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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 ‘세상 모든 것의 기원’중에서

송담(松潭) 2023. 11. 15. 17:44

강인욱 / ‘세상 모든 것의 기원’중에서

 

 

< 1 >

 

신라는 닭의 나라였다

 

 

신라 신화에 닭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석탈해왕 9년(65년) 봄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날이 밝은 후 닭이 우는 곳에 가 살펴보니 나무에 작은 함이 달려 있었고 그 안에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아이는 총명함과 지략이 넘쳤기에 알지(智)라 이름하고 금함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으로 삼았으며, 닭 우는 소리로 아이가 있는 곳을 발견했으니 시림의 이름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칭하고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다.

 

신화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은 상서로운 기운을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서술되었다.

 

흔히 한국을 대표하는 신화로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단군신화를 꼽는다. 단군신화는 유라시아 북부에 널리 퍼져 있는 곰 신화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신화에는 곰 신화 외에 또 다른 흐름이 존재한다. 바로 난생신화다. 건국의 주역이나 영험한 인물이 알에서 태어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난생신화는 남방계 신화의 주된 흐름이다. 실제로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에서는 닭과 알로 대표되는 난생신화 사례가 많이 보인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신라 천마총에서는 달걀이 출토되기도 했는데, 이 달걀은 식용 목적이 아니라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달걀은 닭이 태어나는 장소이므로 그 자체로 생명력을 의미하기도 했다.

 

신라는 대외적으로 '계림'으로 불렸다. 《삼국유사》에는 인도(천축국)에서 신라를 '구구타예설라(矩矩正醫說羅)'라고 불렀다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구구타'는 닭을 가리키는데, 인도-유럽어 계통인 산스크리트어에서 닭 울음을 표현하는 의성어가 '구구(kuku)'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산스크리트어로 '설'은 한자의 '귀(貴)'와 대응된다. 신라를 이렇게 불렀던 이유는 신라에서는 계신(雞神, 닭의 신)을 공경하여 높은 이들의 관에 깃을 올려 장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라와 고구려의 모자 장식 유물에는 모두 새 깃털이 달려 있다. 이는 닭(새)을 숭배했던 증거인 셈이다.

 

< 2 >

 

인류의 DNA에 새겨진 방랑 본능

 

 

202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는 네안데르탈인을 연구한 스웨덴 진화인류학자 스반테 파보(Svante Paabo, 1955~)였다. 그는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비교분석했을 때, 약 1~4퍼센트 정도 수준으로 공통된 부분이 있음을 밝혀냈다. 고고학이 유물과 유적을 통해 옛 인류의 생활, 문화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고인류학은 스반테 파보의 연구처럼 인류의 기원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고인류학계에서는 현생인류의 확산을 아프리카에서 발현한 한 줌의 집단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이동하고 퍼져나간 과정으로 설명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크게 세 번에 걸쳐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먼저 180만 년 전을 기점으로 호모에렉투스가 사하라 사막을 넘어 근동 지역을 거쳐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그다음으로 약 60만 년 전을 기점으로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인 하이델베르크인이 아프리카를 빠져나와서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마지막으로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10만 년 전(최근에는 20만 년 전이라는 주장도 있음)을 기점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현생인류는 1만 7,000년 전,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까지 건너갔다.

 

영원으로 떠나는 여행

 

인간은 현실에 나 있는 길로만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영원한 삶을 꿈꿨던 인간은 내세에 대한 믿음과 상상을 토대로 더 멀고,더 아득한 여행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 믿음과 상상은 이야기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전해진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길가메시>다.

 

<길가메시>는 4,800년 전 수메르 문명권 국가 중 하나인 우루크를 다스렸던 전설의 왕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 떠난 이야기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누리던 길가메시는 절친 엔키두의 죽음을 목도하고 영생을 얻고자 여행을 떠나지만 모험 끝에 길가메시는 영생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수천 년간 인간의 상상 속에서 함께했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일본 만화 <은하철도 999>는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주인공이 메텔이라는 여성의 도움을 받아 영원한 삶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큰 줄거리다. <은하철도 999>의 원작은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沢賢治, 1896~1933)의 소설 《은하철도의 밤》이다. 그는 사랑하던 동생의 요절을 계기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큰 공포다. 영생을 염원하며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주요 발굴 무대인 수많은 무덤은 죽은 사람이 영원을 향해 먼 길을 떠나기를 바랐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흔적이다.

