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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 ‘원미동 사람들’중에서

송담(松潭) 2024. 8. 10. 11:06

양귀자 / ‘원미동 사람들’중에서

 

 

< 1 >

 

멀고 아름다운 동네

 

 

어머니가 은혜를 업고 안방 문 앞에 섰다. 아이는 밀려오는 설움을 참느라 입을 비죽거렸다.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아 눈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이 추위에 새파란데 어머니는 계속 내사마 좋다, 를 되뇌었다. 그러는 당신의 얼굴도 까칠하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제 살 집을 주시고 무사히 떠나게 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자손 만대 번영을 약속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살기 좋은 땅을 주셨습니다. 그간 이 가족, 살 집이 없어 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아버지, 이제 주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찾아 떠날 수 있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열여덟 평 연립주택을 마련하여 부천으로 떠나는 일이 당신에게는 가나안 땅으로 떠나는 일과 다름없다는 심정의 토로인 것이다.

 

"우짤래? 느그는 고마 택시를 하나 타고 앞장설 끼가?" 두 명 이상은 탈 수 없는 트럭의 옆 좌석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물음이었다. "여기서 부천까지 택시를 부르면 돈이 엄청날 텐데…………, 우리는 그만 짐칸에 타고 가면 되잖아요. 그래야 집도 일러주고……………."

"그래 갖고 되겠나. 홀몸도 아니고. 내가 마 짐칸에 타면 모를까......."

 

이제야말로 내 집을 마련해서 떠나는 길인데도, 어머니 말대로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떠나는 아브라함 같은 자기가 왜 이리 허둥지둥 일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라 하지만 만삭의 아내와 칠순이 가까운 노모, 그리고 칭얼거리는 어린 딸까지를 모두 무사히 부천까지 옮겨낼 일은 아무래도 암담하다는 기분이었다.

 

트럭이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은 담요를 어깨 위로 흠씬 추켜올리고서 몸을 웅크린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부풀어오른 배 때문에 웅크리고 있기 불편한 아내가 가끔씩 몸을 뒤척였다. 그는 아내의 등 밑으로 괼 만한 옷가지들을 뭉뚱그려 넣어주고 그녀를 좌석칸과의 칸막이에 기대게 하였다. 가끔씩 멀리서 들려오는 듯, 운전석에서 켜놓은 라디오의 유행가 소리가 새어나왔다.

 

잦은 신호 정지 때문에 마침내 그도 그녀도 스웨터 하나씩을 뒤집어쓰기로 하였다. 멈추어 서 있는 사이 뒤따라오는 차의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았다. 아내는 거의 눕듯이 기댄 채 옷가지와 담요 속에 파묻혀버렸다.

 

강은 가장자리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결빙되고 있었다. 암록색의 물과 얼음이 맞닿는 자리마다 종이처럼 얇은 살얼음이 깔리어 있다. 청둥오리라 했던가, 등이 까만 겨울 철새들이 얼어붙은 강변에서 푸드덕푸드덕 비상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작업선 몇 척도 강변에 머무른 채 같이 얼어붙고 있다. 아내는 강을 건너는 동안 마치 한강을 처음 보기나 한 듯이 고개를 쳐들어올리고 내내 얼어붙은 강을 보기 위해 애를 썼다.

“춥지 않아?" "아니요. 조금......

 

얼어붙은 강을 보자 새삼스레 추위가 덮쳐왔다. 아내는 조금 춥다고 말했지만 그로서도 이미 상당한 추위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담요 속으로 손을 넣어 차디찬 발을 비비기 시작했다. 밑바닥에 깐 방석도 그들의 체온만으로는 좀체 더워오지 않았고 두 다리를 감싼 냉기가 서서히 오한으로 번져올 조짐이었다. 가까이와. 그는 아내를 바짝 끌어당겨 어깨를 감싸안았다. 움직일 때마다 미끄러져내리는 옷가지를 끌어올리면서 아내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멀었죠? 어떡해요. 벌써 추우니………….

 

"영등포야. 반은 온 것 같은데…….. 춥지?" "네, 조금......."

