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중에서

송담(松潭) 2020. 10. 23. 05:45

 

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중에서

 

 

 < 1 >

 

 

 

 

 

 예쁜 이름을 가지게 된 후 동생은 급격하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동생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것인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가 그러는데 나도 어릴 때 그렇게 순진했다고 한다. 영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막연히 어린아이들이란 모두 더럽고 온갖 말썽을 다 부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영주는 마치 갓 쪄낸 백설기나 두부처럼 하얗고 따뜻하고 향기로웠다. 침을 조금 흘리긴 했지만 알고 보니 그것도 꽤 귀여운 정경이었다.

 

 나는 동생이 목을 가누지도 못할 때부터 그 아이를 안고 다녔고 그 분홍빛 발바닥을 매일매일 쭉쭉 빨았다. 엄마와 할머니는 처음엔 내가 동생을 떨어뜨리거나 그 연한 몸뚱이를 함부로 다루기라도 할까봐 웬만하면 손을 대지 못하게 했지만, 곧 내가 영주를 꽤 솜씨 있게 돌본다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씩 나에게 영주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날씨가 약간 풀리자마자 나는 영주를 데리고 다른 집에 가서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똘똘한지를 자랑했다. 처음으로 내가 영주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상도형네 집에서 놀고 있던 날, 엄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상도형네 집으로 달려들어왔다. 엄마는 허락도 없이 영주를 데리고 밖에 나왔다고 노발대발하여 나를 개구리처럼 엎어놓고 엉덩이를 두들겨 패려 했다. 꼼짝없이 혼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울기 시작했는데 상도형네 엄마가 엄마의 손목을 붙잡고 말려주었다.

 

 “동구가 지 동생을 이렇게 좋아하네. 참 신기한 애야.”

 

 엄마는 흥분해서, 아무리 예쁘고 좋아도 그렇지 이제 백일 지난 갓난애를 지 맘대로 끌고 나가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정신이 번쩍들게 혼구멍을 내주겠다고 계속 호랑이처럼 펄펄 뛰었다.

 

 이후로 나는 비가 오지 않는 한 거의 매일 영주를 안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웃들에게 영주를 구경시켜주었다. 영주가 점점 무거워져서 안고 다니기가 힘들어지자 나는 아예 아기 업는 법을 배웠다. 할머니와 엄마가 처음으로 내 등에 영주를 업히고 포대기를 둘러준 날 두 사람은 방바닥을 두들기며 웃었다. 나는 곧 동네에서 동생을 업고 다니는 사내아이로 큰 인기를 모았다. 내가 영주를 업고 포대기 자락이 땅바닥에 끌리지 않게 조심하며 약수터나 빨래터에 나타나면 동네 아줌마들은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나와 영주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린 고구마나 누룽지를 주었다.

 

 “동구야, 동생 업고 다니면 힘들지 않아?”

 “동생이 니 등에다 오줌 싸면 어떡할래?”

 “다른 애들은 교회 앞에서 공 차고 놀던데 너는 동생 때문에 못 노는구나?”

 

 내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들은 그런 거였다. 나는 원래 말수가 적은 아이였기 때문에 자세히 대답하지 못하고 벙긋 웃기만 했다. 영주를 업고 있으면 그 아이가 꼼지락거리는 작은 파문이 내 등의 울퉁불퉁한 갈비뼈와 척추에 그대로 전해져왔다. 동생이라는 존재는 꼬물거리기만 해도 신기하고 흐뭇했다. 영주는 내 등에 업혀서, 잠이 오면 조그맣게 낑낑 소리를 내며 하품을 하다가,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다가, 내 어깨에 쿵쿵 소리가 나도록 얼굴을 처박다가 마침내 노곤히 늘어져 잠이 들었다. 그런 느낌들을 설명하기엔 내 말주변이 한참 모자랐다.

 

 내가 가방을 집어던지고 영주가 있는 방의 문을 확 열면 영주는 나를 보면서 꺄악 하는 소리를 지르고 두 팔을 짝 벌렸다. 내가 덥석 안아올리면 영주는 내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손으로 내 팔과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나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아서 영주를 끊임없이 안아주고 업어주었다. 여름엔 영주도 나도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 안거나 업을 수 없었지만 가을이 되어 서늘한 바람이 불자 나는 다시 포대기로 싸서 영주를 업고 다니기 시작했다.

 

< 2 >

 

 엄마는 방금 생각났는데 내가 좋아하는 녹두빈대떡도 해야겠다고 했다. 녹두빈대떡! 나는 벌써 입맛이 당기고 눈이 희번덕해졌다. 엄마의 녹두빈대떡은 따를 사람이 없었다. 빨간 풍로에 검은 프라이팬을 놓고 맷돌에 간 녹두에 나물들과 돼지고깃점을 푸짐하게 얹어서 차르르르 튀기듯 지져 내는 노릇한 부침이. 엄마가 녹두빈대떡을 부칠 때면 나는 젓가락과 접시를 들고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의 날렵하고 맵시 있는 손놀림을 구경하곤 했다. 내가 뜨거운 것도 무릅쓰고 하아하아 입김을 내뿜어가며 녹두빈대떡을 꿀떡꿀떡 넘기면 엄마는 기쁜 듯 내 엉덩이를 두들기며, 이건 정말로 엄마만 아는 비법인데 남들 하듯이 배추를 무쳐넣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익은 김치를 씻어서 종종 썰어넣으면 이런 희한한 맛이 나는 거라고 속삭이곤 했다. 나는 내 입안에서 견딜 수 없이 고소하고 수상하게 감겨드는 그 맛이 엄마의 비법인 김치 조각들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이 다음에 니 색시한테만 가르쳐줄게. 엄마가 다짐할 때면 과연 내가 커서 장가갈 날이 오겠는가 의심하면서도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아 이렇게 맛있는 부침이를 부쳐낼 내 색시를 생각하곤 했다. 색시는 그런 비법을 알게 되면 무척 좋아할 것이다.

 

 다음으로 엄마는 생선가게에 들렀다. 언제나 양팔에 토시를 하고 고무장화를 신고 있는 왼손잡이 아저씨는 엄마를 보자 얼음이 서걱서걱한 동태부터 내밀었다. 할머니가 아는 생선은 북어와 자반고등어뿐이었다. 노루너미에는 그것조차 안 들어오고 할아버지가 한 달에 한 번쯤 괴산장까지 하루를 꼬박 걸어가야 그나마 비린 것 구경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어린 시절을 목포에서 보냈으므로 홍어며 우럭이며 복이며, 한창때는 황금빛이 난다는 조기며 모든 생선들의 이름과 가장 맛있는 철과 가장 흡족한 요리 방법들을 다 알고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고등어나 동태 아닌 생선을 사가면 할머니가, 웬 셋바닥 비틀어질 물괴기는 사다가 돈지랄을 하느냐고 욕부터 퍼부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탐나서 들여다보다가도 결국 동태나 사다가 조리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또다시 동태를 보자 질린다는 표정으로 탐스러운 삼치 배때기를 몇 번 꾹꾹 눌러보았으나 결국 아저씨가 내미는 동태 한 마리를 받아 들었다.

 

 심윤경 / ‘나의 아름다운 정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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