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벼슬, 칼날에 묻은 꿀을 핥는 일

송담(松潭) 2018. 8. 6. 19:57

 

벼슬, 칼날에 묻은 꿀을 핥는 일

 

 선비정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여러 가지 벼슬이 쏟아진다. 예전에 정권인수위원회가 꾸려지고 초장에 여기 들어간 인사들을 보면 어딘가 붕 떠있는 느낌을 받았다. 벼슬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예로부터 한국 사람은 벼슬에 목을 맨다. 벼슬을 못 하면 죽어도 학생(學生)’으로 남는다. 죽고 나서 쓰는 제사 신위(神位)에 벼슬자리 대신 '현고학생(顯考學生)'으로 적는 것이다.

 

 벼슬에 대한 집착과 기대는 한자문화권의 오랜 전통과 관련이 있다. 서양은 과거제도가 없었다. 전쟁에서 싸움 잘하고 배 타고 다니면서 장사 잘하면 그 사람이 벼슬을 하고 자리를 맡았다. 로마의 귀족은 피가 튀는 전쟁터에 나가 승리를 해야만 입신양명(立身揚名)할 수 있었다. 서양의 전통은 칼과 돈이 자리를 결정하는 문화였다. 그리고 그 자리는 세습이 되었다. 시험 봐서 합격한 사람이 요직을 맡는 전통이 없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약간 바뀌었지만 말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과거(科舉)시험에 합격해야 성공한 인생이었다. 장원급제해서 어사화 꽂고 금의환향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자 성공이었다. 과거를 통한 관료제도가 나름대로 합리성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전통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동양 삼국 중에서 일본은 과거제도가 없었다. 칼을 잘 쓰는 사무라이가 임자였다. 그래서 일본은 중국, 한국과는 문화의 결이 좀 다르다.

 

 동양의 삼교, 즉 유교·불교·도교 중에서 특히 유교는 이러한 과거 합격을 성공의 기준으로 여 겼다. 수신(修身)을 했으면 그 다음에는 치국(治國)을 하는 게 인생의 순서였다. 부재기위 불위 소능(不在其位 不爲所能)이라고 했다. 자리()가 없으면 능력을 펴지 못했다. 자리가 벼슬이다. 벼슬을 못하면 치국도 어렵다. 벼슬을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했다. 그러다보니 벼슬을 하려고 박이 터졌다.

 

 조선조에서는 늙어 죽을 때까지 과거 시험 준비하다가 끝난 인생도 많다. 벼슬을 하면 우선 월급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을 앞에서 굽실거리게 만드는 권력을 쥐고 자기 생각을 현실세계에 실현한다는 쾌감이 있다.

 

 동양의 전통에서 보면 유교의 벼슬중독(?)을 치료해주는 해독제가 불교였다. 불교는 벼슬·정치·현실 참여 이런 것을 모두 환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벼슬을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고 했다.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은 것인데, 왜 거기에다 목숨을 거느냐고 혀를 차며 끊임없이 태클을 거는 셈이다. 벼슬 못한 낙오자들을 달래주고 의미 부여를 해주는 데 있어서는 불교가 큰 몫을 했다. 불교에서는 명심 견성(明心見性 마음을 밝혀 스스로를 자각함)을 해서 번뇌를 없애는 게 인생의 중요한 목표라고 설파했다.

 

 여기에 비해 도교는 재미있다. 도교는 왔다 갔다 노선이다. 잘 풀릴 때는 벼슬도 하고 정치에 참여도 하지만, 여차하면 다 때려치우고 산으로 도망가는 노선이었다. 유교와 불교 사이에 도 교가 있었던 것이다.

 

 서예로 유명한 중국의 왕희지도 도가 계열의 정신세계에 속한 인물이었다. 516국이 명멸하는 시대적 혼란기에 살았던 그도 처음에는 몇 가지 벼슬을 했다. 그러다가 벼슬을 때려치웠다. 평소 경멸하던 인간이 그의 상관으로 와서 이것저것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아버지 무덤 앞에서 맹세를 했다.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쓴 문장이 그 유명한 고서문告誓文>이다. 벼슬을 그만둔 뒤 주위에서 몇 번의 천거가 있었지만 왕희지는 끝내 사양했고 산수 유람과 풍광 좋은 강과 호수에서 낚시하는 일로 일생을 마쳤다.

