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정지아 / ‘숲의 대화’(은행나무 출판)중에서

송담(松潭) 2022. 12. 10. 20:54

정지아 / ‘숲의 대화’(은행나무 출판)중에서



< 1 >

브라보, 럭키 라이프


(...생략...)

"아가! 나가 분명히 봤다. 니는 할 수 있어야 겡우야! 쪼깐 힘내서 다시 해보자."

경우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서서히 팔이 올라간다. 반 뼘이나 올라갔을까, 아들의 팔은 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침대로 떨어진다. 아들의 팔은 분명 저 스스로 움직였다. 사고를 당한 날로부터 무려 23년 만이다. 아들은 또 기적을 만들어냈다.

"아이고, 아가!"

그의 고함을 듣고 달려온 아내도 그 기적의 순간을 목격한 모양이다. 아내가 아들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아들의 양 눈가로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도 돌아서 눈물을 훔친다. 23년 만에 아들은 제 팔을 들어 올렸다. 의사는 근육운동을 관장하는 뇌가 망가져서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우는 제 의지로 망가진 뇌를 거스른 것이다. 늙다리 의사 말이 옳았다. 경우는 역시 행운의 사나이다.

2시 55분, 세 사람은 언제나처럼 의료원 앞 정류소에 서 있다. 서산으로 기운 해는 벌써 시름시름 온기를 잃고 있다. 낯익은 자동차 한 대가 정류소에 멈춘다. 문이 열리고 내린 것은 맏이 경환이다. 맏이는 말도 없이 꾸벅 고개만 숙인 뒤 경우를 들쳐 엎는다. 공고를 나온 맏이는 부천에서 카센터를 한다. 일요일도 아닌데 고향까지 내려온 게 그는 자꾸 마음에 걸린다. 새벽녘에 고집스럽게 울어대던 전화벨도. “아이, 니가 평일에 워쩐 일이냐?"
맏이는 대꾸도 없이 뒷자리에 경우를 앉히고 휠체어를 싣는다.
"아가, 오늘 경우가 지 혼자 움직거렸어야." 뒷자리에 앉은 아내가 목을 길게 빼고 조잘거린다. 고추 고랑처럼 깊게 파인 아내의 주름마다 햇빛이 찬 듯 환하다.

“지 혼차 팔을 요만큼이나 들어 올렸당게. 참말이야." 맏이의 대꾸가 없자 아내는 칭찬받고 싶어 안달 난 아이처럼 고개를 더 길게 빼고 조잘거린다. 그래도 맏이는 말이 없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는 신이 나서 조잘조잘 참새처럼 잘도 지껄인다. 시동을 끄자마자 맏이가 제 어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요? 그런다고 뭣이 달라지는데요? 경우가 지 혼자 밥벌이라도 할 수 있답디까?"
"이눔의 자석!"
벽력같이 호통을 치며 그는 맏이의 등짝을 냅다 주먹으로 쥐어박는다. 하필 비죽 솟은 날갯죽지 옆이다. 어찌나 앙상하게 말랐는지 때린 그의 주먹까지 아프다. 지난 추석 때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마르지는 않았었다.

"왜? 내 말이 틀렸어라? 23년이오, 23년!"
맏이가 사투리로 맞받아 고함을 친다. 흥분했다는 증거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란 말이요. 인자 제우 팔쪼깐 들었다고 뭣이 달라지요? 쟈가 시방 마흔다섯이요, 마흔다섯, 얼라도 아니고 인제사 제우 팔 한 짝 올려가꼬 워느 천년에 사람노릇 하고 살겄소? 지발 좀 고만허씨요."

"고놈의 주둥이 고만 못 다물겄냐!"

그는 쾅 문을 닫고 내린다. 경우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어매, 아배 이상의 말은 못 해도 말귀는 훤히 다 알아먹는 놈이다. 썩을 놈. 가슴에 열불이 치솟는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던 맏이가 어느 설날에 사온 비스킷을 경우는 조물조물, 만지기만 하고 결국 먹지 못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왜 장난질이냐는 그의 호통에 경우는 성이 잠시로 코피를 쏟았어라, 반쯤 울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번 돈으로 사온 형의 선물을 차마 먹어치울 수 없었으리라.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남달랐던 형제간의 정도 긴 병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는 휠체어를 침대에 바투 붙인 뒤 침대 위로 올라간다. 그러고는 아들의 겨드랑이에 팔을 껴 용을 쓰며 침대로 끌어당긴다.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얼라도 아니고 인제사 제우 팔 한 짝 올려가고 워느 천년에 사람노릇 하고 살겄소, 맏이의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른다.

"아배."

경우가 또렷한 발음으로 그를 부른다. 무엇이라 더 말하고 싶은 눈치나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말은 하지 못하고 경우는 간절하게 그를 바라본다. 경우의 몸 중에 가장 자유로운 곳이 눈이다. 아들의 말없는 말을 그는 알아듣는다. 그도 말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그는 오리털 점퍼를 벗고 작업용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의 집은 아직도 나무를 뗀다. 남들이 모두 기름보일러로 바꿀 때 그의 집만 빠졌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생각에서였는데 지나고나니 천만다행이다. 기름 값이 하도 비싸 앞집 옆집 모두 나무 때는 아궁이로 다시 바꿨다. 일단 경우 방부터 불을 지핀다. 아궁이에 나무를 잔뜩 밀어 넣고 그는 지게를 걸머진다. 마음이 바쁘다. 한 시간 남짓이면 해가 질 것이다. 그 전에 나무 한 짐이라도 해놔야 한다. 겨울에는 아들을 데리고 의료원에 오가고 나면 하루해가 저문다. 나무 할 짬도 없다. 가을까지 부지런히 나무를 해 날랐는데도 올겨울 나기에는 부족할 성싶다. 다행히 나무는 지천에 널려 있다. 기름 때는 집이 많은 덕이다. 태성이네 밤밭에서 지난여름 폭우 때 뿌리 뽑힌 나무 몇 개를 지게에 올린다. 하룻밤 땔감으로는 너끈하다.

대문 앞에서 그는 발길을 멈춘다. 아내의 울먹이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온다.
"아가, 워찌 워찌 잘 넘게보믄 안되겠냐? 우리가 보태줄 수만 있음사 월매나 좋겠냐만 니도 알잖애 인자 암것도 안 남았어야." 그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앙상하게 마른 맏이의 날갯죽지 옆에 주먹이 닿았을 때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맏이는 친구와 함께 빚을 얻어 카센터를 시작했다. 그 일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리라.

“월등 바위산 있잖소. 돌밭이라 몇 푼 나가진 않겠지만 그거라도 쫌 팔아주먼 안 되겄소? 그냥 돌라는 게 아니요. 나가 꼭 갚으께. 가차운 데 큰 카센타가 생겨가꼬 시방 쪼깐 힘들어졌는디, 우리도 쫌 키우먼 해볼만 하단 말이요. 3000이면 돼요.3000. 월등 산 폴믄 그 정도야 안 나오겄소.”

그 산이 남의 손에 넘어간 건 벌써 오래전이다. 무거운 등짐을 진 채 그는 차마 대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그 산이 아즉 우리 수중에 있는 중 아냐? 폴세 팔아묵었제. 인자 암것도 없어야. 아부지헌티는 암말도 허지 말고 그냥 올라가그라 들어봐야 속만 시끄럽제 니 아부지라고 먼 수가 있겠냐."

