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어느 분야에서나 1만 시간 이상 노력하면 대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the 10,000 hours rule)’이 학계에서 반박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2014년에 발표된 논문 하나가 언론을 통하여 소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국내의 한 신문이 이 논문의 결론을 심각하게 왜곡 보도하는 바람에 논문 저자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결국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자조적인 반응이 생겨났다.

 

 이 논문의 정확한 결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논문의 결론은 ‘훈련이 중요하지만, 이전에 주장되던 것만큼은 중요하지 않다.’이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노력은 성취의 필요조건이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는 결론인 것이다. 저자들은 논문에서도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재능과 상관없이 노력만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주장이 과장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이지, 결코 노력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다.

 

 둘째, 이 논문을 처음 보도한 매체는 여러 영역에서의 재능과 노력의 상대적 영향력을 숫자로 표시했다. 예를 들면 음악에서는 노력의 영향력이 21 퍼센트, 선천적 재능의 영향력이 79퍼센트라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보도했다. 그러나 원 논문 어디에도 선천적 재능이 음악적 성취의 79퍼센트를 설명한다는 주장은 없다. 논문의 저자들은 “노력이 설명하는 부분 21 퍼센트”와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부분 79퍼센트”라고 분명하게 그래프에 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신문 기사는 논문의 그래프에 “노력해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쓰여진 표현을 “선천적 재능”으로 뒤바꾼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당연히 재능일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연습량으로 측정된 노력의 양 말고, 성취를 설명할 수 있는 변수는 재능 외에도 무수히 존재한다.

 

 음악의 경우 악기를 처음 배운 나이, 성취에 대한 가족의 가치 및 동기 부여 수준, 개인의 성격 등 많은 요인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 아니면 재능이라는 매우 위험한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해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논문의 결론인 양 소개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참고로 선천적 재능이 음악적 성취의 79퍼센트를 설명한다면 재능과 성취의 상관계수가 .9에 육박한다는 것인데, 이는 학자들에게는 꿈에나 나올 법한 불가능한 수치다.

 

 셋째, 재능과 노력의 구분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장시간 노력을 하는 것도 재능의 일부일 수 있고, 노력을 통해 재능이 성장하기도 한다. 이 둘은 역동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노력이 정확히 몇 퍼센트, 재능이 정확히 몇 퍼센트라고 칼로 무 자르듯 결론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1만 시간의 법칙을 둘러싼 논쟁은 ‘최고 수준의 전문성’에 관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신을 한 등급 올리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학생이나 100타를 깨기 위해 노력하는 아마추어 골퍼,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 애쓰는 취업 준비생에게는 여전히 노력이 최선의 선택이다. 비록 노력만으로 최고 수준의 전문성이 획득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노력의 양과 성취의 정도가 비례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대학(大學)> 에 나오는 "심성구지, 수부중불원의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라는 마음가짐이 최선이다.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비록 적중하지는 못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첼로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파블로 카살스는 아흔이 넘어서도 꾸준히 연습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어느 날, 그 세계적인 거장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이 의아했던 누군가가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왜 아직도 그렇게 연습을 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카살스의 대답은 품격 있는 삶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준다.

 

 I'm beginning to notice some improvement

 (요새 실력이 느는 것 같아.)

 

 

 

 최인철 / '굿라이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