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어느 빨치산 아들의 눈물

송담(松潭) 2014. 12. 9. 18:45

 

 

어느 빨치산 아들의 눈물

 

 

엄니넌 워째 아부지보고 욕을 헌가. 나넌 아부지가 좋고, 보고 잡은디.”

칠상이는 몸을 일으키며 야무지게 말했다.

 

이 문딩아, 토하 다 엎어묵었으면 엄씨 복장이나 긁덜 말어. 빨갱이질 허는 애비가 머시가 좋고, 머시가 보고 잡냐.”

 

샘골댁은 자신의 말에 맞추어 아들의 머리를 두 번이나 쥐어박았다. 칠상이는 또 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따라나서지 말랑게 꼭 따라나서등마 이 웬수가 기엉코 말 씹히고 지랄이랑께. 가뿌러, 싸게 집으로 끼대가! 인자 유가라먼 씨도 징글징글허다. 문딩이 잡것이 물려받은 재산 없고, 배와처묵은 것 없는 팔자에 죽은 대끼 소작질이나 해처묵고 살 일이제 지까진 것이 머시가 잘낫다고 빨갱이질로 나서, 빨갱이질이, 아 금메, 빨갱이질 혀서 남는 것이 머시여. 죄 없는 예펜네 끌려댕김서 매타작이나 당허게 허고, 새끼덜 쫄쫄이 배나 곯리고, 소작까지 띠이게 혀서 토하나 뜨로 댕기는 신세 맹긴 내 웬수야아!” 샘골댁은 하늘에 삿대질을 해대며 한바탕 푸념을 토하고는,

, 그러고 섯덜 말고 싸게 집으로 끼대가랑께!” 벌떡 일어서며 아들을 향해 팔을 치켜들었다.

 

 칠상이는 또 맞을까 봐 뒷걸음질을 치다가 돌아섰다. 옷을 입지 않은 윗몸은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그와 반대로 배는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칠상이는 울면서 긴 논두렁을 맨발로 걸었다. 울면서도 뱀을 또 만날까 조심했고, 방아개비를 발견하고는 살금살금 다가가다 놓치고 다시 울었고,

 

또 푸른 하늘을 서서히 맴도는 솔개를 올려다보며 걷다가 아버지 생각이 나서 정말 서럽게 울었다. 꿈에서만 더러 만나는 아버지를 잠이 깨서도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함께 살고 싶었다.

 

아버지가 큰 손으로 양쪽 볼을 눌러잡고 위로 번쩍 들어올려 시켜주던 서울구경도 다시 하고 싶었고,

 

바늘로 아무리 찔러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아버지의 두꺼운 발바닥을 가지고 다시 바늘 찌르기를 하며 발냄새를 맡고 싶었고,

 

마룻장이 울리도록 센 아버지의 방귀소리도 다시 듣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아버지가 그립고 서러워져 칠상이는 울음을 추슬러가며 울고 또 울고 하면서 뙤약볕 속의 논두렁을 혼자 걸었다.

 

 

조정래 / 태백산맥 5(277~278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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