발톱을 깎으면서 보내는 아버지. 그런데도 아버지를 생각하기만 하면 자동 알람 설정이 된 시계처럼 개가 떠올랐다. 더 자세히 말해 눈곱이 자주 끼는 늙은 시추 한 마리가.

 

마침 자취방에 있는 겨울옷과 이불을 옮겨놓을 겸, 정용은 근 넉 달 만에 부모님 집을 찾았다. 부모님 집은 충청북도 청주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연립주택이었는데, 방이 두 칸에 거실과 주방, 욕실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방문은 모두 미닫이로 되어 있고, 웃풍이 심해 겨울이면 거실 유리창에 하우스용 비닐을 치는 집이었다. 그 집 거실에 아버지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정용의 아버지는 제약 회사 영업부에서 20년 가까이 일했고, 이후 치킨집을 열었다가 한 번, 배달 전문 족발집을 개업했다가 또 한 번, 크게 넘어진 적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집 안에만 머물렀다. 대신 정용의 어머니가 24시간 감자탕집 야간 주방 일을 시작했다. 정용 어머니의 입이 걸어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왜 불도 안 켜고 그러고 계세요? 하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밤이 되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정용은 아버지의 이상한 행동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안방에 있던 담요와 요를 꺼내와 욕실 문 바로 앞에 주섬주섬 폈다. 그러곤 거기에 웅크리고 누웠다. 욕실 문 앞은 현관문과 마주 보고 있어서 웃풍이 심한 곳이었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폭도 좁았다. 그런 곳에 아버지가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한 자세로, 그러니까 마치 개처럼. 누운 것이었다.

 

아버지, 왜 여기서 이렇게 웅크리고 주무시는 거예요? 제방에서 주무셔도 되잖아요? 4월이었지만 아직 밤공기는 차가웠다. 욕실 문 앞 바닥은 보일러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다 네 어머니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의 아버지가 이불 아래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용은 이불 쪽으로 고개를 조금 더 숙였다.“나....이게, 그러니까 이게.... 자꾸 샌다.” 정용의 아버지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오줌을 가리는데…… 난, 이제 이게......” 정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굽은 등의 윤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개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 2 >

 

벚꽃 철야

 

정용은 무작정 국도 갓길을 걷기 시작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는, 그러나 보름이 가까워진 달과 그 달빛을 한 몸에 받은 벚꽃 때문에 그렇게 어둡진 않았다. 이따금 바람이 한차례 불어올 때마다 어린 나비의 날개 같은 벚꽃이 살아 움직이듯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녔다.

 

"더러워서, 진짜......." 정용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혼잣말을 했다. 벚나무와 야산에 가려 물류 창고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간다면...... 걸어서 채 2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정용의 마음이 약해진 건 그 거리 때문이었다. 잠깐 수치스럽고 잠깐 고개를 숙이면 일당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또 몇십 킬로미터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난달부터 정용은 일주일에 세 번, 광역시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물류 창고에서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룻밤에 택배 상자 3천 개를 트럭에 쌓는 일이었다. 일당은 8만 원. 2주 연속 일을 나갔더니 적응돼서 그런지 그나마 허리 통증은 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침 퇴근 버스를 타면 현기증이 일고 종아리가 쑤셔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그제 아침, 정용은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물류 창고 담당 팀장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분명 계약한 시간은 오전 6시까지인데, 왜 7시까지 일을 시키느냐, 그렇게 일을 더 시킬 거라면 추가 수당을 줘야 하지 않느냐? 정용은 때가 잔뜩묻은 목장갑을 사무실에 반납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사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담당 팀장은 컴퓨터 엑셀 파일을 정리하다가 말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뭐 우리가 대단한 일 시켰냐? 뭐 어려운 일 시켰어?버스 오기 전에 잠깐 박스 좀 한쪽으로 정리해달라고 한 건데, 그게 뭐 그렇게 시간 따질 만큼 굉장한 일이라고...... 아,진짜 요즘 애들은.......”

