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윤 / '내가 천 개의 인생에서 배운 것들'중에서
< 1 >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밥
병원에 입원했던 엄마가 잠시 한두 달 정도 퇴원한 적이 있었다. 퇴원 후, 엄마는 언제나처럼 내게 밥을 차려 줬다. 대단한 반찬이 있는 건 아니었다. 소고기뭇국에 멸치볶음, 김치, 그리고 보리밥, 국 한 가지에 반찬 두 가지, 밥 한 공기였을 뿐이지만 내겐 임금님 밥상보다 귀한 상이었다.
정말 먹고 싶었지만 1년 동안 먹지 못했던 엄마가 차려 준 밥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시는 못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차려준 밥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슬픈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 다시 이밥을 먹을 수 있을까, 내게 이런 기회가 또 있겠냐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밥을 두 공기, 세 공기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내게 엄마가 차려 준 사랑이 가득한 식사를 할 기회가 몇 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기억력이 좋던 엄마는 그때쯤, 우리 집 현관의 비밀번호를 잊어가고 있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안 열리는 문을 보며 엄마는 자신의 모습에 상처받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도 '아, 지금의 행복이 오래 가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잠시 퇴원을 했지만, 점차 인지 능력과 기억력을 조금씩 잃어 갔다. 결국 엄마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열심히 살았던 덕분인지 여유가 생겨 지금의 나는 꽤 비싼 음식을 자주 먹는다. 유명한 호텔의 식사도, 도산대로의 비싼 식당 음식도 종종 먹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엄마의 맛은 맛볼 수가 없다. 내게 익숙한 그 맛, 내게 편안한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엄마가 차려 준, 엄마의 손길이 들어간, 엄마의 사랑이 들어간 음식은 어디에서도 먹을 수가 없다.
집밥으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도 진짜 집밥은 먹을 수가 없다. 살아생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더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맛이, 그 순간이 그 사랑이 너무 그립다.
< 2 >
규모 5.8의 지진을 맞은 아기 엄마 이야기
'지진 났을 때 챙긴 기저귀'
기상청 관측 사상 역대 두 번째로 강한 규모의 지진이 포항에 온 적이 있어요. 수능조차 연기시킨 역사에 남을 지진이요. 그때 집에서 애한테 수유하고 있었는데 집이 흔들거리니까 울면서 애를 안고 뛰어나왔거든요.
전화는 계속 안 되고 제가 어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이 생각밖에 안 들었죠.
정신 차리고 보니까 제가 챙겨 나온 게 아무것도 없고 진짜 애 외출 가방이랑 기저귀만 들고 나왔더라고요. 정말 애 거밖에 없더라고요. 정말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다 필요없는 거죠. 내 새끼밖에 없는 거죠.
요즘 세상은 워낙 할 것도 많고 내가 너무 중요한 세상이잖아요. 저도 아기를 낳으면서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진짜 한 번쯤은 이걸 겪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 자체가 엄청나게 흔들리면서 바뀌거든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고요.
제가 엄마가 되어 보니까 그냥 애가 건강하고 편하게 잘 살기만을 바라요. 나한테 뭐 해 줬으면 하는 거는 사실 우스갯소리잖아요. 정말 바라지 않게 돼요. 그렇게밖에 안 되더라고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 중에서 제일 큰 게 부모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거든요. 왜냐하면 아기한테는 제가 우주니까요. 그건 진짜 대단한 일 같아요.
< 3 >
이렇게 좋을 줄 몰랐으면서
그 후,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해 11월에 남은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 동안 제주 신라호텔에 묵으며 끼니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곳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형과 아버지는 말했다.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오니까 참 좋구나."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참고 싶었고 참고 싶었지만, 참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줄도 모르면서 그냥 반대한 아버지와 형 때문에, 내게 다 같이 떠나는 가족 여행의 기회가 사라진 거라고요. 왜 좋은지 안좋은지도 모르면서 그저 반대한 거예요!"
마음속에 있는 독한 말을 그냥 뱉어냈다. 내게 남은 가족과 함께 여행 온 것은 기쁨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쓸쓸함이기도 했다. 엄마의 부재를 계속해서 느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시대이다. 늘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중에 한 번쯤은 가족과 여행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 언젠가 부모님과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 하더라도, 그 언젠가는 살면서 다시 없을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시간을 돌리려고 애써도, 돌릴 수 없는 순간이 오니까 가족과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나 지금뿐이다.
