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고시맨

송담(松潭) 2018. 11. 13. 13:01

 

고시맨

 

 

고시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 1 >

 

 

 고시촌에는 공부하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광인의 수만큼이나 많은 언덕이 존재하는데, 험난하기로는 이곳 성문 고시원으로 향하는 언덕이 으뜸이다. 그래서인지 이 언덕은 고시촌 사람들 사이에서 해탈에 이르는 길로 불리곤 한다. 그것은 한여름에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모래 언덕처럼 보이기도 하고, 길이 얼어버리는 겨울엔 날이 선 빙산 같아 보인다.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는 별칭은 고시촌이 형성될 무렵 중국집 배달원들 사이에서 불리기 시작한 것이라 전해진다. 경사가 심해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갈 수 없는 데다 언덕 중간에는 폭이 좁은 계단까지 자리하고 있어 철가방이 기울어지지 않게 수평을 맞추며 이곳을 오르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생고생할 거 뻔히 알면서 배달시키는 뻔뻔한 시키들. 저런 인정머리 없는 것들이 판검사가 되겠다고 설쳐대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험지에 내몰린 배달원의 입이 고울 리 없다. 또한 짜장 반 짜증 반으로 퉁퉁 불어터진 면발이 맛있을 리도 없다. 그렇지만 이 언덕 위로 면을 배달시키는 고시생의 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밥을 먹으러 내려오면 올라오는 길에 다 소화가 돼버리니까.

 

 사람의 내장까지 푹 익어버릴 정도로 뜨겁던 어느 여름날 온종일 열여섯 번이나 이 언덕을 왕복해야 했던 한 배달원이 있었다. 해탈이란 단어는 그의 입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철가방 안에서 꺼낸 단무지가 갑자기 빛나는 황금 부처로 보이는 거야. 너무 놀라 단무지를 앞에 두고 삼배를 올렸지. 해탈의 순간이었어.”

 

 폭이 좁아 더욱 가파르게 느껴지는 언덕길에는 서원, 고시원,리빙텔, 미니 원룸, 독서실, 스터디룸 따위의 간판을 내건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띄엄띄엄 회색 전봇대가 박혀 있고, 옆에는 전봇대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더벅머리 장수생이 꼭 한 명씩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다. 가로세로 거미줄처럼 뻗은 전봇대 위의 전선은 지금 내 머릿속만큼이나 복잡하게 엉켜 있다. 이 언덕을 떠날 수 있게 된 합격자들은 자신의 이름과 출신 학교가 인쇄된 현수막으로 하늘을 가려놓았다. 그들의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빨래처럼 나부끼고 있어서 길은 더욱 어지러워 보인다.

 

 그 길 끝에 성문 고시원이 산 정상의 망루처럼 우뚝 솟아 있다.

 

 

< 2 >

 

 그해 봄. “충성, 군생활 잘 마치고 무사 귀환했습니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낭을 쌓다.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비행기에 올랐다. 첫 행선지는 인도였다.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며 사막을 횡단했고, 배가 고프면 원숭이 무리를 따라다니며 바나나를 훔쳐 먹었다. 자이푸르에서 아그라까지 몇 달에 걸쳐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맞이한 타지마할은 거대한 지우개였다. 군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순백색의 타지마할 앞에 서자 모조리 지워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 앞에서 다짐했다.

 

 ‘다음엔 아프리카 초원으로 떠나자.’

 

 인도 방랑은 다섯 달 하고도 열흘이나 계속되었다. 인도 부랑자 같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앙상한 내 팔뚝을 만지며 눈물 흘렸다. 덩달아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던 내게 아버지는 인사보다 먼지 쌓인 법전을 먼저 건넸다. 철저한 먹고사니즘 신봉자인 아버지다웠다. 하지만 오지 탐험가를 꿈꾸는 아들에게 대한민국 법전이라니그건 마치 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건넨 메이크업 3종 세트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부모님께 오지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뭔 탐험가?”

 아버지는 난청이 좀 있었는데, 오지 탐험가라고 적어서 보여주자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집시가 되고 싶다는 말이구나?” 아버지다운 비아냥이었다.

 “요즘 세상엔 집시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야. 비행깃값은 누가 대냐. 너 같은 베짱이한테는 대한민국이야말로 지상 최대의 오지라는 걸 명심해라 이것아. 하나 있는 자식이란 놈이아이고 머리야, 오지로 떠나고 싶은 건 바로 이 아비다. 머리 빡빡 밀고 어디 절에 들어가야 네 놈 얼굴을 안 보지."

 아버지가 늘어놓는 잔소리가 마치 삼장법사의 염불 같았다. 그 앞에 놓인 나는 금고아를 쓴 손오공에 불과하다. 이럴 땐 단전에 힘을 주고 주문을 외운다.