 

영원을 향해 떠나는 여정을 묘사한 흔적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경남 울산시에 있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다. 반구대 암각화 가장 높은 곳, 마치 태양이 떠 있을법한 위치에는 배를 탄 사람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태양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새겨진 암각화는 북유럽과 시베리아 바닷가 암각화에서 흔히 발견된다.

 

유목 민족들의 무덤에서 발굴되는 인골의 모습을 통해서도 죽은 자의 편안한 저승 여행을 기원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유목 민족의 무덤에서 발굴되는 인골들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하늘을 보고 누운 형태가 아닌 옆으로 구부린 모습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인골 옆에서 발견된 말뼈를 통해 밝혀졌다. 시신을 기마 자세로 묻은 것이다. 이는 죽은 자가 저승길을 갈 때 천마를 타고 달릴 수 있기를 바라던 유목 민족들의 마음이 담긴 풍습이다.

 

여행의 본능은 인류의 진화와 생존, 번영과 안식을 두루 가능하게 했다. 현생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나 자신의 영역을 점차 전지구로 넓혀갔다. 실크로드를 비롯해 바닷길, 하늘길을 통해 인류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문화와 기술을 나누고 번성했다. 죽음의 공포가 덮쳐올 때는 현생인류만의 뛰어난 지적능력으로 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짓고 나누며 두려움을 달랬다. 여행은 늘 인간을 꿈꾸게 만들었다. 머무르지 않고 떠나는 인간만이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다. 지금 당신 안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갈망이 꿈틀댄다면 그것은 곧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 3 >

 

뇌를 쉬게 하고 싶다면 낙서를 하라

 

인간은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양손의 자유다. 문명은 인간의 손끝에서 피어났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고고학 연구를 하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유물을 만난다. 황금이나 보석처럼 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물도 눈길을 끌지만, 옛사람들이 남긴 사소한 흔적에서 새로운 학문적 사실을 발견할 때의 희열도 이 일을 하는 큰 즐거움이다. 그런 유물 중 하나가 옛사람들의 끄적거림이 남아 있는 물건들이다.

 

문명이 점차 발달해도 낙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낙서는 터부시되는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는 통로이기도 했다. 중세 유럽의 문헌에서도 기기묘묘한 이미지의 낙서가 곧잘 발견된다. 가톨릭교회의 도그마가 인간의 삶을 강하게 지배하던 중세시대에 사람들은 억압된 마음을 낙서로 해소하기도 했다. 이와 유사한 맥락을 가진 낙서가 실크로드 둔황에서 발견되었다. 둔황은 중국 간쑤성에 있는 도시로 실크로드의 기착지다. 이곳에는 우리가 흔히 둔황석굴이라고 부르는 불교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3~11세기에 이르는 고문서들이 다량 발견되었다. 이를 아울러 둔황문서라고 부른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낙서의 긍정적인 의미가 새롭게 밝혀지는 중이다. 인간은 뇌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낙서를 하는 동안 인간의 뇌와 손은 서로 연동하여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루한 듣기 과제를 할 때 낙서를 하는 사람이 29퍼센트나 정보를 더 얻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쓰기와 낙서가 인간의 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이유다. 낙서가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도무시할 수 없다. 내 주변에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낙서로 푸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낙서의 위대함은 천재의 노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수많은 노트를 남겼는데, 그가 낙서처럼 남겨놓은 노트에는 인체 해부도부터 비행기, 낙하산 설계도 등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영감을 주는 정보들이 담겨 있다.

