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
어느 곳에서인들 저 무량한 하늘과 곧장 내통하지 않으랴만, 고흥은 우주와 직방으로 통하는 한 입구라는 생각에 몸이 들뜬다. 마음 한쪽에선 어딘가에 두고 온 심장과 연결되는 듯 쫄깃한 느낌도 일어난다.
소금을 품고 있어서일까. 멀리 낭떠러지 아래 길게길게 헤엄쳐온 시퍼런 바닷물이 해안을 짚으며 하얗게 포말로 부서진다. 세파를 헤치고 한 고비에 도착한 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것도 같은 현상일까. 이제 곧 어느 저편 언덕에 닿아 부딪혀 부서지라는 신호인 셈이겠다.멀리 내나로도의 야트막한 산머리에 흰 구름이 걸려 있다.
흰머리를 쓰다듬는데 해안에 핀 참나리가 들어온다. 짠맛과 칼바람을 다스리며 위엄있게 바깥을 내다보는 참나리. 살아있는 이와 살아있지 못하는 이들의 명복을 모두 빌어주는 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 흔들리는 참나리. 꼿꼿하고 붉다. 참나리,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의 꽃산 꽃글' 중에서(2018.8.14 경향신문)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리튜드(solitude)’의 시간, 고독의 시간 (0) | 2018.09.16 |
---|---|
조선에서 백수로 살아가기 (0) | 2018.09.14 |
벼슬, 칼날에 묻은 꿀을 핥는 일 (0) | 2018.08.06 |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0) | 2018.07.17 |
‘되고 싶은(Want to) 나’ (0) | 2018.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