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모순'중에서
< 1 >
외식을 하기로 한 장소는 이모네 수준에 맞게 흐텔의 정통 프랑스식당이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어디로 갈까 많이 망설이다 정한 곳이라는 이모의 부연 설명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의 외식은 물론 그것마저 일 년에 몇 차례 불과한 일이지만, 망설임 한번 없이 단호하게 돼지갈비집이었다. 고기 타는 연기가 식당 바깥까지 자욱하고, 맛 좋기로 소문났다는 어머니의 자랑처럼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 찬 그곳에서는 먹는 일도 노동이었다. 쉴 새 없이 고기를 뒤적이고, 연기를 피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볼이 미어지게 싸 넣은 상추쌈으로 격렬한 입 운동이 불가피한 거기. 남동생과 나와 어머니는 전쟁터 속의 병사들처럼 묵묵히,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 돼지고기와 싸우다 거의 지쳐서 식당을 나오곤 했었다.
하지만 여기 이모네 외식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예약석으로 자리를 안내하는 웨이터의 몸에서는 달착지근한 향수 냄새가 풍겼고, 어딘가에서 직접 연주하는 듯한 잔잔한 피아노음은 우아한 선남선녀들이 앉은 테이블 사이를 나지막하게 흐르고 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식탁보랄지 꽃처럼 접혀진 냅킨 같은, 세련된 테이블 세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이모부가 익숙하게 주문하고 마침맞게 하나씩 나오던 그림 같은 요리에 대해서도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참이다.
나는 지루하게 계속되는 식사 도중 틈틈이 주변의 테이블들을 돌아보았다. 그 많은 테이블마다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은 평화만이 존재하는지 의견이 엇갈려 쥐고 있던 술잔을, 하다못해 무릎 위의 냅킨이라도 집어던지며 목소리를 높이는 손님은 한 사람도 없다. 나지막한 피아노음, 나지막한 대화, 나지막한 음성으로 손님을 응대하는 웨이터들, 나는 잠시 잘 관리되고 있는 대형 수족관 속에 들어앉아 있는 기분에 씹고 있는 고기 맛을 잃을 정도였다.
돼지갈비집의 그 어수선한 분위기, 반드시 한 패의 손님 정도는 술병을 내던지고 접시를 뒤집어쓰는 싸움판을 연출하던 거기, 고기를 더 시키려면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야 함이 너무도 당연하던 거기에서는 비록 전쟁터 같긴 했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긴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쉭쉭 나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라도, 결코, 지루할 수 없는 법이다.
< 2 >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힘만으로 상대하기 버거운 문제와 직면하면 마지막 수단으로 동네서점에 달려가 해결법이 들어있을 것 같은 책을 고르곤 했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와 한참 씨름하다 문득 뒤페이지의 해답편을 반짝 떠올리는 수험생처럼.
내가 기억하기로 어머니에게 난해한 문제를 가장 많이 제공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두꺼운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알아낸 것은 책 속에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성공한 여자 사업가의 자서전 한 권과 대학교수가 재미있게 풀어 쓴 문제 아이 다루는 교육론, 누군가한테서 미꾸라지 양식이 돈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미꾸라지 양식법을 읽었던 것이 아마 전부였을 것이다.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고 독파해낸 책들도 어머니 인생에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 성공한 여자사업가도 되지 않았고, 내가 훌륭한 자녀로 성장하지도 않았으며, 미꾸라지 양식은 자본금 때문에 시작도 못 해봤으니까.
"이게 뭐야? 일, 본, 어, 첫, 걸, 음? 100만 부를 돌파한 일어회화의 영원한 베스트 셀러?“
"오냐 니네 엄마, 일본어 좀 배워보려고 그런다.“ 역시 이번에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속옷가게, 이문 없어서 이젠 집어칠란다. 요새 우리 시장에 일본 사람들이 하도 많이 오길래, 그래서 일본 사람 좋아하는 걸로 팔아볼까 연구 중이야. 빤쓰 아무리 팔아야 남는 게 있어야지. 요샌 내가 파는 속옷은 시골 사람이나 입지 젊은 애들은 거들떠도 안 봐, 빤쓰도 패션이라는 데야 원, 할 말이 있어야지."
"일본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데?"
"인삼, 김, 김치, 장아찌, 그런 것들을 엄청 찾거든. 박스떼기로 사가는데 아예 일본 사람만 상대하는 그런 가게가 요새 제일 경기가 좋단다. 그런데 일본말을 할 줄 알아야지. 우선 이 책이나 떼어보고 뭘 하든지 말든지. 까짓것 하면 하는 거지."
