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病床日記)
2021.12.2 순천 성가롤로병원 혈액검사결과 간수치 높음
2021.12.17~12.25(9일간) 화순전남대병원 응급실ㆍ소화기내과입원
2022.1.10 화순전남대병원 소화기내과 외래
2022.1.20 화순전남대병원 간담췌외과 입원
2022.1.24 수술
2022.1.20~2.16(27일간) 입퇴원
< 1 >
개복수술, 그 고통의 시간들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내 몸속에 암이라는 손님! 담도암(바터 팽대부암) 진단읗 받았다. 세상이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듯 내 몸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다른 걱정거리나 고민없이 항상 평화로운 마음상태로 매일매일 만족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내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니.....
바터 팽대부암 수술은 위의 일부, 췌장 절반, 십이지장, 담낭 등을 제거하는 대수술이다. 이번 수술로 제거된 여러 장기 중에서 췌장을 건드린다는 것은 핵폭탄을 건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고 한다.
1월 24일 아침 8시 30분경 수슬실에 들어가 오후 4시 30분경 눈을 떴다. 이때부터 시작된 통증의 고통은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목에는 수술시 수혈 등 비상상황에 대비해 큰 주사바늘이 꽂혀있었고 목구멍속예서 위까지 링거줄이 들어가 있어 목이 꽉 막힌 것 같았다. 그리고 옆구리에는 복부에 쌓인 피 등 이물질을 빼내기 위한 배액관줄이 달려있었다. 흐릿한 눈으로 아무리 시계를 봐도 시간은 흐르지않고 고여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간호사를 부르기 위해 '선생님 선생님'하고 외쳤지만 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목안에 맴돌았다. 다음날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올 때까지 2일 정도가 고통의 최고점이었지않나 싶다. 그후 숨쉬기도 무척 힘들었다. 수술하는 동안 폐가 쭈그러진 탓인가 회복과정에서 폐에 공기를 넣어 펴지 못하면 다른 합병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숨을 내쉬면 통증이 일어나 힘껏 숨을 들이쉬지 못한다 집사람이 들숨은 코로 들이마시고 날숨은 입으로 서서히 내뱉으라고 가르친다. 들숨을 코로 쉬어야하는 이유는 콧속에는 이물질을 걸러주는 콧털과 점막이 있기 때문이란다.
수술후 1주일 정도 되니까 통증이 완화되었지만 이런 대수술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었다.
(2022.1.31)
< 2 >
왜 서울로 가지 않았는가
순천성가롤로병원에서 혈액검사 결과 간질환 수치가 높았던 것으로부터 출발, 그후 화순전남대병원 소화기내과에서 내시경 조직검사상 암은 아니지만 의사가 육안으로 볼 때는 암이라고 했다. (수술한 후 그곳을 때어내어 검사를 해야 정확하다고 했다) 일단, 암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순전대병원에서 할 것인가. 서울에 있는 유명 대형병원으로 갈 것인가 문제로 나는 물론 가족 친지 모두들 큰 혼란에 빠졌다. 모두들 서울로 가는데 그 중대한 병을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하겠다는 것은 흔하지 않는 선택이다.
누나를 비롯한 둘째 처남내외는 서울에서 다시 진단받기를 강권하면서 서울대와 아산병원에 예약까지 해놓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사돈네팔촌까지 뒤져보니 해당병원에 연결할 사람이 있었고 아산병원에는 내 병과 같은 전공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선택은 화순전대병원이었다.
서울로 가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코로나 상황이다. 이 형국에 나와 집사람한테 문제가 생기면 아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대처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잘못하면 우리가족 모두가 무너진다. 죽더라도 나혼자 죽어야한다는 생각이었다.
환자들의 불안심리가 모두들 서울로 가려는 심리를 부추겼다고도 생각했고 이제는 지방의 의과대학도 거점병원으로 지정되어 정부의 지원 등으로 인력과 시설장비도 많이 좋아졌다고 조언해 준 사람도 있어 참고했다.
화순전대병원 간담췌외과 주치의 허영회교수님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평소에 단순한 성격은 이러한 위험을 무릎썼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않는 길을 이번에도 선택한 것이다. 나도 살고 집사람도 살고 우리 가족을 살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결국 수술후 최종결과는 '바터 팽대부암 1기'로 나왔고, 앞으로 별다른 후유증이 없다면 나의 선택은 '용기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2022.2.1.)
