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송담(松潭) 2024. 10. 31. 21:05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선한 인연, 참 좋은 관계.’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집사람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29세에 결혼하여 43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제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혼이었고 집사람의 성격이 너무 온순해서 집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시 아주 불리한 선택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생 없이 귀하게 자란 집사람이 저와 결혼하여 30년 직장생활로 1인 3역을 했고, 홀로되신 시어머니를 21년 동안 모셨으며, 외출도 외식도 친구도 잘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가족만을 위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문에 퇴직 후 제 삶은 방만하고 무책임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산책길에서 문득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거대담론은 이미 논할 수가 없었고 자아실현을 위한 원대한 목표설정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집사람과 아들을 위해서’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큰 업적을 이루지 못하고 별 존재감 없는 생을 살았지만, 한 여인을 위해 성심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미래에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러한 삶은 오직 자신의 가족만을 돌보고 살겠다는 이기적인 삶이지만 저의 능력의 한계는 이것뿐입니다.

 

굳이 보완해야할 삶의 태도가 있다면 사회복지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제가 조금이라도 신세졌다고 생각되는 친구, 지인들에게 보답하며 사는 겻입니다. 가끔 그들과 만남을 갖고 가급적 제가 경비를 부담하는 것입니다. 수입의 몇 퍼센트 정도를 기부하는 것은 아직 장기과제입니다.

(2024.11.1 아침생각)

 

 

 

전원생활 11년째입니다.

집사람이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24.10.31)

 

 

뒷 모습이 참 다정하게 보입니다.

부부란 마땅히

이렇게 다정해야....

이웃집 정원에서

 

 

앞모습

 

 

< 2 >

 

사진 한 장으로부터의 사색(思索)

 

 

 

사진작가 윤광준은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예술이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시간을 묻힌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연히 결혼 초기의 집사람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의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윤광준은 다시 말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늙는다. 잔인한 시간은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며 사진을 감상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사진이 가둔 시간을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그때를 생각해 봅니다. 집사람이 입은 옷을 보면 화려하지도 않고 명품으로 기교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혹자에 따라서는 초라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석등탑 옆에서 미소 지으며 서 있는 집사람은 멋지기만 합니다. ‘아! 집사람이 이렇게 날씬했던가? 포즈도 멋지고!’ 그 당시 세상물정 모르고 날뛰던 저 때문에 생활고(生活苦)로 힘들었을 텐데 별 걱정 없어 보여 다행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학자 성(聖)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는 그의 저서『고백록』에서 시간을 우리가 달력이나 시계로 잴 수 있는 물리적 시간과 마음으로 잴 수 있는 인간적 시간으로 구분했습니다. 물리적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이고 이 시간에서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고,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려서 없기 때문에 오직 현재만 존재합니다. 이를 ‘크로노스(chronos)'라고 합니다. 반면 마음으로 파악하는 인간적 시간은 과거는 ‘기억’으로 현재 안에 있고, 미래는 ‘기대’로 역시 현재 안에 있어 과거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 속에 함께 합니다. 이를 ‘카이로스(kairos)’라고 합니다.

 

'시간을 묻힌' 사진 한 장이 40여년의 세월을 흘러 고스란히 제 마음속에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속에 미세한 설렘의 파장이 일어납니다. 그 옛날의 연애시절의 감정까지 소환해 내니까요. 지금 우리는 70의 노년을 맞았습니다. 저는 새벽시간에 다도(茶道)를 지키면서 차를 마시지는 않지만 찻잔에 차를 부으면서 코끝을 댑니다. 그러면 그 미묘한 차향이 순간 스칩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귀한 향기'입니다. 이처럼 집사람은 제 곁에서 늘 향기로 피어나는 선한 사람입니다.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아들한테까지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합니다.

 

(2022.9.19)

 

< 3 >

 

눈이 부시게

 

지난 4월 30일 50년 知己(지기) 친구 셋이 대전에서 6개월 마다 만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옛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이번에는 좀 색다른 얘기가 오갔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건강문제에 이어 ‘죽음’에 대한 얘기입니다. 먼저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집사람보다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 만약 집사람이 먼저 가면 그동안 고생만 하고 떠난 것이 모두 내 책임이기에 홀로 남아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힘들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남자가 먼저 죽으면 나중에 아내가 병들 때 너무 힘드니 끝까지 보살펴 먼저 잘 보내주어야 한다. 아내를 두고 먼저 떠나는 네 생각은 이기적인 발상이다.”는 것입니다. 여태껏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생명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자가 더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내를 위한 배려라고 하니 모처럼 새로운 이론을 접했습니다.

 

두 번째 화두는 노후의 경제생활과 관련된 얘기인데 여기서도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집사람의 경험(장모님 사례)에 의하면 사람이 죽기 직전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꼭 큰 병이 아니라도 장기화되고 간병인을 오래 쓰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절약하고 저축을 더 해야 한다.”고 집사람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한 친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죽기 직전에 쓸려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지금 당장 마누라하고 부지런히 여행도 다니면서 즐겁게 살아라.”고 조언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히말리라 트래킹을 다니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친구의 말입니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는데 엊그제 5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9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차지한 김혜자(78)씨가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열연한 대사를 시상식에서 읽은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고만 사는 집사람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친구들의 주장대로 집사람이 현재를 즐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김혜자씨의 말처럼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라'는 조언을 받아드리도록 하는 것은 결국 저의 몫입니다. 충분한 자격이 있는 집사람이 하루하루를 ‘눈 부시게’ 살아가도록 지원하고 응원해야겠습니다.