어머니는 자신 있다는 듯 하하, 웃었다. 어머니의 웃음은 나날이 힘차진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었다. 전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나이가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 3 >
슬픈 일몰의 아버지
술꾼이었던 아버지가 다음 단계로 건달이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의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완벽한 건달의 조건을 갖추었을 때 나는 다섯 살, 진모는 세 살이었다. 어린 자식들과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마누라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실직 초기에는 아버지의 재기를 돕기 위해서 그럴 만한 친구와 일가친척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건달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아버지는 동원된 친지들의 호의를 단 몇 년 사이에 분노와 배신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소개해준 직장 때려치기, 빌려준 돈은 술과 도박으로 탕진하기, 걸핏하면 술 냄새 풍기며 찾아와 푼돈 요구하기. 안 주면 깽판치기…………
더 이상 누구의 도움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어머니가 시장에 좌판을 벌이고 양말을 팔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건달 생활은 아주 안정적으로 무르익어갔다. 내 기억으로, 비록 푼돈이긴 하지만 마음 놓고 강탈할 수 있는 돈줄이 생긴 것을 아버지는 아주 행복하게 여기는 듯했다. 어머니가 심혈을 기울여 베갯속이나 찬장의 양념단지 안에 숨겨둔 돈을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냈을 때 기뻐 날뛰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긴, 어린 나도 돈이 나타나는 그 순간만은 아버지 못지않게 환호작약하며 함께 기뻐했으니 우리 부녀는 다 같이 천진난만했다고나 할까.
아버지는 노획물을 혼자 차지하고 시치미 떼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반드시 어린 딸에게 일정 부분을 나누어주는 신사도가 있었다. 내 손에 돈을 쥐어주며 아버지가 했던 말들은 또 얼마나 신비로웠던가.
"안진진 우린 지금 비밀을 나눈 거야. 너 반쪽, 나 반쪽.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네 것과 내 것을 서로 맞춰봐야 하니까 잘 간직해야 돼. 두 개가 딱 맞아야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어. 안 맞으면 우리는 영원히 아빠와 딸 사이인지 모르고 슬프게 사는 거야."
아버지는 자기 손과 내 손을 활짝 펴게 해서 서로의 손바닥을 맞닿게 했다. 여덟 살 어린 계집애의 작은 손과 서른여덟 살 아버지의 큰 손은 잘 맞춰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은 안 맞지만, 안 맞아서 슬프지만, 나중에는 자로 잰 듯이 딱 맞는 날이 올 거야. 알았지? 그 때까지 반쪽의 비밀을 잘 간직하는 안진진이 될 거지?"
이미 아버지의 말에 홀려버린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아버지와 내가 반쪽씩의 비밀을 나누어 가졌으며 훗날 그 비밀을 맞춰보기로 약속했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부드러운가하면 금방 사나웠고, 따뜻한가 하면 당장 차가웠으며, 웃고 있는가 하면 순간적으로 폭포수같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았어도,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정신병자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떤 때의 아버지가 진짜 안진진의 아버지인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열 살의 안진진은 마음속으로만 다짐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아버지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포개서 두 사람의 손가락 길이가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날, 그때 꼭 물어보리라고.
아버지는 이제 돈이 떨어져도 쉽게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열흘 만에 혹은 보름 만에 한 번씩 들어왔다가 어느 시기부터 한 달 정도는 훌쩍 우리 곁을 떠나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끼니때 아버지 밥을 짓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자신이 일몰에 돌아오는 이유를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의 아버지 말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그렇게 돌아온 아버지는 사흘을 못 견디고 다시 어머니의 돈을 빼앗아서 집을 나가버리곤 했다. 아무 상관도 하지 않을 테니 그저 집에서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라고 어머니가 붙잡으면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그 말이 나 같은 사람한테 얼마나 심한 모독인 줄 당신이 알기나 하겠어. 그러니 나갈 수밖에."
모든 되풀이되는 일에는 내성이 생기는 법이었다. 나와 진모는 모욕감을 느낀 어머니조차도 아버지 없는 생활에 하등의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는 차라리 더욱 씩씩해지고 점차 이모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다를까닭이 없었다. 아버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한 번씩 집에 들어오다가 나와 진모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아예 일 년에 한 번 정도, 우리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 년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렀다. 그러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며칠 묵어 간 아버지는 그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는 슬픈 일몰에조차 꿈쩍하지 않을 내성을 갖게 된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우리 중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우리는 아버지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눈치챌 수 있는 아무런 단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다만, 행방불명되기 직전의 아버지가 상당히 건강했다는 것과, 부랑의 생활도 이십여 년을 계속하다 보면 한목숨 지탱할만한 도는 터득할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해서 아버지의 '행복'이 삶의 다른 형태라고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살아 있다.