 

아내가 다시 발을 비볐다. 아내의 어깨에 담요 자락을 치켜올려 덮어준 뒤 그는 주춤주춤 무릎을 펴고 일어서보았다. 앞과 좌우는 막혀 있고 트여 있는 쪽은 뒤뿐이었는데, 뒤로는 주욱 택시들만 대기중이어서 남의 시선에 걸릴 염려는 없었다. 담배는 공교롭게도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담뱃갑을 꺼내들고 주춤 앉다보니 성냥 또한 바지 주머니에 있어서 다시 몸을 일으키다가 그는 칸막이 유리창으로 눈을 대고 있던 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춥제. 아마도 당신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름진 입이 허위허위 벌어졌다 닫혔다 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은혜의 얼굴이 저쪽에서 푹 솟아올랐다. 아빠. 아이는 아마 그렇게 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를 향해 웃어주려고 했지만 얼어붙은 입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느낌뿐이었다. 아이의 조막만한 손이 유리를 두들겼다. 옆으로 쑤욱 또 하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운전기사였다. 엉거주춤 서 있는 그를 향해 기사는 손을 아래로 흔들어댔다. 앉으라는 말이겠지. 말 잘 듣는 생도처럼 그는 얼른 자리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때 막혀 있던 신호가 열렸고 차는 거친 숨길로 쓰윽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가라앉았던 매운 바람이 또다시 씽씽 그들을 에워싸며 함께 달렸다.

 

발은 좀처럼 따뜻해질 것 같지 않고 달리는 트럭은 끊임없이 그들을 흔들어대었다. 이젠 됐어요. 아내가 발을 움츠렸다. 그가 다시 담요를 다독이고 있을 때 트럭은 부천시에서 세워놓은 대형 아치의 입간판 밑을 지나고 있었다. 이삿짐으로 시야가 가려진 탓에 그는 간판에 새겨놓은 글씨를 다 볼 수가 없었다. 어서 오십시. 그가 본 것은 그게 다였다. 안녕히 가십시오와 어서 오십시오. 거푸 받은 두번의 인사가 그를 쓸쓸하게 하였다. 서울은 막무가내로 그들을 밀어내었다. 온갖 책략을 동원해서 그들을 쫓아낸 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음흉한 작별을 고했다. 달리는 트럭의 짐칸에 실려서 그는 부천시의 인사를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 저 반지르르한 인사말 속에는 또 어떤 속임수가 담겨 있는 것인지, 새삼 불안에 떨며, 아니 추위에 떨며 그는 펼쳐지는 새 풍경을 바라보았다.

 

시청을 지나면서부터의 길 안내는 그의 몫이었다. 관공서다운 위압감만 드러나 있는 흰색 건물을 지나고 나자 도로의 폭은 급격히 줄어들어서 트럭은 외마디 비명처럼 짧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켜야만 했다. 여기저기에 난립한, 똑같은 모양의 집장사 집들이 공터들 사이에 어색하게 서 있는 한적한 거리를 몇 분 달리고 나자 비로소 그가 살아야 할 동네가 저 멀리에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택가와 잇대어 있는 암회색의 어두운 공장 지대와 굴뚝의 시커먼 그을음이 보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네를 따라 길게 누워 있는, 병풍 같은 산자락 위에 드문드문 남아 있는 흰 눈이 어두운 하늘 밑에서 부연 먼지처럼 바래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마침내 트럭은 멈추었다. 노모와 어린 딸과,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그는 이렇게 하여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遠美洞)의 한 주민이 되었다. 트럭이 멈추자 맨 처음 고개를 내민 것은 강남부동산의 주인 영감이었고 이어서 어디선가 꼬마가 서넛 튀어나와 트럭을 에워쌌다. 미장원집 여자는 퍼머를 말다 말고 흘낏 문을 열어보았다. 지물포집 사내도 도배일을 나가다 트럭이 멈춘 것을 보았다. 연립주택의 이층 창문으로 나타난 퀭한 눈의 한 청년도 트럭이 짐을 푸는 것을 지켜보았다.

 

< 2 >

 

"밑천 댈 돈이 없으니 그 다음부터는 닥치는 대로죠. 서울서 밑천 털리고 부천으로 이사 온 게 한 육 년 되나. 이 바닥서 안 해본 게 없어요. 얼음장수, 채소장수, 개장수, 번데기장수, 걸리는 대로 했으니까요. 장사를 하려면 단돈 천 원이라도 밑천이 들게 마련인데 이게 걸핏하면 밑천 까먹기라 이겁니다. 좀 되는가 싶어도 자식새끼가 많다보니 쓰이는 돈도 많고, 그래서 재작년부터는 몸으로 벌어먹는 노가다 일을 주로 했지요. 뺑기쟁이, 미쟁이, 보일러쟁이 뭐 손안댄게 없어요. 잡부가 없다면 잡부로 뛰고, 도배쟁이가 없다면 도배도 해요. 그러다 겨울 닥치면 공터에 연탄 부려놓고 연탄 배달로 먹고살지요.”

 

키 작은 하청일과 키 큰 서수남이 재잘재잘 숨넘어가게 가사를 읊어대는 노래가 생각날 만큼 그가 주워섬기는 직업 또한 늘어놓기 힘들 만큼 많았다.