“아, 씨발 진짜…….”

맏이의 시끄러운 마음인 양 스테인리스 대야가 마당을 구르는 요란한 소리가 이어진다. 그가 발길로 대문을 박찬다. 그는 쾅 소리가 나도록 시멘트 마당에 마른 밤나무를 부려놓는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도끼를 내리친다.

"아부지! 경우만 자석이요? 나는 자석도 아니요?" 장승처럼 마당에 붙박혀 있던 맏이가 3년 묵은 김장김치 같은 울분을 처음으로 토해놓는다.

“니는 사지육신 멀쩡한 놈이 아니냐? 사지육신 멀쩡허니께 뭣을 해도 살기는 살겄제.”

그는 애써 목청을 낮춘다. 카센터를 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을 때도 군소리 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갔던 맏이다. 몸이 바싹바싹 마를 만큼 가게가 힘든 상황일 것이다.

“말이 나왔음게 말인디. 아부지가 나헌티 해준 것이 뭐요? 겡유는 대학이라도 다녔제라. 나는 대학물도 못 묵어봤소. 내가 카센타 한다고 쪼개만 보태돌라고 했을 적에도 아부지 뭐라겠소?그때도 니는 사지육신 멀쩡헝게 니 알아서 허라고 그랬지라? 그래놓고는 있는 땅 다 폴아 경우 밑구녕으로 다 쏟아 부었지라. 사지육신만 멀쩡하던 산 것이다요? 숨만 붙어 있다고 산 것이다요? 살아 있는 것맨치 살아야제라.”

맏이의 말이 가슴을 후빈다. 그는 묵묵히 도끼를 놀린다. 퍽,퍽, 나무 쪼개지는 소리에 겨울 햇살이 시들어간다.

"아부지는 시방도 경우 쟈가 사람노릇 허고 살 것 같소? 꿈 깨씨요. 23년 만에 지 팔도 보돕씨 움직이는디 쟈가 지 발로 걷는 꼴을 아부지 살아생전에 볼 수나 있을 것 같소? 행운의 사나이 좋아하시네. 그놈의 행운 개나 주라고 허씨요. 저놈 명운(命運)이 어매아배 다 잡아묵고 인자 나꺼정 잡아묵게 생겼단 말이요."

도끼가 갈 자리를 잃고 받침대에 꽂힌다. 한 치만 어긋났으면 그의 정강이에 꽂혔을 것이다.

“주뎅이 못 닥치냐!"

순간, 우어, 우어어, 기이한 비명 소리가 그의 일갈을 눌러 앉힌다. 그의 귀가 경우 방을 향해 곤두선다. 어어. 분명 경우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도끼를 집어던지고 신발을 벗을 겨를도없이 아들 방으로 내달린다. 경우가 자신의 머리를 침대 머리맡에 박으며 우어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놀란 그가 아들의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안는다. 지난 23년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아들의 목이 그의 팔 안에서 버둥거린다. 아들의 볼은 눈물로 온통 흥건하다.

"씨발! 벵신 자석만 끼고돌다가 인자 산 자석 죽는 꼴 보게 생겠네. 조오컸소!”

콰당, 대문이 거칠게 닫히고 아내의 곡소리가 늦가을 바람처럼 어지러이 집 안을 휘된다.

"아이고오! 우리 경우가 그때게, 사고 났을 때게, 팍 죽어부렀으먼, 그랬으면 좋았을랑가……….'

울음 끝에 아내가 탄식한다. 아직도 경우는 그의 품 안에서 버둥거린다. 버둥거림이 점점 힘차지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느낀다. 이것은 기적이다. 경우는 또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의 가슴이 벅차오른다. 시들어가는 햇살이 눈물로 번들거리는 아들의 뺨 위로 힘없이 내려앉는다. 벌써 짧은 겨울 낮이 저물고 있다.

< 2 >

핏줄

왕시루봉이 구름 한 점 없이 말갛다. 오늘도 비 오기는 글렀다. 장마철이 열흘 남짓 지났는데도 뜨거운 뙤약볕만 내리쪼인다. 60년 경력의 농사꾼인 그도 철을 종잡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매화와 동백이 시들 무렵 연노란 산수유가 들판에 봄빛을 불러오고, 아련한 연노랑 빛이 성에 차지 않는다 싶을 즈음 진달래가 산등성을 벌겋게 물들이고, 그 꽃들이 죄 사라진 뒤에야 봄볕에 지친 보랏빛 오동이 숨을 헐떡이며 커다란 꽃잎을 축 늘어뜨려 여름을 알렸는데 요즘은 온갖 꽃들이 동시다발로 피어난다. 지난겨울에는 제가 무슨 고결한 매화나 되는 양 한겨울 눈 속에 움튼 버들강아지를 보기도 했다. 농사일에도 철이 사라진지 오래다. 철따라 농사를 지었다가는 빚더미에 올라앉기 십상이다. 입덧 하는 아내를 위해 한겨울에 수박 찾아 길을 나선 남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한겨울 마트에 가면 수박도 있고 딸기도 있고 없는 게 없다. 철을 앞선 과일이 노지에서 키운 것들보다 연하고 당도도 높아 서울 사람들에게 인기인 모양인데 그의 입맛에는 도무지 맞질 않는다. 씹기도 전에 맥없이 이 사이에서 뭉그러지는 딸기가 무슨 딸기인가 싶지만 서울 사람이 좋다니 별수 없다. 세월이 변했다.

집 뒤안의 축사까지 고작 열댓 걸음 움직였을 뿐인데 식전 댓바람부터 등이 꿉꿉하다. 그는 하릴없이 뒷짐을 진 채 서성거린다. 새로 깐 볏짚 위에 몸을 뉘고 소들은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보송보송 햇볕에 잘 마른 짚단 냄새가 구수하다. 얼마 전까지 축사 일은 죄 그의 몫이었다. 걸리기만 해보라는 심정으로 꼼꼼히 훑어보지만 축사는 그의 손길이 닿았을 때보다 말끔하고 쾌적하다.

부연 흙먼지가 길을 따라 집 쪽으로 다가온다. 임진왜란 때 생겼다는 신작로가 고욕의 긴 세월을 털어내고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 같다. 뒤뚱거리며 스쿠터에서 내리는 것은 배가 남산만 한 며느리다. 며느리는... 까맣다. 더 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새까맣건만 며느리는 이른 아침부터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팔에는 긴 토시를 치고 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며느리는 모자와 토시를 제 몸의 일부인 양 절대로 떼지 않는다.

쑤언은 맨 마지막으로 만난 처녀였다. 아홉 번 단련된 통역이 왜 천리만리 촌구석으로 시집오려냐는 그의 질문을 깜냥껏 알아서 던졌을 때 쑤언은 느닷없이 제 손을 그와 아들 앞으로 쑥 내밀었다. 스무 살 쑤언의 손은 야들야들 처녀다운 맛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두툼하고 거칠었다. 그 손만으로도 쑤언의 20년이 눈앞에 삼삼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죽어라고 일을 해도 여기서는 배가 고파요"

예쁘장한 처녀들과 노닥거리기나 하던 통역이 제법 숙연하게 통역한 쑤언의 대답이었다. 말은 속여도 손은 못 속이는 법, 그는 쑤언의 농사꾼 손이 마음에 들었다. 더는 궁금한 것도 없었다. 어찌 됐든 대만 이으면 된다. 그것이 외국 처녀를 며느리로 받아들인 그의 심정이었다. 쑤언이 첫 여자는 아니었다.

