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소설 베스트 10

이기호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중에서

송담(松潭) 2024. 5. 27. 05:18

이기호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중에서

 

 

< 1 >

 

비치보이스

 

우리도 해수욕장에나 놀러 갈까? 춘길이가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 그냥 먼 산이나 바라보면서 하품이나 하고 넘어갈걸....... 왜 그랬을까? 왜 나나 덕진이나 그 말에 그렇게 쉽게 혹하고 넘어가고 만 것일까? 아마도 춘길이가 했던 그다음 말, 그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도 해수욕도 막 하고, 여대생들한테 막 헌팅도 걸고, 또 막, 또 막 그러는 거지. 스물두 살 백수 처지에, 남들 다 가는 대학교도 못 가고, 그렇다고 무슨 직업 훈련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9월 군 입대 영장마저 받아놓은 처지이니, 그래, 객기라도 한번 부려보는 심정으로,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자들이 우리 대학생 아닌 거 금세 눈치채면 어쩌지? 덕진이가 그렇게 물었을 때도 춘길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해수욕장에선 다 벗고 있으니까 뭐, 막 티 나진 않을 거야. 아니, 그러다가 어려운 거, 전공 같은 거 물어보면 어떡해? 춘길이는 그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뭐 막 체육특기자라고 그러지. 뭐, 마장마술 같은 거 한다고...... 돈은? 돈은 어쩌지? 너 돈 있어?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춘길이나 덕진이는 다시 원래의 그 모습, PC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PC방에서 컵라면을 사먹기 위해 전단 돌리는 아르바이트나 가끔씩 하는 본연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돈은...... 거기 가서 아르바이트하지, 뭐. 며칠만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면 일주일은 놀다 올 수 있을 거야. 춘길이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예전에 TV에서 봤는데, 해수욕장엔 여자들 등에 오일 발라주는 아르바이트도 있대. 이걸 그냥 막 바르기만 하면 돈을 주는 거지. 춘길이의 말에 덕진이는 입을 딱 벌리기만 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잘못이 크다..... 나라도 그때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을 말렸어야 했다. 여기가 무슨 지중해 연안이라고 오일 발라주는 아르바이트가 있을까? 왜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오일이라곤 프라이팬에 식용유 쳐본 것이 전부인 처지에……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는 달랑 편도 차비만 손에 쥔 채 사흘 후 강원도에 있는 P해수욕장을 찾아갔고, 점심을 옥수수 하나로 때운 처지인지라 어떡하든 춘길이의 계획처럼 빨리 오일 발라주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떨어진 아르바이트 자리는 해수욕장 인근 사설 주차장 주차관리요원 자리였다.

 

"마침 사람이 필요하긴 한데 말이야…………… 우리가 필요한 건 딱 두 명뿐인데…….”

 

밀짚모자를 쓴 주차장 사장은 우리 세 명을 세워 두고 그렇게 말했다. 오전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둘이 합해서 일당 십만 원을 주는 조건이었다. 숙식이 필요하면 그것도 따로 제공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라도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러니까 33도는 훌쩍 넘는 한낮의 온도와 그늘 한 점 없는 아스팔트의 지열과 자동차들이 내뿜는 배기가스를 계산에 넣었다면 단칼에 거절했어야 옳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해수욕장과 그곳에서 뛰놀고 있는 여자들과 당장이라도 그 여자들 앞에서 마장마술을 부릴 것 같은 춘길이와 덕진이를 보고 있자니, 그래 딱 나흘만, 딱 나흘만 고생하고 놀자 하고 말았던 것이다. 필요한 인원은 두 명뿐이지만 세 명이 나눠서 하면 덜 피곤할 테니... 그래, 그냥 눈감고 하자, 생각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채 사흘을 채우지 못하고 주차장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말았다. 처음, 세 명이 교대로 일을 할 땐 그런대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덕진이가 몇 시간 만에 더위 먹은 개처럼 입을 계속 벌린 채 침을 헐떡이고(실제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주차 안내를 했다), 그 뒤론 아예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춘길이와 나, 단둘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째 되는 날엔 춘길이가 주차된 자동차 옆에 주저앉다가 종아리 부위에 커다랗게 화상을 당하고 말았다(자동차 배기구가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춘길이의 종아리엔 금세 수포가 올라왔지만, 춘길이는 그 종아리를 질질 끌면서 주차 안내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한 친구는 더위를 먹어 연신 침을 흘리고, 또 한 친구는 화상을 입어 다리를 저는……그러면서도 이틀 뒤엔 남들처럼 해수욕장에 나가 헌팅을 할 수 있을 거란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친구들....

