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늙은이의 어느 하루

송담(松潭) 2023. 3. 24. 11:15

늙은이의 어느 하루

 

 

이미지 출처 : 2019.7.30 부산일보

 

(...생략...)

 

시계는 벌써 오후 6시가 지나고 해는 완전히 서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 부르던 노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산책하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요양보호사는 퇴근하고 딸이 와 있었다. '뚝불'을 확인하니 내가 가져다 준 그대로였다. 내자는 완전히 고개를 돌렸던 것이다. 언제나 시늉만 내려다가 말고 '완전 균형 영양식'이라고 선전하는 '뉴○○' 한 개나 블루베리 두어 개가 고작이니… 참으로 걱정이다. 내자는 3년 전에 대수술을 받고 나서 모든 생활이 완전히 위축되었고, 최근에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매주 'OO치매안심센터'에 다니며 학습을 받고 있다. 체력도 형편없는 데다가 치매(?)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기운이 없어서 갈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도 보호사가 최면(?)을 걸면 순순히 따라 나가는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내자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하는 것 같다. 가사노동은 고사하고 우선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니 걱정이다. 억지로 식탁까지는 가지만 곧이어 포기하고 만다. 도대체 어찌하란 말인가. 요양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단 말인가. 나는 그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니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내자가 도맡아 하던 주방 일을 내가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시간을 내어 찾아와서 이것저것 모두 돌보고 처리하고 도와주지만 내 마음이 편하질 못한 것은 사실이다.

 

나에겐 내자의 신세가 가엽기만 하다. 그는 명문대학에서 이학사 학위를 받고 30여 년에 걸쳐 교직에 봉사하고 아이들을 낳아 길러내고 살림을 일으켜 낸 것도 대견하지만 이제는 편안히 쉬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면서, 또한 가족이나 이웃이나 국가와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고 관조하면서 여생을 누릴 만한 황혼을 맞이하였거늘 육체적으로나 인지적으로나 심각한 장애를 받고 있으니 너무나 뜻밖의 불운이요 재앙이다. 그를 바라보기만 하는 나는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꼬?

 

해는 서산에 지고 땅거미는 다가오고 있다. 늙은이의 어느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2022. 8. 6)

 

지교헌 / ‘글쓰기가 겁난다’(교음사 출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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