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에 대하여 송경희는 한사코 김범우와의 정사 기억만을 붙들려고 애썼다. 그 기억은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황홀하면서도 명료해 걸음걸이를 한결 가볍고 수월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난처한 점이 있었다. 얄궂게도 그 기억은 눈을 감고 서야만 환하게 재생되었고, 그 감각의 황홀함도 살아올랐다. 그 행위 자체가 눈을 감기게 하는 것이라서 그러는 것일까. 눈을 감고 걷노라면 그때의 안개밭 같기도 한 혼미함이, 꽃밭 같기도 한 현란함이, 별밭 같기도 한 찬란함이, 파도떼 같은 격렬함이, 여름 모래밭 같은 뜨거움이 남자의 숨결과 체취와 동작에 뒤섞여 휘돌고 맴돌고 소용돌이치는 것이었다. 누가 성을 추하다고 했는가. 누가 성을 죄악시 했는가. 성만큼 깨끗한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가. 성만큼 순수한 작업이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