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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1. 철학에 이르는 길이란 이론을 배우는 과정이아니라, 그 자신과 세계를 위대한 책으로 삼아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김종엽/‘철학특강’중에서 2. 좋은 수필을 쓰기란 싶지 않다. 시적 '서정성’과 소설적 '서사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며, 그 속에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수필의 가치와 힘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수필은 소설처럼 허구적으로 지어내거나 시처럼 축약해서 결정화한 게 아니다. 깊은 우물에서 건져낸 차가운 우물물 한 모금처럼, 오래도록 부엌의 한 구석애서 가족의 아침을 지켜온 이 빠진 막사발처럼, 그렇게 곰삭혀 나온 이야기를 담은 것이 수필이다. 3.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새들처럼, 사람에게도 생계를 넘어선 다른 차원의 삶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지교헌 이미지 출처 : yes 24. com 모니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기웃거리다보니 “The Saddest Thing"이라는 음악이 나타났다. Melanie Safka가 부른 노래였다. 음악의 가사를 살펴보니 “침묵의 작별 인사”를 가리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라고 하는 것 같다. 제목에 이끌려 이런 저런 잡념이 일었다. 세상에는 슬픈 일도 많다.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결코 우연히 생긴 말이 아니고 그에 관련되는 여러 가지 신화와 전설과 예술과 철학이 만연하고 있다. 만일 인간이 슬픔을 잊지 못하고 견디지 못한다면 하루도 마음이 편안한 날이 없을 것이며 날마다 낙담과 실의의 비극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형형색색의 염세주의가 도사리고 있으며, 인간의 타락은..

Love story 2021.11.13

흙수저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흙수저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420년은 적지 않은 세월이다. 그 긴 시간동안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영웅으로 남아 자리하기는 더욱 어렵다. 미천한 천민에서 최고의 통치자까지 올라가본 시대의 풍운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는 오래된 사당에서 고요하게 가을을 맞고 있었다. 흐린 하늘아래 몇 개의 꽃바구니와 향불의 여운이 멀어져가는 그의 혼백을 붙잡아 두려는 듯. 후세사람들의 솜씨로 마련된 초상화의 눈동자가 유난히 강렬하다. 나가무라(中村)는 그의 고향이다. 오사카와 도쿄의 중간도시 나고야(名古屋)역에서 20분 거리다. 도요타 자동차 본사로 나가는 길목이다. 지금은 시내로 편입되어 도시가 되어버린 동네지만 아직 번잡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근처 노리다케(일본의 세계적 도자기회..

역사 2021.11.12

이중섭과 소와 서귀포

이중섭과 소와 서귀포 이중섭 (사진출처: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마치 살아있는 듯한 소를 어떻게 그렸을까. 또 무슨 생각으로 소라는 대상을 선정해서 그렸을까. 그리고 굵고 거친 터치로 그린 소의 그림에 마음이 뺏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중섭 화가의 많은 것이 수수께끼였다. 역사의 파도 위에서 뒤틀렸던 한 개인의 삶을 뒤늦게 돌아본다는 일은 슬프다. 이 세상에 던져진 메시지를 그때의 시간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몇 번을 방문했던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앞이었다. 흘러가버린 화가의 기억을 더듬는 늦겨울 오후는 빠르게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 바다만 고요했다. 맑고 투명해서 더욱 처연하고 바람은 불어도 공기는 포근했다. 파도 소리와 함께 벼랑을 향해 아낌없이 쏟아지는 폭포의 고함이 엄청나고, 그..

하멜 14년, 애덤스 20년

하멜 14년, 애덤스 20년 1653년, 효종 4년 시기에 은둔국이었던 조선 땅으로 낯선 이방인들이 밀려 들어왔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하멜 일행 36 명이 제주도에 표류한 것이다. 풍랑에 부서진 스페르베르호는 제주도 대정 해안에 좌초했다. 선원 가운데 반은 죽고 나머지가 간신히 뭍으로 살아 올라왔다. 제주 목사 이원진은 한양에서 내려온 박연(벨트브레)의 통역 도움으로 조사를 마치고 10개월 만에 이들을 한양으로 올려보냈다. 조선 조정은 네덜란드인들을 훈련도감, 금군에 배치했다. 덩치가 좋고 화포를 잘 다루는 특기를 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청나라가 이 사실을 눈치챌까 봐 조선은 전전긍긍했다. 사신단이 올 때마다 하멜 일행을 가두거나 남한산성 등지로 피신시키고는 했는데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

