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필요한 적절한 온도
(...생략...)
흔히 음식은 ‘불맛’이라고 하는 것처럼,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찬 음식은 차게 먹어야 제 맛이 난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뜨거울 때와 차가울 때가 너무 극명하면 문제가 생겨난다. 분노로 뜨겁다가 냉정함으로 차가워지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소비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다. 요즘 날씨가 추워 보일러를 틀 때 집 안 온도를 늘 일정하게 맞추어 놓는 것이 에너지 손실이 가장 적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마음도 인간관계도 일정하게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때 우리는 에너지 손실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인간관계가 그처럼 적절하게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관계일까? 아마도 오랜 친구와의 우정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정신의학적으로 연애는 스트레스에 해당한다. 일단 연애는 불에 데일 듯이 뜨겁기는 하지만 불안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과연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줄까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연애다.
그러나 오랜 우정에는 그런 스트레스가 없다. 맛으로 치면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맛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그런 친구와의 관계에는 언제 만나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 따라서 편안하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며 우리 힘을 합쳐서 이 곤경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자는 희망을 준다.
즉, 깊은 우정에는 신뢰와 평안함 그리고 희망이 함께한다. 덕분에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일정한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해 나간다. 한마디로 에너지 손실도 가장 적은 관계인 것이다. 물론 그런 우정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나 인간관계에서 무엇보다도 ‘항상심(恒常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 보답이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양창순 | 정신과전문의
(2019.1.16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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