 

나는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사장에게 가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사장은 덕진이와 춘길이를 한번 쓱 바라보더니 그러라고 흔쾌히 일당을 정산해주었다. 이틀 일했으니까 이십만 원. 거기에서 세 사람 이틀치 숙박비, 식사비를 제하고 나니 팔만 원.

 

"아니, 숙박비 식사비를 왜 제하는 거죠?" 내가 따지자 사장이 말했다.

 

"그건 내가 미리 말했잖아? 따로 필요하면 제공하겠다고. 지금 같은 성수기에 공짜가 어딨니?”

 

나는 어쩐지 좀 눈물이 날 거 같았다. 해변엔 사람들이 손대면 델 것 같은 미소를 머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 2 >

 

불 켜지는 순간들

 

이승을 떠나 저승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몸엔 이상한 열기 같은 것이 맴돌았다. 그것은 일종의 자신감이자 모종의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던 그 섬광 같은 순간, 살아온 쉰일곱 해의 모든 시간들이 눈앞에 차르르르 영사기 돌아가듯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스물여덟 나이에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임용되어 꼬박 이십구 년을 일했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 아파트 투기를 한 적도 없었고 음주운전이나 도박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으며 슬하의 두 아들과 아내에게 부끄러움 없는 아버지와 남편으로, 그 자부 하나로, 평생을, 직선을 다해 살다 왔다.

 

"김길부 씨. 1956년 4월생 맞으시죠?" 검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장부를 펼쳐 읽으며 그에게 물었다. 남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무표정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난 4월 6일 용현동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것도 맞고요?"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동료들과 간단한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그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검은색 승용차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이건 뭐.... 깔끔하군요..... 자식들도 잘 컸고 넉넉한 연금과 보험도 있고......”

검은 양복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장부를 덮었다. 자 그러면..... 저쪽 304호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는 남자가 이끄는 대로 304호 안으로 들어갔다. 커튼이 쳐진 창문과 빠닥빠닥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잘 세탁된 시트가 깔린 침대, 작은 냉장고와 TV, 바닥에 물기가 하나 없는 욕실이 딸린 방이었다.

 

"이 방에서 뭘 하는 거죠?" 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남자에게 물었다.

"그냥 쉬시면 됩니다. 식사는 때 맞춰 챙겨드릴 테고요." 남자는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곤 짧은 목례를 하곤 304호 밖으로 나갔다.

 

그는 계속 두리번두리번 304호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침대위에 누웠다. 이승이 아니어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군. 그래도 이만하면 꽤 살 만하겠어. 그는 그런 생각으로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304호의 불도 꺼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봐요, 이봐요.” 그는 몇 날 며칠째 계속 틈날 때마다 잠긴 304호의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304호 밖 복도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불을 켜줘야 할 거 아닙니까? 네? 불을 좀 켜 달라고요?" 그는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침대도 냉장고도 창문도TV도 그대로였지만, 전등이 들어오지 않았다(TV는 전원은 들어왔지만 화면은 나오지 않고 음성만 들렸다). 눈을 떠도 암흑인 방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출입문 하단 작은 배식구가 열리고 식판이 들어왔다. 그는 소리와 손가락 감각만으로 식판을 받아 들고 그것을 먹어야 했다. 씻을 때도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도, 그는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감각에 의지해 느릿느릿 해나가야만 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처지에 놓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십 일이 지난 어느 하루, 불이 켜졌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304호 방 안으로 직접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도대체, 도대체 이게 뭡니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럽니까?" 그는 검은 양복 사내 바로 앞까지 다가가 따지듯 물었다.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선생께 벌을 주는 게 아닙니다."] 검은 양복 사내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이게 벌을 주는 게 아니라고요? 이 어둠 속에서 지내는 게?"

