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용 설명서
잘놀다 가자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정답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면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인물이 월등하게 좋고, 남다르게 건강하며, 두뇌가 좋아 성적이 우수하고, 집안이 좋으며 돈은 원 없이 쓸 만큼 많고, 배우자는 오직 나만을 섬기며, 자녀는 인물 좋고 두뇌 좋고 효성이 지극하고 남다른 재능을 갖추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명답을 찾아야 한다. 명답은 ‘인생은 잘 놀다 가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것이다.
딱 한 번밖에 못 살기에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쓰지 말고 내 멋에 겨워 행복하면 그만이다. 인생, 딱 한 번 살기에 정말 잘 놀다 가야 한다.
원한은 강물에 띄우고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흐르는 강물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원수의 시체가 떠오른다.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기다리면 세상의 이치에 따라 자연스레 그 잘못이 응징 된다는 뜻일 수도 있고, 원수를 갚기 위해 실력을 쌓으면 상대가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원한을 강물에 띄워 보내면 절로 원수가 사라지고 내게 참 자유가 생긴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내 몸을 괴롭힌 독극물
“화가 독이다"라는 말이 있다. ‘화내는 것은 독극물을 삼키는 것과 같다’라고 할 수 있다. ‘화는 내 영혼의 화상과 같다’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이 화를 냈을 때 나오는 침을 모아 검사했더니 그 독성이 독사의 독만큼이나 치명적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어머니가 몹시 화를 낸 뒤에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아기가 설사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화를 냈는가. 내가 낸 화를 생각하면 나는 이미 독살되었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살아있는 것은 화를 낸 횟수보다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환히 웃은 횟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리라.
외모보다 개성
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개성을 최대한 계발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개성이란 그 사람만의 독특성을 일컫는다.
캐리커처 화가는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을 그리는 게 힘들뿐 아니라 만족도가 낮다고 했다. 반듯한 얼굴은 잘 그려도 그냥 잘 그린 그림이고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좀 못생긴 편에 속하는 사람을 그리는 것은 편할뿐 아니라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얼굴의 특징을 묘사하기가 좋은 데다 개성을 도드라지게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키 쿤켈은 『본능의 경제학』에서 인간은 완벽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과 마주치면 원초적 반감이 생겨 피하거나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심리기제가 있기 때문에 고위직으로 갈수록 평범하거나 덜 매력적인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러니까 뭔가 성취하려면 외모가 아니라 자기의 개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사람의 신묘한 힘
초등학교 때 개구쟁이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 외벽에 낙서를 하다 경비 아저씨에게 들켜 정신없이 도망친 적이 있다. 잡히면 꿀밤도 맞고 이튿날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회초리로 맞아야 했으니 필사적으로 뛰어야만 했다. 아무리 뛰어도 어른을 당할 재주가 없었고, 결국 높고 높은 담벼락과 맞닥뜨려 막다른 곳에 갇힌 신세가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그 높은 담장을 펄쩍 뛰어올라 잽싸게 탈출했다. 평소에는 무등을 타고도 넘지 못하던 높이였다.
호랑이인 줄 알고 활을 쏘았는데 다가가 보니 바위에 화살깃까지 박혀있더라는 사석음우(射石飮羽)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신묘한 힘이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언제든 근심, 걱정, 좌절, 고통을 향해 시위를 한껏 당겨야 한다.
내 어머니였다면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미워하는 사람이나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나 내게 욕하는 사람을 전생에 내 어머니였다고 생각해보라”
밉고 싫은 사람을 어찌 내 어머니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 정도가 되려면 크게 깨달았거나 높은 경지의 지혜를 터득했거나 덕망 높은 성직자 수준에 이르러야 할 것 같았다. 속세에 발 딛고 세파에 휩쓸려 사는 사람이 무슨 재주로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랴.
어느 날, 속상하고 견디기 어렵고 고통스러워 ‘에라 장난으로 한번 해보자’라며 밉고 싫은 사람을 전생에 내 어머니였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랬더니 내 안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를 속이고 마음 상하게 하고 괴롭히고 아프게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받고 받아 넘치고 넘친 사랑도 마구 포개졌다. 생각을 슬쩍 바꾸니 내 마음속의 악마가 사라지고 내가 가볍고 편안해졌다.
