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보통의 존재

송담(松潭) 2019. 2. 11. 04:29

 

보통의 존재

 

 

  고졸사원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우리가 미덕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있다. 대중교통 안에서 노약자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것, 어른과 반주를 할 때는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는 것, 함께 음식을 먹을 때 마지막에 남은 한 입 분량은 손대지 않고 남겨두는 것.

 

 그럼 직장생활에서 미덕은 무엇일까. 튀지 않는 행동을 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사회생활을 하는 것, 그게 오랫동안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어리고 덜 배웠다는 이유로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였다. 분명 같은 사원으로 들어왔는데 내 이마에는 고졸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실수를 해도 역시 고졸이라서 그래라는 냉담한 시선이 꽂혔으니까.

 

 용기를 내 주위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비난이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좋은 회사에 들어간 것을 복 받은 줄 알라면서. 합격 소식을 듣고나서 특별 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쭐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평범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는 태생부터 다른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래서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장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점도로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학위를 딴 후에는 회사생활이 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사 3년차에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특성화고졸재직자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회사 업무를 하다가가 6시가 되면 야근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빠져 나왔다. 늦지 않기 위해 저녁도 못 먹고 학교로 향했고, 10시에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주말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종일 수업을 들었다. 일요일에도 쌓여가는 과제를 하느라 친구를 만날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도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화려한 학벌의 직장동료들 틈에서는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겠지만,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다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 같았다. 그 실낱같은 믿음은 직장인의 단비 같은 점심시간조차 반납하며 김밥 한 줄과 함께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만들었다.

 

 한 학기가 끝이 났다. 과 수석을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사내의 승진 시험까지 통과했다. 이제는 직급으로 보아도 대졸 직원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차가운 눈동자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것은 내가 회사일보다 공부를 더 좋아해서 업무에 소홀해졌다는 뒷이야기로 돌아왔다. 혹자는 어린 나이에 욕심이 많아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저 회사 인원의 1%도 되지 않는 고졸 직원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나는 이곳에서 보통의 존재도 될 수 없는 것일까.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한참을 흐느꼈다. 한없이 비워내도 응어리가 진 무언가는 털어낼 수 없었다.

 

 

 

꼬맹이여행자 장영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같이의 가치

 

  꼬맹이여행자(장영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독립적인 성격 탓인지 나는 혼자 하는 일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혼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심지어는 놀이공원까지 가봤으니까. 그래도 등반은 혼자하기 부담스러웠다. 특히 그 산이 동네 뒷산이 아니라 히말라야라면 더더욱. 치안은 둘째치고 통신이 완벽히 끊기는 중반부터는 밤에 롯지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기 따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의 전초기지인 포카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면서까지 트레킹을 할까말까 망설였다. 그 때 비슷한 시기에 세계일주를 떠난 부부가 SNS로 연락해왔다. 이틀 후 포카라에 도착하는데 함께 트레킹을 시작하지 않겠냐고. 고민할 것도 없이 쾌재를 부르며 승낙했고, 그렇게 동희 오빠와 의정언니를 만났다.

 

 이틀은 나보다 여행을 두 달 정도 먼저 출발해서 아시아 지역을 돌고, 마침내 네팔에 도착했다고 한다. 사람의 성격은 얼굴에서부터 드러난다고 하더니만. 서글서글한 인상에 티없이 맑은 웃음을 가진 언니와 오빠가 꼭 그랬다. 우리들은 십여 년은 알고 지낸 친구처럼 금세 친해졌다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АВС코스(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국민 코스라 불릴 정도로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산을 타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조금만 고생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하루에 5-6시간씩 걸으며 4,130m에 위치한 베이스캠프에 오른다는 것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는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했던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뿐이었으니까. 내 체력은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저질체력이었다.

 

 1일차에는 벌써부터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2일차에는 푼힐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4천여 개의 계단을 오르다가 너무 힘든 나머지 산길에다 토를 하고 말았다. 게다가 3일차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법에 걸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쿡쿡 쑤시는 아랫배를 움켜잡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야만 간신히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동희오빠와 의정언니는 나를 다독여주있다. 체력이 약한 내가 뒤쳐지지 않도록 동희오빠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어 맨 뒤에서 걸었다. 의정언니는 항상 내 밥그릇에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덜어주고, 사탕이라도 한 개 더 주려했다. 옹기종기 난로 앞에 모여앉아 수다를 떨며 밤마다 찾아오는 히말라야의 추위도 이겨냈다.

