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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의 위로(慰勞)

돌 하나의 위로(慰勞)  토테미즘 (Totemisn)이란 특정 동식물 혹은 자연물을 신성시하는 것입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도 토테미즘이고,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큰 나무를 신성시 하는 것도 토테미즘의 혼적입니다. 큰 수술로 마음이 약해져 그런 것일까? 제 마음속에도 조그맣게 토템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터널 같은 곳에서 27일간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언제나 아름다운 우리 집과 고요한 정원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시 그 힘든 고통의 시간들을 회상했습니다.  안방으로 들어오니 탁자에 올려진 돌(수석)과 그 앞에 놓여진 거북과 학, 이 세 가지 물건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멋져 보였습니다. 평상시 무심코 보았던 것들이었는데 병원생활로 장기간 집을..

전원일기 2022.03.01

병상일기(病床日記)

병상일기(病床日記) 2021.12.2 순천 성가롤로병원 혈액검사결과 간수치 높음 2021.12.17~12.25(9일간) 화순전남대병원 응급실ㆍ소화기내과입원 2022.1.10 화순전남대병원 소화기내과 외래 2022.1.20 화순전남대병원 간담췌외과 입원 2022.1.24 수술 2022.1.20~2.16(27일간) 입퇴원 개복수술, 그 고통의 시간들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내 몸속에 암이라는 손님! 담도암(바터 팽대부암) 진단읗 받았다. 세상이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듯 내 몸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다른 걱정거리나 고민없이 항상 평화로운 마음상태로 매일매일 만족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내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니..... 바터 팽..

울지 말아요, 베트남

울지 말아요, 베트남 몇해전, 성탄절을 앞두고 베트남에 갔다. 호치민(사이공)공항 대합실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가히 눈물바다였다. 그날은 마침 한국으로 산업연수생들이 떠나는 날이었다. 저들의 눈물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순간 1960, 70년대 우리네 풍경이 떠올랐다. 그래, 그때 김포공항이 이랬었지…. 순전히 돈을 벌려고 낯선 나라로, 잘 사는 나라로 주먹 쥐고 눈물을 뿌리며 떠나갔다. 김포공항은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후진국일수록 공항은 눈물에 젖는다. 가난했던 그때 우리처럼, 베트남 사람들도 조국을 떠나고 있었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5개월 동안 32만여 명이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다. 파월장병! 당시 나라 안의 관심과 화제, 이야깃거리의 더듬..

다시 부석사에서

다시 부석사에서 영주 부석사에 다녀왔다. 부석사는 소백산 기슭에 떠있듯 서있다. 나도 누구처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보고 싶었다. 그리고 고려 중기 때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건물 무량수전, 그 앞에 고려 때부터 한결같이 펼쳐지고 있는 ‘산의 군무(群舞)’가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모양이기에, 어떤 기개이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흠모하는가. 우선 평생을 박물관에서 한국미를 찾아내고 그 흥과 감동으로 일생을 살다 간 최순우의 현사를 들어보자.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이렇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람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여행, 걷기 2021.12.08

슬픔의 베를 짜는 일에 대하여

밤새 푹푹 눈이 내렸다. 순백의 면사포를 쓴 신부처럼 새벽이 걸어오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통곡하듯 전율했다. “방금 7시에 남편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소리는 마른 모래처럼 고막을 맴돌며 나에게 닿지 못했고, 코로나는 쓰나미처럼 우리 가족을 덮쳤다. 내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에 남편이 입원해 있었다. 요양병원에 코로나 감염환자가 발생하자 병원은 코호트에 들어갔고, 그 와중에 남편과 나는 코로나에 동시에 감염되어 따로 격리 조치되었다. 나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 생활치료센터로 격리되었고, 남편은 감염되자마자 열이 39도까지 치솟아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폐렴에서 코로나패혈증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덜컥 삶의 날개가 꺾여버린 것이다. 남편은 소위 나에게 '평생원수'였다. 한평생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

부부,가족 2021.12.04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아름답고도 처연한 영화 한 편을 봤다. 레베카 홀 감독의 이다. ‘할렘 르네상스’라 불리던 1920년대 흑인 문화의 부흥기. 그러나 차별만은 여전히 엄혹하던 시절의 뉴욕. 백인 행세를 할 수 있을 만한 외모를 가진 두 흑인 여성의 다른 삶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관계의 빛과 그림자, 선망과 질투, 허위의식 같은 내밀하고 심층적인 서사에 인종과 계급, 젠더성 같은 무게 있는 주제가 고혹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늘 정치·사회적 시선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다소 투박한 흑인 여성 클리셰에서 벗어나 섬세한 지성과 관능미를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는 파격 또한 신선하다. ‘패싱’의 일반적 정의는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신분이나 정체성을 속이고 구성원인 ..

명칼럼, 정의 2021.12.01

12월의 첫날에(2018.12월)

12월의 첫날에(2018.12월)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

전원일기 2021.12.01

유한계급론의 살아 있는 증거, 베르사유 궁전

유한계급론의 살아 있는 증거, 베르사유 궁전 앙리 4세가 문을 연 부르봉 왕가의 권력 중심지는 루브르 궁전이었는데, 루이 14세가 1682년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사를 했다. 파리를 버린 게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을 파리의 정치적 공간으로 포섭한 것이다. 루이 14세가 혼자 힘으로 궁전을 지은 것은 아니다. 안정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고 왕권을 크게 강화했던 할아버지 앙리 4세와 아버지 루이 13세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크고 값비싼 궁전은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이 보여주는 유한계급의 문화양식은 루이 14세 개인이 아니라 부르봉 왕가 전체가 창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통치했던 앙리 4세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성격이 밝고 매사에 긍정적..

마더 앙뜨와네뜨

앙뜨와네뜨 Antoinette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죠" 사실 이 말은 마리 앙뜨와네뜨가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단지 승자가 역사를 기록하는 관례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나온 수많은 루머들 중 하나이다. 베르사이유궁 옆에 킹스왕립농장에서 나는 7가지의 허브를 다즐링 홍차에 블랜딩해서 나온 럭셔리 한정판 홍차이다. 장미와 과일을 블랜딩한 홍차들이 코로나로 인해 약성을 지닌 허브로 대체되면서 나온 대표적인 차이다. 향수를 만드는 프랑스의 조향사들이 레시피를 만들어서인지 후각적으로도 힐링효과가 뛰어나고 맛도 효능도 탁월하다. 프로방스의 회오리 바람향기를 표현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호흡기에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허브들의 하모니가 강한 조화를 이루면서 붙여진 찬사이다...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예술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예술 “시간 앞에 서글프지 않은 것은 없다.” 사진작가 강운구 선생의 명언이다. 시간을 묻힌 모든 것은 아름답다. 시간은 기억이며 잡을 수 없는 환영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늙는다. 잔인한 시간은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한때 벌어진 일들은 시간과 싸우지 못 한다. 일일이 혼적을 남기기엔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간다. 강운구 선생의 사진을 보면 그가 무엇을 찍고자 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는 평생 서글픈 대상을 항해 카메라를 겨웠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을 이 땅의 풍경을 담았다. 대단할 것도 그렇다고 폄하할 것도 없는 이 나라 백성들과 마을은 사각의 프레임에 고정되어 희미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렇게 남은 우리나라의 옛 시간은 애달픈 아름다움이 되었다. 그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