아들이 훌쩍 서른을 넘겼을 때만 해도 그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병신도 아니겠다, 집안 살림도 이만하면 먹고 살만 하겠다 어디 짝이 있겠거니 여겼다. 서른다섯을 넘겨도 그 흔한 선 자리 한 번 들어오지 않았고 그제야 그는 애가 달았다. 서울 사는 딸들을 닦달했지만 되레 핀잔만 돌아왔다.

“그러니까 논 팔아서 읍내에다 가게라도 하나 얻어주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잖아요. 요즘 세상에 누가 그 촌구석 가서 농사짓고 살려고 하겠어요? 나라도 싫겠네. 영수 총각 귀신 만들고 싶지 않으면 당장 땅부터 파세요."

헹, 논 팔아 누구 존 일 시킬라고, 구시렁거리며 전화를 끊었지만 독한 청자 한 갑을 통째로 피우고 난 듯 입맛이 썼다. 영수를 고향에 꿇어앉힌 것은 그였다. 중학 때까지 영수는 공부를 제법 잘했다. 순천이나 광주로 고등학교를 보냈더라면 판검사까지는 몰라도 제 밥벌이는 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줄줄이 딸 셋을 낳고 서른 넘어 본 외아들을 그는 도무지 객지로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큰형도 작은형도 셋째형도 철이 들자 객지로 나갔고, 아버지는 논을 팔아 학비를 댔으며, 그렇게 배운 공부가 화근이 되어 셋 다 객지에서 목숨을 잃었다. 학식 높은 할아버지도 아버지 말에 따르면 그놈의 공부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 한일합방이 되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매천 황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할아버지는 제 목숨 제가 끊을 용기가 나지 않아 사랑방에 틀어박혔다. 할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벗 삼아 오욕의 세월을 잘 견뎠지만 할아버지의 간은 주인과 달리 잘 견뎌주지 않았다. 푸르딩딩 온몸에 독이 오른 채 안방에 누워 3.1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 들은 할아버지는 해방이나 된 듯 감격에 겨워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가 말아먹은 집안을 일으키느라 세상에는 눈 돌릴 겨를도 없이 일만 해온 아버지는 생떼 같은 아들 셋이 해방 후부터 전쟁 무렵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뜬후 나라를 잃은 할아버지가 그랬듯 몸져누웠다.

“아이 필두야, 니는 땅만 파묵고 살그라. 나라가 망해묵거나 말거나, 시상이 뻘겋거나 퍼렇거나 워찌 되든 니는 땅만 파고 삼시로 대를 잇어라. 대를 잇고 살다 봉게 나라를 찾는 날도 오드라. 존 일에 애비 말 새게 듣고 책 곁에는 얼씬도 말그라이 공부가 웬수다, 공부가 웬수여…….”

그 말이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심장에 새겨 이렇게 산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기껏 일군 재산은 피지도 못하고 간 형들 뒷바라지로 다 날아갔고, 마지막 남은 재산은 아버지 화병 다스리느라 끝장이 났다. 공부고 뭐고 당장 몸뚱이를 움직이지 않으면 산 입에 거미줄 칠 판이었다. 무슨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죽기 살기로 일을 했고 덕분에 먹고살 만해졌다. 영수 고등학교 보낼 때가 되어서야 아스라이 멀어졌던 아버지의 유언이 불쑥 떠올랐다. 그 무렵 국립 서울대학에 합격했다하여 마을 어귀에 떡하니 플래카드까지 붙은 바 있던 이장 아들이 민주화라나 뭐라나, 지 딴에는 나라 살리겠다고 헛짓거리를 하다 반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간간이 귀가 깨질 듯한 비명 소리가 적막한 시골 마을을 뒤흔들었다. 이장 아들이 낯선 손님만보면 저를 고문한 경찰로 착각하여 죽을 동 살 동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먹고살 만하여 잠시 아들 출세를 고민했던 그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땅만 파고 삼시로 대를 잇어라. 아버지의 유언도 생생히 되살아났다. 영수는 한산 이씨 대를 이을 외아들,그런 아들을 세상의 격랑 속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 주저앉힌 것인데, 농촌 산다고 장가조차 못 가는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설마 설마 하다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기어이 아들은 마흔 줄에 들어서고 말았다.

외국 처녀를 며느리로 들이면 어떻겠냐고 은근히 옆구리를 집적인 것은 아내였다. 까무잡잡한 아이들이 서너 집 걸러 하나씩 태어나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그는 분이 솟구쳐 냅다 목침을 집어던졌다.

"썩을... 니가 한산이씨 우리 문중을 멋으로 보고 시방……….”어찌나 분이 올랐는지 그는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시집와 난생처음 남편의 폭력에 놀라 어리둥절 눈을 껌벅인 것도 잠시, 아내는 코웃음을 치며 야무지게 쏘아붙였다.

"그놈의 족보로 뒤를 닦을라요? 코를 풀라요? 귀하디귀헌 내 자석을 총각귀신으로 늙힘시로 문중 좋아하시네. 외국 각시 아니먼 그놈의 한산 이씨 대가 끊기겠다 그 말이요, 시방 내 말이!"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대를 잇기 위해 아들놈을 고향에 붙들어 앉힌 것인데, 바로 그 때문에 대가 끊기게 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말하자면 제 손으로 수백 년 가문의 역사를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멀쩡한 자석을 총각귀신으로 늙힐라요? 외국 메느리를 볼라요? 오늘은 기언치 끝을 봐야겠응게 양단간에 결단을 내리씨요이." 망연자실한 그 앞에 아내는 종주먹을 들이대며 다그쳤다.

"조선족 처녀로다 혀!"

이것이 한산이씨 26대 손 이필두 씨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백 년 순결하게 지켜온 한산 이씨 핏줄에 외국 피가 섞이는 것만은 그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한 두고 볼 수 없었다.

마흔 넘도록 힘들었던 아들의 결혼은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다. 마흔 되던 해 봄 농사도 미루고 마누라감을 고르기 위해 연변에 간 아들은 아들에게도 저런 웃음이 있었나 싶게 싱글벙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아들은 밤마다 사진 한 장으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눈치였는데, 우연히 담배를 찾기 위해 아들 사람을 뒤지던 그는 지문이 덕지덕지 뭍은 사진 한 장을 보고는 그만 기함을 하고 말았다. 까만 속옷만 걸친 어여쁜 처녀가 비스듬히 누운 채 배시시 웃음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집도 오기 전에 홀랑 벗은 사진을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버젓이 들이민 낯짝 두꺼운 이 이자가 한산 이씨 27대 종부라니. 그는 몇날 며칠 땅이 꺼지라 한숨만 쉬었다. 혼인신고까지 마쳤는데 여자는 아버지 병을 핑계로 차일피일 입국 날짜를 미뤘다. 애가 닳은 아들놈은 신장에 좋다는 온갖 악은 물론이고 그를 반 협박하여 적지 않은 돈까지 송금했다. 송금한 그날부터 여자의 연락이 뚝 끊겼다. 가을걷이를 내팽개친 채 아들은 연변으로 쫓아갔다. 여자는 물론 도망간 후였다. 드넓은 중국대륙 어디서 여자를 찾을 것인가.