 

 마침내 등반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깃발 앞에 멈추어 섰을 때,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온 세상이 새하얀 비현실적인 행성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달까. 오로지 함성을 지르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언니와 오빠만이 내가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워주었다.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 못할 기억이 될 순간에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고백하자면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 동행이 있는 것보다 더 편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의견이 충돌할 염려도 없고, 독립심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수차례 혼자 여행을 다녀오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일곱 밤을 동고동락하고 나니, 내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던 것은 그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걸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영은아, 할 수 있어! 처음 산 타는데도 이 정도면 진짜 잘 하는거야라고 응원해주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내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이 이토록 따뜻한 것이었나. 어쩌면 힘든 회사생활을 5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입사 동기들 덕분이 아닐까. 혼자서 무엇이든지 잘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힘들었던 순간에는 누군가 곁에 있었다.

 

 

 

세상에 없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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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를 오르는 내내 어느 롯지에서 스쳐가며 보았던 한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세상에 없는 풍경을 놓치지 말아라.’

 

 도대체 세상에 없는 풍경 이란 무엇일까. 얼마나 아름다우면 정상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숨이 벅차오를 때마다 주위가 온통 눈으로 뒤덮인 하얀 설산 속에 서있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이 글귀는 주위에서 흔하게 보기 힘든 아름다운 광경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무사히 등반을 하고보니 어쩌면 진짜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걸음씩 성실하게 옮겼으니 마주할 수 있었던 풍경.

 나의 노력 없이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그 풍경.

 그것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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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어떻게 하면 낯선 이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거야?"

 

 그동안 목구멍 끝까지 치솟았던 물음이 마침내 빠져나왔다. 플라야 델 카르멘 호스트 데이비드는 지금까지 만나온 호스트들처럼 아주 친절했다. 단순히 친절하다는 말로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마주한 이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데이비드는 출근하기 전에 직접 만든 과일주스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갔다. 또한 내가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세노테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운전해서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그의 친절이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카우치서핑으로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나에게 선뜻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것이. 그는 어깨를 한 번 치켜세우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나는 카르마를 믿어, 내가 누군가를 도왔을 때 지금 당장 나에게 물질적인 보상이 돌아오는 것은 아닐 거야. 하지만 이 친절은 돌고 돌다가 내가 정말 필요로 할 때 돌아오게 될 거야."

 

 플라야 델 카르멘에 오기 이전에 칸쿤에서 함께 지냈던 호스트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 여행을 갔었어. 그 때가 10년 전쯤이었지. 호스트 직업은 의사였어. 그녀가 여행을 잘 하라며 카드 한 장을 주더라고."

 

 "아하, 교통카드?"

 "아니, 신용카드, 그 때 다짐했어. 앞으로 우리 도시에 여행을 오는 여행자들을 만난다면 나도 똑같이 베풀어야겠다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그들이 말한 카르마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는 못 했다. 하지만 내가 길 위에서 받은 사랑을 조금씩 베푸려고 노력 중이다. 외국인 여행자가 보이면 발걸음을 멈추고 길 안내를 해주거나 지하철 티켓을 사는 것을 도와주는 사소한 것들부터. 여행을 다녀와서는 자그마한 기념품을 팔아 경비를 마련하는 이들이 보이면 엽서라도 두어 장 사주어야 마음이 놓인 달까.

 

 프랑스 파리 호스트 세드릭과 크로아티아 풀라 호스트 마르코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업무로 인해 평창 올림픽을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둘을 초대하여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었다.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작은 정성이지만 한국에 와서 현지인의 집에 초대된 기억은 그들이 또 다시 누군가에게 베풀고 살아갈 이유가 될 테니까.

 

 선의는 돌고 돈다. 내가 베푼 친절은 손 끝을 타고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유랑하다 내게 돌아오는 기간이 까마득히 멀지라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있겠지.

 그거면 된 거 아닐까.

 나의 작은 손짓이 세상을 좀 더 따스하게 만들었다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내 삶을 비교하지 말기

 

 

 누구나 한번쯤은 동경어린 시선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물건을 샀을 때, 혹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거나 승진을 하는 등. 하지만 내 삶에 그러한 순간들이 많이 쌓인다고 해서 인생 자체에 대한 고민이 사라질 수는 없다.

 

 이처럼 내가 부러워하고 있는 그 사람의 인생도 사실은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무엇인가 해야 하며, 화장실에 가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다. 그 사람이라고 해서 연애가 척척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삶이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평범한 나의 삶에 더 만족하게 된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한탄하기 보다는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니까.

 

 일상에서 행복해지는 방법. 이것이 긴 여행이 내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허황된 행복을 좇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나의 하루에 감사할 뿐.

 

 

 

 꼬맹이여행자(장영은) /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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