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태백산맥8 중에서

송담(松潭) 2014. 12. 9. 17:48

 

조정래 / 태백산맥8 중에서

 

 

 

 이번 전쟁에 미국의 개입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세계 16개의 나라가 유엔군이란 명목으로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그 말로만 듣고 있었던 16개 나라 군대 중에서 한 나라 군대를 만나게 되니 기분이 이상스러웠다. 그 나라가 영국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이제 미국의 들러리나 서고 있는 영국, 그건 부정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국제적 현실이었다.

 

 수많은 식민지 침략과 함께 감행한 살인과 약탈의 인류사적 범죄를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광으로 미화시킨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는 것을 영국은 한반도 전쟁에서 스스로 여실하게 입증하고 있었다. 많은 식민지 당에서 거침없이 살인과 약탈을 저질러 호화롭고 배부르게 살면서 영국인들은 영국신사라는 지극히 도덕적인 인간상을 조작해 내 자신들의 비인간적 범죄를 위장했다. 그 교활한 위장술은 세계 전역으로 수출되었고, 식민지지배를 받는 나라들의 사대근성을 가진 사이비 지식인들은 그 사실을 제창해 댐과 아울러 그들 스스로가 다투어 영국신사의 복식부터 흉내내려고 덤볐다. 양복에 나비넥타이, 중절모에 지팡이 _ 영국신사의 그 전형적인 복식은 이 땅에서 친일파들의 전형적인 복식이기도 했다.

 

(855페이지)

 

 

 글씨요. 나야 무식헌께 워째야 나라가 되는지 몰르는 사람이오. 허나 최소한도 경찰이 워째야 하는지는 쪼깐 아는 입장이오. 다 잊어뿔고 잡은 일, 말이 났으니께 한마디 허겄는디, 그 예비검속이라는 것이 경찰들이 그리 헐 짓입디여? 권 서장님은 허기 쉰 말로 지난 일잉께 잊으라고 허시는디, 우리 경찰찌리 입는다고 그 일이 잊어질 성불르요? 그 피해자가 을매고, 그 가족이 또 을맨디 그 일이 잊어지겠소? 나가 허는 말언, 나라가 허는 일은 애시당초 글러묵었고, 글러묵은 일얼 시킨다고 그대로 따라서 허는 경찰도 글러묵었다 그것이요. 우에서 시키는 일잉께 워쩔 수가 없다 허겠지요들. 고것이 워디 사람으로 헐 소리요? 웃대가리덜이야 권력 잡것다고 못된 일 억지로 시킨다 허드락도 현지에서 일허는 사람덜이 정신 채리고 허먼 그리 기가 차게 쌩사람덜 죽이지는 안혔을 것 아니것소?

 

 보도연맹 가입자덜 중에 누가 진짜배기 빨갱인지 아닌지 현지 경찰이 질로 잘 아는 일 아니겄소? 빨갱이가 아닌지 뻔허게 암시로도 우에서 죽이라고 헌께 쌩사람덜 그리 무작스럽게 죽여라? 글먼 우에서 명령 내린다고 즈그덜 엄니 아부지도 죽일 것이요? 일정 때 진 죄닦음 안 한 것도 어디헌디, 또 그런 죄까지 저질른 것이 경찰들이요. 그려서 결과가 워지 되얐소. 경찰가족이 그 가족들 손에 죽고, 시상이 새로 뒤집어진께 그 사람덜 태반이 입산혀 뿌렸소.

 

 인자 나보고 경찰복 다시 입고 그 사람덜 때려잡으라는 갑는디, 그 사람덜이 참말로 공산당이라고 생각허시오? 나넌 그리 생각허덜 않소.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으로 몰아치고 있소. 그 사실을 모르는 경찰이 워디 있소. 다 암시로도 자기덜이 저지른 죄 눈가림허니라고 나라허고 항꾼에 그 사람덜 공산당 맹글고 나스는 것이제라. 고런 앞뒤없는 사람덜하고 나가 멀라고 또 경찰질얼 해묵겄다고 나스겄소.

(888페이지)

 

 

 

 풀꾹 풀꾹 푸불꾹 풀꾹.

 어디서인가 풀꾹새가 애절한 목태움으로 울고 있었다. 강파른 보릿고개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어린 자식들을 뒤따라 죽은 과부의 넋이 이 산골 저 산골을 자식들 찾아 헤매며 우는 목쉰 울음이라고 했고, 첫날밤 정을 나누고 과거를 보러 떠난 임이 아무 소식도 없이 몇 해를 돌아오지 않아 기다림에 지쳐 죽은 여인의 넋이 임을 찾아 그리도 섧게 운다고도 했다.

 

 너무 울어 목에서 피를 토하고, 제 피를 되마셔 목을 축이며 또 운다는 목 쉰 피울음은 보릿고개 속 아리는 밤마다 지칠 줄을 몰라 풀꾹새는 4월이 다 가도록 섧고 섧게 울었다. 그런데, 새 한 마리를 두고 만들어진 두 가지 이야기는 그 내용에서 너무나 차이가 많았다. 하나는 배고파서 죽은 사연이고, 하나는 임 그리워 죽은 사연이었다. 배고픈 농민들이 지어낸 이야기와 배부른 양반들이 지어낸 이야기의 차이였다.

 

(8311페이지)

'조정래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빨치산 아들의 눈물  (0) 2014.12.09
조정래 / 태백산맥 중에서  (0) 2014.12.09
성(性)에 대하여  (0) 2014.12.09
조정래 / 태백산맥7 중에서  (0) 2014.12.09
백범 김구의 한계  (0) 2014.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