 

정용은 담당 팀장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데, 그건 말의 내용때문이 아니라 말의 태도 때문이었다. 저 인간은 날 언제 봤다고 저렇게 반말을 해댈까? 정용은 지지 않고 더 따지고 싶었으나 버스 시간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자정 무렵 주어진 10분 휴식 시간에 정용은 다시 담당 팀장에게 따져 물었다.

"시간을 따질 만큼 굉장한 일이라서가 아니고요, 정확히하자는 거죠."

 

"야,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둬! 그만두면 되잖아. 너 아니어도 매일 일하겠다고 오는 애들 천지야. 아, 진짜 우리 땐 안그랬는데, 요즘 애들 왜 이러지?"

 

정용은 그 말에 바로 끼고 있던 목장갑을 벗어 바닥에 던지고 물류 창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정용은 후회하진 않았으나, 다리는 아팠다. 이대로 걸어가다 보면 모르긴 몰라도 아침 퇴근 버스보다 더 늦게 도착할게 뻔해 보였다. 정용은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서서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벚꽃에 가려 밤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벚꽃이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4월마다 사람들은 난리를 칠까…………. 정용은 괜스레 나무 밑동을 발로 툭 걷어찼다. 꽃잎이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정용이 한 시간 넘게 국도 갓길을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왔다. 정용은 거의 반사적으로 차선 정중앙까지 뛰어나가 양팔을 흔들었다. 물류 창고를 빠져나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차량 불빛이었다. 저 차만 얻어 탈 수 있다면, 광역시 근처까지 갈 수만 있다면, 정용은 이 밤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추운 겨울날, 자신을 태우러 다가오는 택시를 만난 것처럼, 정용은 최선을 다해 크게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앞까지 다가온 차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를 피해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면서까지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정용은 두 손을 든 채 멀거니 멀어져가는 차의 트렁크를 바라보았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벚꽃이 먼지처럼 일어났다가 다시 서서히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그대로 지나칠 것 같았던 차는, 정용과 20~30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러곤 시동도 끄지 않은 상태로 한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워서, 정용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그가 고함처럼 내지르는 말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미쳤어? 네가 멧돼지야? 깜짝 놀랐잖아! 하여간 요즘 새끼들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재빠르게 차 안으로 들어갔다. 차는 더 빠른 속도로 정용과 멀어졌다. 정용은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서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사라진 국도는 좀 전보다 훨씬 더 컴컴해진 것 같았다. 벚꽃이 만개해 있어도, 벚꽃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 어둠이 정용은 좀 무서웠다.

 

 

 

 

< 3 >

 

어떤 경비원의 삶

 

자정 무렵 진만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자정이라면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초소에서 야간 취침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음성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지만 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너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이걸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말이다……………." 아버지는 느릿느릿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오피스텔 야간 경비를 그만두고 인근 대단지 아파트로 직장을 옮긴 것은 올해 봄의 일이었다. 오피스텔보다 근무 환경이 더 낫다고 해서(오피스텔은 취침할 만한 곳이 여의치 않아 늘 책상에 엎드려 자야만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출근했는데,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고 한다. 계약 시 근무 기간이 6개월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 아버지가 그 부분을 염려하자 용역회사 부장이라는 사람이 귀찮다는 듯 툭 말을 건넸다고 한다.

"아이 참, 그게 원래 조건이라니깐요. 웬만하면 다 연장될 거예요."

아버지는 그 말을 믿었고, 그래서 바로 서명했다. 코로나19시국인지라 경비원 자리 하나를 두고도 여러 명이 줄을 서는 상황이었다.

