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구부러진 길을 지나 아스라한 곳으로

송담(松潭) 2019. 2. 8. 11:18

 

구부러진 길을 지나 아스라한 곳으로

 

 

 동양의 이상향, 무릉도원을 묘사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진나라가 막 시작됐을 무렵 무릉의 어부가 배를 저어 강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갑자기 복숭아 숲이 나타나더니 양쪽 언덕 사이로 수백 보 거리를 더 저어가도 다른 나무는 하나 없이 신선한 향기가 가득하고 아름다운 꽃잎이 떨어져 흩날렸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여기고 그 숲의 끝까지 가보았다. 숲이 끝나는 곳에 수원(水源)이 있었고 산이 하나 나왔다.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마치 빛을 내뿜고 있는 듯했다. 어부는 배에서 내려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에 들어갈 때는 겨우 사람 하나가 다닐 만큼 좁았으나 몇 십 걸음을 걸으니 시야가 환하게 트였다."

 

 그렇게 나타난 세상이 바로 너른 땅에는 곡식이 잘 자라고 먹을 것들이 넘치며 모든 이들이 웃으면서 살고 손님에게도 넉넉히 대접하는 낙원이었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비좁고 어두운 동굴을 지나니 나타나더라는 환하고 행복한 세상.

 

 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뒷마당을 본 느낌이 그랬다. 바짝 마른 안마당과 감나무가 있는 옆마당은 그저 그런 보통의 주택인데, 감나무 옆을 돌아서자 하늘이 환하게 열리고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족두리봉부터 보현봉까지 길고 긴 연봉이 스무 평이 안 되는 뒷마당에 다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북한산은 내가 밥 먹으며 쳐다보고 식탁에서 글 쓰며 쳐다보고 주방에서 밥하면서 쳐다보는 우리 집 정원이 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정원철학에서는 차경(借景)이라고, 내 마당만 정원이 아니라 내 마당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내 정원이었다.

 

 북한산 위로는 매일매일 바뀌는 하늘이 너르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이 툭 트인 뒷마당으로 가는 길을 좀 더 신비롭게 만들고 싶었다. 좁은 동굴을 지나니 너른 세계가 나타나더라는 무릉도원처럼 한 사람이 지날 만한 좁은 길을 옆마당에 만들기 시작했다.

 

 감나무가 있는 동편은 찔레 덩굴과 모란으로 이미 꽉 차기 시작했으니 그 맞은편 집에 붙어있는 구역에 원추리와 노루오줌을 옮겼다. 북한산에서 씨를 받아 키운 산초나무와 원주 친구가 준 개쉬땅나무를 벽에 붙여 심었다. 개쉬땅나무는 감나무 쪽으로 휘어져 자라면서 정말 한 사람이 겨우 구부리고 들어가야 할 동굴 입구를 만들어 줬다. 5월이면 찔레꽃이 피고 6월이면 개쉬땅꽃이 피어서 이곳을 지나는 길은 신선한 꽃향기가 가득했다.

 

 중국의 정원 철학에는 곡경동유(曲徑通幽)가 있다. 구부러진 길을 지나 아스라한 곳으로 간다는 뜻으로 차경과 더불어 중국식 조경의 양대 핵심이다. 차경은 먼 곳의 경치를 빌린다는 뜻으로 정원으로 가꾸는 닫힌 공간뿐 아니라 이 정원에서 보이는 열린 공간 전부를 이 정원으로 보는 개념이다. 차경은 멀리 있는 정경이니 당연히 원경이 되고 이 원경이 바로 아스라한 곳이다. 정원을 꾸밀 때 이 아스라한 경치는 그대로 공개하지 않고, 반드시 구불구불하고 빽빽한 숲길을 지나서 비로소 확 트인 곳으로 다가가게끔 꾸미는 것을 곡경통유라고 한다. 구불구불하고 어둑한 곳을 지나 확 트이는 곳으로 나아가니 아스라한 경치가 더욱 극대화된다.

 

 

 컴컴한 동굴을 지나가니 갑자기 밖이 환해지면서 낙원이 나타났더라는 무릉도원 이야기는 우리나라 설화에서는 효자가 겨울에 부모님을 구할 약을 찾으러 다닐 때 똑같이 반복된다. 굴이 어둡고 굴을 지나는 마음이 불안하고 무서울수록, 굴이 끝났을 때 빛은 더 밝고 바깥세상은 더 찬란하다. 이걸 조경으로 살린 것이 바로 곡경통유이다.

 

 곡경통유는 비유적으로는 고난의 경지를 지나서 밝고 환한 세상에 이른다는 가르침이니 서양으로 치면 혹독한 단련으로 금이 생겨난다는 연금술의 비유와 같다.

 

 지난 3년간이 내게는 곡경이었다.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셨고 32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박근혜를 비판한 칼럼을 쓴 후 계속 회사의 압박을 받았고 언론인으로 부당한 압박에는 응할 수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다. 올바르게 살기 위해 밥줄을 놓았다는 사실에 대해 보상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알아주기는 바랐다.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 부모님의 죽음이 너무 아파서 공적인 소외에 대해서는 서운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공적으로는 나아질 기미가 없는 구부러진 길을 계속 걸어가고는 있다.

 

 길은 아스라한 곳으로 이어진다는 곡경통유의 정신과는 달리 현실에서 굽은 길을 지난다고 반드시 아스라하고 시원한 경치가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무릉도원을 노래한 시인 도연명조차 벼슬살이의 비루함이 싫어 시원하게 공직을 박차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말년에는 배가고파서 죽었다.

 

 아이들이 다 잘 자랐고 저축을 꾸준히 했으며 부모님의 유산을 받았고 국민연금제가 있는 이 나라에서 내 삶이 도연명 같을 리는 없다. 현대사회에서 수입이나 명예가 없다는 것은 그 자체보다 무능한 인간이라는 암시가 되어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럴 때 나는 마당을 본다. 구부러진 길은 찔레꽃과 개쉬땅꽃이 가득 핀 그 나름의 비경이다. 구부러진 길은 꼭 아스라한 경치를 보기 위한 길만은 아니고 그대로 얼마나 향기롭고 아름다운가. 이 삶은 돈이나 명예가 없는 대신 참 편안하고 고즈넉하지 않은가.

  

서화숙 / ‘나머지 시간은 놀 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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