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의 행복! 건강이 최고예요
척수염(脊髓炎·myelitis)은 척수의 염증을 동반하는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뇌와 사지를 잇는 중추신경계 기능이 망가진다.
발가락을 꿈틀거리고, 새벽녘 잠결에 이불을 슬쩍 걷어차고, 엉덩이를 옆으로 빼고 방귀를 뀌고, 다시 두 다리를 쭉 펴서 기지개를 켜는 정도의 동작들은 많은 생각과 계산 없이 이루어지는 당연한 몸의 움직임들이다. 오줌이 마려우면 누고, 배에 가스가 차면 방귀로 배출하면 된다.
특히 방귀를 뀌는 경우,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자유의 희열을 느끼면서 큰 소리와 메아리를 즐기며 그 공간을 지배할 때엔 정말 시원하다.
때로는 격식과 예의, 혹은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을 피해 항문근육을 조절하는 온몸의 세포와 조직들을 조정해 익명의 악플러들처럼 몰래 ‘쉬쉬’ 하면서 가스를 내보내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연기 그리고 혹시 억울하게 방귀 누명을 쓰는 제3자가 생겼을 때 모르는 척하는 뻔뻔함이다.
친한 친구들과 가족들 앞에서 방귀는 웃음가스로도 유용하게 쓰인다. 큰 방귀는 소리, 길이, 템포에 따라 각각 다른 웃음을 자아내며, 때로는 소리 없이 퍼지는 냄새 지독한 방귀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짓는 미소’라는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을 선물하기도 한다.
(...생략...)
찡그린 미소를 유발하는 방귀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방귀가 주는 행복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싶다. 만약 방귀를 자유롭게 뀔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명심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까지도 척수염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내게 척수염은 ‘방귀의 행복’이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줬다.
타이거JK 뮤지션(2019.2.8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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