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민주주의는 교실에서부터

송담(松潭) 2016. 8. 20. 21:16

 

 

< 1 >

 

 

 

 이 변두리 학교에는 매해 신학기가 되면 고3의 전학생들이 조용하게 스며들었다. SKY 대학교를 목표로 삼아 내신 1등급을 노리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가 상위 그릅에 속하고, 부유한 집 자식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내신 1등급을 차지하기 어려운 학교에서 차지가 쉬운 동네로 전학 온 것이었다.

 

 그건 불법인가, 합법인가. 대한민국은 엄연히 헌법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보호함과 동시에 거주 이전의 자유를 허용하는 민주주의 법치국가였다. 그에 근거한 것이니 1년에 열 번 아니라 백 번 이사해도 그 사람의 자유였던 것이다.

 

 그렇게 전학 오는 학생들을 학교는 또 은근히 반기고 있었다. 그들이 SKY 대학교에 합격할 확률이 100퍼센트였고, 그러면 학교의 명예를 드높여 명문을 만들어줄 진객들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학교 발전 기금까지 내놓는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보다 더 좋은 금상첨화가 있을 수 없었다.

 

 그 전학생들은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에서 과목마다 특A급으로 꼽히는 ‘1타 강사들에게 날마다 수련을 해댔다. 그러니 그들은 너무 쉽게 반마다 1등을 차지해 내신 1등급을 확보했다. 그 치명타는 그동안 1등을 해온 토박이들에게 가해졌다.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성공적 인생을 설계했던 그들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1,2학년 때 전교 1등을 누려온 신석우는 그런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시대란 단순히 경제력의 차이로 사교육의 차이가 생겨 벌어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런 합법적 불법의 약육강식까지 동원되어 개천의 용의 씨를 말리고 들었다.

 

 강교민은 해마다 저질러지는 그 불법을 뻔히 알면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 불법은 양심적 불법이었을 뿐 법적 합법이었고, 무한경쟁의 치열함 앞에서 인간적 양심이나 도리는 가소로운 잠꼬대거나, 철없는 고상한 말씀에 지나지 않았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광화문 강론에서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재의 풍조에 맞서 싸우기 바란다고 우리 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그런 합법적 불법을 거침없이 감행하는 부자들은 교황을 향해 ㅋㅋㅋ 코웃음을 날렸을 것이다.

 

 

< 2 >

 

 

 신입생 350명을 배정받으면 입학식을 하기 전에 시험을 치렀다. 거기서 100명을 뽑았다. 그들에게만 방과후학교에 신청할 자격이 주어졌다. 그건 분명 우열반 편성 금지에 저촉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금지는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학교에 따라서 그 명칭을 다양하게 바구어 대응했다. A,B,C니 자력반이니 진출반이니, 그 작명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교육 현장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교육이었다.

 

 그건 곧 대학 입시 결과로 학교의 우열을 판가름하는 사회의 무한 경쟁의식에 철저하게 편승하고 굴종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학교 이름을 올리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내부에 특목고나 자사고를 만드는 셈이었다. 그런 경쟁의 논리를 앞세워 나머지 250명을 가차없이 내다 버리는 배제의 논리였다.

 

 인문고등학교에서 250명은 길 잃은 양이 되어야 했고, 아무 쓸모없는 인간쓰레기로 취급당할 위기에 내몰리는 것이었다. ‘단 한 명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의식으로 사는 강교민으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그들은 모자라는 인간이 아니었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능력이 다를 뿐이었다. 바른 교육, 참된 교육의 목표는 자립적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교육이란 모름지기 학생들의 개성에 따른 능력을 발견해 내고, 그 능력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 임무를 외면한 학교들은 그저 입시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 3 >

 

 