 

디지털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손에 펜을 쥐고 무언가를 끼적일 기회가 점차 사라지는 중이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인류는 점점 몸은 덜 움직이고 손가락 끝으로 터치하는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또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주입하는 일상에 노출되어 있다. 과학기술은 점점 발전해나가는데 어찌된 일인지 문해력과 정보 인지력은 퇴보한다는 염려의 말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어쩌면 과잉된 인풋으로 지친 뇌를 쉬게 하고 그 대신 두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당장 손에 펜을 쥐고 떠오르는 상념과 생각을 막힘없이 끼적거려보면 어떨까? 오늘의 낙서가 내일의 당신 일상에 인사이트가 되어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 4 >

 

복제와 모방에 담긴 인간의 욕망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예술에서의 '아우라(Aura)'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그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된 이 용어는 '어떤 예술 작품이나 물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모방할 수 없는 특유의 기운'을 가리킨다.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이한 가지 요소가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벤야민의 생각이었다. 가령, 콘서트홀에서 듣는 오페라와 오디오로 재생하여 듣는 오페라는 현장성 등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가 곧 해당 작품의 가치로 환원된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모방하는 행위를 통해 인류가 예술을 비롯해 여러 영역에서 발전해왔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은 끊임없이 주변을 흉내 내고 복제해왔다. 그 복제의 대상에는 인간이 만든 물건 외에도 다양한 동물과 자연현상들도 포함된다. 그것들의 특징을 포착해 모방함으로써 인간의 예술과 종교가 탄생했다.

 

독일 홀렌슈타인-슈타델 동굴 유적에서는 상아로 만든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조각상은 약 4만 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물상인데 사자의 머리를 한 샤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구석기시대 샤먼을 표현한 예술상이 발견되었는데, 이 조각상들은 공통적으로 짐승의 형태를 모방해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당시 샤먼은 다양한 동물의 모습으로 빙의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인들은 자연을 모방함으로써 자신에게 신을 부르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앞서 살펴본 여러 예시들처럼 모방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단순히 가짜 내지 아류로 취급하기에는 인류 역사에 순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진품에 열광한다. 원본과 복제품의 차이가 전혀 없는 디지털 세계에서마저 '대체 불가능'하다고 표시를 해둔 진품이 등장할 정도로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원본에 대한 이런 갈망에는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을 타인과 차별화하려는 마음이 숨어 있다.

 

 

< 5 >

 

 메타버스

 

최근 들어 제페토, 로블록스, 샌드박스 등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급부상하는 중이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 '초월' 등을 의미하는 영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세계에서처럼 사회, 경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의미한다. 현실과 가상현실이 혼재된 메타버스의 본질은 현실의 나를 초월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2,300여 년 전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였던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는 현실을 넘어선 새로운 자아를 갈망하던 인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접지몽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비에 관한 꿈'이라는 뜻인데, 장자가 꿈에서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꿈에서 깨고 난 뒤 자기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호랑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었던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것에서 유래했다. 고대 이래로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세계를 꿈꿔왔다. 그 바람은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유체 이탈을 하는 샤먼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고고학자의 시선에서는 무덤에 그려진 벽화가 고대인들이 구현한 일종의 메타버스로 보이고는 한다. 그럼 지금부터 옛사람들이 남긴 유물들을 통해 초월적 삶을 꿈꿔온 인류의 바람을 살펴보자.

 

우리는 매일 밤 메타버스를 경험한다

 

인간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꿈이다. 20세기 초반 프로이트와 융이 꿈은 인간무의식의 표현이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이전부터 인류에게 꿈은 또 다른 세계를 실현시켜주는 유력한 도구였다.

 

가령,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꿈을 현실 세계와 동일시하고 드림캐처 (dream catcher)'라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드림캐처는 버드나무와 새의 깃털, 구슬 등을 재료로 제작되었는데,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드림캐처를 머리맡에 걸어두면 악몽을 잡아주어 좋은 꿈을 꿀 수 있다고 믿었다. 가상 세계(꿈) 속 좋지 않은 무언가를 잡아준다는 측면에서 실시간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고'의 원형인 셈이다. 중세시대 서양 사람들 역시 인큐버스나 서큐버스 같은 꿈속의 악마가 현실의 사람을 해칠 수 있다고 믿었다.

