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시선’ 중에서
중국은 우리의 경제미래뿐만이 아니라 민족의 절대 과제인 통일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예, 아주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6.25휴전협정서에는 우리나라는 빠지고 없고, 세 나라만 조인을 했습니다. 북한.중국.미국이지요. 우리나라는 전쟁당사국이면서도 그 자격이 상실되는 엄청난 역사적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일가요.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는 무조건 휴전을 반대했고, 관제데모인 궐기대회까지 뻔질나게 벌여가며 ‘북진통일’을 외쳐대게 했습니다. 그러나 휴전이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그는 마지막 배짱을 부려 휴전협정서에 조인을 거부했습니다. 그 경박하고 어리석은 단견 때문에 통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시점이 오게 되면 우리나라는 ‘국외자’의 신세에 놓이게 됩니다.
이승만은 6.25가 발발하자마자 서울 시민들을 버린 것은 물론이고 국무위원들도 모르게 혼자 한강을 건너 줄행랑을 쳤고, 대전에 도망 온 그는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하고 있으니 모두 안심하라는 대통령 성명을 라디오를 통해 방송하고는, 그날 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해 버렸습니다. 다리가 끊어진 줄도 모르고 피난길에 오른 서울 시민들은 어둠 속에서 속절없이 한강으로 곤두박하며 죽어가야 했습니다. 그 수가 자그마치 800여 명에 이릅니다. 그리고 후퇴하는 국군들이 퇴로를 차단당해 곤욕을 치루며 또 억울하게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비겁과 무책임을 저지른 대통령 이승만은 휴전협정서 조인을 거부해 두 번째 무책임으로 대한민국을 민족통일의 역사적 문제 앞에서 무자격자를 만드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일수록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 과제는 젊은 세대들이 짊어져야 하는 역사의 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지요.
그리고 통일 문제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친밀하고 돈독하게 해야 합니다. 통일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있어서 중국은 미국과 똑같이 비중이 큰 나라라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냉전시대의 습성으로 미국 의존주의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특히 지식인들은 미국 유일주의에 거의 다 빠져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환상이고 착각입니다. 현재 미국의 힘이 지배하고 있는 IMF에서 중국이 G1이 되는 것이 ‘2016’쯤일 거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급변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미국 의존주의에 빠져 있다가는 통일 문제는 자꾸 꼬일 수박에 없습니다.
이승만은 난해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사람입니다. 그는 국난을 당해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3대 통치자 중에 하나입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줄행랑을 쳤고,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내뺏고, 그리고 6.25 때 이승만 대통령 각하이십니다. 임금님들이 버리고, 대통령이 버린 나라를 찾겠다고 나선 것은 이름 없는 백성들이고 국민들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통치자들의 공통점은 교활하고 뻔뻔한 것입니다. 참 가상한 능력자들이지요.
‘조정래의 시선’(90~92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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