 

“그러면 선생은 선생의 어머니께 벌을 주신 겁니까?" "네? 그게 무슨......”

"잘 생각해보십시오. 불로요양병원 304호."

 

그는 그제야 무언가 생각난 듯 멀거니 검은 양복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건 우리가 선생에게 주는 벌이 아닙니다. 우리도 선생처럼, 마음 편히 선생을 모시는 거지요." 검은 양복 사내는 그 말을 마치고 다시 304호 밖으로 나가려 했다.

 

"저기요, 다 좋습니다. 다 좋아요..... 한데 제발 불 좀.." “ 아, 그거요.......”

검은 양복 사내는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은 어머님께 얼마 만에 한 번씩 찾아갔습니까? 딱 그 주기에 한 번씩 선생 어머님 마음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여기도 이승과 똑같습니다. 그럼 전 이만."

 

< 3 >

 

"신랑 김재만 군은 대학 재학 시절부터 성실하고 눈에 띄는

학생이었으며 졸업 이후에는 다양한 사회생활 경험을 쌓

고 현재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예비 청년 창업가......."

 

주례 선생님은 재만이와 나의 대학교 은사였다. 전공은 행정법이었지만 한학에 조예가 깊고 난초를 즐겨 가꾸는, 재작년 학교에서 정년퇴임한 분이었다. 그러니까 그 주례사는 선생님입장에선 최대한 거짓말을 피한 약간의 윤색으로 치장한 말이었다. 뭐, 대부분의 주례사가 다 그렇지 않던가.

 

그렇다고 많은 하객들과 양가 부모님 앞에서

이놈은 대학 내내 술을 퍼마셨으며,

그래도 기특하게도 강의에는 꼬박꼬박 들어왔고,

하지만 수업 시간 내내 술 냄새 풀풀 풍기며 잠을 퍼 잤으며,

졸업 후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운다, 돈만 갖다 버리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며,

현재 카페를 하겠다며 부모님에게 계속 사업자금을 대달라고 종용하고 있는 젊은이입니다………… 뭐, 이럴순 없지 않은가.

(이하 생략)

 

 

< 4 >

 

그녀와 마주한 어느 오후

 

 

그가 여자와 단둘이 만나는 것은 거의 십 년 만의 일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 고등학교 동창이 주선한 소개팅에 나간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뒤로 마주 앉아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한 여자는 올해 환갑을 맞은 그의 어머니가 유일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암만 집구석에 처박혀 있다 해도 머리도 감고 세수도 좀 하고 그래라." “시험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뭐한다고 맨날 그렇게 새벽까지 불 켜놓고 있어? 전기세는 뭐 나라에서 공짜로 내주는 줄 알아?" "환갑 넘긴 네 아버지도 저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택시 모느라 고생하는데…………”

 