어머니와 진모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낯선 길에서 슬픈 일몰을 맞더라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해진 아버지였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돌아올 날이 임박했다는 것을. 그 명백한 증거가 내 손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마침내 서로의 손바닥을 포개고 비밀을 맞춰볼 적당한 시기에 이른 것이었다.
< 4 >
어머니의 심술 / 쌍둥이 자매의 엇갈린 운명
그날, 이모네 집에서 보낸 시간들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어머니는 한 가지도 제대로 넘어가 주는 것 없이 사사건건 토를 달았다. 이모 집에서 보는 어머니는 늘 그랬지만, 그날은 좀 더 완강했다.
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따라 이모는 아름다웠고 활기에 넘쳐있었다. 자식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종달새 같았던 이모는 나와 엄마까지 와주어서 행복의 절정에 있었다. 행복했던 이모는 넓은 집 안 곳곳에 빠짐없이 꽃을 장식했다. 어머니는 죄 없는 꽃부터 비난하고 나섰다.
"무에 그리 너절하게 꽃들을 늘어놓았니? 안 그래도 마당 천지가다 꽃이구만. 참 할 일도 없다."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모가 잔잔히 흐르도록 켜놓은 음악도 어머니를 역정나게 했다.
"정신 사납게 음악은 무슨. 이 기계들은 다 뭐야? 이거 또 새것으로 바꿨구나. 몇백만원 줬겠어. 맨날 유행가만 듣는 애가 기계는 뭐할려구 자꾸 비싼 것으로 바꾸는지, 참말로 아랫돈이 아야야하는갑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당장 눈에 거슬려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머리스타일이었다. 어머니의 머리에서는 아직도 심하게 파마약 냄새가 나고 있었다. 게다가 앞도 뒤도 없이 무작정 튼튼하게 웨이브만 살려놓은 촌스러움이란 차마 바로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차라리 적당히 풀어져서 어수선하기만 했던 아침의 머리모양대로 있어줬다면 내 마음이 이토록이나 참혹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머니에 비하면 이모는, 끊임없이 세심하게 손질을 해주며 가꾸고 있는 이모의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은 얼마나 보기가 좋은가. 푸른색 소매 없는 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이모의 동그란 어깨는 얼마나 아기자기한가. 에어컨 바람이 알맞게 식혀준 실내, 어디 한군데 어색하지 않게 잘 꾸며진 거실 장식들, 우아한 겨자색 가죽소파가 자아내는 고급한 분위기를 놓고 보면 오직 어머니만이, 뽀글뽀글 볶은 머리를 하고 심술궂게 앉아있는 어머니만이 이 집에서 단 하나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소품이었다.
단언할 수 있지만, 이모의 자식들은 나와 진모 같지 않았다. 이모는 남편복에 이어 자식복까지 넘치도록 받은 사람이었다. 자라면서 어머니에게 수도 없이 들은 말, 남편복 없는 여자는 자식복도 없다는 그 말은 이모 때문에 내게 진리로 각인되었다. 어머니는 남편에 이어 자식에서까지 이모에게 밀리고 있었다. 하긴 어머니 주장대로 그것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 궤에 물려있는 것이라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연결이었다.
이모는 특별했지만 나는 이종사촌들과는 그리 각별한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어린 시절 잠깐을 제외하고는 그럴 만한 시간도 없었다. 그 어린 시절마저도 이종사촌들은 이모부의 철통 같은 보호 아래 있어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주리와 동갑이었고 주혁은 진모와 동갑이었지만, 우리는 나이만 같았을 뿐 사는 모양이 너무 달랐다. 아니, 하나 같은 것이 또 있긴 했다. 어머니들, 나이도 얼굴도 목소리도 똑같은 어머니들이 있었다.
그날 이모 집에서도 어머니는 자신의 취약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식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려온 주리와 주혁의 개방적인 차림새는 그쯤에서 조카들에 대한 힐난을 자제하기 위해 애쓰던 어머니의 인내심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주리는 금발에 가까운 갈색머리에 가슴과 등이 깊게 파인 대단히 시원하게 보이는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그 희고 앙증맞은 귀에 딱정벌레처럼 달라붙어 있는 귀걸이가 한쪽에 세 개씩 합계가 여섯이었다. 어머니는 먼저 내 귀를 확인했다. 나는 여름에는 귀걸이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의 공격 욕구를 한층 더 부채질 했다. 이윽고 어머니는 점잖게 입을 열었다.