두 차례의 중국 여행 경비에 결혼 비용까지 포함하여 근 3000 가까운 돈이 날아갔지만 그는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그로부터 두 해나 아들은 일손을 놓고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런 아들을 태국으로 등 떠밀어 보낸 것은 아내였다. 그것만은 안 된다고 말려도 보고 심지어 밥상까지 엎었건만 아내는 요지부동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술주정뱅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처방이 즉효였다. 마누라감을 찾아 태국에 갔던 아들은 보름 만에 떡하니 여지를 데리고 돌아왔다. 새까맣긴 해도 오목조목 예쁜 여자였다. 여자의 손을 꼭 붙잡고 대문을 들어선 이들은 이번에는 술독 대신 아내 치마폭에 푹 빠졌다. 그러나 그는 새까맣고 오종종한 며느리의 얼굴을 암만 들여다봐도 정이 붙지 않았다. 한국말을 할 줄 아나 한국 음식을 할 줄 아나. 게다가 바닷가에 살았다는 며느리는 농사일도 젬병이었다. 거기까지였다면 한국 여자도 오기 싫다는 촌으로 시집을 와준 것이 어디랴. 꾹 참고 넘겼을지 모른다. 반반한 얼굴 하나 믿고 인물값을 해대는데 이건 도무지 목불인견이었다. 제 서방을 머슴 부리듯 하는 것이야 기본이고, 조막손이라도 아쉬운 판에 고향 맛이 그리워 죽겠다며 일하는 제 남편 불러내 이름도 모르는 태국 음식을 사오라는 데는 그는 물론 어지간만 하면 예뻐해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던 아내마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뿐이랴. 이게 얼굴만 반반했지 머릿속은 텅 비어 석 달 열흘 가르쳐도 된장찌개 하나 제대로 끓여내지 못했다. 된장 맛이 어지간하니 멸치만 제대로 우렸어도 먹을 만했을 된장찌개가 며느리의 손이 닿으면 도무지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 된장찌개를 한 숟갈 떠먹고는 그의 머릿속이 아득했다. 제 어미 똑 닮아 꺼먼 데다 머리까지 텅텅 빈 놈이 태어나면 그 노릇을 어쩐단 말인가. 할아버지 대부터 조선의 몰락과 함께 내리막길을 걷긴 했어도 그의 집안은 판서를 일곱이나 배출한, 뜨르르한 명문가였다. 공부까지 멀리해가며 대를 이어온 그의 인생이 그놈의 태국 며느리 때문에 한바탕 헛놀음이 되고 말게 생긴 터였다.

이듬해 봄, 그는 입이 한 발이나 나온 며느리를 등 떠밀어 매일 밭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놉이나 다름없이 혹독하게 일을 시켰다. 밤마다 얼굴 예쁜 며느리의 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체격의 며느리는 그 봄이 끝나기 전에 얼굴이 반쪽이 됐다. 비싼 돈 들여 외국 며느리 들이더니 야물게 본전을 뽑는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잠시도 며느리를 쉬게 하지 않았다. 아들놈이 일주일동안 광주에서 영농후계자 교육받을 날짜가 잡혔다. 그는 그 날짜에 맞춰 태국행 편도 비행기 표를 끊었다. 아들이 길을 나서자마자 그는 말없이 며느리에게 이혼서류와 비행기 표와 돈 봉투를 내밀었다. 1000만 원이면 그 나라에서 그럭저럭 뭐라도 하나 시작할 만한 돈이라고 했다. 미련하든 게으르든 멀쩡한 처녀 데려다 흠을 냈으니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며느리는 군소리 없이 서류에 도장을 찍은 후 봉투를 챙기고 가방을 꾸렸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태국 처녀는 꼭 열 달을 한산 이씨 종부로 살다 그렇게 떠났다.

볼멘소리를 하긴 했으나 뜻밖에 아들은 그리 아쉬운 눈치가 아니었다. 머지않아 새 며느리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필리핀 처녀였다. 역시 얼굴은 반반했다. 필리핀 처녀는 그만하면 눈치도 있는 편이고 일솜씨도 좋았다. 제 입맛에 맞지 않을 한국 음식도 제법 흉내를 낼 줄 알았다. 이만하면 되겠다. 쓴 입맛을 다실즈음, 며느리가 아들에게 헛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태국 마누라든 필리핀 마누라든 마누라 말이라면 껌뻑 죽는 팔불출 아들 녀석이 서울 가서 장사하게 당장 돈 내놓으라며 생떼를 썼다. 어째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 싶었더니 그런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내보낼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내보내 한국 처녀를 얻었지 저를 얻었겠는가. 이번에도 그는 아들 몰래 며느리를 불렀다. 그러고는 이혼서류와 비행기 표와 돈 봉투를 내밀었다. 영악한 필리핀 며느리는 돈 봉투부터 열었다. 역시 1000만 원이었다. 필리핀 며느리는 1000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이거 또.”

실소를 흘리며 그가 고개를 흔들자 필리핀 며느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밤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아들 녀석은 날이 밝자마자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빈손으로라도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논 닷마지기를 팔았다. 악착같이 사 모으기만 했을 뿐 땅을 팔아보기는 처음이었다. 필리핀 며느리는 돈 2000만 원을 들고 예의바르게 작별인사까지 한 뒤 제 나라로 돌아갔다.

외국인 며느리를 셋이나 들였다가 번번이 파토를 내자 한산이씨 가문이 드디어 국제적으로다 이름을 알렸으니 선조들 볼 낯이 서겠다는 비아냥에서부터 국제적으로 다 여자를 바꿔보니 어떻더냐는 호기심 섞인 질문은 물론이요, 이참에 며느리 말고 마누라도 국제적으로 바꿔볼 생각은 없느냐는 낯 뜨거운 농에 이르기까지, 나가기면 하면 한 소리씩 해대는 통에 그는 한동안 마실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한심했다. 남들 말, 하나 그르지 않았다. 가문의 대를 이으려다 가문을 국제적으로 망신시킨 꼴이 아닌가.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어떻게든 끝은 보아야 했다. 첫 걸음을 내딛기 어려웠을 뿐 하다 보니 이력이 붙어 그도 아들도 별 어려움 없이 착착 다음 일을 준비했다. 이번 목적지는 베트남이었다. 그는 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노구를 끌고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다. 더 이상은 팔불출 아들 녀석에게 맡겨둘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마음에 둔 여자는 어른 앞에서 껌을 짝짝 씹어대는 데다 행동거지가 경박하기 짝이 없어 그가 맨 처음으로 젖혀둔 여자였다. 그가 쑤언을 들이밀자 아들은 그것 놈의 참가 안 가고 말겠다며 낯선 이국에서 패악을 부렸다.

"장기를 몇 번을 가야 정신을 챙기겠냐 이눔아! 반반한 것들현티 고로코롬 당하고도 시방꺼정 얼굴 타령이냐? 마누래 얼굴 뜯어묵고 살라냐?"