물론 그 또한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한심하게 흘러가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수도권 소재의 한 사립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졸업과 동시에 7급 공무원이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앞날이 비 갠 다음 날의 하늘처럼 창창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시험에서 떨어지고, 7급에서 9급으로, 노량진에서 다시 동네 공공 도서관으로 옮겨오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점점 커지고 또렷해진 단어는 오직 하나, 낙오자, 글씨 모양새마저도 강파르고 야박해 보이는 단어,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공공 도서관에도 나가지 않았고, 시험공부도 하지 않은 채 제 방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머리는 일주일에 한번 감을 때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 그의 휴대전화로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채현종 사장님 핸드폰 맞지요?" 그것은 명백히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그의 낡은 폴더형 휴대전화는 지난 몇 달 동안 단 한 번도 울린 적이 없었다. 그는 말없이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연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에 보내드린 우편물 보셨어요? 짧게라도 시간을 내주시면 제가 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는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상냥했고 친절했으며, 또 조금 간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창문 밖을 무연히 바라보다가 "그럼, 만나서 얘기하시죠, 뭐”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에게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또 한편 누군가가 못 견디게 그립기도 했다. 그는 어쩐지 조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약속 시간 이십 분 전이었지만, 여자는 벌써 커피숍에 나와 있었다. 커피숍에는 여자 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그는 커피숍 통유리 밖에서 흘끔흘끔 여자를 훔쳐보았다. 여자는 보험설계사라고 했다. 그녀는 지금 '채현종 사장님을 만나 변액 연금보험 가입을 성사시킬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커피숍 통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허름한 점퍼와 무릎이 나온 청바지, 세 달 넘게 깎지 못한 머리카락까지. 처음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는 계속 '채현 사장님'으로 행세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누군가와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통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곤 이내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그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가 막 돌아서려고 했을 때, 여자가 휴대전화를 들고 커피숍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래, 철민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오늘 중요한 약속 때문에 그랬어." 여자는 커피숍 반대편 대로를 바라보면서 통화를 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엄마가 다음엔 학교에 꼭 갈게. 진짜야. 응응, 그래 약속할게.” 여자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쉽게 커피숍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몇 번 하늘을 쳐다보았고, 멀거니 통유리 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놓기 시작했다. 그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의 마음과 싸워야만 했다. 그는 용기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신 후,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그녀에게 다가가 더듬더듬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요.....저는 김상호라고 하는데요.......”

 

 

< 5 >

 

두고 봐라

 

 

구청에서 삼십 년 가까이 근무한 그의 아버지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한 것은 재작년 구정 무렵의 일이었다. 수영교실이다. 문화센터 노래교실이다. 서울에서 이런저런 일들로 바빴던 그의 어머니는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끝끝내 아버지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황혼 이혼을 할 수도 없고, 어쩌냐. 혼자선 라면도 못 끓여먹는 위인인데......"

 

그의 아버지는 아파트를 정리해 경기도 가평에 단층 슬래브농가 주택과 오백여 평 되는 밭을 사들였다. 그곳은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에서 홀로 자취를 한 그의 아버지는 그것이 귀농이자 귀향인 셈이었다.

 

사년 전 결혼을 해 이제 세 살짜리 아이를 둔 그는, 아버지 어머니가 가평으로 이사 간 그다음 주 처음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가평까지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나는 뭐 좋기만 하네. 이렇게 가끔 바람 쐴 수도 있고"라고 말했지만, 그는 기분이 영 이상했다. 마치 아버지가 영영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기분이었다.

 

그의 기억 속 아버지는 언제나 칼같이 날이 선 양복바지와 호주머니에 단정하게 접힌 손수건, 그리고 한 손에 모나미 볼펜을 든 채 골몰히 예결산 자료를 보고 있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떤 시간 또한 순식간에 휙 지나가버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혹시 아버지가 무슨 병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그런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평 집에 도착해 밭에 쭈그려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그는 웬일인지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는데, 그건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서류 뭉치와 모나미 볼펜, 오로지 그 것 때문이었다.

"이게 내가 인터넷에서 뽑은 토마토 경작법이거든. 이거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 없단다."

아아, 아버지는 농사짓는 것도 서류로 배우시는구나. 뭐, 여전하시네. 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아버지는 농사라곤 제대로 지어본 적 없는 분이니까. 그는 아버지가 토마토 옆에 삐뚤빼뚤 박아 놓은 지지대를 보며 슬쩍 고개 돌려 웃었다.

"두고 봐라. 우리 손주, 올여름엔 토마토 물리게 먹게 해줄 테니까."

그의 아버지는 서류를 넘겨 본 후, 다시 줄자로 지지대의 높이를 꼼꼼하게 재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첫 택배를 받은 것은 그해 7월 중순의 일이었다. 모두 세 박스가 배달되어 왔는데, 두 상자엔 토마토가 나머지 하나엔 상추가 들어 있었다.