"공부만 한다는 아이가 언제 귀에 구멍은 세 개씩이나 뚫었누."
“구멍 하나 뚫는 데 일 초밖에 안 걸려요." 어머니의 저의를 알 리가 없는 주리는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옷 입고 바깥에도 나가는 것은 아니겠지? 어디 그게 박사공부한다는 사람이 입을 옷이니?”
"이 옷이 어때서요? 이모 오신다고 일부러 좋은 것으로 갈아입었는데, 싫으세요?"
주리는 여전히 상냥하려 애썼지만 그쯤에선 내 어머니의 심술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숙여 어머니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거기서 그만두었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다시 주혁을 공격했다. 우선 걸린 것이 서투른 젓가락질이었다. 가정부가 주혁의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를 가져다줄 때 이미 어머니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었다. "넌 벌써 젓가락질하는 법도 잊었니? 나물을 칼로 썰어 먹다니,그런 꼴은 세상 태어나서 네가 처음이다. 그래가지고야 한국 돌아와서 어떻게 살겠니? 걱정이다. 걱정이야."
그 순간 이모가 굳은 얼굴로 아들을 주시했다. 주혁이 제 어머니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꼭 여기 와서 살아야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친구도, 스승도, 추억도 모두 거기에 있는걸요. 여기로 돌아올 이유가 없어요."
* 위 글 제목 '어머니의 심술/쌍둥이 자매의 엇갈린 운명'은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 5 >
흰젖제비꽃
지난 5월의 남도 여행에서 열흘 만에 돌아온 김장우는 처음으로 자신이 찍어온 야생화 사진 몇 장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거기, 희미한 것들을 사랑하고 애달파하는 그의 집착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이거, 실풀꽃이야. 실처럼 가늘고 눈처럼 흰 꽃이 하늘을 향해 총총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지. 이런 몸을 하고 바위틈에서 자란다면 믿겠니?"
실풀꽃 한줌 입김에도 꽃잎들은 눈가루 날리듯 떨어지고 말 듯하다. 그 넓고 넓은 산 속에서 이런 희미한 꽃을 찾아내는 사람.
"자, 이건 흰젖제비꽃 만나기 정말 힘든 꽃인데 운 좋게 찍을 수 있었어. 이름처럼 너무나 소박해서 좋아."
인화된 흰젖제비꽃은 무성한 타원형 잎들 속에 숨죽인 모습으로 다섯 송이쯤 피어있다.
"이건 큰들별꽃 다음 장소로 이동하느라고 계곡을 건너다가 기슭에서 이 꽃을 발견했는데……………."
김장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놀라 쳐다보니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푸른 잎사귀 속에 숨어서, 저토록 아련한 큰들별꽃들이, 깜박깜박 조용히 빛나고 있는 거야. 안진진, 나, 그냥 울어버렸다. 너무 작아서...아니, 저 홀로 숨어서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도 되는가 싶으니까 무지 눈물이 나대……………."
이건 큰들별꽃의 아름다움을 반도 담아오지 못한거야, 라고 덧붙이면서 김장우는 자신의 눈물을 계면쩍어했다.
선운사 경내를 돌아보고 도솔암을 찾아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중 그가 걸음을 멈추면 거기 반드시 두고 온 카메라가 생각나는 야생화들이 있었다.
"이거, 매미나물, 봄부터 가을까지 이렇게 숲 속에서 저 혼자 피고 지는 꽃. 줄기를 자르면 안 돼. 아프다고 피를 흘리거든."가느다란 줄기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노란 꽃이 애달프다.
"이게 바로 구절초, 우리가 흔히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들의 진짜 이름은 구절초야. 쑥부쟁이 종류나 감국이나 산국 같은 꽃들도 사람들은 그냥 구별하지 않고 들국화라고 불러버리는데, 그건 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꽃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 이름을 자꾸 불러줘야 해. 이름도 불러주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냐.",
< 6 >
하염없이 반짝거리는 녹색 물결을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의 절경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숨막히는 비장미를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묵묵히 너무도 아름다워서 울고 싶은 풍경 속을 뚫고 달렸다. 저 바닷속으로 이 지프가 굴러 들어가도 무방해. 이 고단한 생애를 등지고 물결의 포말이 되어도 상관없어.. 정말 괜찮아..………….