한 발짝 더
집안의 몰락, 굶주림, 전학. 대학입시 네 번 실패.
또 한 번 집안의 몰락, 휴학, 소설 응모 6년 연속 낙방…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겨우겨우 살아있었던 내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서늘할 때가 있다.
그런 슬픔 좌절, 실패, 고통, 절망이 한 땀 한 땀 꿰어져 나를 성장시켰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의 아픔이 소설 쓰기에는 참 소중한 원자재였다.
누구라도 인생에는 갖가지 시련이 있다. 지나고 보면 그것이 연습이란 걸 알게 된다. 두려워 말고 통과해야 한다. 훗날 그것들이 큰 재산이고 근사한 추억이 된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내 인생을 향해 한 발짝 더 내디뎌야한다.
마음 처방
“분뇨는 방에 두면 오물, 밭에 두면 거름이다” 스승의 한 말씀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서 마음이 아프면 처방을 받지 않고 마음을 더 닦달하기 십상이다.
마음의 약은 잊어버리는 것이고 마음의 치료법은 도려내는 것이다. 지옥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통과해야 하는 곳이다. 내 마음속의 지옥은 내가 만든 것이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나 자신일 뿐이다.
잠깐의 투자
하루에 5분 정도만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명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꽤 좋은 마음 가꾸기가 된다.
10년쯤 후 내 얼굴이 지금보다
훨씬 품격이 있으려면
그 정도의 투자는 해야 한다.
15명의 스승님
기분 상하게 하는 사건 기사를 보다가 살맛나는 기사를 읽으면 온종일 기분이 좋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초등학교 4학년인 열 살짜리 소년 셀린카는 뇌종양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아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 몸이 좋아지자 셀린카는 모처럼 학교에 갔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소년은 깜짝 놀랐다, 같은 반 친구 15명이 모두 빡빡머리였기 때문이다. 반 친구들이 모두 이발소에 가서 삭발을 한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뭔가로 도와주고 싶었다”라는 친구들의 말은 가슴을 따뜻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가슴앓이를 하거나 아픈 친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15명의 소년들은 적어도 며칠 동안 나의 스승이었다.
사랑의 신호
금슬이 좋던 노부부가 있었는데, 부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수상태가 되었다. 남편이 정성껏 간병을 해도 차도가 없어 애를 태우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남편은 아내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꼭꼭꼭 세 번을 눌렀다. 아내가 미세한 반응을 보였다. 남편은 그날부터 수시로 아내의 손을 잡고 꼭꼭꼭 세 번 눌렀고, 며칠 만에 아내도 꼭꼭 두 번을 아주 가볍게 눌렀다.
그렇게 날마다 손을 잡고 손가락으로 꼭꼭꼭 누르기를 반복하자 몇 달 만에 아내가 손가락으 로 누르는 힘이 세어졌다. 몇 달 후 아내는 눈을 떴고 더듬더듬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스스로 미음을 먹더니, 결국 언제 뇌졸중을 앓았더냐 싶게 회복했다.
평소에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고 손가락으로 ‘꼭꼭꼭(사랑해)’ 누르면 아내가 ‘꼭꼭(나도)’이라는 신호를 주고받았기에 부인이 건강을 되찾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신호’ 하나쯤은 만들라. 사랑의 신호!
마음이 맞닿아야 인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옷깃은 가슴과 가슴 사이, 바로 흉간에 있다. 그러니까 옷깃이 스치려면 서로 끌어안아야 한다. 지나가다가 그냥 스치는 걸 인연이라고 한 게 아니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아야한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몸이 맞닿는 게 아니라 마음이 맞닿아야 그게 인연이라는 것이다.
마음은 멀리 있어도 맞닿을 수 있고 오래 떨어져있어도 맞닿을 수 있다.
상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인연을 곱게 가꾸는 비결이다.
어여쁜 배짱
70대 후반의 한 할머니가 위암 절제수술과 척추수술을 받고 투병하느라 체중이 많이 줄고 그 바람에 주름살이 잔뜩 생겼다. 불과 1년 반 만에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그런데도 눈빛이 형형하고 운전 솜씨도 좋고 활기찼다. 주치의는 이렇게 빨리 완치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놀라워했다.