 

"연탄 배달이 그래도 속이 젤로 편해요 한 장 배달에 얼마, 이렇게 금새가 매겨져 있으니 한철에 얼마큼만 나르면 입에 풀칠은 하겠다는 계산도 나오구요. 없는 살림에는 애들 크는 것도 무서워요. 지하실에 꾸며놓은 단칸방에 살면서 하루에 두끼는 백원짜리라면으로 때우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농사질 때는 명절 닥치면 떡

한 말쯤이야 해놓을 형편이었는데... 시골서 볼 때는 돈이란 돈은 왼통 도시에 몰려 있는 것 같음서도 정작 나와보니 돈구경하기 힘들데요."

 

"개장수하시면서는 멍멍탕깨나 잡수셨겠어."

임씨의 개장수 시절 이야기는 아주 흥미있었다.

 

집에서 기르던 똥개가 새끼를 낳으면서 시작된 개장수는 망태기 하나 둘러메고

망태기 속에 오징어 다리나 명태 대가리들을 넣어 한적한 주택가를 헤매는 게 사실상의 일이라 했다.

 

"예나 이제나 똥개값이야 팔고 사는 사람들이 하도 빡빡하게 구니 남는 게 없어요. 주인 없는 발발이 새끼라도 건지는 게 돈버는 일입지요. 명태 대가리 던져놓고 다 먹기 기다려서 슬슬 걸어가기만 하면 돼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어디까지라도 따라오지요. 얼마큼 멀어졌다 싶으면 목에다 고리 채워서 같이 걸어가면 그뿐예요. 그래갖고 저 영등포시장에 개골목이 있지요. 거기다 넘기면 말예요, 다음 날 가보면 어제 넘긴 놈이 벌건 몸뚱이로 고깃근이 되어 좌판에 엎어져 있어요. 그것도 못할 노릇이데요. 눈깔 뻔히 뜨고 나자빠져 있으니 괜히 뒤가 구리다 이 말씀예요."

 

임씨 손에 끌려가 도살장에서 목을 달았을 개가 수십 마리쯤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개장수를 집어치웠다. 그렇게 맛있던 보신탕이 슬슬 역겨워지던 무렵이었다.

 

< 3 >

 

지하 생활자

 

방문을 열자 퀴퀴하고 눅눅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방 안에 있을 때는 코가 마비되어 느끼지 못하여도 밖에서 들어오려면 맨 먼저 곰팡이 냄새가 그를 반겼다. 천장에 거의 맞닿다시피 조그만 들창문이 하나 붙어 있기는 하였지만 크기가 워낙 작아서 환기를 시키지는 못하였다. 밖에서 보면 창은 땅바닥과 거의 닿아 있을 지경이었다. 노상 흙먼지와 빗물이 얼룩져 있고 먼지 때문에 뻑뻑해진 창틀은 문을 여닫는 데 굉장한 노력을 요구했다.

 

이 지하실방으로 이사를 오던 날, 그는 맨 먼저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창문의 유리에 흰 종이를 바르는 일부터 해치웠다. 측백나무로 울타리를 쳤고 또 앞은 강노인의 채소밭이어서 딱히 들여다볼 눈도 없을 것이지만 무방비 상태로 노출당하는 일은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밤이 되면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창을 닫았다. 여름이 되면서 그나마 숨통이 막힌 방은 후텁지근했다. 그래도 창을 열어놓은 채 자고 싶지는 않았다. 원미동의 모든 도둑고양이들이 겁 없는 쥐들이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밟고 뛰어놀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향 감각을 잃은 취객이 하필 그 창에 대고 방뇨를 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앞으로도 두 시간쯤은 더 잘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난 다음 그는 다시 눅눅한 이부자리 위에 드러누웠다. 위층 어느 집에선가 수도꼭지를 연 모양이었다. 바로 위에서 물이 쏟아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천장을 타고 흘러왔다. 한번 깬 잠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땅 위의 모든 소리들을 가늠하였다. 새벽밥을 짓는 여자가 누구일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공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또한 가파르고 옹색했다. 어디나 다 그랬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넓고 안전하게 설계되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금방이라도 고꾸라지게 만들 작정으로 설계된 듯이 보였다. 그곳은 벌써 철거되어야 할 낡은 공장들이 터만 넓게 자리잡고 있는, 공장지대도 주택가도 아닌 지역이었다. 그가 방을 얻어있는 동네도 원미동이었고 이곳 역시 행정 구역상 원미동이었다. 그는 매일같이 십여 분씩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매일매일 도보로 원미동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횡단하고 있는 셈이었다. 원미동 저쪽의 지하에서 웅크려 자다가 간신히 지상으로 올라왔는가 하면 또다시 썩은 공기가 괴어 있는 지하로 내려가야하는, 그런 삶의 나날이었다.