그러나 다시 붉은 황토밭들이 나타나고 육지의 마을들이 차례차례 스쳐갔다. 나는 바다를 잊을 수 없어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바다는 다시 보아도 좋았다. 간간 고깃배가 떠있고 고깃배 위로 뭉게구름 몇 조각이 친구하며 따라가는 풍경을 지나자 가파른 절벽 밑의 푸르른 물결이 나타났다. 미풍에 흔들리는 물결은 자잘하고도 섬세한 무늬를 만들었다.
저 바다에 광풍이 불기도 한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랴. 나는 활짝 내린 창턱에 고개를 괴고 물끄러미 바다만 보았다. 파도에 부서지는 가을 햇볕 사이로 갈매기도 날았다. 거기 갈매기가 살고 있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 앞에서 나는 새삼스레 놀라기도 했다. 사랑에는 몰입할 수 없었지만 바다는 온 정신을 다 바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사랑은 바다만큼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이었다. 아름답지 않아도 내 속에 들어앉은 이 허허한 느낌은 분명 사랑이었다. 지금 내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굴곡 심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 이 남자는 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사랑이었다.
< 7 >
사랑하는 사람의 미안함을 덜어주기 위해서 나는 부자여야 옳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의 곤궁함에 대해서는 더욱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막차를 타는 바람에 단골도 못 잡고, 늘어나는 재고와 까탈스러운 일본인 상대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내 어머니 속사정 따윌랑 절대 털어놓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남김없이 다 솔직해버리면 사랑이 누추해지니까. 사랑은 솔직함을 원하지 않으니까.
< 8 >
이모가 추천한, 아니 이모를 사로잡은 노래, '헤어진 다음날'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었다. 얼마나 되풀이 그 노래를 들었던가. 마침내 나는 가사집을 보지 않고도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사랑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봐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어제 아침엔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가져갈 수는 없나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나영규와 헤어진 다음날 내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나와 헤어진 다음날 나영규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방바닥에 턱을 괴고 엎드려 그 슬픈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노래는 나의 노래, 어쩌면 가까운 앞날의 나영규의 노래일 수는 있다.
그리고 나는 또 생각했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사랑에 관한 한 유행가가 옳다. 인생의 진리는 모르지만 사랑의 진리는 유행가가 맞는 것이다.
< 9 >
크리스마스 선물
대문은 열려 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입는 방한점퍼를 벗지도 않고 쪽마루에 걸터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얼른 나를 데리고 골목으로 나왔다. 어머니에게 이끌려 나오기 전 나는 마루 밑에 가지런히 놓인 아버지의 구두를 보았다. 너무나 오래 신어서 원래의 모양이 조금도 남지 않은 낡은 구두 한 켤레, 앞부리는 뻣뻣하게 하늘을 향해 휘어졌고, 뒤축은 무너지고 있는 아버지의 구두.
아, 어떤 무엇도 저 구두만큼 단숨에 내 아버지의 모습을 극명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벗어던진 구두만으로도 능히 아버지다웠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리고 자신했다. 아버지는 다시 떠날 것이라고. 다시 떠나지 않으면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니네 아버지가 이상해."
그런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예전에 그랬듯이 손님처럼 들이닥쳐서 며칠 묵었다 떠나는 아버지 같았다면 절대 이렇게 말할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디가 이상한지 묻는 내 표정을 무시하고 어머니는 한동안 팔짱을 낀 자세로 이웃집 담장만 쳐다보았다. 불길한 침묵이었다. 어머니에게 새로운 불행이 닥쳤다는 징후였다. 이윽고 어머니는 마치 무거운 형량을 언도하는 판사처럼 냉정하게 통고했다. "중풍 맞았나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 나이엔 그런 병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머리에 새기느라고 뒷말을 잇지 못했다. "정신도 오락가락해. 치매까지 겹친 것 같다."
나는 또 침묵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나이에는 중풍도 오고치매도 올 수 있는 것이다. 정해진 세상살이를 벗어나 방랑하는 영혼에도 노년의 정해진 병마는 침입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눈 뜨고는 못 본다. 사람 형상이 아냐. 가게로 들어오는 네 아버지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귀신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시장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구경을 할 정도면 말 다했지."
