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천년의 질문2’중에서

송담(松潭) 2019. 7. 12. 21:25

 

조정래 / ‘천년의 질문2’중에서

 

 

< 1 >

 

 

 

 

 

 

 

 장우진은 망설임 없이 서점으로 달려갔다. 수십 가지 책이 떠올랐지만 우선 세 가지로 압축했다. 처음 골라 든 것이 피천득의 인연이었다. 두 번째가 법정의 텅빈 충만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책은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스님 돌아가시면서 스님 책들은 다 절판됐잖아요. 스님께서 그리 유언하셔서."

 

 점원 아가씨가 좀 서운하다는 듯 얼굴을 약간 찌푸리며 말했다.

 '아하, 그렇지 참. 왜 이리 깜빡깜빡하는 게 많냐. 나도 이제 늙어가는 거야?'

 장우진은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장우진은 평소보다 좀 일찍 집에 들어가 텅빈 충만을 찾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방 양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책꽂이들 그 어디쯤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책은 보이지가 않았다. '업은 아이 3년 찾는다'고 했던가 무슨 책이든 찾으려고 하면 어디로 숨어버려 안 보이는 것이다. 텅빈 충만도 한바탕 소란을 피워 꽃혀 있던 데가 아니라 그 앞 빈자리에 네댓 권씩 포개져 있는 데서 찾아냈다.

 

 장우진은 세 권의 책을 펼쳐놓고 책상에 앉았다. 황 검사는 책 이름들을 핸드폰에 찍어달라는 것이었지만,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게 그에게로 가는 마음이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가슴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 그런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처럼 큰 기쁨은 없었다.

 

 장우진은 피천득의 인연을 펼쳤다. 하얀 면지 윗부분에 사인펜으로 큼직하게 '황원준이라고 썼다. 그런데 펜이 멈추어졌다. 그담에 뭐라고 써야 할 것인지 마땅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건 '검사'라고 쓰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검사' 다음에는 '' 자를 붙여야 하는데, 그리되면 그가 '검사님'이기 때문에 책을 준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어서 싫었다. 그는 '검사 빼고!' 하고 결정했다. 그리고 이름 뒤에 ''만 붙였다. 그건 검사 아닌 인간 황원준에게 책을 줌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면지 아래에다가 자신의 이름을 쓰고 그 뒤에 겸손하게 드림이라고 썼다.

 

 그래놓고 보니 가운데 텅 빈 공백이 너무나 넓었다. 그는 몇 번 망설이다가 자신이 평소에 마음에 담아온 잠언들로 그 공간을 채우기로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나눌 인생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

 

 책이란 갈고닦은 영혼의 결정체가 담긴 그릇이다.

 

 

 두 번째로 법정의 텅빈 충만을 펼쳤다. 스님의 다른 수필집도 여럿 있지만 그 제목이 지금의 황 검사에게 다소나마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골랐던 것이다. 위아래 이름을 쓴 다음 다시 공백을 채웠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의 하나는 남과 자기를 비교해가며 자꾸 불행을 키우는 것이다.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뿐이다.

 

 

 

 세 번째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펼쳤다.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려가는 노정이다.

 

 인생이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

 

 

 여기 세 권의 책을 골라 보냅니다. 이 세 분은 우리나라 3대 수필가로 받들어도 크게 그릇됨이 없을 것입니다. 세 분의 책은 그 향기와 냄새와 체질이 다 각각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인생과 삶에 대한 깊고 넓은 통찰과 해안은 같은 수위로 출렁입니다. 저의 독서 경험을 통해 얻고 깨달은 게 많아 선물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거듭거듭 읽으시며 생각하고, 생각이 쌓여 쓰고 싶은 욕구가 넘칠 때 펜을 잡으면 어느 만큼 바라는 글이 엮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그득하게 차는 글이란 그리 쉽게 태어나주질 않습니다. 그러나 초조해할 것 없이 또 읽는 겁니다. 그 되풀이 속에서 스스로 흡족해지는 글이 얻어지게 됩니다. 느린 소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천 리에 이르듯이.

 

 어느 연로한 소설가가 평생의 화두로 삼아 책상 앞에 써 붙인, 지극히 평범한 듯하면서도 서늘한 바람이 일게 하는 경구를 받아다가 저의 책상 앞에도 붙여놓았습니다. 그 꾸밈새를 그대로 흉내내 여기 적어 보냅니다.

 

 

 문학, 길 없는 길

 

 읽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쓰고 쓰고 또 쓰면 열린 길

 

 

 '길 없는 길'이란 불교의 화엄경이 품고 있는 말이고, '문학''인생'으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원래는 불가의 ''를 이름입니다.

 

 너무 외로워하거나 너무 고달파하지 마십시오. 바라보는 곳이 같으면 마음은 늘 함께하는 것입니다. 건강하시기를.

 

 

< 2 >

 

 

 

시간강사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참으로 막막하고 찹찹할 뿐이었다. 고석민은 14년 동안 시간강사로 떠돌면서도 굳건히 잡고 있었던 꿈이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전임교수가 될 수 있다!’