“어머, 이 토마토 색깔 좀 봐. 이런 게 진짜라니까."

그의 아내는 토마토를 보면서 손뼉까지 쳐대며 좋아했다. 그는 택배 상자를 슬쩍 들여다보면서 어쩐지 조금 우쭐한 기분이 되어 "우리만 먹기엔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처형네도 좀 나눠주지그래"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바로 처형에게 전화를 걸어 "글쎄. 그렇다니까. 완전 유기농이야" 하면서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일산에 사는 처형은 그날 밤 퇴근길에 바로 들러 토마토한 박스와 검은 비닐봉지 가득 상추를 담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 이튿날의 일이었다. "혹시 네 아버지가 택배 보냈더냐?"

어머니는 마치 무언가 은밀한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네. 뭘 그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그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말했다.

"내가 그렇게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도....그거 말이다. 어미한테 빡빡 씻어서 먹으라고 해라. 거, 농약을 얼마나 세게 쳤는지 모른다."

그가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자 어머니가 덧붙였다. "서류 보고 농사짓다가 서류대로 안 되니까 농약을 냅다 쳐대는데 에휴 참, 남부끄러워서." 그는 조용히 통화를 마친 후, 그 얘기를 아내에게, 처형에게 해줘야 할까 말까 한참을 궁리하고 앉아 있었다.

 

이듬해, 그는 아버지로부터 다시 옥수수 세 박스를 택배로 받았다. 이걸 또 어쩌나 걱정하고 있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바로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비야. 그거 먹지 마라. 그거 죄다 사료용이란다. 사료용하고 식용도 구분 못하고 냅다 심기만 해서……." 그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 6 >

 

원어민 강사의 연말일기

 

12월 10일 수요일

 

오늘은 학원 영어과에서 처음으로 회식을 했다. 나와 같은 원어민 강사인 에바와 찰리, 그리고 영어과 부장인 김 선생과 다른 네 명의 한국 선생들이 함께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으며 유쾌했다. 처음 삼겹살집이라는 곳에 가봤는데, 쌈장을 빼면 음식도 모두 훌륭했다. 한데, 오늘은 좀 과음을 했다. 맥주를 마실 때까진 좋았는데, 그 뒤부턴 좀 괴상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잔 안에 다른 작은 잔을 넣고 함께 마시는 것이었다. 뉴저지에서 왔다는 찰리는 그것을 '제조'라고 가르쳐주었다. 다 마시고 난 뒤 '딸랑딸랑' 꼭 잔 부딪치는 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네 번 '딸랑딸랑' 했더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삼겹살집에서 끝나는 줄 알았더니, 그다음엔 호프집이었고, 또 그다음엔 노래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프집에서도 노래방에서도 사람들은 계속 무슨 원한 맺힌 사람들처럼 술을 마셔댔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 골웨이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술을 많이 마시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보니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에 비해 골웨이 어른들은 그저 한 떨기 채송화와도 같은 사람들이었다. '딸랑 딸랑 아직도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다.

 

12월 16일 화요일

 

오늘도 또 술을 마셨다. 오늘은 중등 과정 선생들의 전체 송년회 자리였다. 오늘 역시 사람들은 내일 곧 혜성과 지구가 충돌하기라도 하듯 급하게, 또 쉴 새 없이 술을 마셔댔다. 찰리는 무념무상 계속 호프집 천장만 바라보았다. 나는 2차로 간 호프집 화장실에서 기어이 토를 하고 말았다. 한 선생이 내 등을 두들겨주면서 웃음 띤 얼굴로 계속 무슨 말을 했다. 찰리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토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한번 마셔보자' 아,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정말 화가 나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맞는 거 같다.