 

600세대가 조금 넘는 아파트인지라 일은 많았다. 재활용이나 음식물 쓰레기 처리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미화와 조경, 택배 처리까지, 아버지는 쉴 틈 없이 일했다. 일은 고됐지만 그래도 경비초소에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어 딱히 불만은 없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자리라고, 아버지의 교대 근무자가 말했다

 

문제는 지난달, 새로 입주민대표자회의 회장이 선출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새 회장이 내건 공약은 현재 여섯 명인 경비원을 네 명으로 줄이겠다는 것. 그로 인해 세대마다 매달 관리비 1만 5천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 경비원은 줄어들지만 무인 택배 시스템과 CCTV 확충으로 입주민 불편은 최소화하겠다는 것. 그는 그 내용을 아파트 엘리베이터마다 게시했다(그 게시물 부착 또한 아버지를 포함한 두 명의 경비원이 했다). 그는 압도적인 지지로 입주민대표자회의 회장에 선출되었다고 한다.

 

“경비원들 다 문제였지 뭐…………. 우리 중 두 명만 자른다는게 아니고, 전원 계약 해지하고 새로 네 명을 뽑겠다고 했으니까."

 

아버지와 다른 경비원들은 소속되어 있는 용역회사에 도움을 청했으나, 그쪽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입주민 대표자에게 밉보였다간 바로 회사 자체와의 계약도 해지될 수 있으니까…………. 새로 뽑힌 입주민 대표자가 워낙 이쪽 일에 훤한 사람 같아서……………. 용역회사 부장은 그렇게 말을 흐렸다고 한다.

 

아버지와 다른 경비원들은 절망하고 체념했지만 의외의 반전이 일어났다고 한다. 입주민대표자회의에 참석했던 사십대 동 대표 두 명이 경비원 구조조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관리비 조금 아끼자고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쉽게 해고하나?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가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우리 또한 같은 일을 저지르는 거 아닌가? 만약 계속 이렇게 밀어붙이면 언론이나 SNS를 통해 알리겠다…………. 결국 그 두 명의 동 대표로 인해 경비원 구조조정에 대한 안건은 보류되었고, 아버지와 다른 경비원들은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면 잘된 거 아닌가요?"

진만이 묻자, 이번엔 아버지가 잠시 침묵했다.

"잘 됐는데..... 나도 그 두 분이 참 고마운데 어제 말이다, 그분들 중 한 분이 재활용장 옆에 커다란 책장을 버리겠다고 내놨거든 그건 따로 돈을 내고 수거해야 할 물품이어서, 그게 1만 2천원인데, 내가 참 그분이 고마운 건 알겠는데, 말을 안 하고 그냥 가시길래 따로 말을 했거든. 이게 1만 2천 원을 내야 한다고. 그랬더니 그분이 그 사십대 남자가. 나를 한번 쓱 훑어보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는 거야. 마치 기분 나쁜 말을 들은 사람처럼."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때부터 내가 이렇게 불안한 거야. 내가……내가 잘못한 거니? 그냥 내가 1만 2천 원을 내는 게 맞는 거니?" 아버지의 질문에 진만은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가만히 휴대폰만 들고 서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은 건지 쉽게 판단할 순 없었지만, 아아, 그냥 진만은 그 모든 게 까닭 없이 서글프고 수치스러웠다.

 

< 4 >

 

"내가 유튜브에서 무슨 심리학과 교수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화가 나면 그때그때 풀어야 한대. 그래야 마음의 병도 안생기고 속병도 안 생긴대." 진만은 아예 정용 쪽으로 돌아누워 말했지만, 정용은 반응이 없었다.

 

"남들한테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병이 될 수 있고......"진만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정용이 휙 이불을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용은 침대에 앉은 채 진만에게 말했다.

 

“야, 도대체 어떤 새끼가 그딴 소리 하니?"

진만은 정용의 말에 살짝 어깨를 웅크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새끼 교수 맞아? 네가 그 새끼 유튜브에 들어가서 댓글 좀 달아. 똑똑히 알고 지껄이라고.”정용은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말을 이었다.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 진만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정용의 말을 듣기만 했다.

 

"피곤해서 그런 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안 피곤한 놈들이나 책상에 앉아서 친절도 병이 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구!"

 

정용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진만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정용은 지금 피곤하니까. 피곤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잠자는 것밖에 없으니까. 진만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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