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62

돼지를 모독하지 말라

돼지를 모독하지 말라 우리는 음식을 허겁지겁 많이 먹어 대는 사람들을 보고 흔히 “돼지처럼 먹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살찐 사람들을 보고 으레껏 “돼지새끼처럼 뚱뚱하다”고 해 버린다. 사람을 짐승 취급했으니 그건 분명 인격 모독이고 명예 훼손이다. 그러나 본인 듣게 하지 않았으니 죄가 성립되지 않고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그렇게 모독적으로 짐승 취급을 당하는 것은 살찐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겪는 억울함이요, 분함이요, 슬픔이요, 소외감이다. 그 풀 길 없는 외로운 감정은 우울증이 되고, 그 반감은 폭식을 불러 더 살이 찌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꼭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돼지가 정말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을까? 아니다. 그건 겉모습만 본 우리의 일방적 속단이다, 동물학자..

조정래 소설 2018.06.27

민주주의는 교실에서부터

이 변두리 학교에는 매해 신학기가 되면 고3의 전학생들이 조용하게 스며들었다. SKY 대학교를 목표로 삼아 내신 1등급을 노리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가 상위 그릅에 속하고, 부유한 집 자식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내신 1등급을 차지하기 어려운 학교에서 차지가 쉬운 동네로 전학 온 것이었다. 그건 불법인가, 합법인가. 대한민국은 엄연히 헌법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보호함과 동시에 거주 이전의 자유를 허용하는 민주주의 법치국가였다. 그에 근거한 것이니 1년에 열 번 아니라 백 번 이사해도 그 사람의 자유였던 것이다. 그렇게 전학 오는 학생들을 학교는 또 은근히 반기고 있었다. 그들이 SKY 대학교에 합격할 확률이 100퍼센트였고, 그러면 학교의 명예를 드높여 명문을..

조정래 소설 2016.08.20

수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된 이유와 해결방법은?

수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된 이유와 해결방법은? “비정규직 문제, 그건 재벌 통제와 함께 이 나라 운명을 좌우할 2대 문젯거리야. 비정규직이 해마다 늘어나 이제 정규직과 거의 같은 수로, 전체 노동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기에 이르렀어. 이건 절대로 말이 안 되는 거대한 사회적 사건이야. 자아 봐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을 절반이나 그 이하로 받는 불공평한 사태가 비정규직이라는 것 아니냐. 그런 말이 안 되는 제도가 언제부터 생긴 것이냐! 1997년 김영삼 정권 때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불리는 IMF 사태가 몰아닥친 때부터 아니냐. 나라가 망하게 된 그 사태 앞에서 긴급 처방으로 등장한 것이 비정규직이야. 나라를 구하고, 모두가 살아나야 했으니까 노동자도 합의하고, 국민도 동의한 것이었어. 그건 어디..

조정래 소설 2016.08.19

풀꽃도 꽃이다

풀꽃도 꽃이다 나는 오늘도 자살 사이트에 들어갔다. 나는 이 시간이 무지 겁나고 무시무시하다. 날마다 죽 싶은 사람들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글들은 그냥 글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도 나고 피 냄새도 난다. 그리고 귀신 울음소리도 들린다. 그렇게 끔찍스러운데도 매일 안 들어오고는 견딜 수가 없다. 나도 죽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 들어오면 꽉 막히고 꽉 눌린 것 같은 답답함과 갑갑함이 좀 풀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캄캄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 엄마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이 여기 있다. 엄마는 죽어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맘에 맞는 사람 몇을 구하게 되면 그날이 내가 떠나는 ..

조정래 소설 2016.08.17

태백산맥 - 이념·정치가 삶을 짓밟을 때

태백산맥 - 이념·정치가 삶을 짓밟을 때 내 인생의 책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이 있다. 김승옥 김주영 김훈 박경리 박완서 윤흥길 이문열 이상 이청준 장석주 조세희 최인호 한수산 황석영…. 이번엔 잘못된 정치가 이념을 종교화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멀쩡한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말하고 싶은 생각에, 최인훈의 과 조정래의 을 떠올렸다가, 후자를 택했다. 역사는 지식인의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민초들의 고통스러운 삶들 속에서 빚어진다는 사실을 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은 해방 이후 분단이 고착화돼 가는 과정,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을 거쳐 6·25전쟁이 멈출 때까지의 수난과 시련의 우리 현대사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에는 분단의 비극에 대해 새로운 비판적 반성을 ..

