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솔리튜드(solitude)’의 시간, 고독의 시간

송담(松潭) 2018. 9. 16. 04:44

 

‘솔리튜드(solitude)’의 시간, 고독의 시간

 

 

고독한 시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쓰다 가즈미는 그의 저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에서 고독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그 하나는 ‘론리니스(loneliness)'다. 사회와의 관계성이 단절되어 힘들고 어둡고 외로운 ’소극적 고독‘이 그것이다. 나머지 하나가 ’적극적인 고독‘인 ’솔리튜드(solitude)'다. 솔리튜드는 삶에 빛과 자신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면서 쓰다 가즈미는 ‘론리니스’를 어두운 고독이라 하고, ‘솔리튜드’를 밝은 고독이라고 불렀다. 사회적 관계로부터 격리된 외로움을 수반하는 감정이 ‘론리니스’이며, 심신을 재생시키기 위해 본연의 자기다움을 찾고자 하는 긍정적인 고독이 ‘솔리튜드’다.

 

 자기를 응시하려고 해도 자기가 보이지 않을 때, 자기응시는 힘겨운 노동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를 응시한다는 것은 자기안의 텍스트를 응시한다는 것이다. 자기 안의 텍스트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읽고,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냄새 맡고, 내가 피부로 느낀 것이 모두 자기 안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 여름날의 뭉게구름과 소낙비의 추억이 모두 내 안의 텍스트이고, 겨울날의 폭설과 봄날의 도도한 취흥이 모두 내 안의 텍스트다. 수많은 텍스트들이 꼬물거리고 있는 곳이 바로 ‘나’라는 의식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 흥미진진한 ‘솔리튜드’의 시간이다.

 

 내가 읽은 책, 내가 본 영화, 내가 만난 사람들과 자연이 모두 내 안의 텍스트다. 여행길에서 본 낭만적인 풍경을 떠올려도 좋다. 바로 그 낭만이 내안의 텍스트다. 우리의 몸이 노곤하고 우리의 영혼이 지쳤을 때 내 안의 영혼은 나에게 힘을 준다. 때로는 어렸을 때 보았던 커다란 나무를 떠올려보아도 좋고, 유장하게 굽이치는 저녁의 강물을 떠올려 봐도 좋다. 장엄하게 성호를 그으며 떨어지는 별똥의 기억은 어떤가. 한번 흘러간 것은 흘러간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내 안에서 분명히 살아 있다. 살아서 내게 힘을 주고 나를 격려한다. 그것이 기억의 힘이고, 추억의 권능이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또한 내 안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 그 텍스트는 하도 달콤해서 아무리 우려먹어도 그 단맛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상자에는 달콤한 것들  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생각만으로도 아픈 추억이 있는데, 괜찮다. 그 아린 추억조차도 우리는 깊이 음미할 수 있으니까. 너무도 고독했던 시간, 너무도 가난했던 시절조차도 때로는 우리를 위로해 준다. 허수경 시인은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서러운 사람은 서러운 이야기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지 않는가.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외면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내가 과거에 슬펐던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슬픔의 기억과 배고픔의 기억이 있는 한, 우리는 타인의 슬픔과 배고픔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서러움과 슬픔의 기억이야말로 우리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끈인지도 모른다. 나와 타인을 연결해 주는 끈이 만들어지는 시간이 아픔을 되새김질하는 ‘솔리튜드’의 시간이다.

 

 전대미문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예술사의 페이지들을 풍성한 아이템으로 채워 나가는 데 필요한 것도 ‘솔리튜드’의 시간, 즉 고독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떠들썩한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창조의 공간은 고즈넉한 공간, 고립의 공간, 고독의 공간이다. 그 고독의 공간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예술사의 페이지들이 공란으로 남겨졌을까. 그러므로 빈 방을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비어 있는 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로부터 격리된 시간이야말로 나의 상상력이 세상의 모든 국경선을 넘어갈 수 있는 시간이다.

 

김보일 /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중에서(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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