 

 “동창회에 갔더니 누구 아들내미는 벌써 변호사가 됐다는데...”

 옴 바아라,

 “누구 아들내미는 부모 생일 선물로 그랜저를 사줬다던데...”

 옴 살바,

 “누구 딸은 시집 잘 가서 부모 해외여행 보내드렸다던데...”

 옴 마니 파드메 훔.....

 

 잔소리가 길어지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오지 탐험가가 되겠다는 꿈은 잠시만 접어두기로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까짓것 다시 공부해 보죠. 대신 빨리 합격해서 돌아올 테니까, 그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세요. 사시? 행시? 회계사? 뭐가 될까요?”

 부모님은 합창하듯 입을 모았다.

 “사시!”

 

 2001, 바야흐로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가 열렸다. 너도나도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를 외치며 신림동으로 몰려들었다. 군대에 가기 전 1년간 법대를 다녔다고는 해도 법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신입생 때 달달 외웠던 법률용어도 군 생활을 하면서 모두 까먹었다. 자신 없던 나는 여의봉을 잃어버린 손오공의 마음으로 먼지 쌓인 법전을 펼쳐보았다. “그래도 뭐, 하면 되지 않겠어? 오지를 탐험하는 변호사, 이런 타이틀도 나쁘지 않잖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짐을 쌌다.

 

 신림동으로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는 여의봉을 잃어버린 손오공을 위로하려는 듯 아끼던 복분자주를 개봉했다. 어머니는 고시만 합격하면 신붓감들이 열쇠 세 개씩 들고 줄을 선다더라.” 따위의 말로 나를 격려했다. 평온해진 아버지의 표정, 달뜬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 3 >

 

 오랜만에 날씨가 맑았다. 학원가와 녹두 거리 중간쯤에 위치한 태양놀이터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볕에 털을 말리는 길고양이 무리처럼 나른한 표정의 수험생들이 휘적거리며 거리를 채웠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고시촌은 잠들지 못했다. 창마다 환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녹두 거리 역시 늘 그렇듯 불야성이었다. 공부하는 사람이나 술에 취한 사람이나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이곳. 잠들지 못하는 불안과 욕망, 희망, 외로움, 죄책감이 크로켓 속 재료처럼 한데 섞여 덩어리져 있는 곳.

 

 

 고시촌에 살다보면 꼭 찾아오는 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라고. 그렇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적이 바로 사랑이라고.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은 있어도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그러니 조심하자고. 그건 바로 고··모의 회원이 된 홍소라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 4 >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른 수험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함박눈을 쏟아내고 있는 하늘 아래 그들은 하나같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다음 전투에 대비해 무기 손질을 마친 병사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중대장님, 혹시 제 총 못 보셨어요? 어제부터 안 보여서요.”라고 묻는 얼치기에 불과했다.

 

< 5 >

 

 총무는 고시촌에서 가장 부패하기 쉬운 음식이 무엇인지 아냐고 내게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그건 바로 희망이라고 말했다. 희망은 제때 먹으면 그보다 좋은 약이 없지만 유통 기한도 짧고 부패하기 쉬우며 누군가가 던져주는 부패한 희망이야말로 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스터 앤서 닷컴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합격 수기는 모두 같은 아이피로 작성된 글이었다고 알려주었다.

 

 

< 6 >

 

 “이 거리에서 방황하며 허송세월하는 애들을 찾아다니는 게 내 임무야. 믿기 힘들겠지만 내 눈엔 말이야 그런 애들이 좀 보여총무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 애들 붙잡고 설득해서 내려보내는 게 내가 할 일이야”  “그런다고 설득이 되나요?”

 “어렵지 어려워 고시라는 건 말이야 그런 애들에게 이곳저곳으로 전이되는 암세포 같거든. 말기가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고시생이 직업한줄 알고 살아. 그러다 지치면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곤 하지.”

 

<7 >

 

 “거북이가 왜 토끼랑 달리기를 하려고 하지? 헤엄을 치란 말이야. 사람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이 다 달라. 그런데 왜 달리기만 하려고 하지? 고시 합격만이 성공한 인생일까? 302, 너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

 

 총무의 말대로 고시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고시촌이라는 직장에서 그저 습관대로 살았던 것이다.

 

< 8 >

 

고시맨은의심이 필요 없는 한국형 히어로 이야기다. 기약 없는 미래를 위해 달려가는 청춘들의 집결지인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무대 위에 화려한 히어로는 없다. 비록 사법시험은 사라졌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생, 취업 준비생으로 옷을 갈아입은 주인공은 여전히 존재한다. 구석 골방에서 웅크린 채, 지친 모습으로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청춘의 고단함을 구원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어벤져스> 속 히어로가아니라 분명한 우리 이야기다. - 진산(소설가) 심사평 중 -

 

김펑/ ‘고시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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