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태백산맥1' 중에서

송담(松潭) 2014. 12. 7. 13:01

     

 

조정래 / '태백산맥1'중에서 

 

< 1 >

  

 다 똑같은 사람끼리 어찌 차등이 있어야 되겠느냐.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듯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은 것이다. 양반이 따로 없고 상놈이 따로 없다. 그건 양반이란 것들이 저희들 좋게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마찬가지로 지주라는 것도 따로 없고 소작이란 것도 따로 없다. 지주라는 것들이 소작인은 대대로 소작인이 될 수밖에 없도록 소작법을 악질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주는 영원히 지주로 떵떵거리고 소작인은 영원히 소작인으로 배를 곯게된다.

 

 그 많은 소작인들이 비참한 생활을 면하고 모두 평등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봐라. 양반이란 것들은 그 많은 백성들의 피를 빨며 배를 불리다가 나라를 빼앗겼고, 다시 일본놈들과 작당해서 일본놈들의 보호를 받으며 같은 민족을 짐승취급하고 있다. 일본놈들보다 더 나쁜놈들이 그놈들인지 모른다. 일본놈들을 이땅에서 몰아내고 지주놈들을 없애는 것은 한목에 해야 될 일이다.

(151페이지)

 

< 2 >

 

 미군정은 여운형의 조선인민공화국 부인, 친일파 핵심세격인 한민당의 옹호, 민족반역세력인 군.경찰 출신들의 재등용 비호, 공산당 활동의 불법화. 청년당 구성과 백색테러 감행, 공산당원들의 무차별 체포와 조직 파괴공작,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폭력행위를 조직적이고 단계적으로 시행해 왔던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남로당은 지하활동 속에서도 수난과 피해로 얼룩진 세월을 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차별한 폭력 앞에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또다른 폭력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제국주의적 지배술수에 말려든 것일 수 있었고, 군정이 더 가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타당성과 근거를 만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169페이지)

 

< 3 >

 

 그 민족에는 일체의 정치성이 배제되어야 합니다. 아니, 더 확실하게 말해 그 민족 아래 모든 정치이념들은 단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국과 소련에 점령당해 있기 때문입니다. .소는 자기네들 이익추구를 위해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갈려 이념을 먼저 선택하면 우리 민족은 결국 분열밖에 할 게 없다 그겁니다,

(186페이지)

 

< 4 >

 

 

