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전원생활과 가사(家事) 노동

송담(松潭) 2022. 7. 11. 07:39

전원생활과 가사(家事) 노동

 

 

 

최근 몇 년 사이 집사람은 건강 검진 때마다 여기저기 한 두건씩 종양이 나타나 우리를 긴장시켰는데 조직검사결과 다행이 모두 양성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관찰을 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제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집사람이 머리가 어지러워 일어나지 못하고 속이 매스꺼워 여러 번 구토를 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했습니다. 119를 불러야할 정도였지만 뇌 계통이 아닌 귀(耳)계통 질환으로 사전 예측하고 그냥 병원으로 갔습니다. 다행이 이석(耳石)증으로 판명되어 검사와 처지를 받은 후 집에 와 하루 지나니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집사람에 대한 최근 일련의 건강징후를 경험하면서 갑자기 ‘하인리히 법칙’이 떠올랐습니다.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감독자였던 H. W. 하인리히가 그의 저서 <산업재해예방(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에서 '사고는 예측하지 못하는 한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여러 번 경고성 징후를 보낸다.'고 주장하며 이를 1 : 29 : 300의 법칙으로 정립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심각한 안전 사고가 1건 일어나려면 그 전에 동일한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가 29건,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이 300건 정도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징후들을 제대로 파악해서 대비책을 철저히 세우면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이론은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개인은 물론 사회ㆍ경제 전반적인 현상을 분석ㆍ설명하는데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인리히법칙은 저에게도 시사점이 많습니다. 집사람의 최근 건강 징후를 볼 때 이제는 단순하게 넘겨버릴 상황이 아니라 좀 더 섬세하게 대처해야 함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어제는 불안한 상상까지 겹치면서 집사람의 건강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겠다는 위기의식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집사람이 가사노동 과부하로 인해서 생긴 것이며 전원에 와서부터는 이전보다 가사노동이 훨씬 많아진 것이 원인입니다. 정원과 텃밭관리는 거의 제가 하고 있지만 텃밭에서 나오는 작물은 요리하기 전에 다듬는 과정이 추가됩니다. 마트에서 산 야채나 채소들은 잘 다듬어져 있는 것과 다릅니다. 게다가 집사람은 일이 거칠지 않고 아주 섬세 깔끔하여 남들 보다 두 번 세 번 더 씻는 등 가사노동에 많은 시간을 투여합니다. 어느 날 집사람한테 “재료를 씻는 것이 아니라 빨래하듯 빨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영양가가 다 빠져나간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전원생활이 일거리가 많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과잉생산(?)때문입니다. 우리가족이 먹을 분량 이상을 재배하기 때문에 잉여물을 다듬고, 씻고, 말리고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도시에 사는 형제들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사실, 시장에서 사 먹으면 몇 푼 들지도 않는 것들을 이런 복잡한 과정과 수고로움을 스스로 자청하기 때문에 일이 많아진 것입니다. 올해만 해도 곶감 깎아 말리기, 고구마대 벗겨 말리기, 마늘 까기, 토란대 벗기기, 생강 말리기, 밤 까기, 은행 까기, 돼지감자, 마 손질하기 등등 일들이 연속이었는데 결국 집사람의 건강에 한계가 온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집사람은 ‘깨지기 쉬운(fragile) 그릇’과 같다고 생각하고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아프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삶의 질이 현격하게 저하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앞으로 설거지는 기본으로 빠짐없이 제가 해야 하고 청소도 도맡아야 합니다. 마늘까기나 야채 손질하기 등도 협업해야 하고. 아직까지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지만 국을 어떻게 끓이고 김치를 어떻게 담그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최영미 시인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했는데, 집사람이 가사일로 고생하고 있을 때 혼자 누워서 빈둥대거나 클래식음악을 좀 알아보겠다고 고상을 떨던 그 좋은 시절, 이젠 저에게 끝났습니다.

 

 (2018.11.29)

 

 

< 2 >

 

가사노동에 대하여

 

 

그제 토요일 아들이 사는 여수에서 1박을 하고 왔는데 어제 일요일 하루 종일 집사람의 일상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아침 6시 반쯤 기상하여 저녁 7시 반에 여수에서 순천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총 13시간을 거의 주방일과 빨래, 청소로 보냈습니다. 중간에 전화를 받거나 잠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집사람이 무려 12시간을 움직이는 동안, 저는 오전에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오후에는 밖으로 나가 구봉산 등산 2시간, 지인과 카페에서 2시간을 보냈고 아들은 오전에 교회에 다녀온 후 제 방에서 책을 보거나 핸드폰에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은 쉴세 없이 노동을 하는 동안 아들과 저는 거의 놀고 있었던 것이 어제 일요일 저희 집 풍경이었습니다.

 

집사람이 이처럼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으로 소모하는 것은 성격이 너무 꼼꼼하여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주부들에 비해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특성이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상추를 씻을 때, 저는 대여섯 잎씩 한꺼번애 씻지만 집사람은 한 잎 한 잎 낱개로 두세 번을 씻은 후 식초에 담가두었다가 다시 또 헹구는 등 작업공정이 보통사람들 보다 2~3배 더 많습니다. 연한 채소를 이렇게 여러 차례 세탁하듯 하면 뭉겨질 수도 있지만 집사람은 상처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씻습니다. 세탁도 천이 엷은 옷은 손빨래를 병행하고 집안 청소도 매일 걸레질과 함께 2번 이상 닦습니다.

 

특히 어제는 아들이 다음 주에 먹을 반찬을 5가지 정도 만들었습니다. 자취하는 아들이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덜 사먹도록 하기 위해서 여수에 오면 반찬을 몇 가지 해 놓고 갑니다. 가게반찬은 달고, 기름지고 해서 몸에 해롭다며 ‘엄마표 반찬’을 만들어 주는데 이 일로 거의 한나절을 보냅니다. 이렇게 칠순 주부가 하루 종일 가사노동에 시달리다보니 나중에는 다리가 통통 붓고 삭신이 쑤시기 마련입니다. 집사람이 저녁에 자다가 꿈꾸면서 신음을 하면 저는 긴장하고 잠시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여자들이 노년에는 가장 하기 싫은 것이 밥상 챙기는 것이라 합니다. 오죽하면 하루 세끼 다 집에서 먹는 남자를 ‘삼식이 새끼’라 하겠습니까. 아직까지 가부장적 권위를 누리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사는 우리 집 남자들(남자라 해 보았자 아들하고 저, 둘뿐)은 집사람이 가사노동의 과부하로 쓰러지기 전에 가사노동의 분담에 적극 나서야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설거지는 제가 주로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침식단은 간소하니까 제가 전 과정을 준비해야 하고 요리도 몇 가지 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라면 끓이기나 미역국, 콩나물국 등 쉬운 것 말고 나물 무침이나 생선 굽기, 채소 겉절이 같은 것까지도 직접 섭렵해야 합니다. 또한 아들은 화장실을 비롯한 집안 청소를 전담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가 과연 실천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집사람의 헌신에 고맙다고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뭐 합니까. 집사람의 건강에 이상이 오면 그때는 남자들이 곱빼기로 힘들어집니다. 문득, ‘요리하는 남자’야말로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참된 남자, 멋진 남자라 여겨집니다. 노년의 행복은 ‘가사노동의 분담’에 있다는 것을 더 늦기 전에 깨닫고 실천에 옮겨야겠습니다.

 

(2022.7.11)

 

2022.7.9  여수 구봉산 네 번째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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