 

12월 19일 금요일

 

젠장, 또 송년회다. 이번엔 학원 전체 송년회란다. 이 나라 사람들은 가족들도 없는 인간들이 맞는 거 같다. 매일 술을 마시면서 송년회라고 또 마신다. 오늘은 양주에 와인,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셨다. 비빔밥이 유명한 나라라더니, 과연 뭐든지 비비고 섞는 거 하나는 끝내주는 거 같다. 새벽 두 시에 3차가 끝났는데, 원장과 부장 선생들은 4차를 갔다. 그들은 살아 있는 좀비 같았다.

 

12월 22일 월요일

 

또 마셨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오늘은 학원을 옮기는 최선생의 환송 술자리였다. 아니, 사람이 떠나는데 왜 술을 3차까지 마셔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왜 누가 누굴 떠나는지 알 수도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만단 말인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나라다.

 

12월 23일 화요일

 

결국은 속병이 나고 말았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계속 힘들어했더니, 찰리가 해장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 아니, 이 인간은 정말 뉴저지 태생이 맞단 말인가. 술로 술을 푼다는 게, 세상 어느 나라가 그런단 말인가.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찰리가 말했다. 그게 다 여기서 배운 거라고, 12월은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았다고, 벌써 약해지면 어쩌냐고.... 나는 갑자기 아일랜드 골웨이가 그리워졌다. 펍에서 마시던 맥주가 그리워졌다.

 

이기호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중에서

 

 

카푸어의 마지막 밤

 



정용과 진만의 대학 동기인 상구는 일찍이 스물여섯 살 되던 해 벤츠 C200 쿠페를 부모 도움 없이 풀 할부로 구입한 진정한 카푸어인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작년 말까지도 계속 그 신세 그대로였다.

“차는 말이야, 돈으로 사는 게 아니야. 그냥 용기로 사는 거지.”

정용과 진만은 가끔 그의 차를 얻어 타고 광역시 외곽까지 드라이브를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구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상구는 그때도 하루 여덟 시간씩 편의점 알바로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버는 월수입 180만원 중 130만원을 차에 쓰고 있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겨울 파카를 새로 사본 적 없었고, 운동화도 딱 한 켤레만 사봤다고 했다. 만 30세 이하여서 차 보험료만 300만원 가까이 나온다고 했다.

 “아니, 꼭 그렇게까지 차를 몰 이유가….”
언젠가 정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상구가 대뜸 이렇게 물어왔다.
“너, 하차감이 뭔지 모르지?” 
상구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석 유리창을 내렸다.

“내가 이 차 몰고 편의점 알바 하러 가면 말이야, 사람들이 다 쳐다봐. 아, 쟤는 그냥 경험 삼아서 알바하나 보다, 아, 쟤가 편의점 사장이구나. 다 그런 눈으로 보는 게 느껴진다니까.”

“그래서 변하는 게 뭔데?”
“변하는 거? 그런 건 없지. 그냥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넌 그런 거 모르지?”

정용은 상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감정 따위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만은 조수석에 앉은 채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까닥까닥, 상체를 흔들어댔다. 상구는 사람들이 많은 인도를 지날 때마다 꼭 차창을 내리고 볼륨을 높였다. 정용은 그때마다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런 상구가 자신의 벤츠를 중고차 온라인 매장에 내놓은 것은 지난달 중순의 일이었다. 딜러에게 맡기면 감가가 많이 된다고, 개인 간 직거래로 차를 처분할 작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매물로 내놓은 지 이틀 후, 어쩌면 마지막 드라이브가 될지도 모른다고 정용과 진만을 태우러 왔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 추운 겨울밤이었다. 상구는 평상시와 다르게 음악도 틀지 않고, 천천히 시내 쪽으로 차를 몰았다. 사람들이 있으면 상구가 좋아하는 하차감이라도 느낄 수 있으련만, 코로나 탓인지 연말의 거리는 한산하고 쓸쓸하기까지 했다. 정용과 진만은 왜 갑자기 차를 처분하려고 하는지, 상구에게 묻지 않았다. 그건 굳이 묻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일. 상구는 히터도 틀지 않은 채 말없이 운전대만 잡고 있었다.