 하루가 저무는 해 질 녘이 되자 거리에는 시시각각 학생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대학 입시를 표적으로 삼는 지식을 철저하게 팔고 사는 사람들의 본격적인 야간 영업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 크기가 커질수록 가격이 어떤 기준도 없이 폭등하듯 여기서도 족집게로 이름 찍힌 강사들의 수강료는 일정액이 없이 부르는 게 값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특A급 스타 강사 또는 1타 강사로 불리는 사람들은 전임 연구원이나 연구 조교까지 두고 연간 100억에서 200억까지 벌어들인다고 했고, 전국 최고로 소문난 어떤 외고에 합격시킨 자소서(자기소개서)700만 원짜리라고 하는가 하면, 특목고 진학 컨설팅비가 4,500만 원이고, sky대학교 면접 컨설팅비가 평균 500만 원이라는 소문이 떠도는 곳이 그곳이었다. 철저한 영리 조직인 그런 사교육 시장은 전국적으로 대호황을 누려온 것이 벌써 20년을 넘었고, 거기에 쏟아져 들어가는 돈이 해마다 불어나 이제 40조 원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런데 통계청에서는 한가하게 20조 원 정도로 계산했다.

 

 성적 제자리걸음은 모든 부모들이 저지르고 있는 과욕의 당연한 결과였다. 100을 주입하면 50의 효과가 나타나니까 100의 효과를 원하는 엄마들은 200을 주입한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는 50의 결과밖에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 과학적 분석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들의 과욕은 100이 달성되는 착각에 사로잡혀 고액 과외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졸자 중에서 sky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1.5퍼센트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7,8배의 수가 같은 목표를 향해 사교육에다 서슴없이 거액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교육 재벌을 만드는데 1등 공신 역할만 하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1점에 서울대가 왔다 갔다 하는데.”

 두 학생이 떠들어대며 주문대로 가고 있었다.

 학교에서고 학원에서고 서로 책이나 노트를 빌려주고, 빌려보는 일이란 없었다. 열 군데 학원을 다닌다고 자랑스러운 듯 말하는 모습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상황이었다. 경쟁의 치열함을 그보다 실감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학생들 사이에서 책이나 노트를 빌려주지 않는 것은 일기장을 보여주지 않고, 비밀 장부를 보여주지 않는 것과 똑같은 불문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이벌 노트를 훔치거나, 찢어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애들일수록 사물함에 책이나 노트를 두고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 휴일이 지나면 사물함이 다 열려져 있는 게 괜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해서 SKY 대학교에 들어간 그들이 지적당하는 세 가지 약점이 있었다. 글을 잘 못 쓴다. 외우기만 했지 써본 적이 없으니까. 말을 잘 못한다. 주입만 받았지 토론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협동 능력이 떨어진다. 남을 제치는 데만 능했지 누구와 힘을 합쳐 무슨 일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그런 살벌한 생활을 두려워하고 우려하며 어떤 시인은 이런 시를 썼다.

 

 

 

 

민주주의는 교실에서부터

 

                                                                                       문병란

 

민주주의는  

 

교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교사는 진실을 말해야 하고

 

학생들은 그 진실을 배워야 한다

 

교단은 비록 좁지만 천하를 굽어 보는 곳

 

초롱한 눈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

 

자유로이 묻고

 

자유로이 대답하고

 

의문 속에서 창조되는 진리

 

아니오 속에서 만들어지는 민주주의

 

외우는 기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일등짜리만 소용되는 출세주의 교육

 

꼴찌를 버리는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일등하기 강박 관념에 시달리다 음독 자살하고

 

참고서 외우는 죽은 교육 싫어서 목을 매달고

 

점수에 납작 눌려 있는 초조한 가슴들

 

교실이감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친구의 목을 누르는 경쟁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이면 오순도순 정이 익어 가고

 

눈과 눈들이 별이 되는 꽃밭

 

서로의 가슴에 사랑의 강물이 흐르는

 

교실은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공동체

 

각기 다른 빛깔로 피는 꽃밭이어야 한다

 

 

 

조정래 / '풀꽃도 꽃이다 2'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