 

 벼슬이 없는 것도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벼슬에 나가면 자기 시간이 없다. 매일 회의하고 행사에 참석해서 내키지도 않는 억지 축사를 하고 잔술을 받아먹고 다녀야 한다. 마음에도 없는 축사를 의무적으로 하고 다니면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 가족과 한가하게 저녁도 못 하면서 말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민원 사항이 밀려오는 점도 엄청난 부담이다. 한국사회는 지연·혈연·학연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 연줄을 타고 크고 작은 부탁이 쇄도한다. 민원을 안 들어주면 의리 없는 인간’, ‘인정머리 없는 인간’, ‘너 그 자리에 얼마나 있나보자' 등의 원망이 쏟아진다.

 

 인간은 누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공직에서 성공하려면 이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는 데에 벼슬살이의 어려움이 있다. 자칫하면 빙공영사(憑公營私)가 된다. 공을 빙자해서 사익을 추구하면 감옥행이다.

 

 오늘날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수단을 통해 벼슬아치를 감시하는 집단지성의 시대에 벼슬자리는 작두 위에 올라타는 무당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날카로운 칼에 묻어있는 꿀을 핥아먹는 일이라고나 할까. 오늘날에는 사명감과 능력을 두루 겸비하지 못한 사람이 벼슬을 하면 피를 보거나 감옥에 간다고 봐야 한다. 무관유한(無官郁閑)도 인생의 큰 혜택이다.

 

 ‘조용헌의 인생독법중에서

 

 

()과 재물보다 윗길인 대화

 

 

노년의 대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미지 출처 : 한국경제매거진

 

 

 2017년 치러진 프랑스 대선은 구경거리가 많았다. 무엇보다 연령차별, 성차별을 뛰어넘은 점이다. 대통령에 당신 된 마크롱은 40세다. 40세의 젊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도 이채롭지만, 마크롱의 부인이 무려 24년이나 연상인 브리지트 트로뉴라는 사실이 기존 통념을 깨는 파격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70, 부인 멜라니아도 46세로 24년 차이가 나지만 이를 통념을 깨는 나이 차라고는 생각하시 않는다. 반면 부인이 스물네 살이나 많다는 사실은 파격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편견의 틀을 깬 마크롱 부부를 보고 여성들은 깊이 공감한 듯하다.

 

 

 “남자들은 되고 여자들은 안 된다고? 프랑스를 봐라. 여자가 24년 연상이라도 남편 대통령 만들지 않았느냐? 왜 여자의 나이가 많으면 안 되느냐?”는 항변이다. 어떤 60대 초반의 남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마크롱이 이제 마흔이면 성욕이 왕성할 때다. 한창 때다. 얼마 못 간다. 몇 년 지나면 틀림없이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릴 것이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염두에 둔 말이다.

 

 동양철학에서 여자의 생물학적 주기는 7로 표현하고, 남자는 8로 규정하는 관례가 있다. 여자는 7x2=14이다. 보통 14세 무렵에 초경을 한다고 본다. 남자는 8x2=16, 16세 무렵에 처음 정액을 배출한다. 7x7=49, 여자는 평균49세 무렵에 폐경에 도달한다. 임신이 불가능해진다. 8x8=64. 남자는 평균 64세 무렵에 폐정廢精이 된다. 발기불능에 도달한다. 15년 차이가 난다. 불공평하게도 납자가 종족 번식 능력을 좀 더 유지하는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의학 기술과 여러 가지 약이 발달해 이 생물학적 공식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과연 마크롱과 트로뉴 부부는 이 생물학적 공식을 뛰어넘어 궁합宮合이 맞을까? 궁합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하단전下丹田의 궁합, 중단전中丹田의 궁합, 상단전上丹田의 궁합이 그것이다. (단전丹田은 우리 몸의 기운이 모이고 응축되는 곳이다. 상단전은 이마, 중단전은 가슴, 하단전은 배꼽아래를 가리킨다.) 하단전 궁합의 포인트는 섹스이다. 섹스가 잘 맞는 경우다. ‘속궁합이 잘 맞는다는 말은 하단전의 궁합을 가리킨다. 젊었을 때는 하단전의 궁합이 가장 큰 비중으로 작용한다. 섹시한 상대가 가장 끌리는 단계이다. 오르가슴을 느낀다면 그 상대와는 최고의 속궁합이다.

