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슬픔의 베를 짜는 일에 대하여

송담(松潭) 2021. 12. 4. 06:06

 

밤새 푹푹 눈이 내렸다. 순백의 면사포를 쓴 신부처럼 새벽이 걸어오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통곡하듯 전율했다. “방금 7시에 남편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소리는 마른 모래처럼 고막을 맴돌며 나에게 닿지 못했고, 코로나는 쓰나미처럼 우리 가족을 덮쳤다. 내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에 남편이 입원해 있었다. 요양병원에 코로나 감염환자가 발생하자 병원은 코호트에 들어갔고, 그 와중에 남편과 나는 코로나에 동시에 감염되어 따로 격리 조치되었다. 나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 생활치료센터로 격리되었고, 남편은 감염되자마자 열이 39도까지 치솟아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폐렴에서 코로나패혈증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덜컥 삶의 날개가 꺾여버린 것이다.

 

남편은 소위 나에게 '평생원수'였다. 한평생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고, 담배를 하루 세 갑씩 피워대는 골초였다. 라이프스타일도 달라 내가 잠들 시간에 남편은 일어나 TV를 켰고, 나는 TV 소음 때문에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다. 나는 불만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오면 얼굴빛이 변했다. 웃음이 많던 나는 웃음을 잃었고, 사소한 것에도 다툼이 일어났다. 시시때때로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졌다. 힘들게 하던 남편이 소천하자 만세를 불렀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이 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안에서 넘어졌다. 그 뒤로 남편의 행동이 눈에 띄게 퇴행되기 시작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못 누르고 자주 넘어졌다. 검사 결과 파킨슨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나는 그동안 남편과 눈도 거의 마주치지 않고 데면데면 살았다. 부딪치면 싸우니 서로 피했다. 말다툼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은 그나마 평화로운 날이었다. 남편이 아프고 나서야 남편이 보였다. 수년 동안 이해되지 않던 남편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파킨슨이 퇴행성질환이라 남편의 상태가 서서히 안 좋아졌던 것인데, 나는 남편을 오해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키웠던 것이다. 남편을 잘 돌봐주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방문간호를 받다가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다행히 내가 간호사로 요양병원에 근무하고 있어서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코로나로 요양병원에 보호자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지만 나는 직원이어서 근무시간 외에도 남편을 돌볼 수가 있었다.

 

오롯이 아기처럼 나에게만 의존하는 남편을 나는 결혼 45년 만에 내 가슴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양치질을 해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면서도 나는 더 살뜰하게 돌봐주지 못함에 대해서 미안해했다. 24시간 옆에서 돌봐주지 못해 안달했다. 수십 년간 하지 않던 사랑한단 말을 남편의 귀에 속삭였다. 남편은 어눌한 말투로 “나도 사랑해”하고 대답했다. ‘건강할 때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소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지난날을 후회했다.

 

그리고 코로나에게 도둑맞듯 남편을 떠나보냈다. 나는 남편을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대상이 사라져버렸다. 상실의 절망이 너무 커서 그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혼자 감당해야 할 설움이었다. 몸이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사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사랑을 줄 대상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상대를 찾아 헤매던 사랑이 방향을 바꾸어 나를 향한 비수로 돌변했다. 그것은 형벌에 가까웠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무데서나 곡비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우는 일이 생의 목표라도 된다는 듯이 울음소리가 온 집을 뒤흔들었다.

 

미움의 대상이던 남편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던 것이다. 나는 남편의 숲에 들어가 있어서 나를 감싸주던 남편의 사랑을 보지 못해 비틀어진 작은 가지만 보고 남편을 원망하고 타박했다.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했다. '아내' 라는 말을 이제 다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사방이 금세 젖어들었다. 마른 수건으로 아무리 닦아도 물기는 그대로였다.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아무리 채우려 해봐도 그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부화시킬 포란의 온도였을까? 서로를 꽃피울 화분이었을까? 서로를 데워줄 햇살이었을까? 전설처럼 한 방향으로 날아갈 두 개의 날개였을까? 서로의 진실을 깨우치지 못하고 한쪽이 꺾이자 기울어진 시간이 걸음을 절었다. 다시는 온전하게 돌이키지 못할 시침과 분침이 거꾸로 돌았다. 그날 이후 내 안에는 다시는 날 수 없는 젖은 새한 마리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다.

 

'평생원수'의 강으로 흘러들던 잦은 다툼이 더많은 그리움의 뿌리를 내렸던 것일까? 그 뿌리는 오지게도 질겨서 한 뿌리씩 망각의 강으로 뜯겨나갈 때마다 나는 생살이 한 움큼씩 떨어져나가 밤새 않았다. 나는 작은 것으로 남편을 미워하고 외면했다. 평소에는 무덤덤하다가도 산을 오를 때마다 알아서 밀어주고 손을 잡아 이끌어준 남편의 큰 사랑을 나는 쉽게 잊어버리고 눈앞의 작은 차이만을 가지고 불평을 해댔다. 이제는 손을 내밀어도 잡아줄 손이 아무데도 없었다.

 

남편은 생전에 그리 원하던 남미로 여행을 떠났으니 언젠가 돌아오리라. 아니면 내가 그 여행지로 찾아갈 날이 올 것이다. 남편의 사진을 보며 기도한다.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다 참아낼 자신이 있는데 그럴 수가 없네”라고 말하자 사진 속의 남편이 웃는다. '있을 때 잘해' 라는 노래가 참 명곡이라고 좋아했었는데 내 말일 줄을 어찌 몰랐을까?

 

밤마다 슬픔의 베를 짜며 언젠가 이 피륙들이 나를 치유할 언덕배기가 돼줄 것을 어슴푸레 느낀다. 물푸레나무처럼 나를 슬픔에 물들게 하더라도 나는 그 나무를 붙잡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나처럼 남편도 아득한 저 하늘에서 나를 추억하고, 내가 다시 일어서기를 기도하고 있을 테니까….

 

전숙 / 나주시청 퇴직

제20회 공무원연금문학상수필부문 동상 수상작

 

출처 : 공무원연금 2021.12월호

'부부,가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은이의 어느 하루  (0) 2023.03.24
가족  (0) 2020.12.18
‘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중에서  (0) 2020.10.23
도토리는 왜 둥글까  (0) 2020.09.09
애지중지(愛之重之)  (0) 202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