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애지중지(愛之重之)

송담(松潭) 2020. 8. 10. 15:33

애지중지(愛之重之)

 

 

 

애지중지(愛之重之)는 어떤 것을 아끼고 어떤 것을 무겁게 여긴다는 의미다. 특히 그림이나 책 등의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계 '에지중지'라는 말을 쏠 때 그 의미는 각별한 데가 있다. 명품 가방이든 고가의 그림이든 진귀한 책이든 사물은 자신이 애지중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애지중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식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아내를 애지중지한다는 것은 아내를 아끼기에 함부로 부리지 않고, 동시에 무겁게 여겨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남편이 전구를 교체하느라 의자 위에 올라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아내는 식탁 의자에 앉아 남편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남편은 목이 마르지만 아내에게 물을 갖다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조용히 의자에서 내려와 식탁 옆에 있는 냉장고의 문을 연다. 그러고는 물을 꺼내 시원하게 마신다. 아내는 말할 것이다. "물을 달라고 하지.” 남편 씩 웃으며 다시 하던 일을 마치려고 의자에 오른다. 이때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아낀다는 걸 온몸으로 안다. 자신을 무겁게 대한다는 것을. 자신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내는 남편과 함께 있으면 몸이 편안하다. 남편이 수고로운 일을 대부분 감당하기 때문이다.

 

애지중지를 실천하는 이런 가정에서 폭력이 일어날 수 있을까? 폭력은 누군가를 노예로 부리려고 할 때에만 발생하는 법이다.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그릇을 아내가 가져오지 않으면 남편은 큰소리를 낼 수 있다. 이미 이 남편에게 아내는 애지중지의 대상이 아니라 함부로 부리고 가볍게 여기는 대상일 뿐이다.

 

 

< 2 >

눈부처

 

 

눈부처는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가리킨다. 내가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상대방 눈에 맺힌 눈부처를 나는 볼 수 없다. "눈부처"의 핵심은 상대방이 나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나도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눈부처는 두 개가 동시에 현상한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지 않고 부처처럼 존중하니 나는 상대방의 눈에서 내 눈부처를 보고, 나도 상대방을 부처처럼 존중하니 상대방도 내 눈에서 자신의 눈부처를 본다.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장면인가?

 

 

 

< 3 >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우리는 그 사람보다 건강해야 한다. 그 사람 대신 짐을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우리는 그 사람보다 늦게 죽어야 한다. 아끼는 사람이 혼자 남아 짐을 들어야 하고, 홀로 밥을 해서 먹고, 쏠쓸히 산책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홀로 남은 상대방이 자신을 아끼던 사람을 잃은 지독한 슬픔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아끼는 사람은 그 사람보다 오래 살려고 노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는 고통, 그리고 홀로 남겨지는 외로움을 아끼는 사람이 겪게하지 않고, 자신이 오롯이 감당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사랑을 하면 예뻐지고 건강해진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닌 셈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가? 아끼고 또 아껴라.

 

< 4 >

 

간혹 카페를 가보면 '더치페이(Durch pay)'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에서도 더치페이는 마치 새로운 삶의 트렌드라도 되는 양 작동하고 있다. 친구와 만날 때 커피값을 한 사람이 모두 내지 않아도 되니 경세적이고 효율적이다. 5,000원 하는 커피 두 잔 값을 내가 내면 1만원을 지출하게 되지만, 더치페이를 하면 각자 5,000원씩 안정적으로 지출할 수 있다. 심지어 친구가 1만 원을 내지 않아도 되니 열마나 효율적이고 윤리적인가?

 

더치페이가 우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옳을까? 인문학적 사유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라. 어느 순간 갑자기 친구가 돈이 없을 수 있다. 그런 사정을 알리 없는 나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파스타를 먹자고 전화를 한다. 파스타도 먹고, 맥주도 한 잔 하고,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시는 일정이다. 이 경우 친구는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다. 선약이 있다고, 혹은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집에 가봐야 한다고, 아니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 것이다. 나를 만나고 싶지만 더치페이를 할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돈이 없으면 나 역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 수 있다.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되었는데 집안의 가장인 나로서는 친구와의 만남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권고 한다. 나나 친구, 둘 중 한 명이 먼저 커피값을 계산하라고, 항상 너의 커피값을 내가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말이다.

 

 

강신주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