 

정말이지 공장 안의 공기는 썩어 있다고 할밖에 다른 표현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공장 안에 들어섰을 때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너 나 할 것 없이 피워 무는 담배 연기까지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환풍기 하나가 열심히 돌아가고는 있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원단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가 그나마라도 빠져나가는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 4 >

 

네 큰오빠가 아니었으면 다 굶어죽었을 거여. 어머니는 종종 이런 말로 큰아들의 노고를 회상하곤 했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떠도는 구름처럼 세상 저편의 일만 기웃거리며 살던 아버지는 찌든 가난과, 빚과, 일곱이나 되는 자식을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가장 심하게 난리 피해를 당했던 당신의 고향 마을에서도 몇 안되는 생존자로 난리를 피한 아버지였다. 보리짚단 사이에서, 뒤뜰의 고구마움에서 숨어 살며 지켜온 목숨이었는데 도시로 나와 아버지는 곧 이승을 떠나버렸다. 목숨을 어떻게 마음대로 하라마는 어머니에게 있어 그것은 결코 용서 못할 배반이었다.

 

아버지 살았을 때부터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생계를 돕던 큰오빠는 어머니와 함께 안간힘을 쓰며 동생들을 거두었다. 아침이면 우리들은 차마 입을 뗄 수 없어 수도 없이 망설이다가 큰오빠에게 손을 내밀었다. 회비 · 참고서값· 성금 · 체육복값 등등 내야 할 돈은 한없이 많았는데 돈을 줄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다. 밑으로 딸린 두 여동생들에겐 관대하기만 했던 큰오빠의 마음을 이용해서 오빠들은 곧잘 내게 돈 타오는 일을 떠맡기곤 했었다. 밑으로 거푸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는 셋째오빠의 부대자루 같은 교복이, 윗형 것을 물려받아서 발목이 드러나는 교복바지의 넷째오빠가, 한 번도 새 옷을 입은 적이 없다고 불만인 다섯째오빠의 울퉁불퉁한 머리통이 골목길에 모여서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오빠들이 일러준 대로 기성회비 · 급식값·재료비 따위를 큰오빠 앞에서 줄줄 외우고 있는 중이었다. 공장에서 돈을 찍어내도 모자라것다. 그러면서 큰오빠는 지갑을 열었다.

 

자라면서 나 역시 그러했지만 오빠들은 큰형을 아주 어려워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큰형이 있으면 혀의 감각이 사라진다고 둘째가 입을 열면 셋째도, 넷째도, 다섯째도 맞장구를 쳤다. 여름의 어떤 일요일, 다섯 아들이 함께 모여 수박을 먹으면 큰오빠만 푸아푸아 시원스레 씨를 뱉어내고 나머지는 우물쭈물하다가 씨를 삼켜버리기 예사였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려 등목이라도 하게 되면 큰오빠 등허리는 어머니만이 밀 수 있었다. 둘째는 셋째, 셋째는 넷째가 서로서로 품앗이를 하여 등목을 하고 난 뒤 큰오빠가 "내 등에도 물 좀 끼얹어라" 하면 모두들 쩔쩔매었다. 우리 형제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큰오빠를 예사롭게 대하지 않았다.

 

< 5 >

 

 

“설마 안 올 작정은 아니겠지? 고향 친구 한번 만나보려니까 되게 힘드네. 야, 작가 선생이 밤무대 가수 신세인 옛 친구 만나려니까 체면이 안 서대? 그러지 마라. 네 보기엔 한심할지 몰라도 오늘의미나 박이 되기까지 참 숱하게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했으니까.”

 

그렇게 말할 만도 하였다. 고상한 말만 골라서 신문에 내고 이렇게 해야 할 것 아니냐, 저렇게 되면 곤란하다, 라고 말하는 게 능사인 작가에게 밤무대 가수 친구가 웬말이냐고 볼멘소리를 해볼 만도 하였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박은자에서 미나 박이 되기까지 그 애는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진 모양이었다.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부천으로 옮겨와 살게 되면서 나는 그런 삶들의 윤기 없는 목소리를 많이 듣고 있었다. 딱히 부천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부천 사람이어서 그랬을 것이었다. 창가에 붙어 앉아 귀를 모으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넘어져 상처입은 원미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지는 실패의 되풀이 속에서도 그들은 정상을 향해 열심히 고개를 넘고 있었다. 정상의 면적은 좁디좁아서 아무나 디딜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엄연한 현실도 그들에게는 단지 속임수로밖에 납득되지 않았다. 설령 있는 힘을 다해 기어올랐다 하더라도 결국은 내리막길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수긍하지 않았다. 부딪치고, 아등바등 연명하며 기어나가는 삶의 주인들에게는 다른 이름의 진리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이란 탐구하고 사색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몸으로 밀어가며 안간힘으로 두들겨야 하는 굳건한 쇠문이었다. 혹은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