역사(驛舍) 양옆으로 길게 드리워진 탱자나무 울타리로 눈길이 갔다. 잎이 거의 다 떨어진 탱자나무의 성긴 가지 사이로 서너 명의 코흘리개들 모습이 얼비쳐보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어린것들의 조잘거림도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무수한 가시가 돋아 있을 가지 사이사이에 샛노란 탱자들이 매달려 있었다. 가시에 찔리지 않을 자리에 열린 것들은 벌써 다 따가버리고 가시 사이에 열린 것들만 남아 있는 것이다. 손쉬운 데 달린 열매들은 노랗게 익어보지도 못하고 진초록 몸의 아기열매 때 벌써 코흘리개들 손에 들어가 구슬치기의 구슬 노릇을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꼬마들은 가시 사이에 매달린 탱자들을 따려고 열중해 있는 것이었다. 김범우도 어렸을 적에 억센 가시에 손을 찔려가면서도 한사코 탱자를 따내려고 애를 썼었다. 곰보딱지로 울퉁불퉁하게 못생긴 유자에 비해 탱자는 매끈하게 잘생겼으면서도 별로 쓸모가 없었다. 향기도 유자만 못했고, 맛은 더구나 비교가 되지 않았다. 몇 번 굴리고 던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발로 밟아 터뜨리거나 시궁창 같은 데 처넣었다. 그러면서도 한사코 탱자를 딴 것은 그 샛노란 색깔의 동그란 생김에 이끌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탱자나무는 대부분 서민 집들의 앞울타리 노릇을 했고, 대나무는 뒷울타리 노릇을 했다. 억센 가시를 가지마다 촘촘히 달고 있는 탱자나무는 그 생김과는 다른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옛날에 자식 다섯을 데리고 과부가 살았다.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이 없는 살림살이는 혼자의 힘으로 아무리 뼈가 휘도록 일을 해도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몇 년을 이 앙다물고 실아낸 과부는 더는 견디질 못하고 병이 들어 눕고 말았다. 그대로 굶어죽게 된 형편이었다. 그 소문이 나자 하루는 어떤 노파가 찾아왔다. 산 너머 부잣집에 큰딸을 소실로 보내면 논 닷 마지기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큰딸은 열다섯 살이었다. 과부 어미는 딸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어서 노파가 대신하기로 했다. 노파의 말을 들은 처녀는 하룻밤 하루낮을 운 끝에 그리 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노파한테 내세운 조건이 있었다. 닷 마지기의 논 대신 그 값에 해당하는 쌀을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조건이었다. 처녀는 쌀을 받은 날 집을 떠났다. 늙은 부자와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저녁 처녀는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다. 늙은 부자는 처녀의 죽음을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속았다고 펄펄 뛰며 당장 쌀가마를 찾아오라고 불호령을 쳤다. 하인들이 부랴부랴 처녀의 집으로 갔으나 식구들은 간 곳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늙은 부자는 더욱 화가 나서 처녀의 시체를 묻지 말고 산골짜기에 내다버리라고 명령했다. 저런 못된 것은 여우나 늑대한테 뜯어먹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의 시체는 정말 내다버려졌다. 그런데 그날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며 처녀의 시체를 업고 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건 처녀와 남몰래 사랑을 나누어왔던 사내였다. 사내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평장(平葬)을 했다. 그런데 다음해 봄에 그 자리에서 연초록 싹이 터올라왔다. 그 싹은 차츰 자라면서 몸에 가시를 달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때서야 그것이 애인의 한스런 혼백이 가시 돋친 나무로 변한 것을 알았다. 아무도 자기 몸을 범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몸에 가시를 달고 환생한 애인의 정절에 감복한 사내는 평생을 혼자 살며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산지사방에 나무 심는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김범우가 어렸을 적에 무심코 들어넘긴 그 전설을 무엇인가 깨우치듯 떠올린 것은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게 된 어느 날이었다. 그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농경사회의 부와 빈곤이 고질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기름진 평야지대에서 생성된 서민이나 소작인들의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P.184,185)

 

< 5 >

 

들몰댁은 어머니가 깨워서야 일어났다. 방 안에는 남동생네 식구들과 함께 두 자식이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엄니!」 작은아들이 와락 안겨왔다. 여덟 살 먹은 큰아들은 그래도 나잇값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눈만 껌벅이며 앉아 있었다.

「길남이 니도 이리 오니라.」 들몰댁이 불러서야 큰아들은 미적미적 가까이 다가앉았다. 들몰댁은 두 아들을 양쪽에 끼고 안았다. 양쪽 필에 그득하게 차는 그 부피감과 함께 텅 비었던 가슴도 뿌듯하게 차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 새롭게 솟음하는 힘이었다.

「누님, 몸은 잠 어떠시오?」 남동생이 인사를 겸해 물어왔다.

「괜찮허네, 무담씨 동상헌테 페가 많네.」 들몰댁은 그때서야 인사치레를 했다.

「폐는 무슨 폐라. 요렇게 만낸께 더 존 것이 웂소.」

「동상댁, 미안허시.」 들몰댁은 올케에게도 인사를 했다.

「성님, 무신 말씸이다요. 다 성제간 일인디라.」

「그려, 그려. 얼렁 밥 묵자. 다 식는디.」 구산댁은 시큰해진 콧등을 문지르고는 윗목에 놓인 밥상을 끌어당겼다.

