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과 자만
하늘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상호간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질서와 지혜를 주셨지. 그 질서를 인간의 말로 하자면 먹이사슬이고 지혜는 동면을 위한 영양섭취나 갈무리가 되겠지. 그런데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늘의 뜻을 거역한 존재가 일찍부터 있었어. 그게 바로 인간이야. 하늘이 내린 지혜를 활용하되 탐욕적 이기(利己)를 채우는 무기로 악용하기 시작한 거야. 인간의 역사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지혜를 악용해 가며 인간끼리 살육을 되풀이해 온 기록에 불과해.
뱀이나 개구리가 동면을 위한 영양섭취를 하나 다음해 봄까지 빈사상태로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하는 것이고, 개미나 벌이 겨우살이 갈무리를 하지만 마찬가지로 해동이 될 때까지 필요한 최소량의 먹이만 보관해.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다음해 봄까지가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위해, 그것만으로 모자라 자손대대 이어질 갈무리를 하고자 탐욕한 것이야. 그 탐욕의 부가 상대적인 빈을 낳게 되고, 더 큰 탐욕을 채우고 지키기 위해 필연적인 폭력이 조직화되고, 그 폭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또 다른 힘이 결속됨으로서 필연적으로 살육이 자행되는 것 아닌가.
먹이타툼을 해서 동류끼리 살육을 자행하는 것도 인간뿐이야. 동물끼리 상대방의 생활터전이나 사냥터를 침범하지 않는 것은 모든 동물들의 불문율이네. 동물들이 동류끼리 싸우는 경우가 있지. 그러나 그건 먹이 때문이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힘겨름이지. 힘세고 건강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함으로서 우량한 새끼를 낳게 하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싸움이 아니라 종족보존을 위한 신성한 의식아닌가.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를 일컬어 뭐라고 했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신의 섭리를 거역한 존재로서 당연히 저지르게 된 자만이야. 탐욕과 자만으로 가득찬 인간사회는 착취를 위한 폭력이 조직화되고 상대적으로 인간의 노예화와 굶주림이 상습화되었네.
모든 만물은 신의 섭리에 따라 골고루 나눠 먹고 겨울을 무사히 넘기는데 인간만은 헐벗고 굶주려 죽어갈 수밖에 없게 된 거야. 그건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지옥이지. 그 지옥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이겠나. 파멸이지. 그 극점에 이르러 하나님은 인간들을 일깨우고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신 거야.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며 고루 나누어 먹어라‘는 것이었네. 곧, ’박애의 실천‘으로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을 얻게 되리라는 일깨움이었지. 그러나 인간들은 그 일깨움을 알아듣지 못했어.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한다는 성직자들까지 인간의 탐욕과 자만을 키워 하나님을 욕되게 했네. 중세 암흑시대가 그 좋은 예가 아닌가. 성직자들까지 그 모양이었으니 인간이란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인지 회의스로워. 나 스스로부터 말이야.
그런 회의를 바탕으로 하여 보자면 인간의 역사는 끝없이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논리나, 물질중심의 가치체계로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유물론이나 다 동의할 수 없어. 난 크리스천 입장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사관이나 마르크시즘을 상대적 감정으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야. 지배와 피지배로 얼룩져 온 인간사의 과정을 통해 볼 때 그런 것들의 발생은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어. 또, 인간사의 모순을 해결하고 불합리를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런 것은 소중하고 값진거지.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새로운 주의나 주장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인간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가 없네. 왜냐하면 인간이란 탐욕과 자만을 근본적으로 버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인간이 탐욕과 자만을 버리지 못하는 한 제아무리 새로운 주의나 사상을 내세워도 거기에는 또 다른 모순과 불합리를 내포하게 마련이야. 마르크시즘은 핍박받는 민중을 혁명세력으로 응집시킴으로써 최초의 불꽃이 되었고, 혁명을 성취시킴으로써 최후의 불꽃이 되었네.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마르크시즘은 정작 살해당하기 시작한 거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지배계층이 형성되었고, 그에 따라 공산주의적 계급사회가 이루어지면서 공산주의적 귀족이 생겨나게 되었지. 그리고 전 인류적 인민해방이라는 미명하에 코민테른이란 국제조직을 만들어 세력 팽창을 꾀했는데, 소련의 그 팽창주의가 황금만능이란 자본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패권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나로선 구분이 안되는구먼.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근본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고,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네.
조정래 / ‘태백산맥3’중에서
* 위 글 제목 ‘인간의 탐욕과 자만’은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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