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눈오는 날 걱정

송담(松潭) 2022. 12. 23. 12:06

눈오는 날 걱정

 


순천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전원에 온지 만 9년 가까운데 제일 많이 내린 것 같습니다. 이곳은 시내와 떨어진 산골이라 눈이 많이 오면 교통이 두절됩니다. 오늘은 꼼짝없이 갇혔습니다. 문정희 시인이 말하는 ‘눈부신 고립’(‘한계령을 위한 연가’중)이 아닌 ‘걱정스런 고립’입니다.

문득 먼 옛날 동사무소 근무시절 산불이 나면 높은 산꼭대기까지 오르내렸는데 그때 제 어머님께서 손자를 등에 엎고 있다가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서 “느그 아빠 고생하것다.”고 하셨답니다. 그런 후부터 어린 아들은 어디서 연기만 피어오르면 “우리 아빠 고생하겠다.”고 했다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따뜻한 방에 등을 대고 편안하게 누워있다가 출근하여 제설작업을 하고 있을 “우리 아들 고생하겠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바짝 나 그냥 누워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옛날 생전에 어머님께서는 아들인 저를 걱정하셨고, 오늘은 제가 또 아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고마운 사랑은 차츰 희미해져가고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속에 작은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자취생인 아들 때문에 가끔 여수에 가 있는 집사람도 아들 걱정을 했는지, 눈도 내리고 날씨도 춥고하니 아들집에 더 있다오겠다며 혼자서 잘 챙겨먹고 있으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들이 결혼했다면 우리 부부가 별 걱정없이 이렇게 눈 오는 날에는 달큼한 고구마를 먹으면서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있을 것인데 오늘은 둘이서 자식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족 단톡방에 걱정스런 글을 올렸더니 아들한테서 “동료직원들과 함께 제설 작업을 1시간 정도 하고 마쳤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되었는지 창밖의 설경이 조금은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2022.12.23)

 

 

오늘은 눈이 그치고 햇볕이 나서 사진을 찍어 집사람한테 보냈습니다.
영화 러브스토리에 나오는 음악 '눈싸움(Snow frolic)'이 생각나고 장난기가 발동하여
거실 앞 데크와 2층 발코니에 쌓인 눈위에 하트 모양을 그려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랑을 전하는 '소꿉놀이'입니다.
(2022.12.24)

 


집사람이
"떨어져 있으니 사랑이 쑥쑥 크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저는
닭살맞게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순천과 여수, 멀지도 않은 가까운 거리지만
저에겐 '그리움의 거리'입니다.
이젠 제가
당신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오직 가족을 위해 몸을 태우는 촛불이 되겠습니다."

 

거실 앞에서

 

2층 발코니에서


돌멩이도 눈이 와서 좋았나 봅니다.

 


어린시절 이후, 처음 만들어 본 눈사람입니다.  

사진을 보냈더니 집사람한테 답장이 왔습니다.

휼륭한 작품 눈사람

우리 집 잘 지키고 있네요

경비원 고용 할 필요가 없네요

눈사람 경비원
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



뒷산을 바라보니 하늘이 맑게 개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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