「엄니, 인자 암디도 가지 말어.」 작은아들이 가슴으로 파고들며 말했고, 들물댁은 작은이들을 꼭 껴안으며, 내일은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고읍들에는 아침안개가 자욱하니 퍼져 있었다. 변소를 다녀나온 들몰댁은 낮게 드리워진 안갯발을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고읍들에 내리는 안개는 언제나 무릎 높이로만 잠겨 있다가 제석산의 긴 등성이에서 햇살이 곧게 뻗어내리기 시작하면 어디론지 홀홀히 자취를 감추고는 했다. 이맘때 서리는 안개는 봄안개와는 달리 얇고 맑은 것이 이상스럽게 슬펐다. 들몰댁은 처녀 적부터 가을안개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지금 안개를 바라보고 있는 들몰댁의 마음에는 처녀 적의 얄궂은 슬픔 대신 두꺼운 근심이 쌓이고 있었다.

 

「성님, 더 푹 주무시지 머 할라고 요리 일찍 일어나셨소.」 올케가 보리쌀이 담긴 함지박을 들고 옆에 와 있었다.

「많이 잤네, 햇살 피지먼 가봐야제.」

「아니어라, 몸도 성치 않을 것인데 며칠 푹 쉬었다 가시씨요.」

「말만이라도 고맙네. 자네 집 살림 내 뻔히 아는디 지금꺼정 축낸 양식도 솔찮을 것이네.」

「참 성님도…」 올케는 함지박으로 눈길을 떨구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라고는 오두막 한 채뿐인데, 소작을 부치고 사는 남동생네 살림살이도 물으나마나 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남동생이 워낙 실하고 올케가 일손이 엽럽해서 그나마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처지였다. 모두가 군입 하나 늘어나는 것이 가슴 철렁하는 아슬아슬한 살림살이들이었다.

「어이 나헌데 맘 쓰지 말고 얼렁 가서 밥허소. 또 들일 나가야 헐 것인디.」

「야아, 성님도 방에 들어가시씨요. 인자 아칙바람이 쌀쌀헌디.」

「어이, 고맙네.」

 

올케는 절구통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고, 들몰댁은 올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한기를 느끼며 팔짱을 끼었다.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10월이 다 가고 있었다. 가을이 감빛으로 여물고, 아침저녁으로 첫추위가 비치기 시작할 때였다. 부자들에겐 더없이 느긋한 계절이지만 가난뱅이들에겐 추위가 먼저 문안하는 계절이었다. 다리가 몽톡한 갈빛의 재래종 암탉이 절구통 쪽으로 뒤뚱거리며 달려가고 그 뒤를 서너 마리의 병아리가 쪼르르 따라가고 있었다. 절구질을 할 때 튕겨나오는 보리알을 조으려는 것이었다. 올케는 허리힘 좋게 절구질에 열심이었고, 암탉과 병아리들은 절구통을 분주하게 맴돌고 있었다. 들몰댁은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수탉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것일까. 들몰댁은 자신이나 두 자식의 신세가 저 암탉과 병아리들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운차게 절구질을 하고 있는 올케가 그지없이 행복해 보이는 것이었다. 많든 적든 남편이 땀 흘리고 여자가 뒤에서 거들어 장만한 양식으로 식구들의 끼니를 준비하는 것은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의 예사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들몰댁에겐 그 예사스런 일이 새삼스럽게 부러움이 되고 있었다. 여태껏 그런 일이 없었던 탓만이 아니었다. 지난일이야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기란 어려울 것 같은 예감으로 마음은 춥고 신세가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남편이 미친 바람처럼 떠돌아도 시아버지 모시고 자식들을 키워내며 꿋꿋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남편이 제자리로 돌아오리라는 기약과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들몰댁의 마음속에서는 그 기약과 믿음이 조각조각 금이 가고 있었다. 남편은 너무나 큰 죄를 저질렀고, 경찰의 서슬은 언제까지고 그 죄를 용서할 것 같지가 않았다. 설령 남편이 생각을 고쳐먹는다 해도 경찰이 남편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자신이나 자식들의 신세는 천생 수탉 없이 절구통을 맴도는 암탉과 병아리들의 꼴일 수밖에 없었다. 들몰댁이 이렇게 마음이 슬퍼지고 앞길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는 결혼 후 처음이었다.