그는 마흔 줄 넘어선 아들의 등짝을 손바닥이 아프도록 내리쳤다. 읍내 농고를 가랄 때도 고향에서 농사나 지랄 때도 묵묵부답, 아버지 말이니 따라야 되는 줄만 알던 아들이 송아지같은 눈망울을 희번덕이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아부지 마누래 고르요? 왜 아부지 맘대로요? 반반한 것들이 워째서라? 아부지가 쫓아내지만 않았어도 깨를 볶아감시로 살고 있을 것인디……….”

"깨? 아나 깨! 고 영악한 필리핀 시약시가 펭상 니 곁에 붙어있을 성싶으디야?"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원숭이 바나나라나 뭐라나 손가락만 한 바나나 뭉치를 휙 집어던졌다. 아들은 꿋꿋이 서서 피하지 않고 얼굴로 받아냈다. 기어이 제 뜻대로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저야 결연하든 말든 그래 봤자 자식이 애비를 이길까, 그는 기어이 쑤언을 데리고 돌아왔다. 속창아리 없기로는 그의 아내도 아들 녀석 못지않았다. 장바닥서 물건 고르듯이 쑤언을 꼼꼼하게 뜯어본 아내는,

"아따 기왕지사 월남꺼정 갔으면 쓸 만한 것을 줏어오제 워디서 생기다 만 땅깨비 같은 것을 줏어왔다요? 물릅시다. 기왕지사 물르는 디 이골이 났는디 한 번 더 물린다고 먼 일이 있겠소? 호적에 시 번 줄 긋으나 니 번 줄 긋으나 도친게친이제 머." 말귀 못 알아듣는다고 아예 면전에서 콩닥콩닥 입방아를 찧었다. 아내는 무르자던 그 입으로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아가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내가 눈을 뜨기도 전 쑤언이 아침상을 떡하니 차려놓았던 것이다.

“월남 사람들도 된장찌개를 묵는갑소이." 쑤언의 된장찌개를 맛본 아내의 말이었다.

오랜만에 밥상머리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아들의 얼굴도 한결 밝아졌다. 저도 말 안 통하는 여자들과 사느라 어지간히 속을 끓였던 것이다. 쑤언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부지런하고 정직하겠다 싶어 골랐던 그마저 감탄할 정도였다. 쑤언은 잠시도 몸을 쉬지 않았다. 딱히 할 일이 없으면 찬장의 그릇이라도 죄 꺼내 반짝반짝 윤을 냈다. 아내가 환갑 지난 뒤로 만사가 시들하다며 게으름을 피우는 통에 먼지 켜켜이 앉았던 집안이 다시 예전의 윤기를 되찾았다.

요즘 들어 끼니마다 베트남 음식이 밥상 위에 올라왔다. 아내가 베트남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봄 쑤언의 생일이 지난 뒤였다. 한국에서 맞는 첫 번째 생일이라고 아내는 오랜만에 옛 실력을 발휘하여 백설기에 약밥까지 한국식으로 떡 벌어진 한 상을 차렸다. 쑤언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게 그 상을 받았다. 그늘 밤 화장실에 다니러 간 아내가 찬바람을 몰고 혀를 차며 돌아왔다. 초봄이라 활발한 밤공기에 잠이 깬 것인지 한참 뒤적이던 아내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영감, 쑤언이 봄이라요, 봄에 태어났다고 쑤언이랑마.”

봄이, 그렇게 예쁜 이름인 줄 그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쑤언은 베트남 얘기를 단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초승달을 봄시로 울고 있어라. 월남이 그리운갑서. 하기사 여우도 죽을람시로 고향 쪽을 보고 죽는단디 워째 고향이 안 그립것서. 짠하고 안됐어라”

몇 년 전까지 우체부나 띄엄띄엄 오가던 고적한 고샅길에 댓명의 아이들이 팬티로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채 부산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섯 중 셋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가 남달랐다. 그놈들을 보고 있으려니 여기가 지리산 골짜기 맞나 싶었다.

"할배, 안녕하싱게라?"

그중 머리 굵은 놈 하나가 깍듯이 허리를 숙여 알은체를 했다. 그는 인사도 받지 않은 채 걸음을 서둘렀다. 저놈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했다. 곧 저런 놈 하나가 그의 집에도 떡하니 꿰차고 들앉아 상전노릇을 할 것이다.

분만실 앞에서 그는 초조하게 서성였다. 지발 존 일에 지 앱씨 닮은 놈이 나오게 해주씨요, 누구에게랄 것 없이 그는 기도했다. 소식을 들은 건지 만 건지 아내와 아들은 함흥차사였다. 간간히 쑤언의 억눌린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명조차 마음껏 지르지 못하게 만든 것은 비명을 질러봐야 무용지물인 오랜 세월이었으리라. 으앙! 어미 대신 우렁찬 비명을 지르며 아이가 나왔다. 잠시 후 분만실 문이 열렸다.

"사내아입니다."

간호사가 얇은 천에 둘둘 말린 아이를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저도 모르게 움찔 그는 눈을 감았고, 심호흡을 하며 지발, 간절한 기도와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까맸다! 어미를 쏙 빼닮아 새까맣고 오종종한 아이가 벌써 눈을 뜨고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난히 눈동자 검은 이 아이가 한산 이씨 28대손 이강호였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그는 엉거주춤 아이를 안은 채 화석처럼 굳었다. 아이고, 아가! 우당탕 문이 열리며 저만치 아내의 고함 소리가 아득하게 멀었다.


< 3 >

즐거운 나의 집


외환위기와 동시에 사표를 내던지고 위로조의 두둑한 퇴직금을 손에 쥔 그는 몇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땅한 집터를 찾았다. 서울 근교는 너무 비쌌고 먼 데도 경치가 수려하다 싶으면 이미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은 뒤였다. 십수 년 전 용인에 땅을 사두자던 동생의 권유를 너마저 생명의 대상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기로 작정했냐고 비아냥거리며 야멸차게 내쳤던 게 못내 후회스러웠다. 포기할 즈음 이 집터가 나섰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200평, 다소 좁긴 했지만 정사각형의 터인 데다 다 무너져가는 기와집이라 철거도 손쉽고 안성맞춤이었다. 마을을 감싸안은 나지막한 산자락도 마음에 들었다. 경관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50여 호 남짓한 마을은 안정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그 가격이면 괜찮은 편이었다.