본래 암은 완치라 하지 않고 ‘관해(寛解)’라고 한다. 암세포 활동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비법이 있느나고 물었더니 암이란 글자가 떠오르고 걱정이 차오르면 암세포에게 “얘들아 내가 죽으면 너희들도 죽잖아 우리 같이 살자” 하고 말 했다고 한다.
암세포인들 저 어여쁜 배짱 앞에 어찌하겠는가.
확대해보기
한 잡지사에서 보낸 편지에서 참 기기묘묘한 모양을 가진 갖가지 보석 사진을 보고 내가 모르는 보석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 설명을 읽어보니 그것은 보석이 아니라 모래를 250배 확대한 사진이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우리 마음에 드는 것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눈에 보이고 내 마음에 드는 것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사람의 마음을 1백 배 정도 확대해보면 세상에 싫어할 사람도 미워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 천하에 가득 넘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나를 확대해서 남을 기쁘게 하고 남을 확대해서 내 보석으로 삼는 사림이 현자이다.
건망증
건망증은 세상이 복잡하고 바쁠수록 심해진다고 한다. 건망증 때문에 불편을 겪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건망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을 바꾸면 건망증도 데리고 살 만하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속상하고 불쾌하고 견디기 어렵고 화가 잘 삭지 않을 때가 많다. 만약 그것들이 지워지지 않아 가슴에 차곡차곡 묻어두고 산다면 어떨까.
그건 마음의 쓰레기인데 가지고 있으면 악취가 나기 마련이다. 쓰레기는 버려야 한다. 그러나 생각으로는 잘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잘 버려지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우리 뇌가 마음의 쓰레기를 버리기 어려운 걸 알고 건망증이란 걸 생성해낸 것 같다.
건망증이 잦으면 ‘에라, 내가 버려야 할 게 많은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그냥 웃어보자
의학적으로 사람의 몸은 매일 3천 개에서 5천 개 정도의 암세포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암 환자가 되지는 않는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면역세포는 암세포를 발견하면 퍼포린 같은 단백질을 뿜어 암세포를 터트려 죽인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은 이 면역세포를 50억 개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웃는 입 모양만 해도 부교감 신경이 자극을 받아 면역세포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야 웃을 수 있지만 세포는 웃는 척만 해도 속아 넘어간다니 거울을 보고 괜히 웃어보는 여유쯤은 가져야 한다.
웃기만 해도 암세포가 사라진다니 지금 그냥 웃어보자.
받쳐주는 쇳덩이
옛 선비나 양반들은 이름 대신 호(號)를 불러 상대의 품격을 높여주거나 예를 갖추었다.
글쟁이 노릇을 하며 여러 차례 호를 지어 받았다. 밝은 마음의 뜻인 청심(淸心), 해가 떠오르는 산의 뜻인 동산(東山), 공주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자랐기에 논산과 공주에서 한 글자씩 따서 논주(論州), 고요한 돌처럼 정진하라는 석성(石靜), 풀로 지은 집에 살듯. 초연하라는 초당(草堂).......
해맑게 살 자신이 없고, 세상을 빛낼 재주가 없고, 나랏일을 논할 능력이 없고, 치열하게 정진할 재간이 없고, 세상만사 초연할 담대함이 없기에 여태 나는 호를 사용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근자에 나를 평생 지켜본 신부님이 내 삶에 걸맞다며 ‘모루’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대장간에서 불에 달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를 우리말로 모루라고 한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살라는 뜨거운 가르침으로 알고 내 호를 ‘모루’로 결정했다. 조금이라도 남을 기쁘게 하자는 생각으로 감히 받아 안았다.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기쁨
젊은 시절부터 내게 풀리지 않는 가슴앓이 같은 숙제가 있었다.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 했는데, 이(夷)자가 오랑캐 ‘이’ 자였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은 오랑캐이고 나는 오랑캐일까.
역사소설 『대발해』를 쓰면서 그 이(夷) 자가 본디 ‘군자(君子) 이’자라는 걸 알고 전율할 만큼 기뻤다.
