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가을의 문턱에서

송담(松潭) 2023. 10. 6. 11:51

가을의 문턱에서

 

 

젊은 시절에는 뜨거운 여름이 좋았다. 강열한 태양빛이 직선으로 백사장에 꽂히고 수평선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있는 한여름의 바닷가는 낭만 그 자체였다. 태풍의 예고에도 결기를 보이며 해수욕장으로 출발했던 피 끓은 시절, 파도가 거품을 길게 밀고와 넓은 백사장을 덮는 장관(壯觀)을 보고 탄성했던 그 시절. 여름은 이렇게 기억의 언저리에서 아름답게 피어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얼굴에 주름지니 이제는 여름이 싫다. 지난 유월부터 시작된 열대야가 구월 중순까지 지속되어 지겹다. 앞으로 매년 더운 날이 지속되어 올 여름이 가장 시원할 것이라니 더욱 심란(心亂)하다. ‘욕망(慾望)은 생산(生産)한다’는 자본주의가 머지않아 지구온난화로 인해 자연의 역습을 받고 신음하게 된다니 이 또한 걱정이다.

 

계절뿐만 아니라 이제는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중간이 좋다. 중간은 미지근하고 때론 비굴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나이들면 물처럼 흐르는 순리와 온화한 덕성이 좋다. 색깔도 진한 녹색보다는 세상에 얼굴을 막 내민 사월의 연두색 산야가 좋다. 화려한 장미보다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좋고, 사람도 야무지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어수룩해 보여도 진실한 사람이 좋다.

 

늦게야 가을이 오고 있다. 산들바람이 분다. 낙엽지는 언덕의 벤치에 홀로 앉아 ‘어디로 가야 하나?’ 허무해 할 것이 아니라 아직 나에게 ‘시간이 주어지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감사한가. 가벼운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이 가을을 따라가 보자.

(202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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