집을 짓기 전에 그는 이틀이 멀다고 마을에 들러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몇 년 전 귀농한 친구에 의하면 귀농의 성공 여부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서울 근교라 별장들이 많은 탓인지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그는 시골에 정착한다고 해도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었다. 집에서 먹을 정도의 텃밭이나 가꾸면서 이전 동료들에게 부탁받은 인터뷰 원고나 쓰고, 할 수 있으면 소설이나 써볼 생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무르익어갈 봄의 정취, 서재 통유리 너머 하루하루 스러지고 차오를 달의 변신, 장엄하게 천지를 두들길 빗줄기 등이 인간인 이상 그의 마음 깊은 곳에도 내재해 있을 문학적 감성을 일깨워줄 것이라는 은밀한 기대도 없지 않았다.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놓자 동네 사람들은 작가 선생이 우리 마을에 왔으니 마을의 경사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제야 그는 결심을 굳히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집을 완성했을 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었으나 이제야 비로소 자연의 순리에 따른 아름다운 삶이 시작될 거라는 희망만은 밤바다의 등대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희망은 이사 온 첫날, 날벌레에 의해 박살이 났다. 벌레의 종류가 많은 것은 둘째치고, 그 어마어마한 양에 그는 혀를 내둘렀다. 방충망을 했는데도 벌레들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침입했다. 술잔에도 반찬에도 국그릇에도 고작 하루를 산 목숨의 잔해가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아침이면 마당과 현관은 물론이고 방방마다 날벌레의 시체가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새벽 4시, 그는 요란한 경운기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경운기 소음은 30분이 지나도록 멀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잠옷만 걸친 채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 경운기가 멈춰서 있었다. 시동이 켜진 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가만 보니 황씨네 경운기였다. 잠옷 바람으로 황씨네로 달려갔다. 몇 번 문을 두드렸지만 전날 죽도록 두드려 맞은 검둥이만 낑낑거릴 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황씨가 나타난 것은 해가 중천에 솟은 뒤였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마당을 서성거리던 그가 황씨를 불러 세웠다.

“새벽부터 남의 집 앞에 경운기 시동을 켜놓으면 어떡합니까?"
“집에 두고 온 게 있어서 들렀다 깜빡 잠이 든 걸 어쩌라고?"

똥 싼 놈이 성낸다고 되레 큰소리였다. 비위 좀 상했다고 잠을 안 잤는지 혹은 난생처음 부지런을 떨며 일어났는지, 아무튼 새벽 댓바람에 몸을 일으켜 남의 집 앞에 경운기 시동을 걸어두는 황씨의 심리를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묘한 공포를 불러오는 법이다. 그는 황씨의 말을 받아치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경운기 소리가 또다시 그의 잠을 깨웠다. 신새벽의 신경전은 일주일이나 계속되었다. 견디다못한 그가 일주일 만에 짐을 꾸려 떠나지 않았다면 몇 달이고 계속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원생활은 그만의 꿈이 아니었다. 천생 여자인 아내는 반질반질한 장독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장독대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 땅을 계약한 날 아내는 자기가 손수 가꾼 무농약 콩으로 메주를 쑤고, 그 메주로 고추장 된장을 담가 친구들에게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꿈을 꾸었고, 몇 시간 뒤에는 그걸 돈벌이 삼아도 쏠쏠하겠다, 가당찮은 사업계획까지 완성했었다. 막내만 대학에 입학하면 자기도 아예 시골로 옮기겠다던 아내는 이장이 빌려준 텃밭을 일구던 첫날, 한 시간 만에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비명을 선보인 후 두 손 두발들고 말았다. '생명을 품은 땅'이라는 표현은 상징이 아니었던 것이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지렁이 외에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평생 본 적도 없는 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땅이 품은 것은 추상의 생명이 아니라 실체의 생명이었다. 이름 모를 생명들의 습격 앞에서 아내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역시 자기처럼 항복했다고 생각한 아내는 집 팔 생각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나 그는 1년 가까이 원형탈모를 앓아가며 완성한 집을 쉽사리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고작 황씨 따위에게 질 수 없다는 묘한 자존심도 한몫 했다.

한 달 만에 그가 돌아왔을 때, 장미 울타리가 뿌리째 뽑혀 아무 데나 던져져 있었다. 말없이 참고 지나기에는 분이 삭혀지질 않았다. 그는 또다시 맥주 몇 병을 들고 황씨네를 찾아갔다. 황씨 부자는 보이지 않았고, 함안댁이 마루에 앉아 눈물을 찍고 있었다. 함안댁은 그를 보자 눈물을 뚝 그치더니 다짜고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작가 선생, 우리 아들 좀 살려줘. 작가 선생은 대학도 나왔으니 판검사도 잘 알 것 아녀. 한 마을 사람이 감옥에 가게 생겼는데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어서야 쓰겠는가."

애끓는 모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는 변호사를 꼬드겨 무료변론을 맡긴 뒤, 동네 사람들과 함께 탄원서를 작성했다. 경찰과 승강이를 하던 끝에 조준해서 쏜 터라 평소 품행이 방정했다든가 하는 따위의 말은 통할 리 없었다. 변호사의 충고대로 그는 황씨가 평소 감정 조절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늙은 부모와 어린 딸 둘을 부양하고 있으니 정상을 참작해 달라는 내용으로 탄원서를 작성했다. 덕분에 교도소에 수감되는 대신 보호치료를 받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황씨의 교도소 수감을 막기 위해 그는 한 달 가까이 할 일도 젖혀둔 채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허락도 없이 남의 집 담장을 없앤 인간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울화가 치밀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선행이 황씨네와의 불화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쥐꼬리보다는 굵직한 희망도 없지 않았다. 그의 희망은 황씨가 집으로 돌아온 바로 그날 막을 내렸다. 술에 만취한 황씨가 찾아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자기를 정신병자로 만들었냐며 한바탕 소동을 피웠던 것이다. 물에빠진 놈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란다는 옛말도 그의 심정을 대변하기에는 부족했다. 전원생활이고 뭐고 오만 정이 떨어졌다. 그날 밤 그는 다시 집을 떠났다. 집을 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집은 팔리지 않았다. 두엇 보러 온 사람이 있었지만 황씨 부자가 이 집 사려거든 자기네 땅을 도로 물려야 하고, 그러려면 집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전원생활의 꿈은 팔아치울 수도 살아낼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 꼴이 되고 말았다.

"뭘 만드는데요?" "아, 개를 키워볼까 해서." 황씨는 나이도 어린 게 여차하면 말씀을 잘라먹는다. 하지만 지금은 반말이 문제가 아니다. 마을에서 서너 사람 개를 끼워본 모양이지만 돈 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골서도 보신탕을 덜 먹는다. 개 사육이 사양업종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그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건 번번이 돈 까먹는 짓만 골라 하는 황씨가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불길한 예감 탓이다.

"개를요?" 최대한 조심스레 그는 한마디 덧붙인다. 황씨 기분을 건드렸다가는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개 키울 만한 땅이 어디 있나 보죠?”
“내가 땅이 어딨어? 집에서 키우는 거지."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황씨 집을 그는 곁눈질로 살펴본다. 개장을 둘 곳이라고는, 황씨에게는 이미 자기 집일지도 모르는 그의 집 뒤안뿐이다. 서재 통유리창 바로 앞에 개장이 들어선다는 얘기다. 소음을 막을 길 없듯 개 사육 또한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이건 소음 이상이다. 시도 때도 없는 소음에 악취를 동반할 게 분명하다.

“몇 마리나 키울 생각인데요?" 댓 마리라면 어떻게든 참아보리라. 그는 벌써부터 각오를 다진다.
“대량생산을 해야 돈도 대량으로 들어올 것 아뇨?"
"대량생산이라면………." “한 100마리는 키워야 수지타산이 맞지."

100마리 개가 무시로 짖어댄다. 눈앞이 노래진다. 내 몸 괴로운 것도 괴로운 것이지만 집 팔 길도 더욱 요원하다. 뒷집에서 개를 키우면 황씨가 굳이 어깃장을 놓지 않아도 이 집을 살 작자가 나설 리 없다.

