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 이념·정치가 삶을 짓밟을 때
내 인생의 책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이 있다. 김승옥 김주영 김훈 박경리 박완서 윤흥길 이문열 이상 이청준 장석주 조세희 최인호 한수산 황석영….
이번엔 잘못된 정치가 이념을 종교화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멀쩡한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말하고 싶은 생각에, 최인훈의 <광장>과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떠올렸다가, 후자를 택했다. 역사는 지식인의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민초들의 고통스러운 삶들 속에서 빚어진다는 사실을 <태백산맥>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태백산맥>은 해방 이후 분단이 고착화돼 가는 과정,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을 거쳐 6·25전쟁이 멈출 때까지의 수난과 시련의 우리 현대사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태백산맥>에는 분단의 비극에 대해 새로운 비판적 반성을 요구하는 작가의 윤리적 판단이 깔려 있다고도 평해진다. 작가는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분단 극복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한탕주의식 구호만으로는 결코 통일을 불러올 수 없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분단의 고착화에 이르게 된 과정을 되돌아보며 통일로 가는 과정을 성찰하는 데에 <태백산맥>보다 좋은 책이 있을까. <태백산맥>이 20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설로 꼽히는 것은 다행이다. 그 슬픔과 분노를 잊지 말아야 하니까.
흔히들 <태백산맥>을 분단문학의 최고작이라고 하지만, 사실 조정래를 거기에만 가두는 것은 야박하다.
조정래 문학은 민족과 역사와 분단을 말하는 데 머물지 않고 끝내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자각을 일깨운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조정래’
김한길 |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2015.2.4 경향신문)
'조정래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된 이유와 해결방법은? (0) | 2016.08.19 |
---|---|
풀꽃도 꽃이다 (0) | 2016.08.17 |
무엇이 성공인가 (0) | 2015.01.14 |
‘조정래의 시선’ 중에서 (0) | 2015.01.01 |
어느 빨치산 아들의 눈물 (0) | 2014.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