조정래 소설 2015.02.04

무엇이 성공인가

무엇이 성공인가 빌 게이츠는 이미 세계인이 다 알고 있는 대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부를 혼자 갖지 않고 미국인만이 아니라 세계인의 건강을 위한 재단을 만들어 어마어마한 돈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그는 참다운 부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통큰 행위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궁금해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려는 듯 많은 기자들이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꾸준한 독서는 하버드 대학 졸업장보다 낫다.” 이 대답은 언뜻 들으면 동문서답처럼 엉뚱한 것 같기도 하고, 선문답처럼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속뜻을 찬찬히 뜯어보면, ‘여러 가지 책들을 꾸준히 읽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고, 실천한 것이다..

조정래 소설 2015.01.14

‘조정래의 시선’ 중에서

‘조정래의 시선’ 중에서 중국은 우리의 경제미래뿐만이 아니라 민족의 절대 과제인 통일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예, 아주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6.25휴전협정서에는 우리나라는 빠지고 없고, 세 나라만 조인을 했습니다. 북한.중국.미국이지요. 우리나라는 전쟁당사국이면서도 그 자격이 상실되는 엄청난 역사적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일가요.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는 무조건 휴전을 반대했고, 관제데모인 궐기대회까지 뻔질나게 벌여가며 ‘북진통일’을 외쳐대게 했습니다. 그러나 휴전이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그는 마지막 배짱을 부려 휴전협정서에 조인을 거부했습니다. 그 경박하고 어리석은 단견 때문에 통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시점이 오게 되면 우리나라는 ‘국외자’..

조정래 소설 2015.01.01

어느 빨치산 아들의 눈물

어느 빨치산 아들의 눈물 “엄니넌 워째 아부지보고 욕을 헌가. 나넌 아부지가 좋고, 보고 잡은디.” 칠상이는 몸을 일으키며 야무지게 말했다. “이 문딩아, 토하 다 엎어묵었으면 엄씨 복장이나 긁덜 말어. 빨갱이질 허는 애비가 머시가 좋고, 머시가 보고 잡냐.” 샘골댁은 자신의 말에 맞추어 아들의 머리를 두 번이나 쥐어박았다. 칠상이는 또 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 따라나서지 말랑게 꼭 따라나서등마 이 웬수가 기엉코 말 씹히고 지랄이랑께. 가뿌러, 싸게 집으로 끼대가! 인자 유가라먼 씨도 징글징글허다. 문딩이 잡것이 물려받은 재산 없고, 배와처묵은 것 없는 팔자에 죽은 대끼 소작질이나 해처묵고 살 일이제 지까진 것이 머시가 잘낫다고 빨갱이질로 나서, 빨갱이질이, 아 금메, 빨갱이질 혀서 남는 것이 머시여...

조정래 소설 2014.12.09

조정래 / 태백산맥 중에서

조정래 / 태백산맥 중에서 심재모는 잠도 오지 않고, 그렇다고 혼자서 술을 더 마실 수도 없어서 전선의 하늘에 뜬 별들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이 남북을 다 합쳐 도대체 얼마나 될까. 저 별들만큼 많겠지. 휴전회담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이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뿐인데, 이 전쟁에서 이긴 것은 누구이고, 진 것은 누굴까? 원점으로 돌아와 끝나는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도 많이 죽어간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죽은 것인가? 속으로 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들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었다. (9권 238페이지)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해서 사회의 모든 분야들이 친일반민족세력에게 장악되면서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이나 양심적 사회개혁주의자들이 하나같이 반공논..

조정래 소설 2014.12.09

조정래 / 태백산맥8 중에서

조정래 / 태백산맥8 중에서 이번 전쟁에 미국의 개입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세계 16개의 나라가 유엔군이란 명목으로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그 말로만 듣고 있었던 16개 나라 군대 중에서 한 나라 군대를 만나게 되니 기분이 이상스러웠다. 그 나라가 영국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이제 미국의 들러리나 서고 있는 영국, 그건 부정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국제적 현실이었다. 수많은 식민지 침략과 함께 감행한 살인과 약탈의 인류사적 범죄를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광’으로 미화시킨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는 것을 영국은 한반도 전쟁에서 스스로 여실하게 입증하고 있었다. 많은 식민지 당에서 거침없이 살인과 약탈을 저질러 호화롭고 배부르게 살면서 영국인들은 ‘영국신사’라는..

조정래 소설 2014.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