『논어』에는 “나는 늙어서 예악을 즐기는 군자의 나라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라는 공자의 말이 담겨있다.
옛날 옥편에서 ‘이(夷)’자를 찾아보면 분명하게 군자라고 기록되어있다.
‘夷’의 모양은 큰 활을 뜻하고, 큰 활을 잘 쏘는 사람이 군자이다. 그 까닭은 멀리 있는 짐승과 큰 짐승을 잡아 백성을 잘 먹이고 먼 곳의 적을 내쫓아 백성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황홀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더니 이 땅에 살고 있는 게 기쁨이 되었다.
너그러운 여유
시골의 한적한 지방도로변에 “맛없으면 고발하세요”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은 음식점을 보았다. 밥 먹을 때가 되었기에 속는 셈치고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정말 고발해도 되냐니까 맛없으면 음식 값도 내지 말란다. 음식은 정갈하고 맛깔스러웠고, 맛보기로 이것저것 얹어주기도 했다. 주인 내외의 친절과 상냥함만으로도 밥값은 아깝지 않았고 오히려 싸다고 느낄 정도였다.
평생 친구처럼 지내는 신부님이 사제관 마당에 묶여있는 수캐를 풀어놓았더니 동네를 싸돌아다니면서 암캐들과 연애를 했다. 참다못한 마을 부녀자 대표를 비롯한 목청 큰 사람들이 사제관을 찾아와 항의를 했다. 신부님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그들을 맞아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나만 수절하면 됐지 개마저 수절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벽이 허물어질 듯이 웃으며 돌아갔다.
이런 여유로움이 우리 땅에 가득했으면 참 좋겠다.
마음속의 악당
동화작가가 정성으로 동화책을 출간해도 잘 안 팔리자 작가의 자녀가 “아빠의 동화에는 악당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라고 했다는 소리를 듣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드라마에 악당이 없으면 재미가 덜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3대 고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을 떠올리면 더욱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춘향전에서 변학도가 없으면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흥부전에서 놀부가 없다면 책을 덮을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심청전에서 뺑덕어멈이 없다면 싱거웠을 것이다.
인간 세상에 악당이 의외로 많다. 악당 때문에 선량하고 좋은 사람들이 더욱 빛나는지 모른다.
사람 몸속에도 악당이 많다. 병균 때문에 우리 몸의 정상세포들이 더욱 힘이 세지는 것이리라.
내 마음속에도 악당이 많다. 그런데 마음속의 악당은 처단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악당을 ‘순둥이’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살살 달래면 제풀에 순둥이가 된다.
지배당하지 말자
에리히 프롬의 『소외론』을 읽다가 내 가슴에 탁 와닿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은 왜 자신이 만든 돈, 명예, 권력, 집, 자동차, 연인, 부부, 자녀, 명품 등에 지배를 받거나 끌려다니는가?”
이 글을 읽고 난 부끄러움에 젖었다. 자신이 만든 창조물에 자신이 지배를 받는 이 어리석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욕심’ 때문이다. 무엇을 갖지 말자는 게 아니다. 더 가지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진 걸 고마워하고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하고 지금 내 삶을 기뻐하면 인간이 만든 창조물에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런 사람이 더 갖게 되고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해 지는 것이다.
지옥은 통과하는 곳
지옥은 죽은 뒤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도 존재한다. 근심·걱정하기, 남과 비교해서 주눅 들기, 세상을 두려워하기, 스스로 못났다고 느끼는 열등감, 곤경에 머무는 미련, 희망을 포기하는 것 모두가 지옥이다.
하지만 지옥은 머무는 곳이 아니다. 통과하는 곳이다. 그 모든 것은 지나간다.
김홍신 / ‘하루 사용 설명서’중에서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과 망각 (0) | 2019.03.06 |
---|---|
평생소원이 누룽지 (0) | 2019.03.05 |
보통의 존재 (0) | 2019.02.11 |
방귀의 행복! 건강이 최고예요 (0) | 2019.02.09 |
구부러진 길을 지나 아스라한 곳으로 (0) | 2019.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