저녁 시간도 되기 전에 그는 일찌감치 이장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마침 이장은 수돗가에서 발을 씻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서 개를 키워도 됩니까?" "왜? 황가놈이 개를 키우겠다? "

수돗가에서 상추를 씻던 이장 마누라가 냉큼 끼어든다.“아유, 동네 한복판에서 개를 키우면 어떡해. 시끄러운 것도 시끄러운 거지만 여름이면 파리가 득시글거릴 텐데…….” 파리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첩첩산중이다. 이장 마누라도그의 편이 되어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 집 사정이야 그도 안다. 황씨가 보호치료를 받고 돌아온 직후 쌍둥이 딸 중의 하나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른 딸 하나는 갈비뼈가 부러져 간을 찌르는 중상을 입고 다섯 달이나 병원신세를 졌다. 그 와중에 손녀 잃은 함안댁이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떴고 졸지에 마누라 잃고 손녀 잃은 황씨 아버지는 날이면 날마다 술에 젖어 살았다. 돌볼 이 없는 손녀는 퇴원한 후 시설로 보내졌다. 그가 이사 온 3년 사이 황씨 집을 찾아온 운명은 가혹하다 해도 이토록 가혹할까 싶을 정도였다. 측은한 마음에 든 적도 않았다. 그리다 가혹한 운명에 한풀이라도 하듯 그를 향해 쏟아지는 행패를 감당하다 보면 측은 지심은 어느세 분노로 변하곤 했다.

"작가 선생이 이해해야지 어쩌겠어. 술집 색시긴 해도 황가놈이 새장가 들어 이제 살아보겠다는데 그걸 어찌 막겠나. 생각하면 안됐잖아, 황가놈이 가진 것이라곤 달랑 봉알 두 쪽 뿐이야."
“집 있잖아요.”
황씨네 집은 3000평 남짓 되었다. 그가 이사 온 후 땅값이 제법 뛰었으니 적어도 1억 5000은 넘게 받을 터였다. 집을 팔아 읍내에 작은 방이라도 전세연얻고 남은 돈으로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싶었다. 황씨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 집 팔린 게 언젠데."

체면이고 뭐고 땅바닥에 내던진 3년간의 전쟁이 있지도 않은 것에 목숨을 건 헛짓이었다니 말문이 막힌다. 신기루로 비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사막의 표류자라도 된 느낌이다. 남의 땅에 목숨 건 그 속내를 그는 도무지 짐작할 길이 없다.

"이 동네 자기 집에서 사는 사람 몇 안 돼. 땅값 뛰기 전에 서울 사람들이 우 몰려와 몇 푼 더 얹어주니까 죄 팔아치웠지. 자기 집 팔아먹고 지금 다 공짜로 사는 거야. 이 동네만 그런 것도 아니야. 서울 근교 다 그런걸.”

그는 안주도 없이 연거푸 술잔을 비운다. 남의 땅 지키려고 자기를 원수 삼은 황씨도 그걸 알면서 지금까지 입꾹 다문 동네 사람들도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엄연한 불륜을 해결할 생각도 없이 수십 년 이어온 당사자들이나 동네 사람들 또한 이해되지 않기로는 마찬가지다.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작자들이다.

"서로 사정 봐주며 살아야지 안 그래, 작가 선생?"

선명한 초승달이 밤길을 밝힌다. 어둡지만 눈여겨보면 보일 건 다 보인다. 그는 비틀거리며 골목길을 걷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쉬일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어쩐지 풀 죽은 어린아이의 노랫가락이 자박자박 골목길을 적신다. 와장창 그릇 깨지는 소리에 노랫가락이 뚝 그친다. 야, 이 개 같은 년아. 술 갖고 와! 보나마나 황씨다. 개집이 다 지어지면 술 대신 개에게라도 마음을 붙일 수 있을까? 비 젖은 개 냄새와 짬밥 썩는 악취와 들끓는 파리 떼가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습격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눈치를 보듯 속삭이는 노랫가락이 다시 이어진다. 초승달이 말간 눈으로 마을을 굽어본다. 마을은 꿈인 듯 달빛에 젖어 있다. 전원의 밤이 깊어간다.

< 4 >

나의 아름다운 날들


욕실 창으로 햇살이 소담스럽게 쏟아진다. 늘 보는 햇살이건만 금혼식 아침이라 그런지 오늘의 햇살은 유난히 맑고 밝다. 김 여사의 한평생도 저 햇살과 같았다. 역시 어른들 말씀 하나 그른 것 없다. 처음에 어머니는 저 하나 잘난 남편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무남독녀 외딸을 그런 자리로 보낼 수 없다며 눈물바람이던 어머니가 용하다는 사주쟁이를 만나고 오더니 단박에 마음이 바뀌었다. 남편과 김 여사는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으로 부귀영화가 문 안에 가득하고 자식 덕에 명예 덕까지 있어 최상의 궁합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사주가 맞는 것인지 시집와 오늘까지 궂은 일 한 번 겪지 않았다. 하다못해 무슨 날, 비 한번 내리는 법이 없었다. 오늘은 그 축복받은 인생의 마무리와도 같은 날이다. 그러니 온다던 비도 주춤할밖에.

흰색 상의에 검정 스커트를 입은 채 김 여사는 전신 거울에 제 모습을 두루 비춰본다. 둘째 낳고 한 번 허리를 늘리긴 했으나 아직도 입을 만하다. 거울에 비친 김 여사의 뒤태는 허리가 제법 잘록한 게 일흔의 나이가 무색하다. 모두들 감탄하는 이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김 여사는 서른 중반 넘어서부터 밥을 반공기로 줄이고 하루 두 시간씩 헬스클럽에서 땀을 뺐으며, 단것이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몸이며 성정이며, 모르는 사람들은 타고난 거라지만 그건 게으른 자들의 변명이다. 김 여사의 친정어머니는 보통의 어머니들처럼 후덕한 절구통 몸매였다. 타고난 대로 살아야 한다면 김 이사 또한 어머니 닮은 절구통 몸매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타고난 것에 굴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제 노력으로 칠순답지 않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채 몸매를 감상하는 김 여사의 입가에 방긋 웃음이 피어난다. 인생은 참으로 정직하다. 선도 악함도, 게으름도 부지런도 정신에 육신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인생 탓하는 자들을 김 여사는 신뢰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그랬고 남편도 그렇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저만 열심히 살면 보잘것없는 상고 출신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다. 김 여사 남편도 홀어머나에 동생만 줄줄이 일곱이나 딸린 몰락한 양반 출신이다. 남편 처음 본 날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버지 소개로 상견례한 게 첫 만남이었고, 아버지 소개니 결혼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렇게 순진했다. 그날 밤 김 여사는 어머니 치마폭에 엎어져 밤새 울었다. 키는 작고 뼈는 두툼하고, 얼굴은 큼지막한 박덩이 같은 데다 궁기가 어찌나 잘잘 흐르는 지. 양반다리 하고 많은 발이 상 밑으로 살짝 보이는데, 제 얼굴만 한 구멍이 다섯 개나 숭숭 뚫려 있었다. 그 남자와 한 이불 덮고 평생 살아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나 삼강오륜을 배운 게 있어 부모 말 거역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김 여자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게 부모 말 그대로 따른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살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궁기가 사라졌고, 자리 높아질수록 커다란 박덩이 같던 얼굴은 박덩이만 한 복덩이로 보였다. 가난하게 자란 남편은 지금도 수제비라면 치를 띤다. 어려서 밥 대신 하도 먹은 탓이다. 그래도 코피 쏟으며 공부해서 고시 합격하고 남부럽지 않게 높은 자리에 올랐다. 요즘 대학등록금이 비싸다고 반값으로 낮추라고 난리들인 모양인데 대학등록금이 언제 만만했던 적이 있나. 예나 지금이나 서울대만 가보라지 군수며 농협장이며 지방 유지들이 서로 등록금 대주겠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김 여사 남편도 그랬다. 남편이 서울대 법대에 수석 합격했을 때 동향 출신의 아버지는 고위 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고향 출신 인재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후원한 덕에 남편은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코피 쏟아가며 최선도 다지 않은 것들이 걸핏하면 부모 탓이요 여당 탓이요. 대통령 탓이요 세상 탓이다.