우리 가족은 제주도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모두가 함께 간 여행은 아니었지만, 모두 함께 있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엄마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했을 테니까.
< 4 >
친구가 건네준 따뜻한 색깔
우울증에 걸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든 어느 날, 밤늦게 고등학교 동창이자 서울에서 자주 만나는 가까운 친구에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물론 이 친구는 우리질의 가족사를 다 알고 있었고, 내가 앓는 우울증도 알고 있었다.
"도윤아, 네가 불쌍해서 어떡하노... 가족으로 인해 힘들었던 네가 잘 살아보겠다고 진짜 열심히 인생을 살았는데, 가족으로 인해 네 마음까지 무너지는 걸 보니 너무 불쌍해서 마음이 아프다."
살면서 '불쌍하다'는 말을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다. 사실 굉장히 무례할 수 있는 말이기에, 보통은 당사자에게 직접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런데 '불쌍하다'는 말을 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정말 나를 걱정하고, 아파하는 마음이 잔뜩 담겨 있어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친구가 대뜸 어디냐고 물었다. 그때는 저녁 11시였고, 나는 집에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은 상태였다. 집에 가는 중이라고 하니, 이미 만취한 친구가 말했다.
"술 한잔할래?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데 잠깐 갔다가 바로 넘어갈게. 이태원에서 보자."
집에 가는 것도 너무 외로웠고, 혼자 있는 게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그래, 한 시간 뒤에 이태원에서 보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로 지하철 노선을 바꿔 이태원역에 내려 약속한 술집에 먼저 도착해 맥주 한잔을 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친구의 아내가 친구와 함께 온 것이다. 심지어 내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제수씨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산후조리원에 온 남편이 너무 취한 상태였는데, 꼭 지금 나를 보러 이태원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남편 혼자 보내기에는 걱정이 되어 함께 왔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제수씨를 만나 이야기를 하던 도중 고개를 든 친구는 갑작스레 화장실을 가더니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서 등을 두드려주고 ,바닥을 치우다 '아, 진짜 이놈 뭐 하는 거지, 날 위로하러 와서 오바이트를 한다고? 심지어 그걸 내가 치우게 하네'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친구는 그 후로도 내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을 할 상태가 아니었고, 나와 정상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은, 내가 우울증으로 아팠던 시간 동안 가장 따뜻한 날 중 하루였다. 어느 누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아내까지 끌고 아픈 친구를 보러 온단 말인가...
그때 생각했다.
'힘들 때 위로가 되는 사람은 무언가 엄청난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픈 마음에 공감하고, 그 순간을 함께해주는 사람이구나'
무채색으로 가득한 내 세상에 그날 처음으로 따뜻한 빨간색과 노란색이 입혀졌다. 아마 나를 살려 준 순간 중 하루가 이날이지 않을까.
서울의 한강 다리 스무 곳에는 초록색 전화기가 설치되어있다. 'SOS 생명의전화'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며 한강 다리를 찾는 사람들이 옆에 보이는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면, 그 힘든 이야기를 들어 줄 상담원이 24시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1년 동안 한강 다리에서 SOS 생명의전화로 걸려 온 전화는 9,050건이었는데, 그중 투신 직전의 사람들 1,973 명이 다시 삶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 전화가 사람들의 상황을 해결해 준 것일까? 큰돈이라도 준 것일까?
아니다. 한강에 뛰어들기 전 사람들을 살린 것은 너무나도차가운 세상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준 따뜻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 후로 난 내게 가까운 사람이 힘든 날이면 낮이든 밤이든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한다.
"내게 개인적인 약속이 있다면 그 약속을 깨거나, 끝난 다음에라도 네가 힘든 순간에 함께 해 줄게. 밥이든, 술이든,뭐든 상관없으니까 힘든 순간에 너 혼자만 있지 마."
내가 힘든 순간 함께 해 준 친구의 마음을 돌려줄 수는 없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힘든 하루에는 언제든 따뜻한 마음을 보내고 싶다. 그게 그 친구들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는 작은 힘이 될 테니까 말이다.
< 5 >
당신에게
당신에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딱 5분 남아 있다.
당신과 그는 곧 세상에서 사라진다.
다음 생애가 있다 할지라도
서로는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다.
정말 마지막 순간이다………
그와의 마지막 시간인 5분,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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