 

가을 농가의 이른 아침밥을 아이들에게 먹인 들몰댁은 곧 떠날 채비를 했다. 시아버지 안부가 조급해서도 더 뭉그적일 수가 없었다.

「누님, 앞으로 고상이 더 심해져도 맘 독하게 묵고 살아야 쓸 것이요. 나가 머 알까마는, 나라에서 공산당은 역적 다루대끼 헐 꺼라는 소문이 짜허요. 자형의 앞길도 앞길이지만 내 맘으로는 누님이나 어린 조카 앞날이 더 걱정시럽소. 나나 좀 잘살먼 몰르것는디. 참말로 속만 타요.」 아버지가 없는 친정에 어른은 역시 남자인 동생이었다. 말만이라도 고마워 들몰댁은 목이 메었다.

「동상, 고맙네, 언제라고 그 뒤 빠진 인종 믿고 살았드랑가. 워디서 총을 맞어 죽든 굶어서 죽든 내 모를 일이네. 내사 사대육신 성헌께 무신짓얼 혀서라도 새끼덜 굶기기야 허겄능가.」 들몰댁의 입에서는 마음보다 몇 갑절 더 심한 말이 나왔다.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들길에 아침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변색해 가는 가을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에 햇빛이 반짝였다. 그 이슬들은 머지않아 무서리로 내릴 것이고 그러면 거울이 시작될 것이다. 이슬을 차며 걷고 있는 들몰댁의 가슴은 이미 겨울이었다.

 

「엄니」 옆에서 묵묵히 따라 걷고 있던 큰아들 길남이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어린애답지 않게 착 까라져 있었다.

「워쩌?」 들몰댁은 왠지 켕기는 마음으로 대꾸했다.

「아부지가 하는 일이 워째 나쁘다요?」 길남이가 불쑥 한 말이었다.

들몰댁은 얼른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린것의 물음이 엉뚱하기도 했고, 어린 소견에 제 아버지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니 지끔 무신 소리 허는겨? 사람들을 그리 많이 쥑였응께 나쁘고, 나라가 금하는 일얼 헝께 나쁘제.」

「엄니 생각에도 아부지가 그리 나쁘요?」 큰아들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들몰댁의 가슴은 섬뜩해졌다.

「참말로 쥐방울만 헌 것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니가 고런 소리 자꼬 허먼 우리 식구 워처케 되는지 알기나 허냐? 또 그런 소리 헐껴, 안 헐껴?」 들몰댁은 걸음을 멈춰서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아들은 전혀 겁을 내지도 않고 자신을 말똥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싸게 대답혀. 그런 소리 또 혈껴, 안 헐껴!」 들몰댁은 발까지 굴렀다.

「긍께 아무도 안 듣는 디서 말혔제라.」 아들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들몰댁은 보았다. 큰아들 길남이는 어제부터 그 말을 참아온 모양이었다. 국민학교 2학년인 길남이는 철부지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눈치로 소문으로 알 만큼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는 애가 굳이 그 말을 꺼낸 것을 보면 며칠 전부터 별러온 모양이었다. 길남이는 아버지의 정을 거의 모르고 자랐다. 그러면서도 제 아버지 편을 드는 것이었다. 들몰댁은 그런 아들이 가엾기도 했고 대견하기도 했으며, 핏줄이라는 것은 역시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길남아, 니넌 공부만 열심히 혀. 어런덜이 하는 일에 아는 척 말고 그저 공부만 열심히 혀. 고것이 니가 할 일인께. 알아듣것냐?」

큰아들은 대답을 하지 않고 느리게 고개만 끄덕였다.

 

(P.278~282)

 

< 6 >

 

들몰댁은 방죽의 비탈을 구르듯이 내려갔다. 갈숲은 흰 꽃술을 달고 무성했다. 들몰댁은 갈숲을 휘젓기 시작했다. 파리떼들이 어지럽게 날아오르고는 했다. 대개 갈대줄기들이 부러져 있는 자리에서였다. 그 자리들은 방죽에서 총을 맞고 비탈을 굴러내린 시체들이 누웠던 곳일 것이다. 파리떼들은 거기에 괴었을 피를 빨기 위해서 몰려들었을 것이다.