슬슬 어머니의 과장법이 시작되고 있다. 나는 안심했다. 어머니가 저런 식으로 나오면 해결책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내일은 크리스마스라고 난리들이니 모레나 병원에 데려가야겠다. 병원에 가봐야 돈만 잡아먹는 병이지만 어떡하냐. 새끼들 아버진데 도로 내쫓을 수도 없고."
역시 어머니는 결론까지 준비했다. 나는 어머니보다 먼저 집으로 들어왔다. 집 안은 조용했다.
"소주 몇 잔 마시고는 떠메고 가도 모르게 잔다."방문을 열어 보려는데 뒤에서 어머니의 갈라진 목소리가 날아왔다. 방 안은 어두웠다. 바깥도 곧 어두워질 것이었다. 오년 전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던 날 아침처럼 아버지는 아랫목에 누워 등을 보이고 있다. 흡사 그 사이에 오 년이란 시간은 없었던 것처럼 아버지는 익숙한 포즈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아버지의 얼굴은 내 익숙한 느낌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다시 본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사이에 오 년은커녕 족히 오십 년도 넘을 시간의 강 너머에 있었다. 야윈 살가죽을 뚫고 돌출한 광대뼈, 늘어진 주름살 사이사이로 번지고 있는 거뭇거뭇한 반점,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칼.
아버지는 시체처럼 잠들어있었다. 호흡이 아니라면 살아있다 말할 만한 어떤 활기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 말이 맞았다. 무참하게 무너진 이 노인은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집에 돌아오던 아버지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슬픈 일몰의 시간에 어둠을 등에 지고 들어오던 아버지의 쓸쓸한 귀가는 그 풍경 속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혹이 있었다. 저녁바람에 날리던 검은 머리칼, 깊숙한 곳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검은 눈동자, 구겨진 바지 주름 사이에 숨어있다 아버지가 움직일 때마다 아슴아슴 풍겨져 나오던 저 먼 곳의 냄새…………….
행방불명으로 먼 세상을 떠돌던 한 인간이 속세로 귀향하기에 이만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아버지는 참으로 긴긴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 아버지가 원했던 삶이었을까.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아버지의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아버지가 눈을 뜨는 순간에 내가 거기 있고 싶었다. 혼곤한 잠속에서 깨어난 아버지가 가장 먼저 나를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누, 누구세요.”
아버지가 나에게 던진 첫마디는 나의 존재를 묻는 겁에 질린 질문이었다. 내가 누구냐고? 안진진이 누구냐고? 나는 대답 대신 방의 불을 밝혔다. 내 얼굴도, 늙고 시든 아버지 얼굴도 모두 환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가씨, 누, 누구세요? 내가 또 뭘 잘못했나…아이구, 그렇다면 날 좀 용서해줘요. 예?"
아버지는 허겁지겁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와 방 가운데에 허리를 굽히고 서서는 내 눈치만 살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다리,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정신없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야윈 팔목, 오른쪽으로 비틀어 올라간 입술, 흘낏흘낏 나를 살피는 저 비굴한 눈빛.
나는 울었다. 추억 속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현실 속의 내 아버지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내 추억을 희롱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여태 기다렸는데, 이건 부당한 일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마구 손등으로 닦아내며 나는 방을 나왔다. 내 뒤를 따라 아버지도 허둥지둥 마루로 뛰쳐나왔다.
"어이쿠, 여기가 어디야. 내가 왜 여기에 와있지? 아가씨가 이 집 주인이요? 그럼 그럼, 밥이나 한술 얻어먹읍시다."
나에게 별다른 악의를 발견하지 못한 아버지의 본능이 그 잠깐 사이에 아버지를 공포에서 뻔뻔스러움으로 옮겨놓았다. 밥이나 한술, 하면서 아버지는 히죽 웃었다. 누런 이빨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낸 채 울고 있는 나 안진진을 향해 히죽 웃었다…………….
< 10 >
작가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작가인 나는 살아낸 만큼, 소설을 쓴 만큼 대답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작가 자신의 전 생애가 담겨진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 작가란 누구인가.
아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이라면, 작가란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실을 소설 위에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번뿐인 삶을 반성하고 사색하게 하는 장르가 바로 소설이라고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일하게 믿어왔다. 남의 소설을 읽을 때나 내 소설을 쓸 때도 나는 이 기본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이야기와 새로운 현실에서 얻은 감동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래서 내게 있어 '이야기'와 '감동'은 소설 창작의 핵심적인 화두이며 전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작가인 나는 '이야기'와 '감동'이란 주제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다. 작가는 누구나 다 그럴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성취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작가의 고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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