역사 2021.11.10

맥아더 장군과 두개의 동상

맥아더 장군과 두개의 동상 마닐라 항구를 떠난 선박은 풍선 주머니 모양의 마닐라만 입구를 향해 남쪽으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인구 8,000만 명의 대국 필리핀, 그 중심지이면서 2,000만 명이 모여 살고 오늘의 역사를 이어 오는 곳. 하지만 마닐라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난과 부패의 구름 속에 가려져 있는 느낌이다. 아시아의 최선진국에서 50년 만에 최빈국으로 전락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멀어지는 뱃길에서 돌아보는 항구의 빌딩들이 초라해보였다. 2시간 만에 도착한 코레히도르섬은 올챙이 모양으로 길게 누워 좁은 마닐라만 수로의 파수문 같았다. 열대 우림 속으로 찌프니 (소형지프를 개조해 만든 필리민의 대중버스)를 타고 들어가니 1890년 미국·스페인 전쟁 때 구축된 대포와 방어진..

역사 2021.11.09

하늘의 선물, 시후 롱징차

하늘의 선물, 시후 롱징차 이슬이 막 가시기 시작한 아침나절 구릉은 태양을 서서히 품기 시작했다. 초록의 이불 속으로 하늘의 빛이 타고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 포개어진 틈새 옆으로 흘러내린 녹색 차밭이 사면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산줄기를 내려오는 이랑곡선은 부드럽게 계곡 아래로 이어졌다. 신의 선물로 알려진 항저우 롱징차(용정차) 벌판은 그렇게 시간의 커튼을 열어 주었다. 시후롱징(西湖龍井)은 중국 10대 명차 중에서도 으뜸이다. 치먼 홍차, 푸얼차, 모리화차 등을 제치고 언제나 최고를 차지해 왔다. 오월 하순의 차밭은 짙푸른 색으로 변해있었다. 청명 이전에 어린잎을 따내고 두어 번 더 수확한 뒤였다. 항저우 시내에서 30분 거리를 달려왔다. 롱징차는 겹겹이 둘러싸인 항저우의 산과 호수 비경 속에서..

열하일기 기착지, 베이징

열하일기 기착지, 베이징 자금성 해자를 끼고 왼편으로 펼쳐진 치엔먼과 리우리창에는 가을 서정이 역력했다. 햇살은 엷어지고 푸르던 나무는 조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옛날 연경(현 베이징)에 들러 벼루와 붓을 사고 선진문물에 놀라워했던 연암 박지원의 여로는 붐비는 인파와 문명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아직도 성업 중인 수백 개의 문방사우 상점들은 『열하일기』의 「관내정사」 풍광 속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당시 박지원의 나이는 43세였다. 영조 때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축하 사절단 자제 군관 자격으로 먼 길을 떠났다. 이때 보고 들은 청나라 견문록을 『열하일기』로 남겼다. 압록강을 건너며 시작되는 「도강록」부터 연경과 열하를 다녀오는 「환연도중록」 까지 길 위의 여정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중국..

여행, 걷기 2021.11.09

내 안의 빛을 영접하라, 제임스 터렐

내 안의 빛을 영접하라, 제임스 터렐 인간에게 암흑은 평화보다 공포에 가깝다. 고립무원의 절망감이나 존재가 비존재 속으로 침몰하는 것 같은 느낌이 그렇다.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가상현실 미술관으로 들어서며 좁고 캄캄한 공간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늠하기 어려운 거리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느리게 흘러내리는 빛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발원지다. 손으로 푸르스름한 면을 만져 보았지만 텅 빈 공간이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안에 거대한 방이 또 하나 숨겨져 있었다. 놀라움과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강렬하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은 빛은 잠깐 사이에 나를 완전히 다른 사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시간성은 이미 지워져 속세와 ..

칼의 기억, 히젠토

칼의 기억, 히젠토 사진출처 : 컨슈머타임스 조선의 황후 민자영은 일본 사무라이 칼에 찔려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 야심 차고 지적이던 한 나라의 왕비가 낭인들에게 무참히 난자당한 사건은 세계사를 다 뒤져도 찾아보기 어렵다. 을미사변이라고 칭하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발단으로 조선과 일본은 피로써 피를 씻는 비극적 관계가 시작되었다. 궁궐 한가운데서 황후를 찌르고 시체를 옆 숲속으로 끌고가 불태운 만행은 나라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물어야 할 국가적 질문이다. 소설가 이문열의 희곡 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 를 마지막까지 차마 다 보지 못한 기억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한을 노래한 소프라노 조수미의 을 자주 듣는다. 청각으로 꽂히는 지극한 슬픔은 분노보다는 우리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의연함을 품게 한다. '..

역사 202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