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과분한 사람

송담(松潭) 2019. 3. 21. 18:14

 

과분한 사람

 

 

 

 

오래전 어떤 결혼식장에서 들은 이야기다. 하객석에 앉아서 주례가 하는 주례사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무심히 주례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주례의 말 속에서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은 피천득 선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피천득 선생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유명한 수필가다. 아름다운 시도 여러 편 쓰신 시인이기도하다. 피 선생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기도 했는데 주례를 보는 분이 바로 피 선생의 대학교 제자라고 했다.

 

 피천득 선생의 말년의 이야기라고 한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제자들이 모여 선생께 세배를 가곤 했다고 그런다. 아흔이 넘은 스승에 칠순이 넘은 제자들이다. 세배를 드린 자리에서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그렇게 사모님하고도 잘 지내시고 자식들도 잘 기를 수 있는지요?”

 

 피 선생은 망설임 없이 짧은 말 한마디로 대답했다.

 

 “그거야 집사람이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고 아이들이 또 나한테 과분한 아이들이라 그렇지 .”

 

 과분한 사람? 과분한 자식? 잠시 어리둥절해하는 제자들에게 피 선생이 설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생각들 해보게. 나 같은 사람과 평생을 살아주는 집사람이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 아닌가? 나한테 넘치는 사람이란 뜻이지 자식들도 그래, 나의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나한테는 과분하게 공부도 잘하고 자기 일들을 잘 해주는 자식들이 아닌가!”

 

 듣고 있던 제자들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라? 그리고 과분한 자식이라? 평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나보다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과분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다. 더욱이 가족관계는 그렇다.

 

 오히려 모자란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괜찮은데, 나는 잘했는데, 다른 식구가 모자라고 부족해서 우리 집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원망하기도 한다. 상대방을 과분한 사람이라고 여김은 나의 겸손이고 상대방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김은 나의 오만이다.

 

 여기에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있지 않나 싶다. 상대방을 과분한 사람이라고 여길 때 내가 저절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상대방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길 때 나또한 저절로 불행한 사람이 된다! 그 뒤로는 나도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게 되면 이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려준다.

 

 부디 다른 사람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지 말자. 상대방을 나보다 나은 사람, 과분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자. 나 자신이 이런 좋은 말씀을 보다 일찍 알았더라면 젊은 시절 아내에게 좀 더 잘해주었을 것이고 자식들에게 더 잘해주는 아빠가 되었을 텐데, 너무 늦게 알아 아쉬운 마음이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나태주 /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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