“저 여자 왜 저러는겨?”

“보면 모르남? 뻔허제”

“몰라서가 아니라 갈밭에는 인자 시체가 하나또 웂다는 말이시”

“냅두소, 말해 줘도 소양웂을 것잉께, 지 눈으로 옳다는 것을 확인헐때꺼정 저러고 댕겨야 하네.” 방죽 위에서 두 남자가 들몰댁을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들몰댁은 억센 갈잎에 손등이 찢겨 피가 맺히고 얼굴이 긁히고 하면서도 정신없이 갈숲을 헤치고 다녔다. 그러나 어디에도 시아버지의 모습은 없었다. 시아버지는 아직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반짝하는 불빛처럼 떠오른 생각이었다. 누가 잘못 알고 시신을 거둬갔으면

어쩌나, 먼저의 불빛을 꺼버리는 생각이 잇따랐다. 들몰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방죽으로 올라가야 했다. 들몰댁은 휘적휘적 갈숲을 헤쳤다.

 

방죽 위에 즐비하게 놓인 관들은 하나같이 나무의 하얀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옻칠은 아니더라도 먹칠이 된 관마저 하나도 끼여 있지 않았다. 옻칠이 비단옷이라면 먹칠은 광목옷이었고, 나무의 속살 그대로인 흰색은 옷을 입지 못한 발가숭이 모습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부자들은 죽음을 담는 집까지 옻칠로 치장을 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값싼 송판만으로 하얀 죽음의 집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얀 관들 위에 스산한 가을햇살이 하얗게 내려덮였고, 관들을 에워싸는 여인들의 곡성도 하얗게 증발하고 있었다.

 

들몰댁은 헝클어진 머리칼과 흐트러진 매무새로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는 그녀의 눈에는 하얀 관들도, 비통하게 울고 있는 여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꿈에서 본 시아버지의 모습만이 어릿거리고 있었다.

 

관 하나가 지게에 지워져 떠나갔다. 그 뒤를 서너 사람이 흔들리며 따라갔다. 갈대가 서로 몸을 비벼대는 서걱거림이 햇살만큼 투명하게 울리고, 그 소리에 놀란 것처럼 갈꽃들이 흰 물결을 이루며 떨었다. 또 관 하나가 지게에 지워져 떠나갔다. 그 뒤를 아이까지 낀 서너 사람이 어지럽게 따라갔다. 밀물지고 있는 위를 조그만 물새가 긴 부리를 햇살에 반짝이며 돌팔매처럼 빠르게 날아갔다가 되돌아오고는 했다. 다시 관 하나가 지게에 올려져 방죽을 따라갔다. 그 뒤를 젊은 여자 하나가 흐느끼며 따르고 있었다. 관이 하나하나 떠나고, 밀물이 썰물로 바뀌어 있을 때 방죽 위에는 머리에 해를 인 들몰댁만이 오두마니 서 있었다.

 

들몰댁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그곳을 떠나고 있었다. 검정 고무신에는 진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소화다리 쪽으로 걸었다. 들몰댁은 경찰서를 찾아갔다. 하판석 영감님을 무수히 뇌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떠밀어냈다. 그녀는 북국민학교를 찾아갔다.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떠밀어냈다. 어디에서도 시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들몰댁은 무엇에 끌리기라도 하듯 다시 방죽을 향해 걸었다. 방죽과 갈숲에는 가을의 하루가 저무는 스산한 적막만이 가득 차 있었다. 들몰댁은 다시 갈숲을 헤치기 시작했다. 꼭 미친 것 같은 몸짓이었다. 갈숲을 헤치다 헤치다 들몰댁이 방죽의 비탈에 지쳐 쓰러졌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했다.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처럼 하늘이 출렁이는 것을 느끼며 들몰댁은 잊고 있었던 아이들을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고구마 두 개씩으로 점심을 때운 새끼들이 배가 고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들몰댁은 풀포기를 움켜잡으며 몸을 일으키려 힘을 모았다. 들몰댁이 동구에 들어선 것은 어둑어둑해서였다. 그녀는 비척거리며 고샅을 돌았다.