< 3 >
결코 약하지 않은 나의 수호천사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할지라도 사후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수술을 마치고 나흘쯤 되었는데 약간의 미열이 있으면서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나는 통증에 반응하는 민감도 낮아서 그런지 크게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미열이 37도를 넘자 집사람이 계속 의료진을 보챘다. 수술이 완벽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약간의 미열이라 그냥 덤덤하게 있는 나와는 달리 간호사가 체온을 첵크하고있음에도 별도로 약국에서 체온계를 구입하여 정밀하게 체온관리를 하면서 주치의에게 이상징후를 얘기하고 조치를 이끌어냈다. 수술후 부작용으로 수술부위에서 담즙이 새어나오는 것에 대한 조치였다. 담즙이 새어나오면 주변 장기를 다 손상시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마침 그날이 설연휴 첫날이어서 대학병원에서는 응급조치를 할 수 없었고 응급차로 광주시에 있는 개인 병원으로 가서 담도에 관을 넣고 담즙을 정상으로 배관하는 시술을 받았다. 연휴 첫날이라 그나마 민간병원에서 가능했고 의사는 전남대 병원에서 얼마 전까지 근무했다고 한다.
만약 집사람의 치밀한 관찰과 보호자로서 적극적인 대응이 없었다면 설연휴 5일 동안 얼마나 악화되었겠는가. 생각하면 아찔하다. 무엇보다 집사람의 섬세한 성격과 지나친 걱정이 병의 악화를 미연에 막아주었다. 나 같았으면 그냥 멍하니 있고 말았을 것인데 대책없이 막연한 어리석은 낙관론자인 나에겐 커다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집사람은 결코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결혼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편과 가정을 지켜왔는데 오늘 같은 위기에도 나를 굳게 지키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수호천사였다.
(2022.2.2)
< 4 >
끔찍한 변비의 고통
점심 때부터 저녁 10시까지 변비로 사투를 벌렸다. 화장실에서 용을 쓴 시간만도 대여섯 시간. 아무리 힘을 써도 막힌 항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사람이 관장알약 두개를 항문으로 밀어넣었고 설사제를 먹었는데도 해결되지 않았다. 항문이 막히니 아랫배가 단단하게 부풀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식은땀만 흘린다. 급기야 집사람이 고무장갑을 끼고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변을 파냈다. 기술상 몇 덩어리 이상 파내기 힘들었다.
얼마 후 설사약의 효과가 약간 나타나 바지에 설사를 흘렸다. 샤워실에 가서 바지를 내리고 집사람 앞에 섰다. 나는 꼼짝없이 어린시절 엄마앞에 선 어린아이 모습으로 돌아갔다. 늙으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은 단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마침내 밤늦게서야 항문이 개봉되었고 양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변비의 고통, 변비의 진수가 과연 이런 거로구나. 똥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진저리치게 하는구나. 입원 기간중 집사람이 나의 항문에서 똥을 파내는 험한 경험까지 하게 되었다.
(2022.2.9)
< 5 >
6인실이 좋다고?
화순전남대병원은 병실이 1인실, 2인실, 6인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입원할 때는 2인실에 있었고 수술하기 위해 다시 입원할 때는 2인실이 없어 6인실에 입원했다.
2인실은 병실내 화장실이 있고 6인실은 복도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쓴다는 점이 다를 뿐 1인 단위당 사용면적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2인실은 전체 공간이 좁아 훨씬 답답하다. 직업 간병인들의 말에 의하면 2인실은 6인실 보다 중환자가 더 많아 신음소리 등 공해가 더 심하다고 한다. 비용도 7~8배 더 비싸다.
병원에 와 보니 대부분 환자는 남자들이고 배우자들이 보호자로 지키고 있는데 6인실 병동에서는 보호자인 여자들까리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음식물을 나누면서 근방 친해진다. 아픈 환자를 돌보는 처지라 그런지 서로 공감하고 위로한다. 그래서 6인실은 1,2인실 보다 삭막하지 않고 인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6인실에 있으면 왠지 좀 곤궁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 같아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2인실 정도를 선호한다. 나 역시 그러한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6인실에서 별 불편없이 25일을 넘기고 있다. 나의 경제능력에 맞추면 6인실이 맞다. 아프면서까지 남을 의식할 필요는 없기에 6인실에서 계속 잘 지내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내부에 화장실이 없는 6인실이 더 좋겠는가. 사실 경제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돈을 아껴보겠다는 취지를 숨기고 6인실의 실용성을 얘기하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의 과거가 주로 소비에 치중하면서 미래를 소홀히 한 탓에 오늘 이렇게 6인실이 더 좋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은 가눌 길 없다.