 

 성적인 오르가슴은 쾌락의 절정이지만, 이 쾌락은 인간의 의식을 높은 차원으로 올려주는 작용도 한다. 세상사의 근심걱정이나 분노, 원한, 차별의식 같은 것을 다 청소해주는 효과가 있다. 가장 질퍽한 인간의 욕망인 섹스를 통해 신성한 종교적 깨달음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게 탄트리즘Tantrim’의 주장이다. 문제는 인간의 유한한 배터리다. 색을 밝히다가 배터리가 방전되면 급격한 노쇠로 병이 걸리거나 사망한다.

 

 궁합의 두 번째 단계인 중단전 궁합의 핵심은 돈이다. 돈이 많은 상대가 가장 좋은 상대라고여기는 단계이다. 어느 재벌가 안주인은 나에게 돈이 최고라는 이치를 모르면 그 사람은 아직 도를 못 깨친 것이다.”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나도 그 양반 이야기를 듣고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되도록이면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돈이다. 문제는 돈을 획득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누군들 돈이 싫겠는가. 돈을 갖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결혼할 때 돈이 많은 상대는 매우 매력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얻고 출세하려는 이유가 결국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게 아닐까. 중단전이 맞으면 하단전은 좀 부실해도 상관없다. 젊었을 때는 하단전이 중요하지만 중년이 되면 중단전이 더 큰 비중으로 다가온다. 중단전이 충족되면 상단전으로 온다,

 

 상단전 궁합의 핵심은 대화(Talking)’이다. 이야기가 서로 맞는 상대가 좋다. 소위 장단이 맞는 상대는 상단전 궁합이 맞는 것이다. 서로 지적으로 자극이 되고, 보는 시선이 서로 다른듯하면서도 결론은 같은 지점으로 향하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인생의 행복이다. 열화당悅話堂기쁘게 이야기를 나누는 집이다. 관동 최고의 부잣집이었던 강릉 선교장의 큰사랑채 현판글씨가 바로 悅話堂이다. 온갖 입 사치, 옷 사치, 집 사치 다 해본 집이 선교장이지만, 그 사치의 궁극적 지점에는 기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최고의 즐거음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상단전은 궁합 맞는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이치를 증명해주고 있다.

 

 중년이 지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서로 대화 궁합이 맞는 사람이 좋다. 상단전이 맞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인간은 자살하지 않는다. 이 대화 궁합은 꼭 남녀문제만은 아니다. 같은 동성끼리의 인간관계 궁합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50대 중반 이상 퇴직자들의 최대 애로사항도 바로 상단전 궁합이 맞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 유배를 갔을 때도 상단전이 맞는 친구가 면회를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은 이런 상대를 가리킨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達方來 不亦樂乎),”의 이 구절은 상단전 궁합을 가리킨다.

 

 마크롱과 트로뉴 부부는 세 가지의 궁합 가운데서 중단전과 상단전 궁합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트로뉴 친정집이 5대째 내려오는 초콜릿공장을 운영했다고 하니 돈은 좀 있었을 것이다. 하단전은 나이 차이로 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섹스만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 가지 중에서 두 기지만 맞아도 대단한 궁합이다. 지적으로 끌리고 대화가 되고, 정치적인 조언도 해주고, 재정적인 부분도 도움이 된다면 이 또한 살아볼 만한 상대가 아니겠는가.

 

 ‘조용헌의 인생독법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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