차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 상구가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씨댕이… 이제 좋은 주인 만나겠지….”
상구는 자신의 차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좋은 주인 만나서 고급유도 마음껏 먹고 타이어도 좋은 거로 갈아신고 광택도 내주고….”

상구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정용은 멀거니 상구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진만은 상구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그럼, 그럼. 얘도 이제 좋은 곳으로 가야지’ 하면서 위로해 주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상구가 룸미러로 정용을 보며 물었다.
“정용아… 혹시 만 원 있니?”
정용이 아무 말 없이 상구를 바라보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내가 얘 기름 좀 넣어주고 싶어서. 딱 만 원이면 내일까지 몰 수 있을 거 같은데….”

정용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상구에게 건넸다. 내가 미쳤지. 뭐 한다고 얘를 쫓아 나와서….
하지만 정용은 이내 상구가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예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난 말이야, 카푸어란 말이 정말 듣기 좋아. 하우스푸어, 빌딩푸어, 카푸어. 이런 말들 멋있지 않냐? 뭔가 막 의지 같은 게 느껴지는 거 같고. 그런 거 빠지면 우린 그냥 푸어잖아, 푸어.”

상구는 그 말을 하면서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차창 밖으로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제 상구는 그냥 푸어가 되어 버렸다. 아무것도 붙지 않아 더 쓸쓸한 푸어.

이기호 / 소설가·광주대 교수

 

어느 청년의 가슴 아픈 소개팅

 

저도 소개팅은 처음이고, 물론 그쪽도 처음이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만나자마자 짜장면을 먹으러 간 건 너무 하셨어요. 저는 그래도 가볍게 차를 한잔 마시고, 점심시간이었으니까 그런 다음에 파스타 같은 걸 먹으러 가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들었던 소개팅의 기본 코스였거든요. 한데, 그쪽에서 근처에 기가 막힌 짜장면집이 있다고, 그쪽으로 가자고 했을 때부터, 조금 기분이 상했던 게 사실이에요.

 

거기다가 우리 그 집 앞에서 대기를 삼십 분이나 했잖아요? 소개팅을 나왔는데, 짜장면집 앞에서, 오늘 처음 만난 남자와 나란히 서서 삼십 분이나 기다린다는 게, 그게 저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 그쪽이 더 싫어진 것도 맞고요. 그러다 보니까 짜장면집에 들어가서도 그쪽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겠더라고요. 입맛도 없고, 그쪽이 후루룩 후루룩 소리 내서 먹는 모습도 싫고….

 

어쩐지 그 모든 게 제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짜장면을 먹다가 말고 일부러 화장실도 다녀온 건데… 돌아오다 보니까 그쪽이… 그쪽이 제 짜장면을 조금 덜어서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안 본 척했지만 제가 그걸 봤어요…. 그걸 보니까… 그냥 모든 게 다 서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커피라도 한잔하자는 그쪽의 말을 거절한 거예요.

 

솔직하게 말하는 제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그쪽도 모솔이고, 처음이라서 그랬겠죠. 그쪽도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대하는 게 어색해서 그랬겠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린 다 그 정도로 살고 있고, 버티고 있는 거겠죠. 미안해요. 내 마음은 지금 딱 그 정도인 거 같아요. 그쪽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겨우 그 정도가 지금의 내가 누굴 이해할 수 있는 최대치인 거 같아요. 이 정도라도 된 것이, 그래서 이렇게 답문을 보내는 것이, 저로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잘 지내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시길 바랄게요.

 

< 답신 >

 

죄송합니다. 제가 소개팅이 처음이라서…. 저도 친구 대신 나간 자리였거든요. 공무원 시험은 원래 소개팅 나가기로 한 친구가 준비하는 거고, 저는 그냥 알바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데… 그래서 나갔는데… 죄송합니다. 짜장면은… 그쪽이 안 드셔서불까 봐 그만… 죄송합니다. 저도 그쪽이 힘내시길 바랄게요.

 

이기호 / 소설가 · 광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