(2022.2.10)
< 6 >
수술후, 어떻게 살아야할까
수술부위의 이물질을 몸밖으로 배출하는 관에서 계속 이물질이 그치지 않아 퇴원이 지연되고 있다. 대부분 수술후 2주 정도면 퇴원을 한다는데 나는 3주가 다 되었다. 면역기능이 보통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창밖을 보니 벌써 봄볕이 내리고 있다. 지금쯤 우리집 정원에는 수선화가 피려고 끔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집에 가서 그 선한 수선화의 꽃잎을 보면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맺힐 것 같다.
작년 가을에 다실방에 놓아둔 감홍시도 생각난다. 몇개 남지 않았지만 너무 오래되어 썩어버렸겠지. 다락방에 있는 고구마도 온전할까. 습기가 있는 화장실에 놓아둔 난초화분은 지금쯤 물이 부족해서 목이 탈 것이다. 이런저런 걱정에 시내 사는 아들에게 집에 가서 화분에 물을 주고오라고 전화했다.
병원에서도 집에 있는 꽃들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나에게 집사람은 '전원을 떠나기가 좀체 어렵겠소' 했다. 그렇다. 나는 계속에서 전원에 머물고 싶다. 날마다 새롭고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더 오랫동안 갖고싶다.
그렇다면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가 바터 팽대부암 1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수술로 암과 주변부위를 절제했고 항암치료를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암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언제든 재발 가능성이 있는 암환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컨디션을 회복하더라도 소식해야 하고 탄수화물과 단음식,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꾸준히 운동을 해야한다. 또한 집사람의 간섭과 조언을 착실히 잘 받아드려야 한다. 그리고 집사람의 건강에도 각별히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한다. 그래야 집사람한테 평생 진 빚을 갚을 수 있다. 이제는 내가 촛불처럼 몸을 태워 길을 밝혀야 한다. 함께 손잡고 90고개를 넘는 것이 우리 부부의 바램이고 약속이기 때문이다.
(2022.2.12)
< 7 >
병원의 풍경들
하나,
복도 저쪽에서 할머니 한분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보호자 명찰을 가슴에 달고 환자인 할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는 사람이다. 어찌 저런 몸으로 간병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몸인데 말이다. 자식들은 없는 것일까. 안타까워보였다.
둘,
같은 병실 옆 침대에서 환자인 할아버지와 보호자인 할머니가 무슨 까닭인지 티격태격 싸우셨다. 서로 언성을 높이고 짜증을 내더니 마침내 할머니가 짐을 챙겨가지고 집에 간다며 나가버렸다. 나는 할머니가 진짜로 가셔버렸는가 의심했다. 잠시 후 병실을 나가보니 할머니가 문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영 짠했다. 병들고 늙은 몸에 모두들 지쳐있었다.
셋,
간호사 선생님들이 참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들 친절하고 열심이었다. 한밤중에 병실을 돌며 환자들을 돌보고 체크할 때는 혹시 환자들의 수면을 방해할까봐 조용조용 소리나지않게 걸어와서 조치를 취한 후 쥐도새도 모르게 병실을 빠져나간다.
그 착한 행동이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왔다간 것처럼 감동을 주었다. 오! 그대는 백의의 천사! 병원의 최일선에서 그들의 헌신적 노고가 많은 환자들을 살리고 있다.
(2022.2.13.)
집에 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몸무게가 12kg 빠졌고 기력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 2022.2.20 >
< 병원에서부터 기다리던 수선화가 이제 피었다. 2022.3.24 >
'사랑의 노래(가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원생활과 가사(家事) 노동 (0) | 2022.07.11 |
---|---|
서서히 일상으로의 복귀 1 (0) | 2022.06.29 |
또 한송이 나의 모란 (0) | 2021.04.12 |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0) | 2021.01.10 |
전원 이야기 (0) | 202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