결혼식을 반년 앞두고 아버지가 쫓겨났을 때, 남편 친구 중에는 그런 집안과 연을 맺어 어쩌겠냐며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겉으로는 자네 같은 인재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끌어야 합네 어쩝네 허울 좋은 소리를 했지만 그들의 속내야 불 보듯 환하다. 어리석게 뭣하러 썩은 동아줄 잡고 있냐는 것일 터였다. 그 즈음 연락이 뜸하고 어쩌다 만나도 얼굴빛이 어두웠던 걸 보면 남편도 속으로는 고민깨나 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결혼식이 미뤄진 건 남편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해직과 수감 등으로 집안이 어수선한 탓이었다. 여자 쪽 사정으로 결혼이 연기되었으니 그 틈에 유야무야 없던 일로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듬해 유월 아버지가 풀려나자 자기가 다시 날을 잡았다. 인간으로서의 의리를 지켜 결혼해준 남편이 김 여사는 고맙고 존경스럽다. 남편의 의리가 보람이 있어 아버지는 불과 몇 년 후 더 높은 자리에 올랐다. 계산속 빨라 줄 잘 서는 사람, 처가 덕에 승승장구한 사람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지만 50년 살 맞대고 산 김 여사보다 남편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 남편은 계산속은커녕 썩은 동아줄도 버리지 못하는 의리의 사나이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 의지의 한국인이다. 남편의 성공은 그 결과였을 뿐이다.

“거, 어제 입은 양복 안주머니에 뭐가 있을 텐데… 좀 꺼내서 정리해놔요.”

아직 눈도 다 뜨지 못한 남편이 비틀비틀 욕실로 향하며 중얼거린다. 공직에서 완전히 은퇴한 후에도 남편은 이런저런 일로 공사다망하다. 어제도 현직 의원이며 장차관이며 종일 전화를 붙잡고 있더니 오후에 나가서는 술이 곤죽이 된 채 10시 다되어 들어왔다. 장관 경질이 어쩌고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걸 보면 아마 누구 하나 그 후임으로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다 늙어 뒷방마님이나 해야 할 나이에도 이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게 바로 김 여사의 남편이다.

김 여사는 세탁소에 맡기려고 내놓았던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어제 대충 주머니를 확인하고 내놓은 건데 뭐가 있다는 걸까? 안주머니 깊숙이 뭐가 만져진다. 자그만 상자다. 김여사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이럴 줄 알았다. 이런 중요한 날을 그냥 지나갈 남편이 아니다. 상자 안에 담긴 것은 다이아. 그것도 세상에 몇 없다는 태양을 품은 듯 투명하게 붉은 레드 다이아몬드다. 반지는 맞춘 듯 손가락에 꼭 맞는다. 이 반지를 얼마나 낄 수 있을까? 10년 혹은 20년? 김 여사는 가도 그들 부부의 행복했던 삶이 자식들을 통해 물려지듯 이 반지도 며느리나 손녀를 통해 물려질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한 세상 잘 살고 갔다는 증표다. 김 여사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상자 안에 담긴 카드를 입는다.

"지난 50년 내 아내로 살아주어 정말 고맙소, 사랑하오. 죽어서도 당신의 남편으로 살았으면 좋겠소."

맑은 눈물이 또르르 주름진 김 여사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띵동, 문자가 왔다는 신호음이 울린다. 기분 좋은 눈물을 훔치고 김 여사는 액정화면을 들여다본다.

"금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정말정말 사랑해요."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는 열일곱 살 된 손녀다. 사랑한다는 말 옆에 하트 세 개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할머니. 뤼비통에서 넘넘 예쁜 신상이 나와서 쫌 굵있어. 미안! 똑같은 거 하나 더 사서 할머니한테도 보냈으니까 예쁘게 듣고 다니세염."

이쁜 것, 제 맘대로 쓰라고 선물한 신용카드인데도 쓸 때마다 양해를 구하는 곱고 반듯하게 자란 손녀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띵동 띵동, 문자가 연이어 들어온다. 이것들이 다 김 여사 인생의 복덩이다.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들이 보낸 축하 메시지를 김 여사는 꼼꼼히 챙겨 읽는다.

"어머님, 점심 전에 스파 가요. 아버님이랑 아범들까지 다 예약해놨어요. 아침도 호텔에서 간단히 해결하시죠 뭐, 8시까지 모시러 갈게요. 오늘은 스파부터 점심까지 제가 쏴요, 어머님. 맏이잖아요."

깍쟁이인 줄 알았더니 큰며느리 통이 제법 크다. 제 것 남의 것 가리는 건 분명해도 쓸 때는 쓸 줄 아는 큰애의 마음이 기특하여 절로 입이 벙글어진다. 이래서 집안이 잘되려면 맏며느리를 잘 들여야 한다. 큰며느리의 문자 한 통에 김 여사의 고민이 말끔히 사라진다. 김 여사는 아직 잔금을 치르지 않은 15층짜리 빌딩의 등기 지분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세 아들 각기 다섯 층씩 배분할까 싶었으나 층마다 가격이 달라 공정하게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아이들 눈치를 보며 고민중이었는데, 큰며느리라면 김 여사 부부 가고 난 뒤에도 씀씀이 크게 동생들 잘 품고 살아주리라. 큰아들 명의로 하자 결정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띵동, 문자를 읽는 와중에도 계속 문자가 들어온다. 예쁜 것들, 문자가 들어오는 만큼 김 여사의 마음도 넉넉해진다. 이상도 하지 넘치게 행복한데 자꾸 목이 멘다. 마음 가득 쌓인 행복이 넘실넘실 몸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 같다. 남편이 머리를 털며 욕실을 나선다. 눈물이 그렁그렁, 김 여사가 와락 남편의 목에 매달린다. 가릴 것 없이 담뿍 쏟아진 초여름의 싱싱한 햇살이 김 여사의 손에 끼워진 레드 다이아몬드에 부딪고 수천수만 갈래로 부서진다. 레드 다이아 반지가 태양처럼 빛을 뿜어내는 듯하다. 막 샤워 끝낸 남편의 몸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 때문에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두 사람 위로 어룽거린다. 눈부시게 찬란한 아침이다. 눈부시게 찬란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