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아내 되어 보기

송담(松潭) 2019. 2. 9. 10:31

 

아내 되어 보기

 

 

 

며느리 고생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아내와 나는 지난 1월에 결혼 38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3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아내는 결혼 이후 줄곧 내 어머니를 우리 집에서 모시고 살았다. 내가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많은 분, 특히 여자분들은 부인이 참 고생이 많았겠다라는 말로 아내에게 동정을 보낸다. 나는 내가 6남매 중 장남이니까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세태가 우리 젊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다른 사람의 아내에 대한 그런 평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아내와 나는 눈빛만 봐도 척척 맞는 그런 부부가 아니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였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같이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38주년은커녕 그보다 훨씬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만큼 우리는 다른 점이 많은 부부였다. 더더구나 아내는 어머니 살아계실 때도 편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남편이 너무 효자라 내가 더 힘들다"라며 농담인 것처럼 진담을 말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사실 아무리 효심이 넘치는 며느리라 하더라도 시어머니와의 35년 한 집 동거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는 것을 나도 이제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부엌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집 안 청소는 "나보다 청소를 더 깨끗이 잘한다"라는 아내의 의도된 칭찬에 발목 잡혀서 꽤 오래전부터 전담하고 있었지만 나는 부엌에 놓인 전자레인지 하나 쓸 줄 몰랐다. 몇 달 전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말해 버렸다. “여보! 오늘부터 요리와 설거지를 내가 좀 해볼게.” 아내는 반색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좋지!" 하고 받아들였다. 설거지는 바로 할 수 있겠지만 요리는 공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무실 근처에 있는 백화점 문화센터의 요리 강좌에 등록했다. 요리를 배우는 9개월간 나는 꽤 열심 있는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늦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늘 좀 일찍 가서 앞치마로 미리 준비하고 매번 세 가지씩 배우는 요리법도 미리 받아 읽어두었다.

 

 요리학원에 다닌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드디어 나는 배운 요리 중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요리 세 가지를 골라 직접 만들어 보는 거사(?)를 계획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내가 좋아하는 소갈비찜, 연근초무침, 버섯들깨탕이었다. 나는 한 번도 장을 봐 본 적도 없어서 백화점 식품관에 요리법을 들고 가서 음식재료부터 구매해 보았다, 장을 본 뒤 집에 와서 아내의 구두 지도를 조금 받아서 재료 준비부터 시작했다. 나에게는 처음 요리를 해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의 요리 첫 시도는 대성공이라 할만 했다. 성공의 기준은 내가 먹어본 결과 요리 선생님이 만들었던 그 맛이 그대로 나왔고, 요리 전문가라 인정할만한 아내의 후한 평가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와 비교해서 설거지는 훨씬 내 적성에 맞았다. 설거지를 다 끝내고 나면 샤워를 했을 때보다도 더 큰 개운함이 있다. 그 개운함 속에는 아내가 40년 가까이 해왔던 설거지에서 아내를 해방하게 해 주었다는 뿌듯함이 함께 자리하곤 해서 기분이 좋다.

 

 아내는 고마운 일이 있어도 호들갑을 떨며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나도 아내의 스타일을 아는지라 그러려니 했고, 설거지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주 전이 아내의 생일이었는데, 생일을 맞은 그 주에 교회성가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단원이 백 명 정도 되는, 아내와 내가 같이 섬기고 있는 성가대에서는 생일 맞은 사람을 축하하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는 단원들이 다 같이 생일 축하 송도 부르고, 생일 맞은 사람의 기도 제목을 듣는다. 아내가 기도 제목을 말하는데 설거지 얘기를 꺼냈다. 그날 성가대의 여러 사람 앞에서 아내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1년 전인 작년 생일 축하 때 제 기도 제목이 노후를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요즘 남편이 청소에 이어 설거지를 반들반들 나보다 더 깨끗하게 해주니 너무 행복하고, 기도 응답이 된 것 같아 감사하다.” 아내의 의도되고 기습적인 공표(?)로 나는 앞으로 설거지가 내 평생 과업(?)이 될 것이 예견되었다. 그래도 나의 아내 되어 보기는 내가 선택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선택으로 생각할 때마다 흐뭇함을 느낀다. (2018.8.13.)

 

 안무길 / ‘키움 수필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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