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송담(松潭) 2025. 4. 3. 20:34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나이드니 집사람이 가끔 밥 차리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사실, 집사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여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집밥 차려 먹는 것이라 합니다.

 

제가 “반찬은 사서 먹고. 가끔 외식을 하자”고 제안하면, 워낙 위생관념에 철저하고 사먹는 음식은 조금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해 기름에 볶으고 조미료 설탕이 등이 많이 들어간다고 마다합니다. 그런데 집사람의 요리과정을 관찰해 보면 아채를 씻고 다듬는 등 준비하는 시간이 남들 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행동이 빠르지 못해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도 하루종일(?) 걸립니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집사람을 바라보면서 걱정합니다. “이러다가 무슨 탈나는 것 아니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지만 순간뿐이고 속수무책입니다. 집사람이 그렇게 걱정되면 빨리 요리를 배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거나 식자재 다듬는 일을 도와야 하는데 고작 설거지 정도 해주고 큰일 한 것처럼 으시대고 삽니다.

 

남들이 보면 “둘이 살면서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아들이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자취생인 아들 반찬까지 만들어 보내니 더 힘들어 합니다. 아들도 저를 닮아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습니다. 엊그제 집사람이 친구에게 “아들이 결혼을 안 해서 더 힘들다”고 하소연했더니 “결혼하면 두 사람, 세 사람 몫까지 챙겨야 하니 더 힘들다”고 답했답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하는 집사람에게 저와 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답은 있지만 실천을 못하니 문제입니다. 오늘아침 조간 신문에 ‘밥’에 대한 글을 읽고 숙연해 집니다.

 

 

밥하는 수녀

 

월화수목금토일, 아침점심저녁. 그녀는 부엌데기가 돼 종일 부엌에 깃들여 살며 밥을 한다. (...생략...)

 

밥하는 수녀로 살게 될 줄 몰랐다. 수녀가 돼 수녀원에 들어가면 기도 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밥하는 수녀가 돼 미사를 드리다가도 밥을 하러 부엌으로 간다. ‘밥하러 안 나가고 버텨볼까’ 하다가도 결국은 밥을 하러 부엌으로 간다. 영양사 자격증이 있다 보니 30세 때쯤 밥하는 소임이 주어졌고, 오늘까지 밥하는 수녀로 살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손수 밥을 해서 먹여야 해요. 라면을 끓여 먹이더라도. 남이 해주는 밥과 내가 해먹는 밥은 차원이 달라요. 내 입에 맞게 내가 맞춘 간, 그 간이 위로가 돼요. 남이 한 밥은 백프로 맘에 들 수 없어요. 내가 한 밥은 내가 했으니까, 툴툴거릴 수 없으니까, 아무 말 없이 먹어요. 남이 한 밥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게 돼요. 밥이 질게 됐네, 되게 됐네. 국이 짜네, 싱겁네. 밥을 해 먹으면, 한 끼 밥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드는지 깨닫게 돼요.” (...생략...)

 

○○여고에 밥하는 수녀로 있을 때다. 소녀가 “엄마” 하면서 뛰어왔다. 누구 보고 ‘엄마’ 하면서 뛰어오는 걸까. 소녀는 마저 뛰어와 “엄마” 하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내가 왜 네 엄마야?”

“밥해주면 엄마예요. 그리고 수녀님이 우리 엄마보다 밥을 더 많이 해주시잖아요.”

 

김숨 / 소설가

(2025.4.3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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