(2019.5.3)

 

 

< 4 >

 

함께 걷는 노년의 시간

 

 전원에 와서 한 3년간은 동네 이웃과 매일새벽 1시간 정도 운동을 했는데 작년부터 그분들의 건강이상으로 함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말고도 제 주변을 보면 70대 중반경부터는 몸이 아파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저 역시 앞으로 다가올 현실이라 생각하니 걱정은 되지만 아직 실감하지는 못합니다어떻게 해서든 열심히 운동을 해서 조금이라도 그 시기를 늦춰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동네 분들과 아침운동을 못하고 멧돼지 때문에 혼자서는 뒷산에 가기가 싫어서 요즘은 전원으로 오기 전 다녔던 약수터가 있는 산에 다니고 있습니다약수터가 있는 산은 출발점에서 반환점까지 논스톱으로 40분 정도 소요되고 중간에 약수터와 운동기구가 설치된 곳에서 운동을 하면 1시간 30분정도 소요됩니다그곳으로 가려면 저희 집에서 12Km를 운전해야 하는데 동네 이웃 한 분이 이 좋은 곳을 놔두고 왜 멀리 가냐?”고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혼자 걷는 숲길이 고즈넉해서 스스로 사색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좋은 길을 집사람과 함께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합니다산길에서 부부가 함께 가는 것을 보면 부럽습니다. 그래서 저도 우선 평지에서 집사람과 걷기를 하여 체력을 기른 후 언젠가는 함께 산에 다니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노년에는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서로가 서로에게 시간을 선물해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합니다그리고 최근 이해인 수녀님께서는 노인이 되면 대체 시간이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 푸념하지 말고 세월이 빠르게 가기도 하지만 다시 오는 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라고 생각을 바꾸어 보라고 권합니다.

 

 홀로 산책하면서 사색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부부가 함께 걸으며 하루하루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경이롭게 받아드려야 하겠습니다그러면 바라보는 석양빛이 더욱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2019.3.15)

 

< 5 >

 

우환(憂患) 

 

 살면서 이처럼 불안해 본 건 처음이다집사람이 이석증으로 시작하여 한 달 가까이 이비인후과심장내과치과 등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지난 해 크리스마스이브 날 종합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아무리 치료를 해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걱정과 불안은 쌓여갔고 집사람은 내가 이러다가 죽을란 갑소.”하며 비관했다.

 

 그동안 빨리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의사인 처남과 조카들이 지방에서 먼저 어느 정도 병명을 규명한 후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라고 조언하여 그에 따랐다집사람이 아프니 당장 집안 살림이 엉망이었다집안에 정전이 된 듯 모든 것이 Stop되고 캄캄했다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는 동안이면 겉잡을 수없이 불안과 슬픔이 덮쳤다.

 

 만약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쩔까왈칵 눈물이 쏟아졌다결혼하여 한평생 오직 나와 가족을 위해 희생한 사람인데... 한 여자를 처절하게 희생시킨 나의 죄는 무엇이며 살아야할 가치가 있을까생은 이토록 짧은 것인가안락하고 평온하다는 생각이 이제 막 들었는데 한 순간에 앗아가다니 운명의 신은 가혹하다만약 당신이 정말 내 곁에 없게 된다면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게 된다면...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이렇게 혼자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하루에도 몇 번 병원으로 가기도 했다.

 

 저녁에 혼자 잘 때는 집사람이 덮고 잔 이불과 벼개를 옆에 두고 잔다집사람의 부재(不在)를 인정하고 싶지 않고 앞으로 절대 그래서도 안 된다결혼 생활 37년 째나는 처음으로 집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뼈져리게 느꼈다.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참고만 살아온 사람인데... 그 흔한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 듣지 못했는데...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아직은 한참 더 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집사람이 퇴원하면 앞으로 남은 시간들은 오직 집사람의 건강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깊이 다짐한다. 이 어두운 터널을 빨리 통과해야 한다.

(2019.1.5)

 

 

 

< 6 >

 

순수하고 무고한 눈망울을 가진 고양이가

책 표지에서 독자를 바라봅니다.

 

악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입니다.

'나 때문에'라는 제목 아래 있으니 더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청순한 표정의 고양이가 어떤 잘못을 저지른 걸까요?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토록 맑고 아린 눈빛으로 자책하는 걸까요?

 

최혜진 /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중에서

  

 

나는 이 그림을 보고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잠시 어설프게 시인의 흉내를 내봅니다.

집사람을 위한 노래입니다.

 

석양(夕陽)의 노래 

 

 아무런 잘못도 없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이웃에게도

 항상 아닌 로 살아온 당신!

 

 성장하면서도

 아무런 결핍도 없이

 오직 사랑만 듬뿍 받고 자라온

 당신이

 

 나를 만나 저런 눈빛으로

 변해버린 건가요? 

 나는 가끔

 애잔하고, 후회하고, 반성합니다. 

 

  아무 죄 없는 당신,

 그것은 결코 당신의 자책일 수 없습니다.

 ‘나 때문에는 당신이 아니라 나의 몫입니다.

 

 이제는

 저렇게 선한 눈망울이 아닌

 환하게 웃는 당신을 보도록 

 마지막  나의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간에의 길입니다.

 

 (2017.12.4 / 결혼 36주년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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