 이 부동의 믿음은 시간강사로서 겪어야 하는 모든 고달픔, 모든 괴로움, 모든 모멸감, 모든 패배감을 견디고 참아내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제 그 믿음이 산산조각 나고 만 것이다.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약간의 시차만 있을 뿐 시간강사 대량학살에 나섰으니 대항할 방법도 피할 길도 없었다.

 

 그래도 '시간강사 처우개선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될 때까지가 좋았었다. 모든 대학들은 시간강사들을 공사장 날품팔이처럼 홀대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처럼 푸대접했다. 시간강사들이 받는 보수는 전임교수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아 연봉이 겨우 1천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 학기 보장이 전혀 없었고, 방학 때는 그나마 빈주먹이 되어야 했다. 그야말로 갈데없는 일용직 노동자의 신세였다.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아내의 벌이가 끊기면서 더욱 나날의 삶은 무거웠고, 버거웠고, 지겨웠다.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교수 식당을 피해 학생 식당의 구석 자리에 앉았을 때, 설렁탕 한 그릇 값이 너무 비싸 편의점에서 뺏뻣한 빵 한 쪽과 우유 한 팩으로 점심을 때울 때, 갑자기 내리는 늦가을 비를 피할 우산을 살 돈이 없어 온몸이 비에 젖어 으실으실 파고드는 한기에 몸을 떨 때, 고학력 저임금의 시간강사 비애는 깊었고, 문득문득 삶의 비감이 사무치고는 했다.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가슴 저 밑바닥에 그런 절망감으로 굳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 3 >

 

 

검사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거 우선 애들이 문제잖아요. 몇 살, 몇 살이죠?"

 "애들요? 저 아직 미혼인데요."

 황 검사가 어이없는 표정을 하며 어색스럽게 웃었다.

 "예에? 아니, 다른 데도 아닌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서른이 훌쩍 넘도록 장가를 안 갔다구요? 이거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요? 마담뚜들이 가만두었을 리가 없는데, 그 무지막지한 공세를 어떻게 피하고, 막아냈지요?"

 장 기자가 두 손으로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정색을 하고 다가앉았다. 새로운 취재 거리라도 만난 듯.

 

 "슬쩍 얘기 피하지 말아요. 마담뚜들이 열쇠 주렁주렁 달린 열쇠고리 흔들며 덤비는데 그걸 왜 골라잡기 안 했어요? 그것만 잘 골라잡았어도 이렇게 천 리 밖으로 귀양살이 안 떠날 수 있었을 텐데."

 

 ", 물론 저한테도 마담뚜들이 정신없이 덤벼들었죠. 그래서 반은 흥미 삼아, 반은 진지하게 여자들을 만나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마음에 드는 여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 부잣집 딸들은 그런대로 교양을 갖춘 여자도 있었고, 인물이 잘생긴 여자도 있었고, 학벌이 좋은 여자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완고한 보수 의식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사회심리학자가 부자들일수록 공감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했어요. 그 사람들의 보수 의식이 바로 그 공감의식의 결핍이었어요. 가난한 사람이나 약자들에 대해서 인정이나 배려 같은 것이 아주 인색했고, 무시하는 눈치가 언뜻언뜻 보였어요. 그리고 그 반대로 어딘가 도도한 느낌, 으스대는 느낌 같은 것이 온몸에 밴 것처럼 느껴져 참 거북하고 마땅찮고 그랬어요. 모르죠, 그건 가난하게 살아온 저의 온몸에 밴 열등감의 반작용일지도. 저는 그 지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돈에 팔려가서 평생 호의호식하며 검사의 막강한 권력으로 처가 쪽 호위 무사 노릇을 충실히 해준다고 치자. 그럼 공감 의식이 결핍되고, 사람 무시하는 것이 체질화된 며느리가 내 아버지 어머니를 시부모로 제대로 모실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 앞에서 저는 전혀 자신이 없었어요. 그건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어요. 저의 선배 검사들 중에 제가 앓고 있는 고민을 현실적 가정 불화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거든요. 자기 아버지 어머니는 며느리한테 푸대접받고 사는데, 자기는 처가 쪽만이 아니라 장모 친정 조카들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말썽들까지 다 뒷감당을 해야 하는 팔자라니, 부잣집 사위의 말 못 할 비애지요. 저는 고심고심하다가 부잣집 사위 되는 것을 단념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마담뚜들 사이에 그 소문이 퍼지면서 저는 자유로워졌고, 매일 검사 일에 쫓기다 보니 여자 만날 기회도 별로 없이 해는 자꾸 바뀌고, 마음 끌리는 여자는 눈에 띄지 않고 하다보니 서른넷이 되고 말았네요. 이런 일 당하고 보니 장가 안간 게 다행이기도 하구요."

 

 황 검사는 목이 마른 듯 반나마 남은 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거 참, 실감 나는 한 편의 드라마네요. 황 검사님과 비슷한 경우의 검사 몇 분을 제가 알고 있어요. 그분들의 공통점은 부자는 아니지만 처가 쪽 스트레스 없이 마음 편하게 산다는 것이었어요. 건물주에 외제차 모는 부자로 살면서 늘 처가 쪽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검사들하고는 대조적이죠. 만약 제가 검사였더라도 자유 쪽이었을 것 같아요."

 

 조정래 / ‘천년의 질문2’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