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 ‘아리랑 4권’ 중에서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펑퍼짐한 산마루에는 달집이 높직하게 솟아 있었다. 수십 개의 짚단과 생솔가지로 엮어세운 달집의 생김새는 둔한 듯하면서도 듬직해 보였다. 짚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특유하게 품고 있는 질감이고 형체감이었다. 그러나 달집의 둔한 듯한 느낌은 꼭대기에 꽃힌 솔가지다발의 특이한 형상으로 색다른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다. 달집을 만든 짚단들은 집집마다 추렴한 것이었다. 살림의 형편에 따라 많이 내고 적게 내고는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었지만 살림이 궁하다고 하여 한 단도 내지 않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누가 강압하는 것이 아니었다.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오래고 긴 날에 걸쳐서 그렇게 마음 마음을 모아온 것이었다.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