 

(P.285~286)

 

< 7 >

 

안창민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이러한 투쟁의 전환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 현재와 같은 무장상태로 야산대 결성과 공개투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무장이라는 것은 소총이 겨우 3할 정도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전부 대창이나 농기구에 의존한 원시무장 아닙니까? 소총도 탄알 확보가 문제고요” 그는 어느새 염상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염상진은 안창민다운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답하기가 곤혹스러웠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인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지적했소. 적에 비해 우리의 무장상태는 형편없이 빈약한 게 사실이오. 무장상태로만 따지자면 우리의 투쟁은 전혀 가망이 없소. 그러나 투쟁은 무기로만 하는 게 아닌 것 또한 사실이오. 무기에 앞서 정신력, 여건, 환경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투쟁결과는 나타나게 되어 있소, 그 좋은 예가 바로 제주도에서 전개되고 있는 투쟁이오. 그들은 고립된 섬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7개월째 투쟁을 계속하고 있소. 양키들이 발악적으로 비행기며 군함을 동원해 최신무기를 사용하고, 서청이고 군·경을 그렇게 투입해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해도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 말이오. 왜 그렇겠소? 그건 알다시피 한라산이라는 자연적 환경 때문이오. 여건과 환경의 무기화에 정신력까지 뒷받침되면 무기의 강약에 따른 투쟁의 산술적 계산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거요. 제주도의 투쟁이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 것이나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답을 낼 수가 없소, 상황이 불리한 것은 틀림없지만 적들이 동원하고 있는 최신무기만으로 그 투쟁을 단기간에 끝장내게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오.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자연적 환경과 여건은 너무나 좋소, 적이 우릴 절대로 고립시킬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투쟁은 얼마든지 효과를 거두면서 장기화를 피할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으로 보아 야산대투쟁은 불가하게 되어 있소.”

 

염상진은 이번 일에 대해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몇 가지 의문을 뭉개면서 신념에 찬 태도로 말했다.

 

“10.1항쟁의 손실과 4.3투쟁의 고립화를 통해 모험주의가 반성되고, 지양되어야 한다는 건 당의 결론 아니었습니까? 그런 견지에서 보더라도 이번 투쟁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미제국주의에 대웅한다는 것은 똑같은 손실의 되풀이일 뿐입니다.”

 

“그렇소. 당의 손실일 뿐 아니라 지지기반의 손실이기도 하오. 그러나 도당이 이번에 연대투쟁을 지시한 건 그 나름의 상황적 이유와 근거에 입각한 것이라고 생각하오. 우리가 알다시피 14연대 주력이 뱃길로 조성을 장악한 것이 20일이고, 육로로 진트재를 넘어 벌교로 들어온 것도 20일이 아니었소? 뿐만 아니라 같은 날 광양을, 또 학구와 구례를 장악해 나가는 비호 같은 기동성을 발휘하지 않았소? 그 3개 방향으로 펼쳐진 기민한 분진은 바로 전남 일대의 장악을 뜻하는 것이었소. 그런 상황전개 앞에서 나나 안 동무가 도당위원장이나 간부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 것 같소? 그냥 좌시할 수 있었겠소? 연대투쟁은 필연적이고도 불가피하게 되어 있었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행동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적 요인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오. 그리고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이 안 된 이상 도당의 지령이 독자적인 것이었다고 단정하는 것도 금물이오. 정하섭 동무의 출현이 그 증거요. 어쨌거나 이번 일의 문제점은 14연대의 투쟁 시발에 있고 우리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을 거라는 판단은 부정하기 어렵게 된 게 사실이오.”

 

염상진은 괴로운 마음으로 또 김범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미군들의 화력은 막강했고, 그들은 또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철저했고 잔인했다.

 

(P.327~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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