 

신기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고려시대 책인 《수이전》에는 ‘최치원'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있다. 최치원이 어려서 당나라에 단신으로 유학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의 율수현에 현감으로 초임발령을 받은 후 귀신 자매와 연애를 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이야기 속 자매의 무덤은 현재 중국 장쑤성 난징시 남쪽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유적지로 조성되어 있다. 지금은 한나라 때의 무덤이라고 밝혀졌지만, 최치원의 경험인 꿈속의 사랑 이야기는 한국과 중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최치원이 겪은 쌍녀분 이야기는 과연 진실일까?

 

죽은 쌍둥이 자매가 환생해서 시를 나누고 심지어 운우지정까지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곧이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치원의 상황을 헤아려보면 충분히 이런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어린 시절 홀로 타지에 유학을 와서 극도의 외로움 속에서 살았던 사내였으니 다양한 로맨스가 꿈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최치원이라는 문장의 대가에게 깃든 꿈속에서의 사랑은 시가 곁들여지며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

 

이처럼 사람들은 꿈을 곧 인간 삶의 연장으로 보았다. 또한, 그 꿈을 다스리고 해석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실 생활의 도피처로 삼기도 했다.

 

 

< 6 >

 

마스크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치는 동안 마스크(mask)는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하지만 원래 마스크는 의료용이 아니라 신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마스크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대개 얼굴을 가려주는 복면이나 다른 모습이 그려진 가면을 가리킨다. 배트맨이나 쾌걸 조로가 쓰고 다니는 가면도 마스크이고, 우리나라의 각시탈이나 하회탈 같은 전통 탈도 마스크에 해당한다. 가면을 쓰는 순간 우리는 다른 자아를 연기하게 된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마스크를 쓰는 순간, 다른 사람의 삶에 올라타는'탑승권'을 끊은 셈이다.

 

만주에서 기원한 방역 마스크

 

주술적 의미가 컸던 마스크는 120여 년 전부터 인간을 살리는 의료용 도구로 용도가 바뀌었다. 근대의 세균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도 인류는 다른 사람의 타액이나 공기 중 호흡을 통해 병이 옮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므로 '나쁜 기운' 또는 '악마의 숨결'과 접촉하게 되어 악마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다.

 

한 것은 17세기 유럽에서 페스트가 한창일 때였다. 당시 프랑스의사가 펭귄처럼 생긴 마스크를 개발했다. 이 마스크에는 마늘과새 부리를 달았는데, 모두 악령을 퇴치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주술적인 의미가 깃든 마스크였지만 결과적으로 이 마스크가페스트를 물리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방역용 마스크가 도입된 것은 20세기 초 만주에서다. 1910년 무렵, 만주에서는 페스트가 널리 유행했다. 만주 일대에서 설치류를 사냥해 모피를 벗기던 사람들 사이에서 페스트가번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러시아가 만주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했고 철도 동선을 따라 하얼빈으로까지 페스트가 퍼진다. 당시 추산으로 약 10만여 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페스트의 전파를 막은 것은 화교 출신 의사 우렌더(伍德)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꼭 쓸 것을 종용했다. 이후 마스크의 효능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 유행 때도 증명되었다.

 

이제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마스크 대신에 산 사람을 살리는'마스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마스크는 그 형태가 단순한 것 같지만 수백만 수천만 명의 희생으로 검증된 의료 도구다. 아마 수천 년 뒤의 고고학자들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시작된 인류의발명품 목록에 의료용 마스크도 함께 올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거리에는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2022년 6월 한 기업에서 설문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실외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었어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겠다고 답한 사람들이 약 72퍼센트나 되었다. 추가 감염 우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3년여 동안 민낯을 가리고다니던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날에는SNS에 올리는 사진들이 또 다른 형태의 마스크처럼 여겨지기도한다. 나의 진짜 모습은 가리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마스크의 형태와 그 의미는 차츰 변화해왔다. 하지만 진짜 모습을 가린다는 본질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인류는 또 어떠한 마스크를 쓰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