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모독하지 말라
우리는 음식을 허겁지겁 많이 먹어 대는 사람들을 보고 흔히 “돼지처럼 먹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살찐 사람들을 보고 으레껏 “돼지새끼처럼 뚱뚱하다”고 해 버린다. 사람을 짐승 취급했으니 그건 분명 인격 모독이고 명예 훼손이다. 그러나 본인 듣게 하지 않았으니 죄가 성립되지 않고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그렇게 모독적으로 짐승 취급을 당하는 것은 살찐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겪는 억울함이요, 분함이요, 슬픔이요, 소외감이다. 그 풀 길 없는 외로운 감정은 우울증이 되고, 그 반감은 폭식을 불러 더 살이 찌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꼭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돼지가 정말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을까? 아니다. 그건 겉모습만 본 우리의 일방적 속단이다, 동물학자들이 많은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동물들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먹이를 제 마음대로 다 먹고 돌아설 때 바로 위 해부를 해본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에 학자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모든 동물들의 위에는 먹이가 80퍼센트 정도밖에 차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어찌된 일인가 동물학자들의 두 번째 놀람은 모든 동물들이 ‘배부르기 전에 숟가락 놓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 숟가락 놓기의 실천은 동물들의 지혜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에게는 그 자연의 섭리가 작동되지 않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는 꺽꺽거리면서 소화제를 먹어 대고, 결국은 병이 되도록 뚱뚱하게 살이 찌는 것일까. 하늘은 인간에게 식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자연의 섭리를 주지 않는 대신에 소화제를 만들 수 있는 지혜를 준 것인가. 이 점은 풀릴 길 없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다. 아무튼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뚱뚱한 사람의 비유로 무심코 돼지새끼 운운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엄연히 돼지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식욕을 이성의 힘으로 통제하지 못한 인간 역사의 비극은 참으로 오래고 길다. 서양인들이 그리스와 함께 자랑하는 거대 제국이 로마이다. 무력을 앞세워 줄기차게 영토 확장을 해 나가던 그들은 결국 지배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자 침략을 멈추었다. 그때부터 로마 제국은 서서히 병들어 가기 시작했다. 땅은 넓어 먹을 것은 넘치고, 잡아온 남녀 노예들은 많고, 전쟁할 필요가 없는 귀족들은 밤마다 향락에 빠져들었다. 예쁜 노예들을 발가벗겨 사우나를 즐기고, 가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술과 고기를 맘껏 먹으며 성희에 빠져들고, 그것도 지루해지면 원형극장에 나가 남자 노예들의 혈투를 즐기고, 그들은 끝없는 향락의 늪으로 침몰해 가고 있었다. 그들이 연출한 향락의 극치는 술과 고기를 먹다먹다 더 못 먹겠으면 손가락을 넣어 토해 내어 속을 비우고는 다시금 먹고 마시는 것이었다. 그들이 토해 낸 냄새 지독한 토사물을 큰 그릇에 받아 내는 것은 경비를 서는 남자 노예들 이었다. 배고픈 노예들은 그 토사물을 받아 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로마 제국은 귀족들의 그 밤낮 없는 향락 속에서 서서히 기울어져 가고 있었고, 그들의 작태가 점점 넓게 소문나면서 백성들은 성난 바다로 변해 파도를 일으켰던 것이다. 로마 멸망의 여러 요안들 중에 인간의 통제되지 않는 추한 식욕이 한몫 톡톡히 한 사례다.
조정래 조재면 /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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